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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하나님께서 쓰시는 강력한 교회 (행 6:1-7)
[요약] 이 세상을 영적 전쟁터로 볼 때 교회는 마귀의 진을 부수는 강한 요새와 같다. 교회를 격하시켜 전도의 길을 막는 것은 마귀의 공격이니 물리쳐야 한다. 강력한 요새의 교회를 만들려면 교회에 일당백의 알곡 같은 제자가 많아져야 한다. 제자란 가르침을 받고 순종하는 예수 닮은 자이다. 또 요새의 교회가 되려면 제도적 정비가 잘 이루어져 충성된 일군들을 중심으로 전 교인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새와 같은 교회가 되려면 교역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며 또 전무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쓰시는 강력한 교회”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을 영적 전쟁터로 볼 때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상에 있는 요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새(要塞)란 중요한 곳에 구축하여 놓은 견고한 성채나 방어시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이 천연의 요새라고 합니다. 한 면만 산으로 연결 되었을 뿐 3면이 낭떠러지입니다. 그래서 적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교회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강력한 지상의 요새여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요새지는 서로 차지하려고 많은 인명의 손실을 봐가면서라도 지킵니다. 625사변 때 백마고지 전투를 아실 것입니다. 백마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 지정학적 요지로 적군과 치열한 공방이 전개된 곳입니다. 9일 동안 수만 명의 대군과 온갖 강력한 화력이 집중되어 12차례에 걸친 공방전에서 중공군은 약 1만 명, 국군은 3,500명 정도의 사상자를 낸 피의 고지입니다. 김일성이 이 백마고지를 내주고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금 이 시간도 마귀는 지상의 영적 요새인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치열하게 대들고 있습니다. 몇 가지 약점을 보아왔다가 각종 언론을 통해서 교회를 치고, 교묘하게 온갖 이단으로 침투하여 교회를 치려고 합니다. 반대로 이단을 경계하려는 반이단의 긍정은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전문가들이 나서야 하는데 비전문가들이 전문가 행세를 해서 달려들기 때문에 몸조심하느라 복음전도와 건전한 신학적 토론마저도 차갑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요즘 일부 대교회 목회자들의 생활비가 도마 위에 올라 한국교회 전체가 그런 양 세인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라도 책잡히면 그것은 마귀가 춤출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덧붙여야 할 것이 덕입니다. 내가 옳을지라도 덕을 세우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한국 교회의 복음 전파가 방해 받고 있다면 절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세금을 받아야 하실 분이시지만 덕을 위해 세금을 내셨습니다. 이처럼 내가 양심적으로 번 돈일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봉사와 청빈한 삶을 추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부적으로는 교회의 세속화, 내부적인 다툼, 혹은 스타의식에서 비롯된 발언인지 십일조 무용론, 당회장 무용론, 예배당 건물의 무용론, 성경과 성령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경향, 혹은 기독교 언론의 지나친 자기 종교 성토, 그 성토 속에 끼어들어 교인을 가장하여 비난을 부추기는 이단과 타종교인들의 악플들, 그리고 교회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무능함 등 결과적으로는 교회에 파괴적인 징후만을 안겨다 주는 온갖 일들이 자행 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선교한지 100년이 넘게 지금까지 매달 혹은 분기별로 제직회를 통해서 그리고 매년 공동회의를 통해 재정을 회중 앞에서 보고하고 그 결과를 노회와 총회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생활비까지 너무나 투명하게 보고 되고 있습니다. 타 종교는 이런 보고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언론은 타종교만 옹호하고 기독교는 재정보고도 없이 목사가 돈을 맘대로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심지어 일부 기독교 언론까지 여기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일부 비정상적인 교회의 문제를 극대 시한 나머지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는 기독교의 보편적 전통까지 왜곡하고 있습니다. 세상 언론사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기독교 언론에서 얻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언론의 성숙함이 요구되는 바입니다. 이상의 모든 것이 마귀의 궤계라는 것을 깨닫고 교회를 마귀의 세력을 무너뜨릴 더욱 지혜롭고 강력한 영적 요새로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럼 강력한 요새인 교회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교회에 제자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1절에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그랬습니다. 여기 제자란 12제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가르치심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참 알곡입니다. 죽정이 석 섬 있어도 알곡 한 되만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보면 제자도 있었지만 일반 회중도 있었습니다. 병 고침 받고 문제 해결 받기 위해 모인 회중들, 내 살과 피를 먹으라 하니까 다 흩어졌던 회중들입니다. 일반 회중도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은혜 받고 변화 되어 충실한 제자들이 될 때 교회는 영적으로 강력해집니다.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교회는 많은데 왜 세상은 변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너무 자조하거나 비관적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의 실수가 자주 거론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집단이나 완전한 집단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기독교가 급성장한 교회는 초보적인 교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한 것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요소요소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에는 12제자가 있었고 나아가 칠십 인의 제자가 있었으며 승천 직전에는 120인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볼 때 제자란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 구원의 확신과 삶의 변화, 기도와 전도의 실행, 성령 충만과 고난 가운데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님을 닮은 자들입니다. 이런 한 사람은 백을 당하고 이런 두 사람이 천을 당하게 됩니다.
한 사람만 바로 믿어도 주변 세상이 달라집니다. 나중에 나오지만 빌립 집사 한 사람이 가는 곳마다 마귀가 소리치며 나가고 병이 고쳐지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 앞으로 돌아와 성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처럼 참된 제자가 있는 곳에는 엄청난 복음이 승리가 있습니다. 교회에 제자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세상에서 칭송 받고 마귀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요새가 될 수 있습니다.
2. 좋은 제도 속에서 모두 함께 일해야 합니다.
3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당시 성도의 수효는 날로 불어나고 교회는 보다 방대해져 가는데 교회의 조직은 정비 되지 않은 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뿐 아니라 구제와 봉사까지 다 관장을 하다보니까 눈과 손이 미치지 못하여 여러 가지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구제 받을 대상이 구제의 대상에서 빠지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그 땅에 살던 히브리파 유대인과 유대가 식민지가 될 때 강제로 타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은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히브리파 사람들과 교분도 깊지 못하고 지역은 자꾸만 넓어져 사도들로서는 파악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헬라파 사람들 중에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자꾸 빠지는 사고가 생겨 원망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 회의를 소집하여 봉사와 구제의 직무를 대신할 집사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강력한 초대교회를 이루는 중요한 한 가지 요소였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요새의 교회가 되려면 목회자 한 사람만 일하는 교회여서는 안 됩니다. 전 교인이 함께 일군 되어 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담아낼 제도적인 정비가 잘 되어야 합니다. 제자가 많아도 제도적인 장치가 없으면 방관자가 되고 맙니다. 일군들을 적재적소에서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혼자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모세도 이스라엘을 혼자서 재판하려고 했을 때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 때 그의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 일을 대신 할 사람을 삼았습니다. 출18:21-22에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을 만들고 수효만 채운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요직일수록 믿음 있는 자가 담당해야 합니다. 여기 집사의 자격에 나온 대로 지혜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고 칭찬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중요한 자리만 차지하면 나도 않고 너도 못하게 교회를 퇴보로 몰고 갑니다. 교회는 일군이라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조직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마땅한 사람은 없는데 빈자리만 채우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합당치 못한 사람 세운 것보다 빈자리가 더 나아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암시하는 것에서 보듯 함량미달 되는 사람이 교회에서 존경 받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으면 그것은 큰 시험이 됩니다. 적합한 일군이 없으면 빈자리가 더 낫다는 말입니다. 한국 교회가 직분자들을 그동안 함부로 세워서 이제는 그들 때문에 얼마나 목회가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느 목회자는 교회에 부임하여 목회의 3분의 1을 원로목사를 위해서 쏟고, 3분의 1을 당회원들을 위해서 쏟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교인들을 위해 쏟을 시간이 너무 적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회할 수 없는 환경이란 말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의 목회환경이 대략 이렇습니다. 초대교회는 목회를 돕기 위해서 일군을 세웠는데 이제는 일군 때문에 목회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뭔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본문을 잘 봐야 합니다. 조직보다 제자가 더 앞섰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진짜 일군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충성된 제자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전 교인이 목회자와 함께 일할 때 교회는 강력한 요새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3. 기도와 말씀에 전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4절에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도들은 성도들을 봉사하며 구제하는 공궤하는 일을 집사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상해져서 교회에 일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서 그런가요?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불편하게 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각 부서마다 자립하며 선교를 위해 60% 이상을 지출해 오고 있는 전주 안디옥교회를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교인들이 스스로 나서서 교회를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설립 이념이 좋아야 합니다. 주님이 교회를 설립하신 그 이념대로 그리고 초대교회가 보여준 그 모범대로 하면 교회는 부흥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께서 일군을 보내 주십니다.
간혹 부교역자 초청하는 일부 교회를 보면 운전면허증 필수 혹은 대형차 면허 우대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교회에 일군들이 가득한 데도 차량 일이나 시키고 잡다한 일 시키려고 부교역자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도 적게 들고 말도 없고 교육이나 심방까지 다 담당하면서 운송까지 일석이조 삼조가 된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목사의 개인 일까지 시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슬픈 일입니다.
혹은 반대로 교인들이 담임 교역자를 차량 봉사시킵니다. 개척할 때는 교역자가 다해야 하지만 일군이 있을 때는 다릅니다. “어느 교회도 그러더라.” 그러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좋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군들 놔놓고 새벽마다 저녁마다 예배마다 목사가 차 운전하는 것이 그렇게 보기 좋더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혹시 하겠다 해도 말려야합니다. 차량봉사는 할 사람이 없을 때 하는 비상수단이지 일군들 놔두고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봉사자들이 너무 피곤해서 심방 할 때 제가 운전할 때는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교역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가능한 배려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초대교회는 일군을 뽑아서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니 더 성령이 충만하고 더 권능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주 대단한 사건입니다.
당시 제사장의 수가 8,000명이었는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예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사장들은 소속이 있고 이목도 있고 머리가 커서 쉽게 동화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정확한 성경적 근거와 확실한 체험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회개하지 않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표적을 좋아했습니다. 표적이 없으면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구약시대를 마감하고 신약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자기의 직책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사도들의 기도와 말씀의 파워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한가해진 시간을 무료히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받을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지상의 강력한 영적 요새가 되는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좀 더 욕심낸다면 교인들을 중심해서 일어난 기도후원단이 있어야 합니다. 일 순위로 기도해 주는 줄은 알지만 교회 교회마다 교역자를 위한 기도가 더 계속된다면 성도들이 은혜 받지 못할 사람이 없고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에 으뜸가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영국의 설교의 왕자라는 스퍼젼 목사의 교회도 그런 기도부대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예배 시작 1-2시간 전에 교회 지하실에 와서 예배와 목사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랬기에 부흥은 물론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 전통이 수립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 저녁은 물론이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교역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고 교인들이 기도하는 교회가 되면 그 교회는 마귀들이 무서워하는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때문에 많은 교회가 부흥하고, 그 교회 때문에 이 땅에서 이단이 제거 되고, 그 교회 때문에 수많은 생명들이 주 앞으로 돌아오고, 수많은 교회가 더 성숙하고, 그 교회 때문에 나라와 민족과 인류에게 희망이 오고, 우주와 역사가 달라지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들이 기도하고 교역자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꿈꾸셨던 그런 교회와 그런 성도이기를 원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쓰시는 강력한 요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자가 더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일할 수 있는 조직이 잘 정비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기도하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 초대교회와 같이 마귀의 진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요새의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