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12 - 안연(顔淵) - ② |
| 1 |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 중궁이 인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문 밖을 나갈 때는 큰 손님을 뵌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지내듯이 하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을 때에도 원망이 없을 것이며 집에 있을 때에도 원망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중궁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똑똑하지 않지만 이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敬以持己 恕以及物 則私意無所容而心德全矣 內外無怨 亦以其效言之 使以自考也 공경으로써 자기 자신을 붙잡고 恕로써 남에게 미친다면, 사사로운 뜻이 용납될 곳이 없어져서 마음의 덕은 온전하게 될 것이다. 안과 밖에서 원망함이 없다는 것은 또한 그 효과로써 말한 것인데, 이로써 스스로 敬恕를 잘 하고 있는지 상고하도록 한 것이다. 敬以持己: 解出門使民二句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다는 2구절을 풀이한 것이다. 恕以及物: 解不欲勿施二句 物卽人也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베풀지 말라는 2구절을 풀이한 것으로서, 物이란 곧 남이다. 新安陳氏曰 敬以持己 則私意無所容於內 恕以及物 則私意無所容於外 於是公理流行而心德全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공경으로써 자신을 붙잡으면, 私意가 안에서 용납될 곳이 없고, 恕로써 남에게 미친다면, 私意가 밖에서 용납될 곳이 없으니, 이에 公理가 유행하고 마음의 덕이 온전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敬者吾心之所主而仁之存也 恕者吾心之所以達而仁之施也 主敬持己 行恕及物 則內外無私意而仁在是矣 진씨가 말하길, “敬이라는 것은 내 마음을 주재하는 바이면서 仁을 보존하는 것이고, 恕라는 것은 내 마음이 이로써 이르는 것이면서 仁을 베푸는 것이다. 敬에 주안점을 두어 자신을 붙잡고, 恕를 행하여 남에게 미치면, 내외에 私意 가 없으면서 仁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上章天下歸仁 是以克己復禮之效言之 此章內外無怨亦以主敬行恕之效言之 考驗也 能使內外無怨 可以驗我之能敬恕 若內外尙有怨者 是我於敬恕猶有未至也 此之謂自考 신안진씨가 말하길, “윗 장의 天下歸仁은 극기복례의 효과로써 말한 것이고, 이 장의 內外無怨 역시 敬에 주안점을 두고 恕를 행하는 효과로써 말한 것이다. 考는 증험한다는 말이다. 내외에 원망함이 없게 할 수 있다면, 이로써 내가 능히 敬과 恕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험할 수 있다. 만약 안과 밖에 아직도 원망을 가진 자가 있다면, 이는 내가 敬과 恕에 있어서 미진함이 있다는 뜻이다. 이를 일컬어 自考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朱子曰 己所不欲勿施於人 緊接著那出門使民 在邦無怨在家無怨 緊接著那己所不欲勿施於人 直到這裏 道理方透徹 似一片流水注出來 到這裏方住 中間也間斷不得 效驗到這處 方是做得透徹 充足飽滿 極道體之全 而無虧欠 內外間纔有一人怨他 便是未徹 便如天下歸仁底 纔有一箇不歸仁 便是有未到處 주자가 말하길,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이 저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다’는 말에 긴밀하게 붙어있고, ‘나라에 원망하는 사람이 없고 집안에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또 저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에 바짝 붙어 있다. 곧장 여기까지 이르러서야 이치가 비로소 투철해지니, 마치 하나의 흐르는 물줄기를 끌어내 오는 것과 같이 여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멈추어야지, 중간에 끊어져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효험이 이곳에 이르면, 비로소 투철하고 충족하며 포만스럽게 해낸 것이니, 道體의 온전함에 이르러서 어떠한 이지러짐이나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안과 밖 사이에서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곧바로 아직 투철하지 못한 것이고, 곧 천하가 仁으로 돌아감에 있어, 한 사람이라도 仁으로 돌아가지 못함이 있다면, 곧바로 이르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己所不欲勿施於人 如富壽康寧 人之所欲 死亡貧苦 人之所惡 所欲者 必以同於人 所惡者 不以加於人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하였는데, 예컨대 부유하고 장수하며 강녕한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고, 죽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바다. 바라는 바는 반드시 남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미워하는 바는 이로써 남에게 더하지 않아야 한다. 能敬能恕 則仁在其中 世有敬而不能恕底人 便只理會自守 却無溫厚愛人氣象 若恕而無敬 則無以行之 須先主於敬然後能行其恕 능히 恭敬할 줄 알고 능히 恕를 행할 줄 안다면, 仁은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경할 줄 알지만 恕를 행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 곧 그저 스스로 지키는 것만 이해하고 있을 뿐, 도리어 온후하고 남을 사랑하는 기상은 없다. 만약 恕를 행하지만 공경함이 없는 경우라면, 이를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먼저 敬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니, 그러한 후에서야 능히 그 恕를 행할 수 잇는 것이다. 聖人言語極謹密 說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下面又便說 己所不欲勿施於人 都無些欠缺處 問此意則體用兼備 曰 只是如此 自家身己上 常是持守 到接物上 又如此 則日用之間 無少間隙 私意直是何所容 可見聖人說得極密 성인의 말씀은 지극히 신중하고 정밀하므로, ‘대문을 나서면 큰 손님 보듯이 하고, 백성을 부림에는 큰 제사를 받든 듯이 하라’고 말하고서, 아래에서 다시 곧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말했으니, 모두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이지러진 부분이 없었다. 누군가 묻기를, “이 뜻은 곧 體와 用이 겸비되었다는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저 이와 같을 뿐이다. 자신의 몸 위에서 항상 붙잡고 지키면서도 남과 접하는 것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면,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조금이라도 간극이 없으니, 私意가 그야말로 어느 곳에 용납되겠는가? 성인께서는 지극히 정밀하게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如以刑加人 豈人所欲 便是不恕始得 曰 伊川云 恕字須兼忠字說 忠是盡己而後推之爲恕 夫以刑加人 其人實有罪 其心亦自以爲當然 故以刑加之 而非强所不欲也 其不欲被刑 乃其私心 若其眞心 旣己犯罪 亦自知其當刑矣 今人只爲不理會忠而徒爲恕 其弊只是姑息 누군가 묻기를, “예컨대 형벌을 남에게 가하는 것은 어찌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겠습니까? 곧바로 恕를 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옳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정이천 선생이 이르길, 恕자는 반드시 忠자와 겸해서 말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忠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한 이후에 그것을 미루어가서 恕를 행하는 것이다. 무릇 형벌을 남에게 가함에 있어, 그 사람이 실제로 죄가 있으면, 그 마음도 또한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에, 형벌을 그에게 가하는 것일 뿐, 바라지 않는 바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형벌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것이 사심이다. 만약 그의 진심이라면, 이미 자신이 죄를 범하였으니, 또한 스스로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함을 알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단지 忠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헛되이 恕를 행하기 때문에, 그 폐단이 그저 姑息(잠깐의 편안을 위함)적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問怨有是非 如何都得他無 曰 此只說怨得是底 누군가 묻기를, “원망에는 옳고 그른 것이 있는데, 어떻게 모든 경우에 원망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것은 그저 올바르게 원망하는 것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弟子之問 多矣 獨二子有請事之對 蓋度其能踐此言而後對 記者亦以其充此對而記之也 제자들의 질문이 많았는데, 유독 두 제자에게만 일삼기를 청한다는 대답이 있었다. 대체로 자신이 능히 이 말을 실천한 수 있음을 헤아린 후에 대답한 것이고, 기록한 사람도 역시 그가 이 대답을 충실히 이행(充)할 수 있다고 여겨서 이를 기록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不敬則私欲萬端 害仁之體 不恕則徇己遺人 柅仁之用 必敬以養之 恕以達之 則私意無可萌之時 無可著之處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敬하지 못하면, 사욕이 만가지로 생겨서 仁의 體를 해치고, 恕를 행하지 못하면, 자기의 뜻만 따를 뿐 남은 빠뜨려서 仁의 用을 멈추게 한다. 반드시 敬으로써 仁의 體를 기르고 恕로써 仁의 用을 이르게 한다면, 私意가 싹틀만한 때가 없고, 들러붙을 곳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氏曰 主敬則內有以全其心之德 行恕則外有以推其愛之理 왕씨가 말하길, “敬에 주안점을 둔다면, 안으로 그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할 수 있고, 恕를 행한다면, 밖으로 그 사랑의 이치를 미루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敬以持己是收斂此心入來 恕以待人是推擴此心出去 운봉호씨가 말하길, “敬으로써 자신을 붙잡는 것은 이 마음을 거두어서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恕로써 남을 대하는 것은 이 마음을 미루어 넓혀서 내보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 2 | ○ 程子曰 孔子言仁 只說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看其氣象 便須心廣體胖 動容周旋中禮 唯謹獨 便是守之之法 정자가 말하길, “공자께서 仁을 말씀하시면서, 단지 대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만난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적에 큰 제사를 맡은 듯이 하라고만 말하였는데, 그 기상을 보면, 모름지기 마음은 넓고 몸은 편안하며, 몸가짐과 처사가 모두 예에 들어맞는 것이다. 오직 홀로를 삼가는 것만이 곧 이것을 지키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程子恐人見賓承祭作勉强拘束之敬 故云然 蓋欲如所謂禮之用和爲貴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정자는 사람들이 ‘손님을 만난 듯이 하고 제사를 받드는 것처럼 한다’는 것을 억지로 속박하는 敬으로 삼는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대체로 이른바 ‘禮의 作用은 조화를 귀한 것으로 삼는다’는 것처럼 하기를 바란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又恐人外貌如此而中心不如此 必於一念萌動 己所獨知之處而致謹焉 便是持守此敬之法 신안진씨가 말하길, “또한 사람의 외모가 이와 같음에도 그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음을 걱정하니, 반드시 한 가지 생각이 싹터 움직일 적에 자기 혼자만 아는 곳에 대하여 삼감을 지극히 해야 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러한 敬을 붙잡아 지키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心廣體胖周旋中禮 特敬之氣象耳 至於用功却在謹獨上 蓋人但見其出門使民耳 如見大賓如承大祭 則人所不知而己所獨知者 於此謹之 則得其用功之要 쌍봉요씨가 말하길, “마음은 넓고 몸은 편안하며 행동거지가 예에 들어맞는 것은, 단지 敬의 기상일 뿐이다. 공력을 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謹獨 위에 써야 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그저 그가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리는 것만 볼 뿐이다. 큰 손님을 만나듯이 하고 큰 제사를 지내듯이 하는 것이라면, 곧 남이 알지 못하지만 자기만 혼자 알고 있는 것이니, 여기에 삼간다면, 공력을 쓰는 그 요체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 3 | 或問 出門使民之時 如此可也 未出門使民之時 如之何 曰 此儼若思時也 有諸中而後 見於外 觀其出門使民之時 其敬如此 則前乎此者敬 可知矣 非因出門使民然後 有此敬也 혹자가 묻기를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적에 이와 같이 하는 것은 괜찮지만, 아직 대문을 나서거나 백성을 부릴 때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런 경우는 생각하는 것과 엄연히 똑같이 해야 할 때이다. 마음속에 그것이 있은 연후에 비로소 밖에 드러나는 것이니, 그가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적에 하는 것을 살펴보아서 그 공경함이 이와 같다면, 이것보다 앞서 행한 것도 공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적에 그렇게 한 것을 말미암은 연후에 비로소 이러한 공경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曲禮曰 儼若思 此靜時敬也 예기 곡례에 이르길, ‘엄연히 생각하는 바와 똑같이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고요하게 있을 때의 敬인 것이다. 新安陳氏曰 觀其動時敬 則其靜時敬 可知 신안진씨가 말하길, “그가 움직일 때 敬한 것을 살펴보면, 그가 고요하게 있을 때도 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程子推夫子言外之意而言之 이것은 정자가 공자께서 하신 말 밖의 뜻을 미루어서 말한 것이다. 問程子只說作敬 先生便說敬以持己恕以及物 看來 須如先生說 方全 朱子曰 程子不是就經上說 是偶然摘此二句 所以只說作敬 누군가 묻기를, “정자는 단지 敬이라고만 말했는데, 선생은 곧 敬以持己와 恕以及物을 말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반드시 선생이 말한 것처럼 해야만 비로소 온전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정자는 經典 위로 나아가 말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이 두 구절을 따온 것이다. 그래서 단지 敬이라고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平日之涵養 一於敬 則出門使民之際 皆此心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평소에 함양한 바가 敬에 전일하다면,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리는 즈음에 모두 이런 마음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平時固是敬謹 出門使民時 尤加敬謹 此只就出門使民說起 則只是動時事 蓋出門使民是與人交接之時 於此時有敬謹之心 則交接之間 私意不存 而得以盡其推己及人之恕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평소에도 본래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니,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더욱 공경과 삼감을 더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리는 것에 나아가서 말한 것이니, 그저 움직일 때의 일이다. 대체로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리는 것은 남과 더불어 서로 접촉할 때이니, 이러한 때에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 접촉하는 사이에 私意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 推己及人의 恕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 4 | 愚按 克己復禮 乾道也 主敬行恕 坤道也 顔冉之學 其高下淺深 於此可見 然學者誠能從事於敬恕之間 而有得焉 亦將無己之可克矣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극기복례는 하늘의 도이고, 공경을 주장하고 恕를 행하는 것은 땅의 도다. 안연과 염옹의 학문은 그 높고 낮음과 얕고 깊음을 여기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배우는 자들이 진실로 공경과 恕의 사이에서 종사하여 얻는 바가 있다면, 또한 장차 자신이 극복해야 할 만한 것(사욕)은 없을 것이다. 朱子曰 乾道奮發而有爲 坤道靜重而持守 觀夫子告二子 氣象各有所類 주자가 말하길, “乾道는 분발하여 훌륭한 일을 행함이 있는 것이고, 坤道는 고요하고 중후하게 붙잡아 지키는 것이다. 공자께서 두 제자에게 알려준 것을 살펴보면, 그 기상은 각자 무리 지은 바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仲弓資質溫粹 顔子資質剛明 顔子於仁剛健果決 如天旋地轉雷厲風行做將去 仲弓則自斂藏嚴謹做將去 伊川曰 質美者明得盡 査滓便渾化 却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以持養之 顔子則明得盡者 仲弓則莊敬以持養之者也 顔子如創業之君 仲弓如守成之君 중궁은 자질이 온화하고 순수하였고, 안자는 자질이 굳세고 밝았다. 안자는 仁에 대하여 강건하고 과감하며 결단력이 있었으니, 마치 하늘이 돌고 땅이 구르며 번개가 사납게 치고 바람이 불 듯 해나갔다. 중궁은 스스로를 거두어 감추고 엄하게 삼가면서 해나갔다. 정이천 선생이 말하길, “자질이 훌륭한 사람이 끝까지 다 밝을 수 있다면, 찌꺼기는 곧바로 순수하게 변화되어 도리어 천지와 더불어 同體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오직 莊敬으로 붙잡고 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안자는 곧 끝까지 다 밝을 수 있는 자였고, 중궁은 장경으로 붙잡아 기르는 자였다. 안자는 창업을 한 임금과 같았고, 중궁은 수성하는 임금과 같았다. 克復乾道 是一服藥 打疊了這病 敬恕坤道 是服藥調護 漸漸消磨了這病 持敬行恕 雖不曾著力去克己復禮 然只一般 若把這箇養來養去 那私意自是著不得 극기복례는 건도이니 한번 약을 먹어서 이 병을 때려부수는 것이고, 敬과 恕는 곤도이니 약을 먹고 조절하고 보호하여 점점 이 병을 없애는 것이다. 敬을 붙잡고 恕를 행하는 것은 비록 일찍이 힘을 쏟아붓고는 가서 극기복례를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저 같은 종류일 뿐이다. 만약 이것을 붙잡아서 이리저리 기른다면, 저 私意는 저절로 들러붙지 못할 것이다. 問克己工夫與主敬行恕 如何 曰 克己復禮是截然分別箇天理人欲 是則行之 非則去之 敬恕則猶是保養 在這裏未能保他無人欲 在若將來 保養得至 亦全是天理矣 누군가 묻기를, “극기의 공부와 主敬行恕는 어떤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극기복례는 천리와 인욕을 확연하게 분별하여 옳으면 행하고 그르면 제거하는 것이다. 敬恕는 보양하는 것과 같으니, 여기에서는 아직 그에게 인욕이 없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만약 장래에 있어서 지극하게 보양할 수 있다면, 또한 전부가 다 天理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克己復禮 如內修政事外攘夷狄 出門使民 如上策莫如自治 극기복례를 함에 있어서, 안으로 정사를 닦고 밖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처럼 하고, 대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림에 있어서, 상책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만 못하다는 것처럼 하라. 問持敬克己工夫 相資相成否乎 曰 做處則一 但孔子告顔子仲弓隨他氣質地位而告之耳 若不敬則此心散漫 何以能克己 若不克己 非禮而視聽言動 安能爲敬 又曰 敬之至固無己可克 克己之至 亦不消言敬 敬則無己可克者 是無所不敬 故不用克己 此是大敬 如聖敬日躋 於緝熙敬止之敬也 누군가 묻기를, “持敬과 克己의 공부는 서로 도와주어 서로를 이루어주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행하는 곳은 동일하지만, 공자께서 안자와 중궁에게 알려줌에 있어 그들의 기질과 경지에 따라서 알려주었을 따름이다. 만약 敬하지 않는다면, 이 마음은 산만해질 것인데, 무엇으로 능히 극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극기하지 못하여 禮가 아님에도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어찌 능히 敬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敬이 지극하면, 본래 극복할만한 사욕이 없는 것이고, 극기를 지극히 하면, 또한 敬을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敬하면 곧 극복할 己가 없는 것이니, 敬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극기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것은 大敬이니, 마치 성스런 경이 날로 올라가거나 오! 敬을 계속하여 밝힌다의 敬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顔子工夫索性豁開雲霧便見靑天 故屬乾 仲弓工夫著力淘盡泥沙 方見淸泉 故屬坤 此處最難認 須細心玩聖賢氣象 便會得 잠실진씨가 말하길, “안자의 공부는 아예 운무를 활짝 걷어서 열어젖혀서 곧바로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이니, 그래서 하늘에 속한다는 것이다. 중궁의 공부는 힘을 쏟아서 진흙과 모래를 다 일어내야만 바야흐로 맑은 샘물을 보는 것이니, 그래서 땅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제일 알기 어려우니, 반드시 세심하게 성현의 기상을 음미해야만 곧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左傳云 仲尼曰 古語有之曰 克己復禮 仁也 蓋古有此語 唯顔子可以從事於此 又曰 出門如賓承事如祭 仁之則也 亦古有此語 唯仲弓可以語之 후재풍씨가 말하길, “좌전에 이르길, 중니가 옛말에 극기복례는 仁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옛날에 이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오직 안자만이 이것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대문을 나서면 손님을 만나는 것처럼 하고, 일을 받듦에 있어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하는 것은 仁의 준칙이라는 말 역시 옛날에 이러한 말이 있었는데, 오직 중궁에게만 이로써 말해줄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蔡氏曰 以效言之 亦有不同 顔子底 便可天下歸仁 其應廣而速 仲弓底只可邦家無怨 其應狹而緩 채씨가 말하길, “효과로서 말하자면, 역시 같지 아니함이 있다. 안자의 경우는 곧 천하가 다 仁에 돌아갈 수 있으니, 그 호응이 넓고도 빠르지만, 중궁의 경우는 그저 나라와 집안에 원망함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니, 그 호응이 좁고도 느리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