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 이원익 종택(충현박물관) 문화유적 찾기
◇ 관감당(觀感堂): 광명시 소하 2동 1086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
- 6번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 ‘오리 정승’의 종가(宗家)
관감당(觀感堂)은 오리 이원익 종택(宗宅)으로 조선시대 선조~인조 때 6번 영의정을 지냈고, 3대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 1547~1634) 선생의 종손이 살았다.
관감당은 1630년(인조 8)에 영의정 이원익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살던 두 칸 초가에 비가 새자, 인조가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지어준 집이다. 오리 이원익 선생이 오랫동안 정승을 지냈으나 여전히 가난했고, 집이 2칸 초가인 데다가 비가 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조가 이를 안타까이 여겨 새집을 하사하였다.
1658년(효종 9)에 오리 이원익 선생집터에 사당을 짓고, 충현서원(忠賢書院)으로 사액(賜額 :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건물 등에 이름을 직접 지어 편액(현판)을 내려주던 일") 되었으나, 뒤에 서원은 훼철되었다.
관감당은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서거 60주년인 숙종 20년(1694)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다시 어느 때에 허물어졌다가 1916년에 10대손 이연철(李淵哲)이 옛 집터에 관감당을 새로 짓고, 이듬해에는 안채, 1940년 무렵에는 문간채를 새로 세워 종손이 살았다.
관감당 앞에는 오리 이원익의 영정을 모신 영우(影宇)가 있다.
오리 이원익 선생은 ‘오리 정승’, ‘키 작은 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평안도 도순찰사(平安道都巡察使)로 평양 탈환에 공을 세웠고, 4도 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로 군무를 총괄하여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녹훈되었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 경기도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80세에 가까운 노구로 공주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도체찰사로 세자를 호위해 전주로 갔다가 강화도로 와서 왕을 호위했으며, 서울로 환도하자 훈련도감 제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고령으로 체력이 약해져 사직을 청하고 낙향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왕의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의 성품이 소박하여 과장이나 과시를 할 줄 모르고 소임에 충실하며, 정의감이 투철하였다. 5번이나 영의정을 지내면서 88세까지 청빈하게 살아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고, 인조로부터는 사제(私第 : 개인 집)와 궤장(机杖 : 의자와 지팡이)을 하사받았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충현박물관 [忠賢博物館] : 광명시 소하 2동 1086
- 직계 후손들의 유적·유물이 보존된 종가박물관
충현박물관(忠賢博物館)은 오리 이원익 종택(宗宅) 안에 직계 후손들의 유적·유물이 보존된 종가박물관으로 종가(宗家)에서 세운 국내의 유일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이원익의 13대 종손이 설립한 충현문화재단이 건립하고, 2003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 내에는 영정을 모신 사당인 오리 이원익 영우(影宇,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161호), 인조가 지어준 집인 관강당, 1676년 숙종이 편액을 내린 충현서원지, 종택 등 경기도의 지정문화재를 여러 개 소장하고 있다. 전시관(충현관)에는 이원익 관련 유물과 자료, 종가의 민속 생활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리 이원익 영우(影宇) 동편에는 삼현사라 불리는 강감찬(姜邯贊)·서견(徐甄)·이원익의 신위를 모시는 충현서원지[경기도 기념물 제80호]가 있고, 관강당 왼쪽에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부모·형·숙부의 무덤이 있으며, 풍욕대, 삼상대, 탄금암이 있다.
◇ 오리 이원익 선생 묘 및 신도비 : 광명시 소하동 산 137-1 (경기도 기념물 제85호)
- 오리 이원익과 부인의 합장묘 및 신도비
오리 이원익 선생의 묘는 부인과의 합장묘이며, 봉분이 2기인 쌍분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 등이 있고,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각 1쌍씩 서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역 아래 길가에 세워져 있는데, 비석 윗부분에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다투는 모양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대제학을 지낸 이준(李埈)이 글을 짓고, 우의정 허목(許穆)이 글씨를 쓴 비문은 마모가 심해 내용을 알기 어렵다.
◇ 풍욕대(風浴坮): 광명시 소하 2동 1086
- "바람으로 목욕을 하는 곳"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는 누각(정자) 형태의 공간
오리 이원익 종택(현재의 광명 충현박물관) 내에 위치한 풍욕대(風浴坮)는 선생의 삶과 멋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주 낭만적인 공간이다.
'바람풍(風)'에 '목욕할 욕(浴)', '돈대 대(坮/臺)' 자를 써서 "바람으로 목욕하는 곳"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다.
1. 풍욕대의 의미와 정취
종택 뒷마당의 나지막한 언덕(정원)에 자리 잡은 누각(정자) 형태의 공간이다.
자연과의 교감 : 에어컨이 없던 옛 시절, 사방으로 탁 트인 이곳에 앉아 불어오는 산바람과 대나무 숲의 서늘한 기운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마음을 씻어내던 장소이다.
풍욕대 주변에는 오리선생이 거문고를 타던 바위인 탄금암(彈琴岩)과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400년 수령의 측백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추구했던 자연 친화적인 풍류를 그대로 보여준다.
◇ 탄금암(彈琴岩) : 광명시 소하 2동 1086
- 오리 이원익 선생이 거문고를 타던 바위
오리 이원익 종택(현재의 광명 충현박물관) 내에 있는 탄금암(彈琴岩)은 인조 임금이 선생의 청렴함을 기려 지어준 집인 관감당(觀感堂)의 뜰에 있다. 탄금암은 오리 선생이 거문고를 타던 바위이다.
바위 바로 곁에는 수령이 400년이 넘은 거대한 측백나무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삼상대(三相臺) : 광명시 소하 2동 1086
- 오리 이원익 종택 뒷마당 언덕에 ‘세 명의 정승(三相)이 모이는 곳’이라는 글씨
삼상대(三相臺)는 오리 이원익 종택(충현박물관) 뒷마당 언덕에 자리 잡은 편평한 바위(또는 그 터)로, 풍욕대, 탄금암과 함께 선생의 말년 정취를 품고 있는 유적이다.
'석 삼(三)'에 '정승 상(相)', '돈대 대(臺)' 자를 써서 "세 명의 정승이 모이는 곳"이라는 묵직한 의미를 담고 있다.
1. '삼상(三相)'의 의미와 유래
'삼상'은 조정의 가장 높은 세 관직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삼정승)을 뜻한다.
영의정만 여섯 번을 지낸 이원익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머무를 때, 그를 우러러보던 후배 정승들이나 당대의 고위 대신들이 이 먼 시골(당시 금천, 현재의 광명)까지 직접 찾아와 국정을 자문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당대 최고의 대신들이 이 바위 주변에 모여 걸터앉아 정사를 논하고 시를 읊었던 역사적 풍경에서 '삼상대'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 오리서원(梧里書院) : 광명시 소하동 1055-3
- 오리 이원익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
광명시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정, 수장품 전시, 관람 등을 위해 「오리 이원익 기념관」을 이곳에 건립하였다.
그 뒤 주변 환경의 변화 등으로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기념관의 취지를 더욱 널리 알리고 더 현대화된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 발전을 모색하면서, 청렴한 선생의 삶을 사표(師表)로 삼아 청렴 교육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근래에 와서 인문학이 대중화되는 시대적 요청을 수용하기 위하여, 2013년에 ‘청렴 인성교육관’, 「오리서원(梧里書院)」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국난이 극심했던 시기에 탁월한 실무능력과 일관된 청렴 정신으로, 국왕에서부터 만백성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신뢰를 받았던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이, 광명시를 넘어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청렴과 안민(安民)의 표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리서원 내에는 세미나실과 강의실인 인의정, 예지실, 오리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전시관, 대강당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