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현장과 미술 시장은 이론적으로는 상호 보완적 성격으로 흔히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론뿐이다. 현실 속에서 이 두 바퀴는 그렇게 다정하게 짝 맞춰 굴러가지 않는다. 아니 다정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시장에 대한 거부감은 이른바 돈이 전부라는 시장의 배금주의적 숙명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거기에 시장과 가까워 봤자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피해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구자들에게 미술시장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당한 독은 약이 되듯이 다루기에 따라서 시장이 득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매 시장은 모든 자료를 공개한다는 게 무엇보다 매력이고 특징이다. 그래서 경매시장에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도 또 특별한 노력 없이도 새로운 자료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경매에 출품된 이방운의 <고사관수도> 역시 새롭게 보는 그의 그림 중 하나다. 이방운(李昉運, 1761-1815 이후)은 호가 기야(箕埜)이며 1800년을 전후해 활동한 화가이다. 본래 양반 출신이었으나 몰락해 직업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시중의 수요에 응해서 그림을 그렸던 만큼 다양한 장르에 두루 솜씨를 보였다.
이방운 <고사관수도> 지본담채 49x35cm 개인
이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인물이 있는 산수로 분류할 수 있다. 기야 그림의 특징은 간결한 필치에 있다. 이런 필치를 빨리 구사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을 해내는 게 그의 솜씨였다. 이런 특징은 이 그림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가늘고 경쾌한 선이 반복되는 물가에 부드러운 필치로 돌 언덕과 석축 그리고 그 위의 인물이 섬세한 인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은 바다 쪽으로 돌출해있는 석대(石臺)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 위에 한 노인이 비스듬히 앉아 파도를 감상하고 있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시중드는 사동이 차를 끓이고 있다.무엇인가 몰두하는 고사에 차 끓이는 고사는 조선후기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짝이다. 이들 앞으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넓은 수면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에는 안개 속에 잠긴 낮은 산 하나가 보인다. 그 위에는 푸르스름한 달무리 속에 둥근 달이 떠 있다.
고사가 물을 바라본다는 테마는 예부터 많이 그려져 온 소재다. 흔히 관수도(觀水圖)라는 불리는 이런 그림은 사실 단순히 감상용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그림 대부분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교훈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 공자는 어느 때 황하의 방죽에 올라 강물을 바라보면서‘흘러가는 것이 저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도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뒷물이 앞 물을 이어가며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해 흘러가는 강물의 유장함을 말한 것으로도 여겨지는데 후대에는 이를 훨씬 더 교훈적으로 해석했다. 즉 스스로의 심성을 닦는 학자라면 당연히 흘러가는 물처럼 밤낮을 쉬지 않고 자기 수련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물을 바라보는 그림 역시 이런 유교적 교훈을 전제로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게 됐다.
그런데 기야가 그린 이 관수도에는 약간 다른 의미도 담겨 있다. 그것은 위쪽에 적어 놓은 시구의 내용을 알고 나면 더욱 그렇다. 이 그림에는 시 한 수의 내용이 전부 적혀 있는데 내용부터 보면 다음과 같다.
金山一點大於拳 금산일점대어권
打破維揚水底天 타파유양수저천
醉倚竗高臺上月 취의묘고대상월
玉簫吹徹洞龍眠 옥소취철동용면
한 점 모습은 금산 주먹보다 크고
부딪치는 파도는 물속의 하늘 그림자를 들어 올리네
취해 기댄 묘고대 달빛 아래
옥피리 소리는 용이 잠든 동굴까지 가닿겠네
이 시는 원래 명나라 중기 때의 유학자이자 사상가인 왕수인(王守仁, 호는 양명(陽明), 1472-1528)이 지은 「영금산(咏金山)」이란 제목의 시다. 송나라 때 완성된 주자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와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집대성한데 거대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이론 체계를 갖췄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수동적 존재로 비추기 쉽다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 같은 모순을 밝혀내고 인간이 자연 만물 속에 능동적 존재임을 말한 것이 명나라 때 나온 양명학이다. 왕수인인 바로 이 양명학의 개조이다. 그는 그의 할머니가 구름 속에서 아이를 내려주는 꿈을 꾸고 나아 이름을 운(雲)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섯 살까지 아이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아 애를 태우다 이름을 수인으로 바꾸자 말문이 터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거대 이론인 주자학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이론 체계를 창안해 냈던 만큼 그의 천재성도 보통이 아니었는데 실제 이 시는 그가 10살 때 지은 것이다. 이 해 부친 왕화(王華)는 과거에 수석 합격했다고 한다.
그는 부친의 과거시험에 동행해 북경에 따라갔다 오면서 돌아오는 길에 장쑤성 진강의 금산사(金山寺)를 들렀다. 이때 부친은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며 흥겹게 시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때 ‘너도 한 수 지어보겠느냐’하는 부친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읊어 모두를 놀라게 한 시가 바로 이 시였다.
묘고대는 장쑤성 진강시 외곽의 금산사 뒤쪽에 있는 돌로 쌓은 누대이다. 송나라 때의 불인(佛印)선사가 절벽을 깎아 쌓았다고 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진강을 둘러싸고 흐르는 양자강의 경치는 더할 나위 없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 높았다. 송나라 때에는 소식도 자주 이곳에 올라 달을 감상했다는 고사가 있을 정도이다.
원래 시는 어(於)자가 아니라 여(如)로 돼있다. 여(如)자가 되면 ‘주먹보다 크다’가 아니라 ‘주먹만 한다’가 된다. 왕수인은 금산사에서 시를 지은 뒤 한참 지나서 이번에는 다시 부친을 따라 폐월산방(弊月山房)에 가서 또 한번 시를 지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 시에도 같다는 뜻의 (如)자가 다시 나온다.
山近月遠賞月小 산근월원상월소
便道此山大于月 변도차산대우월
若人有眼大如天 약인유안대여천
還見山小月更闊 환견산소월경활
산은 가깝고 달은 멀어 달이 작게 보이니
누구나 산이 달보다 크다고 하겠지
만일 사람 눈이 하늘만큼 크다면
오히려 산이 작고 달이 더욱 광활하게 보이겠지
사람 눈이 하늘만큼 크다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상상력에서 어린아이다운 천진한 발상을 읽을 수 있다. 천재쯤 되려면 이속 바르고 영악하기 보다는 이처럼 어리숙한 천진함이 필수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앞서 시의 여(如)자처럼 여기서도 사람 눈이 하늘만 하다면 하고 여(如)자를 썼다. 기야가 주먹 ‘보다(於)’ 크다고 한 것은 기야의 어린 동심을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마무리 작아도 금산이 주먹보다 작겠느냐’고 한 듯하다.
어쨌든 기야는 그림 속에 들어오는 시로는 당시보다는 좀 생경한 명나라 시인의 시를 소재로 한 것이다. 실제 기야에 관한 연구논문을 보면 그 역시 많은 시의도를 그린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당시 유행했던 당시(唐詩)를 소재로 한 것으로 조사돼있다. 그런데 양명학의 시조인 왕수인 시를 소재로 한 까닭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자세히 밝혀보고자 한다.(y)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