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표를 제14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민주당 전당대회. 왼쪽부터 이부영, 김원기, 정대철, 김정길 최고위원, 김대중, 이기택 공동대표, 박영숙, 김상현 김영배, 조세형 최고위원.
민주당은 5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김대중ㆍ이기택을 다시 공동대표로 선출하고, 이튿날에는 제14대 대통령후보에 김대중을 뽑았다.
김대중은 이날 재적 대의원 2,426명 중 60.2%인 1,413명의 득표로 39.4%를 얻은 이기택을 누르고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었다.
“이번 경선의 의미는 이종찬 의원의 경선거부 선언으로 파행적인 대회를 치른 민자당이나 기립표결로 단독후보를 후대한 국민당과 달리 자유경선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주석 4)
대통령후보 선출에 앞서 자유경선 방식으로 실시된 최고위원 선출에는 김상현ㆍ김영배ㆍ조세형ㆍ박영숙ㆍ김정길ㆍ정대철ㆍ김원기ㆍ이부영(득표순) 의원이 각각 당선되었다. 전당대회에서 세 번째 대통령후보가 된 김대중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히며 집권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 우리는 이 나라 정당사상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당도 오늘 우리처럼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뽑은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우리 민주당이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한 군사통치 30년에 대해 철저히 불신하고 있으며 정치ㆍ경제ㆍ사회 모든 분야에 걸친 민자당정권의 실정과 부패, 무능에 대해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당이 집권해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첫째,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대화합의 정치를 해나가겠다. 이를 위해 거국내각을 구성, 각계각층의 지역대표와 정당을 참여시키고 여성과 청년들도 국정에 대폭 참가시키겠다. 민(民)과 관(官) 및 군(軍)의 화합을 위해 직업공무원제도를 유지 발전시키고 병력의 합리적 재편성 등으로 군예산을 절감, 장병처우개선과 장비현대화를 하는 한편 군의 중립화를 실현시키겠다. 또 일체의 정치보복을 없애겠다.
둘째, 민주당이 집권하면 우리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선진 7개국에 이어 세계경제의 8강대열에 들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끌고 갈 능력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며 물가안정과 함께 수출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당은 집권하면 예산긴축과 금융실명제 실시를 통한 투기억제로 물가상승률을 연3% 이내로 억제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한편 중소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
셋째, 우리 당은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정의사회를 만들 것이며 이를 위해 나 자신부터 청렴결백의 모범을 보일 것이다.
넷째, 지난 71년 이래 내가 주장해온 3단계원칙의 공화국연합제에 의한 통일방안 중 1단계의 통일을 성취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후진국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도덕적 선진국가를 기필코 만들 것이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독재와 싸우면서도 일관되게 “우리가 여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하는 대안을 생각해 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같은 포부와 계획을 실천에 옮겨 올바른 정치,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정치를 구현할 것이며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열어 21세기의 희망찬 꿈을 국민과 젊은이에게 선사하겠다. (주석 5)
1992년 5월 10일은 김대중ㆍ이희호의 결혼 3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은 기억해도 가족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김대중에게, 결혼 30주년을 바쁜 당무로 그냥 넘기는 남편을 두고 이희호는 뒷날 이렇게 썼다.
결혼한지 열흘만에 그가 감옥으로 간 예고가 심상치 않았듯이 그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사느라 생일ㆍ기념일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결혼 10주년에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20주년에는 남편이 청주교도소에 갇혔다. 생일 역시 교도소가 아니면 연금 중으로 선물은 고사하고 미역국도 못 끓일 때가 허다했다.
1983년 미국으로 망명가서야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친구 제인 하비가 내 생일에 보내온 꽃과 케이크가 발단이었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은 기억하지만 가족생일은 기억 못하는 남편이었다.(…) 가장 귀한 생일선물은 교도소에서 온 카드다. (주석 6)
주석
4) <동아연감 ― 1993년>, 79쪽.
5) <동아연감 - 1993년>, 79쪽.
6) <이희호자서선 동행>, 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