브람스가 바이올린소나타 1번을 작곡할 무렵은 이미 유럽에서 명망 높은 작곡가로 인정을 받고 있던 시대로 이 때 그는 이미 3편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써놓고 있었다. 이 소나타들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한 완벽주의자였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브람스는 이런 와중에 사모하던 클라라 슈만의 막내아들 펠릭스의 갑작스런 죽음에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 악보를 보냈을 때 클라라는 소나타의 마지막 3악장이 그녀가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갈 때 자신을 동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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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는 엄격한 고전주의 형식을 거부하고 자연과 전설 민속적인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혁신적인 시대인 낭만주의의 한 가운데 위치한 작곡가였다. 형식적으론 개인적인 감정과 표현의 양식에 있어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시도가 강조되던 시기였다. 브람스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반음계적 기법을 사용하는 등 혁신을 선도하면서도 베토벤과 그 이전의 음악을 연구하고 과거의 음악 기법을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데 활용했다.
1879년 1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발표된 11개월 후 발표된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자신의 『8개의 가곡과 노래 Op.59』에 수록된 제3곡 「비의노래」와 제4곡 「잔향」을 인용했다. 그 중 3악장의 골격은 「비의노래」인데, 시인 클라우스 그로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쌉쌀한 향수를 표현한 기억과 향수의 노래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는 지친 영혼과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점점이 떨어지는 빗소리를 묘사하는 피아노는 아들을 잃은 슬픔 너머의 아련한 향수의 정서와 결합하게 한다.
-배홍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