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플러스 알파
삿11:29~40
<스토리>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숱하게 경험한 일이지만, 후보들은 온갖 감언이설을 다 하고 있습니다.
한 표를 위해서, 내 입안엣 것이라도 빼어 줄듯, 말합니다.
어려운 살림살이 ‘확 풀리게 해 주겠다!’ 호언장담합니다.
사람이 다급해지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도 막 합니다.
‘여기 다리 놔 준다.’ ‘강도 없는데 무슨 다리요?’ ‘강을 내고, 그 위에 놔 주겠다!’
오늘 본문에서, 입다는 전쟁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왔어요. 이들과 한 판 싸움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패가 누구 손에 달려 있습니까?
대통령 선거의 당락은 유권자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 유권자가 아니라, 하나님 손에 달려 있어요! “믿으세요?” ··· 아멘!
사실 대통령 선거의 당락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면 유권자가 결정하는 것 같지만,
뒤에서 하나님이 섭리하세요!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할렐루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 하나님께 달려 있다.’ 입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 “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 하셨지요!
29절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할렐루야!
이제 나가 싸우면 됩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해 주셨어요!
그러나 전쟁에 나가는 것, 보통일이 아닙니다.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예요!
목숨 걸고 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암몬을 너의 손에 붙여 주셨다.” 했는데도 입다는 조바심이 나요!
왜 안 나겠어요?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쟁입니다.
패하면 자기만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망해요!
입다는 여기서 ‘확실히 조치해야 되겠다.’ 그래서 한 것이 ‘서원’입니다.
서원이 뭡니까?
“하나님 이번 일만 잘되게 해 주시면, 일억을 헌금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입다가 서원을 해요!
(30~31절)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
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
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내가 지금 전쟁에 나갑니다. 승리하게 해 주시면? 어떻게 하겠다고요?
이기고 돌아와서 집에 들어설 때, 나를 처음 맞이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
얼른 들어도, 위험한 서원을 했어요!
번제는 제단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만약에 자기 아내나, 부모가 처음 나오면 어떻게 할 건가? 참 아슬아슬한 서원을 했어요.
그만큼 입다의 마음이 초조했어요. 조바심이 났어요.
하나님의 섭리대로 입다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승전가 부르면서 개선했습니다. 개선장군이 되었습니다. 구국의 영웅이 되었어요!
자기 집으로 들어갑니다. 누가 맨 처음 대문 밖으로 나와서 ‘영접할까?’ ··· 누구였어요?
하~ 무남독녀 외딸이 “아빠!” 하면서 뛰어 나와요. 이런 기막힐 데가 어디 있습니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어요.
<서원의 내용에 대한 논란>
입다가 살아온 과거를 보면, 행복한 인생이 아닙니다.
서자로 태어나서 온갖 설움 다 받다가 급기야 쫓겨났어요.
다행히,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나라를 구할 인재로 성장했습니다.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무남독녀 외딸을 번제로 받쳐야 합니다.
누가 강제로 시키지 않았어요. 자기가 서원을 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 하나님? 하나님이 시키신 일도 아닙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돼요?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후대에 성경을 읽는 성경학자들, 신학자들도 안타까워합니다.
‘입다의 경우는 너무나 안됐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한번 읽어보자, 이게 정말이냐?
그리고 성경을 팠습니다. 뭣을 팠어요? ··· 성경을 팠어요! 읽고 또 읽고…
입다가 비록 서출로서 이방 땅에서 자랐지만, 그는 분명 하나님의 사람이다! ‘맞지요?’
하나님의 사람이 이런 서원을 했을 리가 없다!
무슨 말이냐면요, 하나님은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을 아주 싫어하세요!
‘입다가 그걸 모를 리가 있냐?’ 여기서 말하는 번제, 아마 다른 의미의 번제일 것이다.
‘번제라고 해서 몽땅 불에 태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입다가 얼마나 안 돼 보였으면, 성경을 이렇게까지 해석하려고 노력하겠어요?
입다가 입으로는 ‘번제’라고 했지만, 이 번제는 불로 태우는 번제가 아닐 것이다.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냐면요, 38~39절의 문맥 때문입니다.
(38~39절)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딸을 불에 태우는 번제로 드린 것이 아니라, 시집을 보내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게 했다~
그래서 38절에서, 딸은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했고요,
39절에서 아버지는,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결혼을 안 시키고, 평생 독신으로 산당에서 제사 지내는 일에 종사하게 했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아, 그러면 그렇지! 입다가 그런 무모한 서원을 할 리가 없지!’ 그리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소수 의견입니다.
다수 의견은, 번제는 분명히, 불에 태워서 지내는 제사다! 이것이 통설이예요.
어찌되었든,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입다의 서원’입니다. 뭐라고요? ··· “서원!”
<서원의 의도에 대한 일반론>
성경에 보면 서원하는 사례가 종종 나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고 외가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도망가는 길에 벧엘이라는 곳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지요!
돌을 베고 잠을 자요. 잠이 들었는데 꿈을 꿔요! 꿈 속에서 천사를 봅니다.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타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꿈에서 깬 야곱이 무얼 합니까?
창세기 28장에 나와요! 자기가 베고 잔 돌 베게를 세웁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부어요!
이 행동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관행입니다. 그리고 서원해요!
하나님! 제가 지금은 쫓기는 신세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제가 배 안 곯고, 헐벗지 않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시면!
①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요!’
②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③ ‘제가 평생에 십일조 헌금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서원합니다.
서원에는 이렇게 조건이 있어요.
그 조건이 성취되면 이렇게 하겠나이다!
이것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야곱의 서원은 어찌 보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내용으로 했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 ‘성전을 가꾸어라!’ ‘십일조 해라!’
야곱은 나무랄 데 없는 서원을 했어요.
그러나 이런 서원일지라도 하나님은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왜요?
서원은 ‘하나님을 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다!’ 이런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겠다!” 이것이 서원이거든요!
어떤 아들이, “아버지, 이번에 마지막으로 사업자금 대 주시면, 제가 평생 효도하겠습니다!”
이러면 아버지 기분이 어때요? ··· 찜찜해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효도를 조건으로 걸어요. 그러면 이미 그건 불효가 됩니다.
사업 자금을 주든 안 주든, 효도는 해야지요!
그것이 흥정의 대상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합니다.
얍삽한 생각이지요,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타산적 행동이예요!
부모님을, 하나님을,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서원은 “안 된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한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서원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산상설교에서 분명히 말씀하세요!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도 하지 말고, 땅으로도 하지 말고, 자기 신체를 가지고도 하지 말라!
엄하게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라고 하시느냐?
(마5:39)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
라”
예면, 예! 아니면 아니오! 여기서 더 나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도 내 뜻대로, 자녀도 내 뜻대로,
이웃 사람도 모두, “내 맘 같아야 된다~”
세상도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어야 된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내 뜻에 맞는 ‘하나님이라야 돼!’
내 뜻에 안 맞으면, “하나님 없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부모님이 내 뜻에 안 맞아도 내 부모요, 내가 효도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내 뜻과 반대로 섭리하셔도,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해야 됩니다.
이것이 자녀의 도리이고, 지음 받은, 피조물의 도리인 줄 믿습니다!
<플러스 알파>
오늘 설교 제목을 제가 ‘플러스 알파’ 그랬어요.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입다가 서원한 다음에 하나님의 영이 임했어요?
아닙니다. 서원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으로 섭리하셨습니다.
입다는 자기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 알았어요.
이 전쟁에서 ‘대적을 내 손에 붙여 주셨다!’ 알았어요!
이제 나가 싸우면 됩니다.
그런데, 입다에게 욕심이 생겼어요. ‘플러스 알파’입니다.
‘더 확실해 두고 싶다! 뭐 없을까?’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덧붙이면? “안 돼요!”
하나님의 뜻에 우리는 어린 양처럼, 순한 양처럼 순종하면 됩니다.
“순한 양이 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세요! 할렐루야!
“하나님 뜻에 내 뜻을 덧붙이지 맙시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와 순종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