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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상대성
영화촬영을 하러 캄보디아에 간 할리우드 배우가 있었습니다.
배우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많은 사람의 선망을 받는 스타가 됐음에도 항상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열등감과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자해를 하며 마약에도 손을 댔지만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당장 먹을 것도 없고, 신발도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었지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희망을 갖고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 학교를 자퇴하게 만들 정도로 괴롭혔던 친구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해 괴로웠던 자신의 과거보다 훨씬 힘든 삶을 사는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미소로 마음의 어려움을 극복한 배우는 매년 정기적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해 많은 자선활동을 베풀고 있고, 몇몇 아이들은 직접 입양까지 하며 돌보고 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한 뒤 빈민구호운동과 환경보호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복과 은혜는 자랑을 위함이 아니라 베풀고 나누기 위함입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우리보다 나은 사람보다는 부족한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큰 복을 감사하며 나누게 하소서.
받은 큰 복을 베풀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중심이신 예수님
밀라노의 한 백작의 요청으로 다빈치가 그리기 시작한 ‘최후의 만찬’은 완성되기까지 무려 3년이나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만찬’을 다빈치가 처음 그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 이전에도 당대의 유명한 화가라면 한 번씩 그렸던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품들과 다빈치의 작품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의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맞췄다는 점입니다.
다빈치 이전의 최후의 만찬은 유다의 배신에 초점이 맞춰져 그림을 보기만 해도 유다에게 먼저 눈이 갔습니다.
하지만 다빈치는 철저한 원근법으로 예수님에게 먼저 시선이 가도록 그림을 그렸고, 예수님을 향한 시선이 방해받지 않도록 손에 들고 있던 컵도 수정단계에서 지웠습니다.
또한 유다의 얼굴로 적합한 상대를 찾기 위해 몇 달 동안 빈민가를 뒤졌고 예수님의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만 2년 가까이 고뇌했습니다.
죄인인 유다보다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더욱 세밀하게 표현했기에 다빈치의 작품은 진정한 명화로 남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과 고난과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고 나의 모든 삶 가운데 온전히 예수님만 드러내기를 바라고 소원하십시오. 아멘!!
주님!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게 하소서.
예수님을 전하고, 닮아가는 목표를 잊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쿠바에 전한 복음
『2000년 7월 5일, 전 세계 1억 6천만 침례교인들을 대표하는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에 취임하기 위해 나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 의장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나는 미국 남침례교 본부에 들렀을 때 스페인어 성경을 미리 준비했다. 하지만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외에 어떤 종교지도자도 만난 적이 없었다.
총회 첫날 예정됐던 카스트로 의장의 만찬 리셉션 연설이 급작스레 취소됐다. 나는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카스트로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마지막 집회를 3시간쯤 앞두고 급히 연락이 왔다. 공산당 중앙당사로 곧장 달려갔다. 트레이드 마크인 카키색 군복을 입은 카스트로는 키가 매우 크고 턱수염이 희끗한 일흔네 살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내가 건네준 스페인어 성경을 펼쳐 몇 구절을 읽었다.
“어릴 때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라며 2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교황을 만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다음 날 쿠바의 국영TV는 우리의 전도 집회를 정규시간대에 편성해 한 시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쿠바 전국에 복음의 늦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 김장환 목사 3E인생에서 발췌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복음 전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파합시다. 아멘!
주님! 오로지 복음 전파를 위한 사명에 온전히 나를 사용하소서.
내가 전할 수 있는 복음을 최선을 다해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매일의 격려
미국의 에이미 멀린스는 태어날 때부터 종아리뼈가 없었습니다.
돌이 지나자마자 무릎 아래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뒤 평생 의족을 끼고 살아야 할 가혹한 운명이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아서 괴로운 재활 훈련을 매일 하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미는 고난을 이겨내고 걷기, 뛰기 뿐 아니라 자전거로 하이킹까지 할 수 있는 강인한 몸을 만들었습니다.
21살 때 미국을 대표하는 육상선수가 되어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했고 멀리뛰기 신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에이미가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병원에서 만났던 의사 선생님의 격려였습니다.
“다리가 없어도 할 수 있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단다”
“넌 분명히 극복해낼 거다.”
매일 같이 따뜻한 말을 건네주던 의사 선생님의 격려로 에이미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됐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격려는 관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진심어린 격려를 아끼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말로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따스한 격려와 힘이 되는 성구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송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침묵의 행동
문화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했습니다.
홀은 사람들의 언어, 거리, 생활공간, 습성 등을 연구하다가 ‘말보다 행동’을 분석할 때 바르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홀은 자신의 책 ‘침묵의 언어’에서 오히려 침묵할 때 ‘상호작용, 연합, 시간성, 학습과 습득, 놀이, 방어, 개발’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의사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 정도, 몸짓이나 표정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57%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고 씩씩댄다면 누가 봐도 화가 났다고 생각할 테지만 반면에 웃으면서 부드럽게 “조금 화나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장난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중요하지만 그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려면 그 말을 전하는 표정, 몸짓,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진심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에 감화되어야 합니다.
갚을 길 없는 놀라운 은혜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매일 마음에 품고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이 변화되게 하소서.
진심을 다해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연습을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얼굴이 달라야 한다
미국의 한 판매회사에서 조명과 판매율에 대한 실험을 했습니다.
일주일씩 조명을 바꿔가며 판매율을 비교한 실험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 사람들은 밝은 조명에서 상품을 1.5병 더 살펴봤다.
- 조명이 밝을 때 판매율이 10% 높았다.
- 조명이 흐릴 때는 더 비싼 상품을 구매했다.
- 조명이 밝을 때 상품을 손에 들고 살펴보는 경우가 2배 높았다.
조명 밝기가 달라졌을 뿐인데 사람들의 행동은 유의미한 차이가 보일 정도로 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식당에서도 조명이 오렌지색일 때 사람들이 음식 맛을 더 좋게 평가했고 메뉴도 더 많이 시켰습니다. 빛의 밝기와 색이 사람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빛과 밝은 색을 따르도록 우리는 창조됐습니다.
빛의 밝기와 색상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 달라지듯이 그리스도인은 얼굴만 봐도 티가 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기쁨과 평안은 세상의 그 어떤 고난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진리와 행복이 우리 안에 있음을 환한 미소와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고 활짝 웃는 연습을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매니큐어로 칠한 희망
몇 년 전 네덜란드 전역에서 형형색색으로 매니큐어를 칠한 손을 인증하는 유행이 퍼졌습니다.
네덜란드의 총리 마르크 뤼터, 세계적인 프로듀서 반 뷰렌과 하드 웰, 윈드서핑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도리안 리셀버지,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영화배우와 슈퍼스타들도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개인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올렸습니다.
이 운동은 뇌종양으로 1년 시한부를 선고받은 6살짜리 테인 콜스테렌이 남은 1년을 뜻깊은 일에 사용하고 싶어, 깊이 생각하며 기도 끝에 사람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1유로를 기부 받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6살 소년의 따뜻한 마음은 방송을 타고 네덜란드 전역으로 퍼졌고, SNS에 수많은 스타들도 매니큐어를 칠한 손을 인증하며 많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콜스테렌은 안타깝게도 천국으로 떠났지만 소년의 따스한 마음으로 모인 30억 원의 기부금은 폐렴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전액 사용됐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통해서도 주님은 크게 사용하십니다.
나를 위한 신앙과 삶에서 벗어나 남을 생각하는 더 큰 생각과 마음을 주님께 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생각들을 주소서.
교회의 좋은 모습과 소식은 SNS를 통해서도 적극 알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종말을 알리는 시계
미국 워싱턴에는 지구의 종말을 예측하는 ‘지구 종말 시계’가 있습니다.
이 시계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이 실제적인 자료와 예측을 통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12시가 되면 지구의 종말이 일어날 수 있는 기후변화나 전쟁이 일어난다는 뜻인 이 시계의 최근 시각은 11시 58분으로 지구 종말까지 약 2분 남은 상태입니다. 주요 원인은 정치적 문제 해결 실패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 종말 시계가 11시 58분이었던 적은 딱 한 번으로 미국과 소련이 서로 핵폭탄을 실험하던 냉전 체제 당시뿐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후 시계는 무려 17분 전으로 돌아가 세계에 평화가 깃들 것이라 예측했지만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전쟁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으로 결국 다시 한 번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을 앞두게 됐습니다.
물론 지구 종말 시계가 자정이 된다고 해서 바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며 시작이 있었기에 언젠가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유한한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믿으십시오. 아멘!!
주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행동하게 하소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기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주님이 함께하시는 곳
독일의 신학자 타울러가 라인강 주변을 거닐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어르신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그 어르신은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뒤 내 인생에는 하루도 나쁜 날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기쁨입니다.”
이 고백을 듣고 타울러가 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어르신을 지옥으로 보낸다 해도 그 기쁨이 유지될까요?”
“지옥에서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를 찾아오신 주님이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면 지옥도 내게는 천국입니다.”
노인의 간증을 들은 타울러는 영혼의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으로 타울러는 ‘벗이신 하나님’을 중시하는 경건 생활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전했고, 이 사상은 훗날 마틴 루터를 비롯한 수많은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지금 내가 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내 안에 함께 하시는지의 여부입니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으로 계신지 확인해 보십시오. 아멘!!
주님! 내 삶의 주인으로 오사 내 삶을 주장하여 주소서.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하루를 기쁨으로 채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뿌린 대로 거둔다
톨스토이의 단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불쌍한 걸인이 부유한 농부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농부의 밭에는 곡식이 가득했고 집 앞의 텃밭에만 해도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열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농부의 아내는 창고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마늘 줄기를 잔뜩 가져와 걸인 앞에 던졌습니다.
“미안하지만 남는 게 이런 것밖에 없네요.”
걸인은 다 썩어가는 마늘을 주워 먹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이후로도 농부 부부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썩은 마늘 줄기 이상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먼 훗날 농부의 아내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를 데리러 온 천사에게 “제발 하늘나라로 보내 달라”고 애원하자 천사는 하늘까지 이어진 마늘 줄기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마늘 줄기는 걸인에게 줬던 것처럼 썩은 것으로, 하늘로 오르다 줄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나치고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소설의 농부 내외와 같지는 않을까요?
주님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섬긴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게 하소서.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가 주님을 섬기듯이 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가족이란 무엇인가?
프란시스 쉐퍼 박사 부부는 '가족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What the family?」 라는 책을 냈는데, 다음은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가족의 정의입니다.
1.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의 열차다.
2. 창조성의 산실이다.
3. 인간관계를 성숙케 하는 센터다.
4. 광풍을 만날 때 피할 처소다.
5. 진리의 영원한 릴레이다.
6. 경첩과 자물쇠가 있는 문이다.
7. 추억의 박물관이다.
누군가 영어 Family(가족)는 'Father And Mother Love You'의 첫 글자들을 합한 말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풍성한 삶QT>2002.6월호에서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
오래전, 뉴욕타임즈에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 를 조사한 보고서가 실렸습니다. 칼 융 연구소 소장이던 존 레비 박사가 수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에 '아플루엔자'라는 병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아플루엔자는 풍요증(豊饒症) 또는 부자병이라는 것입니다. 레비 박사는 부자병 의증세 몇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의욕이 떨어진다.
둘째, 남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긴다.
셋째, 지루함을 느낀다.
넷째,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린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돈과 행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젊었을 때 자동차 정비공으로 있을 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
<풍성한 삶QT>2002.6월호에서
케리의 직업과 부업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도 선교의 개척자였던 윌리암 케리는 본래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가 선교사가 되기 전 구두 수선공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케리는 여러 마을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케리의 한 친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케리, 자네에게 심각한 이야기를 한마디 하고 싶네." 그러자 케리가 물었습니다.
"좋아, 무슨 말인가?" 친구는 심각한 얼굴로 충고를 했습니다.
"자넨 자신의 본업을 잊었네! 허구한 날 선교만 하러 다니니까 돈벌이가 늘 그렇지 않은가? 자네 직업을 결코 등한히 하지 말게나." 그러자 케리는 친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직업을 등한히 한다고? 내 직업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일세. 구두를 깁는 것은 단지 그 비용을 위한 부업일 뿐일세."
<풍성한 삶QT>2002.6월호에서
잘 사는 법
어느 마을에 이상한 장사꾼이 들어와 시장에서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자,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사시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장사꾼이 있는 곳에 몰려들었습니다. 그중 한 랍비가 "여보시오. 세상을 잘 사는 방법 좀 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너도나도 사겠다고 돈다발을 던졌습니다.
다른 장사꾼과는 달리 점잖게 생긴 노인 장사꾼은 돈다발을 챙기며 말했습니다. "자,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이 말이 곧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이오." 그렇게 말 하고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혀를 주의해서 놀리시오. 이것이 바로 그 방법이오."
탈무드에 "새장에서 날려 보낸 새는 다시 잡을 수가 있지만 입에서 한 번 나온 말은 다시 담을 수가 없다"고 했는데, 말은 돌이킬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QT>2002.6월호에서
공중의 새
예수님을 믿은 후에 성경대로 살기로 마음먹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대로 살기로 한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6장 26절이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나님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는 '하나님께서 새도 먹이시는데 나를 굶기시랴?'는 말씀을 믿고 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가난뱅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담임목사를 찾아가 따져 물었습니다. "성경은 믿을 수 없네요. 그동안 성경대로 살았는데 가난 뱅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거짓됨이 없습니다. 성경에 어떤 새를 보라고 하셨나요? 공중의 새가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날아다니는 그 공중의 새를 보지 않고 나뭇 가지에 앉아 있는 새만 보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풍성한 삶QT>2002.6월호에서
술에 취하는 단계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사람이 술에 취하는 단계를 세 가지 동물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단계는 여우의 단계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여우처럼 눈꼬리가 올라가고, 말이 많아지며, 또 간사해지기 때문입니다.
-2단계는 늑대의 단계입니다. 술에 많이 취한 사람은 늑대처럼 사나워져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잃어버려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3단계는 돼지의 단계입니다. 술에 심하게 취한 사람은 아무데서나 누워 자고, 구토를 하여 주변을 더럽게 하며, 심한 경우는 아무 곳에나 대소변까지 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삶QT>2002.5월호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
유대인 두 사람이 랍비에게 상담을 청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마을에서 제일 부자였고, 또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부자가 랍비 방으로 들어가 한 시간쯤 있다가 나왔습니다. 다음에 가난한 사람이 랍비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5분 만에 상담을 끝냈습니다.
그러자 잘 사는 사람은 1시간이나 시간을 내주고 나처럼 가난한 사람은 고작 5 분밖에 안 내준단 말이야. 이건 불공평해'라고 생각한 가난한 사람은 참을 수가 없었 습니다. 그래서 다시 들어가 랍비에게 따졌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차별해도 됩니까? 불공평합니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습니다.
"진정하세요, 당신은 자신의 가난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자신의 마음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무려 1시간이나 걸렸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부함에도 겸손할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풍성한 삶QT>2002.5월호에서
경건한 가치관으로 자녀 기르기
첫째, 자녀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가져라.
둘째, 삶의 현장에서 산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라.
셋째, 고물 수집장을 함께 찾아가라.
넷째, 노동의 대가를 가르쳐주라.
다섯째, 자녀들에게 저축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라.
여섯째, 자녀들에게 구체적인 재정 계획 방법을 제시해 주라.
일곱째, 자녀들에게 헌금에 관한 습관이 붙도록 도와주라.
여덟째, 자녀들에게 "아니요"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라.
아홉째, 돈의 사용도 자주 보여주고 말해 주라.
열 번째, 자녀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라. -레디 알콘
<풍성한 삶QT>2002.5월호에서
어느 부부의 이혼과 재혼
결혼을 하고 무난하게 살던 어떤 착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혼한 남편은 얼마 되지 않아 곧 재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재혼한 여자는 고약한 성품을 가진 여자를 만났습니다. 슬픈 사실은 재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착한 남자는 여자에 의해 나쁜 성품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혼한 부인도 얼마 있다가 재혼을 했는데, 역시 불행하게도 나쁜 성품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얼마 안 있어 이혼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질 나쁜 남자는 그 여자에 의해 선량한 남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명심보감에 "어진 아내는 그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악한 아내는 그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아내의 남편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QT>2002.5월호에서
무디의 설교
어느 날 디 엘 무디가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도 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설교를 하고 단에서 내려오자 한 저명한 대학 교수가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무디 선생님,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몰라서 그러셨겠지만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열여섯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마 잘못 세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많았을 텐데요. 저는 이렇게 무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무디는 교수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많은 지식으로 한 일이 무엇입니까?"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전문화한 지식만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일에 사용해야만 비로소 생산적인 존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풍성한 삶QT>2002.5월호에서
잊지 못할 추수감사축제
지난 추수감사절, ‘선교 협력 농촌교회’ 7곳이 보내온 곡식과 과일, 채소로 예배당은 황금 물결이 넘실거렸습니다. 오후에는 3년 만에 추수감사 찬양 축제를 진행했습니다. 평생 성전을 지킨 우리교회의 ‘안나’들은 단풍잎 블라우스를 차려입고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를 열창했습니다. 청장년들은 ‘물이 바다덮음같이’를, 시니어 그룹은 천국 소망을 안고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를 고백했습니다.
여선교회는 숨겨둔 끼를 풀어헤쳤습니다. 워킹맘의 고뇌를 ‘써니’ 댄스로 보여줬고, 자신들의 아이돌 신해철의 노래에 맞춘 일사불란한 치어 댄스와 신앙고백을 선보였으며, 빨간 장갑의 ‘야구장 댄스’와 찬양도 등장했습니다. 여고생 교복을 입고 추억의 복음성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현란한 복고댄스와 함께 열창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감사를 해병대식 빨간 카드섹션으로, 또 모두의 하나 됨을 아름다운 음색으로 찬양한 그룹도 있었습니다. 젊은이들과 청소년들도 각각 찬양과 ‘칼군무’로 격려 응원했으니 온 세대가 함께 어우러진 천국 잔치였습니다. “형제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3)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고 자기 침대에서 자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그네가 침대보다 작으면 잡아 늘이고, 침대보다 크면 삐져나온 다리나 머리를 잘라서 죽였습니다.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뭘 말하는 것일까요. 독선과 법의 횡포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죽자고 자기만 옳다는 사람을 만나면 참 버겁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선을 강요하는 독선은 폭력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이방 사람들이 믿게 되었지요. 그런데 몇몇 유대 사람은 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전에 바리새파였던 예루살렘 신도들도 거기에 동조했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예루살렘 회의를 열었습니다. 많은 논쟁 후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행 15:11, 새번역) 구원은 법이 아니라 은혜라는 말이지요. 따라서 교회는 이방 사람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감사의 타이밍
저의 부모님은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저는 돈 없는 신학생이요 바쁜 목회자란 이유로 부모님이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감사드릴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감사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절감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치유받은 나병 환자 중 한 명은 즉시 예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어디 갔느냐고 예수님은 찾으셨습니다. 그 한 명은 칭찬도 구원도 받았습니다. 타이밍에 맞는 감사는 행복의 길이요 축복의 도구입니다.
무슨 급한 행사를 해야 하니 교회당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딱한 상황이라 장소는 물론 다른 것까지 힘껏 도와드렸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구두로도 전화로도 이메일로도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잊었던지 시간이 너무 지나 감사 표현하기가 어색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또 무슨 행사가 있다며 교회당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밴댕이 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 재차 친절을 베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늦지 말아야 합니다.
김성국 목사 (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평안이 올 때까지 생각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평강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9)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하라’는 말의 원어 뜻은 ‘계산하다’ ‘회계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듯 꼼꼼하게 따지면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에서 평안하지 못하게 하는 어려움이 밀려올 때 일반 서적이나 강의들을 보면 부정적인 생각, 어려운 생각 등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은 생각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우리에게 더 깊이 생각하고 사고할 것을 권유합니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때까지 끝까지 사고해야 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생각을 포기하게 되면 환경과 감정의 노예가 되어 더 깊은 우울과 좌절로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가만히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임하지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말씀을 생각하기를 놓지 않을 때 비로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말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책을 착하게 보는 사람
기자 생활을 하는 친구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 권의 책을 추천하면서 제게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론 놓쳤던 저자의 마음을 어느새 기사로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자의 글을 마음으로 읽는 것이 지혜롭게 책을 읽는 방법임을 일러줬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주님의 약점을 잡기 위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영생에 관해 궁금했던 한 청년이 진지한 태도를 갖추고 예수님께 찾아갑니다. 주님은 이 청년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으시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청년이 궁금해하던 영생에 관해 자세히 알려줬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반응이 다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을 볼 때 주님의 마음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단풍사회학
하루는 길을 걷다 단풍이 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십대 여학생들이 단풍잎을 들고 누구의 것이 예쁜지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단풍잎을 서로에게 집어 던지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가까이에 환경미화원도 계셨습니다. 이분은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셨던지 다 놀고 지나간 뒤에야 단풍잎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는 아파트 경비원도 단지의 통로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의무 때문인지 연신 비질을 하셨습니다. 아이들도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경비원이 청소하는 곳을 향해서는 절대 던지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단풍이라는 한 가지 현상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습니다. 그러나 거기 있던 이들은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일부러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즐기기도 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이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라는 말씀이 마음에 담깁니다. 한 거리의 ‘단풍사회학’이 우리 사회에 가득한 문화였으면 좋겠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사람을 살리는 말
‘감리교회 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는 진정한 믿음을 위해 우리 안에 있는 ‘험담’을 치료해야 한다고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귀담아들을 내용입니다.
역사 속에는 유난히 큰 소망을 품은 말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으로 항의하며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재단사 전태일의 말과 삶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태일은 삼각산 기도원에서 늘 철야기도를 하던 감리교 청년이었습니다. 전태일의 외침은 이후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하는 움직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같은 공장의 어린 여공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폐 질환으로 각혈을 하고, 각성제를 먹으며 장시간 노동을 버티다가 재봉틀에 손이 찔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 새겨진 말이었습니다. 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 여공들에게 붕어빵을 사주고, 자신은 동대문에서 쌍문동 집까지 걸어가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만든 말이고, 이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울림이 됐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는데, 일부 정치인의 ‘웃기고 있는’ 말들을 들으면서 사랑의 말이 충만한 세상을 꿈꿔 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듣는 마음을 주셔서
고대 인도의 아크바르 왕은 아홉 명의 현자(賢者)를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서 별다른 지혜를 얻지 못하자 불평했습니다. 그때 현자를 따라온 한 아이가 웃었습니다. 화를 내는 왕에게 아이는 지혜를 배우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내려오자 아이는 냉큼 왕좌에 올라앉아 말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다시 물어보세요.” 그 순간 왕은 단박에 지혜를 깨쳤습니다. 이 아크바르의 지혜란 무엇일까요. 낮은 자리에 서는 것(Understand),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왕상 3:9, 새번역)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지요. 여기서 ‘지혜로운’이라고 번역한 말은 본디 ‘듣는’이란 뜻입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그렇지요. 먼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듣지 않고 배울 수 있겠습니까. 왕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요. 쓴소리를 듣지 않는 자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뻥이요
귀를 막고 저도 앉아 있었습니다. “뻥이요” 소리와 함께 튀겨진 강냉이가 큰 그물 같은 소쿠리에 가득 쏟아졌습니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도 납니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귀를 막던 손으로 이내 손뼉을 칩니다. 신기하기 짝이 없었던 ‘뻥튀기’ 앞에 있던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사람들이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딱’이라는 소리와 함께 결승타가 터졌습니다. 함성도 함께 터졌습니다.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와 미국시리즈가 똑같이 6차전에서 우승이 확정되었습니다. 선수 감독 구단주 직원 그리고 무엇보다 팬들의 함성이 하늘에 닿을 듯했습니다. 선수들이 기쁨 속에 감독과 구단주를 헹가래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귀를 막거나 조마조마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라는 천사의 소리는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승리의 소식입니다. 이 소식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격정적인 환호와 함성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사셨네”가 ‘뻥이요’나 ‘딱’ 소리에 묻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어려움과 영적 성장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이란 감정적으로 요동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할 때 마음의 평온함이나 요동치 않음을 목표로 한다면 아마도 도교에 가까울 것입니다. 영적 성장은 단순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삶의 환경 속에서 적용할 때 일어납니다. 성경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적 평온한 상태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힘든 과정입니다. 즉 사랑이 자라는 것은 오래 참는 과정을 통해 생겨납니다.
참된 평안은 평안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때 생깁니다. 참된 기쁨은 기뻐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릴 때 생깁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말씀은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감사를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평안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선택의 순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때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모든 갈등과 어려움은 결국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