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이윤택 작 연출의 혜경궁 홍씨를 보고
공연명 혜경궁 홍씨
공연단체 (재)국립극단
작가 연출 이윤택
공연기간 2013년 12월 14일~29일
공연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관람일시 12월21일 15시
서계동 (재)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이윤택 작 연출의 <혜경궁 홍씨>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혜경궁 홍씨가 집필한 한중록(閑中錄)을 토대로 창작한 작품이다. 한중록의 내용은 혜경궁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것으로 부군(夫君) 사도세자가 부왕(父王)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및 사적 연루(連累)와 국가 종사(宗社)에 관한 당쟁의 복잡 미묘한 문제 등 여러 무서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칼날을 밟으며 살아온 것 같은 일생 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一代記)이다. 그 문체와 등장인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그려져, 강렬한 박진감으로 하여 한국 산문문학(散文文學)의 정수(精髓)라고 평가된다. 또한 이 글을 통하여 조선 여성의 이면사(裏面史)를 엿볼 수 있다는 점과 당시의 정치풍토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史料的) 가치가 풍부한 작품으로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함께 궁중문학의 쌍벽을 이룬다.
한중록을 바탕으로 1956년에 제작된 안종화 감독의 열 번째 영화 <사도세자>는 거문고 명인 지영희가 국악으로 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서라벌영화공사 3주년 기념작이다. 비사 속에 구색으로 등장하는 자객, 투사, 약사발, 간신, 모사 등이 나열되면서 안종화는 영화 속에서 노장다운 역량감과 안정된 통일성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시대극이 모두 남녀 애정을 그린 비극인데 비해 이 영화는 역사를 정면에 내세우면서 사회적인 시각에서 역사 속 인물을 비극적 인간상으로 부각시켰다. “역사의 인물도 현실의 인물이며 역사적 사실은 반드시 작가적 시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조선일보 1956. 12. 20)는 영화계 반응과 함께 이 영화 <사도세자>는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의 내용은 조선왕조 21대 왕인 영조(38년)의 제2왕자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다. 영조의 다음 대를 승계할 세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왕위 쟁탈전을 묘사했다. 영조는 장헌세자로 하여금 대리섭정을 하게 하지만 세자가 당쟁에 이용되자 세자를 폐한 후 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한다. 그러나 영조는 훗날 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음을 알고 자신의 가혹했던 처사를 후회해 왕자를 애도하는 뜻이 담긴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린다.
2011년 2월에 공연된 극단 인혁의 <한중록>은 연극적 진실의 재연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묻는다. 권력 쟁투, 외척과 부왕 간 갈등의 제물이 돼야 했던 사도세자. 극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펼친 7일간의 행적과 그 앞에 서막을 여는 대목(제1일)까지 모두 여드레를 다룬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간섭하고 맞물려 들어가는 모습이 클레오파트라에서 마오쩌둥(毛澤東)까지 역사적 인물들을 현재의 무대에 불러내 서로 충돌시키는 과정이 서사 극을 연상케 한다. 김일성과 박정희의 영상까지 동원되면서 백하룡 작, 이기도 연출의 <한중록>은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2013년 8월에는 여성국극예술협회(이사장 허숙자)와 한국전통예술공연진흥대단 주관으로 박종곤 예술감독, 김재복 각색, 홍성덕 작창, 박종철 연출의 <사도세자>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해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재)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 <혜경궁 홍씨>의 무대는 궁궐 깊숙이 자리한 동궁의 처소지만, 평생을 홀로 보낸 세자빈 혜경궁 홍씨의 처소이기도 하다, 세자(3尺) 높이로 주 무대를 높여 만들고, 한 칸짜리 방을 만들어 격자무늬 창호지를 바른 여닫이문과 방안에는 사람 키만 한 촛대가 양쪽에 놓이고, 낮은 상에 음식을 담은 쟁반이 보인다. 출연자들이 동궁처소를 시계반대반향으로 회전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처소 좌우에 통로가 있어 왕과 신하 그리고 궁녀와 환관 등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무대 전면은 동궁처소의 뜨락과 근정전 앞 조례 장처럼 사용된다. 옷 칠을 한 뒤주가 대도구로 등장하고, 하수 쪽의 우물도 깊이가 대한한 것으로 설정된다.
연극은 도입에 백발의 혜경궁 홍 씨를 정조가 인도해 화성 현륭원 부근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회갑연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모후인 홍 씨가 침소에 들면서 가려움을 호소하고, 내인들이 거드는 장면이 자못 흥미를 끌면서 세월은 과거로 돌아간다.
인물이 훤칠한 세자, 그러나 부왕인 영조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부왕의 면전에서 물러나면, 무예를 익혀 사냥을 나서고, 동궁 빈 이외의 여인과 관계를 맺는 등 세자로서의 도리를 이탈한 행동을 한다. 세자빈의 부친 홍봉한은 딸에게 궁중의 변화에 냉철하게 대하고 내심의 표현을 삼갈 것을 당부한다. 점차 영조의 신뢰가 세자로부터 떠나가고, 급기야 배다른 사촌누이와 통정을 하는 것을 안 부왕은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도록 만든다.
영조 이후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 정조로 호칭된다. 정조는 어릴 적 일을 기억하지만, 할아버지인 영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함구령에 순종한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극진히 모신다. 화성에 아버지의 묘소를 마련하고, 이 연극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추운 계절에 안양천을 발을 벗고 건너지 않도록 일곱 개의 무지개 형태의 교각으로 떠받들어진 만안교를 건립해 신을 신고 넓은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효성 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척신들의 싸움과 외명부 내명부 척족 여인들의 암투가 정조시대까지 이어지고, 통한의 혜경궁 홍 씨의 눈앞에 남편인 사도세자의 망령과 아버지 홍봉한의 망령이 자주 등장하고, 평생 앓던 가려움증이 도진다. 쇠똥을 주서다 가려운 곳에 발라 문지르며, 모후 홍 씨는 역적의 자손이라 하여, 이십여 년 전 궁궐에서 쫓겨난 친누이동생이 금족령임에도 불구하고, 성문출입이 거부되자 험산을 넘어 찾아와, 언니인 홍 씨에게 남루한 몰골로 회갑인사를 한다. 혜경궁 홍씨의 반가운 마움을 이루 다 어찌 표현하랴? 영조가 이 사실을 알고 노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는다. 그러나 어머님의 거리낌 없는 행동과 인륜을 행한 도리에 감복해 영조는 이모뻘인 부인에게 큰절을 한다. 남루한 여인도 맞절을 하는 감동적인 장면에 객석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이어진다.
대단원에서 망령들의 모습이 일시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면, 처소에서 <한중록>을 집필하는 모후 홍 씨의 기품 있는 모습과 가지런한 달필로 가득 찬 화선지를 내인들이 길게 펼쳐들고 읽는 장면과 영상으로 그 내용이 무대에 투사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혜경궁 홍씨로 김소희, 영조로 전성환, 사도세자 최우성, 박정무, 정조 정태준, 어린정조로 주재희, 그리고 차희, 박지아, 이원희, 한갑수, 이주희, 민정기, 허대욱, 신재훈, 이승헌, 이재훈, 양예지, 정연, 박주희, 이영옥, 유선영, 강해진, 이지은, 등의 호연과 한림, 이재하, 조한결, 정준규 등의 연주가 공연을 감동으로 이끌고, 조명 영상 조인곤, 장치 김경수, 의상 이윤정, 소품 김병준, 안무 이승헌, 특별안무 박은영, 작곡 이재하, 음악감독 이시율, 음향 강국현, 분장 이지원, 장치보 김한솔, 무감 변오영, 무감조 신지혜 박상아, 음향오퍼 곽시온, 조명오퍼 홍선화 윤지수, 그 외 스텝 모두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 (재) 국립극단의 이윤택 작 연출의 <혜경궁 홍씨>를 백성희장민호극장에 걸 맞는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2월21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