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가 연방에서 승인이 지연되고 있음에도 3년이란 긴 기간을 기다리다가 1913년 10월에 갑자기 뉴욕으로 옮겨 신청을 한 것은 무언가 숨겨진 진실이 있는 듯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재단 신청을 연방에 제출하던 1910년은, 미국을 영원한 부채의 국가로 만들게 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관련 법안이 넬슨 올드리치에 의해 기초법안이 만들어지던 해였다. 올드리치는 로드아일랜드 주의 상원의원으로 금융계의 거물 J. P. 모건과 절친한 관계이고, ‘설탕 게이트’를 일으키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부패한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그는 30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자들의 대변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고, 상원의원 재임 기간 중 재산을 거의 1천배 축적한다.
이 부패한 정치인 올드리치가 록펠러2세의 장인이다. 미국의 양심적인 학자인 유스터스 멀린스는 말한다. “미국인들은 미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1913년 연방준비은행법이 만들어낸 사악한 채무화폐 제도의 노예로 언제까지나 살아감으로써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인가?” 미국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2011년 10월 9일, 1퍼센트의 극소수 탐욕주의자들의 금융조작으로 세계경제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을 때, 전 세계의 용기 있는 지식인들이 항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냈다. “기억하라. 문제는 사람들을 부패하게 하는 더러운 연방준비은행이다.”라고.
이 거대한 금융가들의 음모는 록펠러재단 설립 법안이 연방 의회에 제출되어 온 나라가 시끄럽던 1910년 11월 22일에 지킬섬의 J. P. 모건 별장에서 법안의 초안이 만들어지고, 록펠러재단이 뉴욕 주에서 승인된 직후인 1913년 12월 23일 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면서 모든 시민들이 흥청대던 시간에 의회를 날치기로 통과한다. 아브라함 링컨,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 등 연방은행법을 반대했던 미국 대통령 십여 명을 암살하면서 마침내 목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록펠러재단 승인과 연방준비은행법은 온통 언론을 뒤흔들었던 러드로학살 사건과 멕시코전쟁, 공포의 KKK단 재설립과 적극적인 활동,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금주시대 돌입, 이어지는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으로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연방은행은 잊혀졌다. 현재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민 대부분은 연방은행이 록펠러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이 대주주로 있는 민간은행이며, 이 은행이 달러 발행해 미연방에 대출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이 법안이 통과되는 데에는 유럽의 거대 유태인가문인 로스차일드가의 적극적인 후원이 따른다. 기록에 의하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자 독일 최대 화학회사이자 제약회사인 이게파르벤(현재의 독일 최대의 화학회사인 바스프사의 전신)의 임원인 폴 바르부르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 연방은행법이 날치기로 상하원을 통과하던 당시 찰스 린드버그 하원의원은 이렇게 한탄한다. “연방은행법은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트러스트를 이룹니다. 윌슨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하면 금융권력을 가진 보이지 않는 정부가 합법화될 것입니다. 이 시대 최악의 범죄가 이 연방은행법으로 저질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록펠러재단의 막강한 지원 아래 대통령에 당선된 우드로 윌슨은 이 법안이 넘어오자마자 바로 서명한다. 이미 록펠러재단과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각본대로 꾸며진 절차였기 때문이다.
1913년 대통령 선거에서 록펠러재단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윌슨은 쉽게 대통령에 당선된다. 록펠러재단의 불법을 조사할 것을 주장하고, 연방은행법을 반대했던 대통령 후보 로버트 라 폴렛을 쉽게 누른다. 그리고 윌슨보다 지명도와 인기가 높았던 공화당의 현역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에 대해서는 록펠러가 같은 당이고 전임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조종해 제3당을 만들어 출마하게 함으로써 공화당의 표를 분산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연방준비은행을 적극 지지하는 윌슨은 록펠러재단의 지원 아래 프린스턴대학 총장을 거쳐, 뉴저지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고, 역시 재선에서도 쉽게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8년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연방은행법을 통과시키고, 록펠러재단의 석유산업에 최고 특수를 가져오는 멕시코전쟁을 일으키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록펠러재단이 세계를 장악하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극단적인 인종차별과 반공주의로 개혁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기도 했다. 그 공로로 윌슨은 대통령 말년인 192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 화폐인 100,000달러에 그의 초상이 새겨졌다. 이렇게 전쟁옹호론자이자 극단적인 인종차별론자인 윌슨은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지만 친일정부를 세우고 독재적인 통치를 시행하다가 결국 4.19혁명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 대통령의 프린스턴대학교 시절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연방준비은행(FRB)은 1913년 12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System)의 한 기구로 설립된 비공개 주식회사 형태인 민간은행이다. 이 은행은 미 연방정부의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발행하고, 이에 대해 연 10퍼센트의 이자를 받는다.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세수가 소득세다. 달러 발행권이 이 은행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영원히 연방준비은행의 채무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12개의 지역은행을 주주로 두고 있으며, 그 중 최대 주주인 뉴욕 연방은행은 록펠러재단이 최대주주다. 이사회는 의장을 포함해 12명으로 구성되는데, 가맹은행인 모든 시중은행의 예금지불준비를 관리하고, 재할인율을 결정하며, 공개시장을 조작한다.
록펠러재단 소유의 뉴욕 연방은행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추천권과 최대 숫자의 이사 추천권을 갖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인준은 단지 요식절차이어서 100여 년 간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고, 감사를 받은 적도 단 한 번도 없으며, 특히 중요한 사실은 지금까지의 모든 의장은 유태인이다. 의장을 포함해 7명의 이사가 연방정부와는 별도로 모든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세계 최대 부채국인 미국은 2011년 현재 법정한도를 넘어 14조 3,000억 달러에 달하고 이 액수는 미국 GDP의 96퍼센트에 이른다. 게다가 중요한 사실은 이 부채액은 계속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도 이 부채액을 변제할 방법이 불가능해 영원히 채무국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