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男의 학과'는 없다
"하고싶은 공부, 눈치 안봐" 의상·아동학과에도 몰려
지난 3일 오후 인천시 남구 인하대 5호관 건물의 3층 실습실. 침대 위에 놓인 모형 환자 주변에 하얀 가운을 입은 남학생들이 모였다. 의대 수업이 아니라, 간호학과 안영미(47) 교수의 간호학 실습 시간이다.2학년 윤성원(21)씨 이마에 땀이 맺혔다. 윤씨는 "다른 대학 간호학과에 들어간 친형이 '너도 성격이 섬세해서 잘 맞겠다'고 추천한 전공"이라고 했다. "여자 간호사를 불편해하는 남자 환자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갈수록 저희 같은 남자 간호사의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겁니다."
간호학·의상학·아동학 등 '금남(禁男) 지역'으로 꼽히던 학과에 최근 '남풍(男風)'이 세차게 불고 있다. 공대와 각군 사관학교, 경찰대 등 '금녀 지역'으로 꼽히던 영역에 여학생들이 활발히 진출하는 것과 비슷한 변화다. 송재룡(52)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녀의 성 역할을 구별하는 사회적 압력이 낮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했다.
남풍이 가장 거센 곳이 간호학과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간호학과 신입생 중 남학생의 비율은 8.6%(5253명 중 454명)였다. 10년 전인 1999년(1.6%·2431명 중 38명)보다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최근 5년간 간호사 면허증을 딴 남성은 총 1916명"이라고 밝혔다. 현재 면허증을 보유한 남자 간호사 2687명 가운데 70% 이상이 이 기간에 배출된 것이다.
대학별로 보면 변화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올해 인하대 간호학과 신입생 88명 중 남학생은 12명(13.6%)이다. 작년엔 65명 중 3명이 남학생이었고, 2006년엔 57명 중 단 1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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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오후 인하대 5호관 실습실에서 이 학교 간호학과 남학생들이 일렬로 늘어서 안영미 교수의 환자 돌보기 시범을 지켜보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올해 60명을 선발한 중앙대 간호학과에서 남학생은 5명이다. 지금 4학년들이 신입생이던 2006년에는 36명 중 1명이 남학생이었다. 3년제인 대구 영진전문대의 경우 간호과 320명 중 40명이 남학생이다.
2010학년도 수시2차 모집에서 전남대 간호학과는 4명을 선발하는 남학생 전형에 71명이 지원해 17.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인하대 안 교수는 "여학생이라고 배려심이 더 많고, 남학생이라고 덜 섬세한 게 절대 아니다"라며 "간호학에 대한 남학생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이 대학 2학년 유희창(20)씨는 "남을 배려하고 보살펴 주는 간호사 일이 적성에 맞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의상학과를 선택하는 남학생도 부쩍 늘었다. 경희대 의상학과는 재적생 기준으로 1학년 47명 중 10명이 남학생이다. 2학년에도 50명 중 10명, 3학년에도 37명 중 6명, 4학년에도 52명 중 6명의 남학생이 다니고 있다. 학과 대표와 학회장도 모두 남학생이다. 3학년 김정현(23)씨는 "앞으로 의상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황선진(52) 성균관대 의상학과장은 "최근 들어 남학생 입학 비율이 전체의 20%에 달하는 해도 있었다"면서 "학과에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연세대는 1983학년도 입시부터 의생활·식생활·주생활·아동학과에 남학생의 지원을 허용했다. 올해 2학년 2학기 재적생을 기준으로, 연세대 생활과학대에 있는 5개 학과(의류환경·식품영양·주거환경·아동가족·생활디자인학과)의 남학생 비율은 20% 안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