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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성탄
제목 : 이스라엘의 위로(慰勞)
성경 : 눅 2:22~39
찬송 : 122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1225 낙양교회 성탄절 주일 낮 예배
눅 2: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눅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하나님의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백인 독재 정권의 탄압이 점점 유혈로 치달아 가는 정세에서 남아공의 지도자 만델라는 독자적으로 ‘민족의 창’이라는 무장 투쟁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만델라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저 악명 높은 로빈슨 감옥의 돌 깨는 노역장에서 징역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델라는 함께 구속된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것은 60년대 남아공에서는 누가 봐도 유별난 짓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감옥에 들어오는 신세대 운동가들을 찾아 쉼 없는 열정으로 토론을 하고, 백인 교도관들을 통해 몰래 신문을 들여와 보면서 바깥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옥중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과 동시에 협상을 진행하면서 자기 역량을 축적했습니다. 격렬한 싸움 속에서도 만델라는 복수의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미덕을 쌓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만델라는 27년의 긴 감옥살이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닙니다. 27년간의 미래를 위한 준비와 단절을 뚫고 살아난 재창조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준비만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가 기름을 준비하는 일은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시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시므온과 안나처럼 오늘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율법의 마침이신 예수님(22~24절)
√눅 2: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눅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을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율법을 지키심으로 거룩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공생애 기간 내내 율법에 따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공급하심 가운데 사셨으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율법을 철저히 다 지키심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를 이루어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왜 정해진 때가 되자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정결 의식을 행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의로운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의로움의 기준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사람은 죄인이기에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고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히려 율법의 저주 아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그분의 의를 선물로 받습니다.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여기서 ‘주께 드리고’라고 번역된 구문을 직역하면 ‘주께 보여 드리고’ 혹은 ‘주께 내놓고’가 됩니다. ‘드리고’(파라스테사이)는 단순히 ‘~앞에 서다/두다’, ‘가까이 서다/두다’라는 뜻입니다. 엄밀히 말해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리러 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고, 24절에서 알 수 있듯이 아기를 대신해 비둘기로 제사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기를 보여 드리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예수님의 부모는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 이 아이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원자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은 왜 필요합니까?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무조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만 하면 구원받는 것일까요? 죄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을 어긴 우리를 대신해 율법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길은 십자가로 의를 이루신 예수님을 믿어 그분과 연합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의만이 하나님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민의 빛이신 예수님(25~35절)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롭고’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이라는 단어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경건’(율라베스)은 ‘잘, 옳게, 좋게, 행복하게’ 등의 의미를 가진 부사 ‘유’와 ‘받다, 붙들다, 취하다’ 등의 뜻을 가진 ‘라베인’의 합성어입니다. 기본적인 뜻은 ‘잘 확립하다, 잘 정착하다, 바르고 확고하게 붙들다’ 등으로, 종교적 신념이나 믿음이 견고해서 모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의로운 것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하다’, ‘모든 종교적 의무를 행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의롭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위로를 기다린다’는 말은 메시아 시대의 구원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사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회복의 때가 올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것은 포로 생활 내내 탄식하던 백성을 향해 구원과 귀환의 때가 이를 것임을 알리는 음성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바로 그 음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능력의 하나님이 이제 로마의 압제를 끝내실 것을 소망한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그들을 해방시켜 주며, 하늘의 위로를 전해 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시므온이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오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말합니다.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하나님은 시므온을 통해 예수님이 만민을 구원할 빛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성취하시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의 길은 한 개인이나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빛 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죄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열방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셔서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교회는 머리 되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 열방에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권세를 받은 교회에 들어오는 자는 구원을, 교회 밖에 있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하나님의 큰 구원 경륜을 보고 계십니까? 자신이 받은 구원에 안심하면서 자신의 생활에만 얽매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개인주의와 개교회적인 생각에 갇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며,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신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진노와 심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앞에 모든 만물이 굴복할 때까지 우리는 그 구원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만민을 회복시킬 예수님(36~39절)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안나는 여선지자입니다. 그는 결혼해서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84세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마침 성전에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녀는 아기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깨달았습니다. 안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은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며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제목입니다.
안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으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했습니까?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시므온처럼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나라에 들어온 그분의 백성은 주님의 통치 아래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만물을 회복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주님은 만물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하시고 믿음으로 기다린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복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십니까? 시므온과 안나는 예수님의 오심을 일평생 간절히 기대하며 소망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주님은 이제 곧 다시 오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간절히 바라며 복음을 위해 고난과 섬김과 희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의 소식은 없습니다. 이미 오신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거룩함과 경건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복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이제 다시 오셔서 만물을 회복시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