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의자왕 살인사건, 은고
저자 : 김홍정
출판 : 솔출판사 2018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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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소설가가 되려면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 눈썰미는 무엇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지나치기 쉬울 어떤 화제나 현상, 믈체에 대해 예사롭게 보아넘기지 않고 주의를 기울여 관찰한 결과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특출한 감각의 일종이다. 그래서 그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지니게 함으로서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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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독자들로서는 역사에 대한 전공자나 비범한 관심을 가진 애호가가 아니고서는 학생시절 학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배운 지식은 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아직도 그 자료나 유적에 있어서 근세보다 열악할 수밖에 없는 고대 삼국간의 역사에 관해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만으로는 당시 역사의 본질에 다가서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여기 나오는 백제라는 국가 명칭에 있어서도 특히 그러한데 웅진백제시절에 이어진 백제 말기의 시대를 ‘남부여’란 국가 명칭으로 지칭하며 만주 벌판의 북방 대륙에 있었던 부여의 국조를 이어받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는 줄거리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역사의 전면에 나서본 적이 없던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내 ‘은고’라는 인물은 더더욱 낯설다. 지금까지 그 어떤 책에서도 ‘은고’라는 여성을 내비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삼국유사와 일본서기 등의 각종 삼국시대 백제와 관련한 자료들을 주의 깊게 섭렵하며 상상이라는 날개를 활짝 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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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 때문에 충청도 서해안을 다니는 일이 잦아졌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감흥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지도 상에서는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할지 몰라도 지금 사는 곳에서 차로 서해안까지 가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라는 점에서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며, 하물며 차도 없이 겨우 말에 의지하거나 태반은 걸어 다녔을 고대 삼국시대에 있어서 백제라는 나라의 권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한수(한강)를 경계로 남으로는 전남 고마미지(장흥)부터 동으로는 대야성(합천)까지 전장을 확대한 걸로 보아서 지금도 차로 전남 고흥까지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지역을 고대 백제는 나라로 다스렸으니 지금의 잣대가 아닌 당시의 비교도 안될 만큼 열악한 교통수단으로 볼 때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는 감흥이 들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있다. 얼마 전 읽은 어느 고대사에 관한 책에서 삼국시대 한반도에 거주한 인구는 채 삼백만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러면 그 시절 수많은 삼국간의 치열한 전쟁과 갈등은 오늘날 대규모의 경제적 현실과 문화와 견주어 보아서는 안 될 것과 지극히 소규모의 국지전적 전쟁으로서 오늘날 우리의 가공할 상상력에 다소 실망을 안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작품 속에서 작가가 실감나게 이야기를 전개해간 드넓은 지역의 수많은 고대 전장터인 당항성(경기도 화성), 난행량(태안 안흥), 임존성(충남 대흥), 두량윤성(충남 정산), 기벌포(충남 장항), 두량이성(전북 완주), 고사성(전북 부안), 구지하성(전남 장성), 고마미지(전남 장흥), 감물성(경북 김천), 대야성(경남 합천) 등의 명칭은 그 지명만으로도 가슴을 충분히 설레게 하고 고대가 살아서 움직이는 역동감을 충분히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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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의자왕이라는 백제의 마지막 왕과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었을 그의 아내 은고라는 여성을 경직된 역사로부터 인간미 넘치게 소생시켰으며, 그들 왕조의 마지막 절체절명의 시기를 여러 다양한 인물-스님과 검객, 좌평과 같은 다소 낯선 정치집단과 시중의 군상들을 등장시킴으로서-당시를 오늘날에 근접한 바로 엊그제 같은 날들로 되돌림으로서 천 년도 훨씬 지난, 오랜 고대시간과의 긴 단절을 극복하게 한 것이다.
망해가는 왕조를 되살리고 지난 날 대륙에서 꿈꾸었던 부여의 열망을 실현하고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열정과 사랑, 암투, 모략 등을 현대의 감각에 맞추어 그 흥취를 실감나게 불러낸 것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 사계절의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표현 혹은 묘사함으로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 땅 사람들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함과 동시에 시대간의 이질적 거리를 좁혀 다정다감하게 만들었고, 사나이들의 의리와 우정, 남녀 간의 사랑은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불변임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선선히 받아들이게 한 작가의 탁월한 역량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덧붙여 문학적 상상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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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백제 아니 남부여의 망국의 한을 풀어내는데 끝나지 않을 듯싶다. 그들이 채 이루지 못한 꿈과 여한은 그 이후로도 이 땅의 역사 곳곳에서 반복되듯 나타나며 이 민족의 슬픔이 되고 원망이 되며 기저에서는 한(恨)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작품 내내 나타나는 민중들의 미륵사상에 대한 절절한 염원이 그것을 의미심장하게 대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독 고찰과 고찰 주변을 중심으로 한 무대가 자주 등장하며 당시 지배계급으로서 왕족과 승려들의 중심적 역할이 이 작품 속에서도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남부여(백제)뿐만 아니라 그들과 경쟁하는 신라, 그들을 혈맹으로 지원하는 이웃나라 왜(倭), 그리고 신라와 동맹을 맺고 남부여를 멸하려는 중국의 당(唐) 등 당시 주변 모든 나라의 공통적인 문화임을 잠시 엿보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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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남부여의 민중들과 역사적 인물들이 꾸었던 그 꿈은 아직 유효한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꿈은 이 땅에 사는 모든 민중들의 무의식으로 남아 오늘도 그 기저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음을 간파하고는 남부여가 아닌 이 민족 모두의 결코 끝나지 않을 대서사시임을 알리고 다시금 작품 속의 주작이 날아오르듯,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날아오르며 외친
-거믄새가 날았다.
처럼 이 민족의 도약과 웅비를 염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책없는 순전한 나만의 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