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 백천사(臥龍山白泉寺) /전통사찰
- 경남 사천시 백천동
신라 문무왕 대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와룡산에는 옛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와룡산엔 팔만구 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 찾아보기)
의상대사 속가 동생인 의선대사는 처음 접한다. 백천사에 대한 사적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사천시에 있는 전통사찰은 다솔사(곤양면)와 백천사이다.
백천사는 불교방송에서 광고로 가끔 보았던 절이지만 밖으로 들어난 문화재는 없다.
경남 문화재자료인 불교 그림인 '신중탱'과 '아미타후불탱'도 전각에 걸려 있지 않은 것 같다.
경남 유형문화재인 책은 몇 종료가 있다. (인터넷 검색)
대방광원각약소주경(泗川 白泉寺 大方廣圓覺略疏註經)
달마대사관심론(泗川 白泉寺 達磨大師觀心論)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泗川 白泉寺 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
불교전적류(泗川 百泉寺 典籍類)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은 2020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성보박물관은 따로 없다. 이 문화재들은 어디에 전시하고 있을까?
대웅전 안
창건주 김범수, 갑술년 구월이다. 근대라면 갑술년이며 1934년 또는 1994년이다.
일붕 서경보께서 이 절과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대웅전 안
문화재인지 모르겠다. 머리 부분은 몸통에 비하여 매우 깨끗하다.
연화좌대 밑에 조각품은 사자인 것 같다. 이런 형식을 처음 본다.
용왕각
포대화상 앞에 있다. 손잡이를 비비면 물이 튀어오른다고 한다.
약사와불전, 약사와불이 세계 최대 크기라고 한다. 와불 몸통이 또 다른 법당이라고 한다.
들어가 구경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걸 보기 위하여 많은 신도나 관광객이 찾고 있다. 내게 그리 신기한 것은 아니다.
약사여래좌상
밀양 만어사에도 이런 돌이 있다. 같은 내용이다. 산령각 뒤에 있다.
산령각 뒤에 승탑이 있다. 조선 말기 승탑이 아닐까 싶다.
종각을 세우는 모양이다.
만덕전, 오방불도 있고 신위를 안치한 곳이기도 하다. 옥상엔 아미타불 입상이 있다.
주물로 만든 것 같다. 일체형이 아니고 부분, 부분 용접한 것 같다.
오방불, 다섯 방위 다섯 부처이다.
극락전 아래 신도들 탑이다.
극락전에서 본 만덕전과 산령각
사천 와룡동사지 /경남 기념물
백천사에서 보이는 와룡산 넘어에 와룡동사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곳 승병이 왜군과 전투, 이후 절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축대와 주춧돌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서 기와 조각들도 나왔다.
전설,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허황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따라 와룡사와 구룡사에 머물면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부처가 되어 지리산에 들어 갔다고 한다.
(설명판)
전설은 전설이다. 허황후 오빠인 장유화상은 의외의 인물이다.
이렇게 주요한 인물을 삼국유사엔 기록하지 않았을까? 허황후를 모신 신하 이름은 나오는데.
수로왕 자녀도 열 명 또는 열두 명이다. 아들만 열 명이거나 딸이 둘이 있어 열두 명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칠불암(칠불사/하동군 화개면)은 이 전설과 맥을 같이 한다.
축대는 개인 주택이 쓰고 있다. 이 장소를 못 찾아서 산불 감시원의 도움을 받았다.
와룡사터에서 이렇다할 유물이 나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석탑이나 석보 불상도 없다.
왼편이 와룡산 정상(?)인 천왕봉, 우측은 민재봉(?), 와룡사터는 천왕봉 아래이다. 황사가 심하다.
와룡골 건너편 산 능선이다.
2023년 4월 12일, 수
김해..창원 마창대교..백천사..와룡사지..남해군 창선면 운대암..지족죽방렴..독일마을..미조항//숙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