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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부)
요한 볼프강 폰 괴태
[옮긴이 해제]
운율의 보고인 파우스트를 나만의 언어로, 조금이나마 운문답게 옮겨보고 싶었다. ~~~중요한 책인 줄은 다들 알지만 막상 읽히지는 않는 <파우스트>를 조금은 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기도 했다.
파우스트는 60여 년에 걸쳐 쓰인 작품이며, 12,111행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정교한 운율로 짜인 운문 작품이다. 보석과도 같은 시구들이며, 부분 부분의 내용에 따라 운율을 다채롭게 달리하는 형식미를 보여 운율의 보고와도 같다. 파우스트의 핵심 장면 가운데 하나인 파우스트와 헬레나의 만남도, 헬레나의 게르만 운율에의 동화(同化)로 그려진다.
-헬레나
그럼 말해주세요. 어찌 하면 나도 그렇게 아름답게 말할 수 있나요?
-파우스트
그건 아주 쉬워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지요.
하여 가슴에 그리움이 넘쳐흐르면
돌아보며 묻지요-
파우스트의 제 1부는 괴테의 생전에 출간되었으나, 제2부는 그의 사후인 1833년에 출간되었다. 82세이던 1831년 8월, 그는 제 2부의 마지막 교정 작업을 마치고 원고를 봉인하여 장롱에 넣었다. 당대로부터 이해받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어서였다. 그러다가 1832년 정월 그 원고를 다시 꺼내어 교정하였다. 그리고 3월 22일 타계한다. 괴테 사후 조피 왕비의 지원으로 괴테 전집이 간행된다. 조피 판본 혹은 바이마르 판으로 불리는, 본문만 143권, 보유 편 3권이 따르는 전집이다.
번역하는 동안에는 기존의 한국어 번역을 전혀 보지 않았다. 최초의 한국어 번역인 것처럼. 오로지 원본만 들여다보며 번역했다. 오직 내 눈과 안목만 의지하여 해보고 싶었다. 두려웠지만 이제쯤은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독문학의 높이나 우리 문학 전반의 시야가 그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작품 파우스트에 대하여>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 괴테가 60년을 두고 쓴 작품. 그 추동력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누구든 서슴없이 택하고, 누구도 이의가 없는 구절이다. 지금껏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되어 온 문장인데 “노력”에 다소 지나치게 비중을 두고 있어, 오랜 생각 끝에 굳어진 번역을 바꾸었다. 독일어 동사 streben이 불철주야, 일로매진 같은 의미보다는 마음속의 솟구침을 더 많이 담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인간의 생애가, 인간이 그려진다. 그 범례로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택했다. ~~~~파우스트라는 욕심 많은 인간이 있었는데 악마와 계약하여 영혼을 팔아서(기독교권에서 저지를 수 있는 불경의 극치이다)24년 동안 온갖 복락을 누렸지만 결국 지옥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흥부놀부 이야기처럼 기독교권 세계의 권선징악 이야기의 하나이다. 이 흔한 소재에다 괴테는 장치 하나를 바꿈으로써, 또 60여 년을 쏟음으로써 근대인의 대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 하나의 장치는 24년의 한시적 계약을, 더는 바랄 바가 없어서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까지 악마가 봉사해야 하는 내기로 바꾼 것이다. ~~~또 하나는 악마의 설정이다. 그저 악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부정(不正)만 하는 영(靈)이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활동은 너무도 쉽게 느슨해 질 수 있기에 자극하여 작용하고, 이루어주고 마는 동무”로서 신이 주시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바깥에서 온 어떤 거대한 악이 아니고, 내 마음속의 꼬여 있는 부분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작심삼일을 극복하게 하는 조력자로 말이다.
제2부는 잘 짜인 5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무대, 즉 파우스트가 경험하는 세계는 엄청난 크기의 시공으로 설정되어 있다. 거의 극대치이다. 지폐가 발행되는 중세 말의 궁정에 파우스트가 등장하다가, 3000여 년 정의 고대 그리스로, 또한 로마 권력자들의 결정적 전투가 벌어졌던 파르살루스 벌로 갔다가, 다시 왕권과 교황권이 다툼을 벌이는 중세 말기로, 이어 개발의 박차가 이루어지는 물량의 시대, 근현대로 나아간다.
[파우스트의 조감(줄거리)]
● 천상의 서곡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이 핵심적인 구절이 나오는 곳은 파우스트의 첫머리 <천상의 서곡>이다. ~~~~맨 앞의 헌사는 시 한 편으로, 벌써 중년이 된 괴테가 친구 쉴러의 간곡한 당부로 파우스트 집필에 세 번째로 집중했을 시기에 젊은 날 파우스트를 쓰던 때를 돌아보며 느낀 소회를 담은 인트로이다.
문제의 구절이 담긴 일곱 쪽 남짓한 <천상의 서곡>이 파우스트 전체 작품의 주제적 핵심을 담은 개요라 할 부분이다. (이 부분만 읽고도 주제는 다 알았다고 해도 좋다) 천사들은 우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 (천상의 서곡이 쓰인 것이 1799년 인데, 우주선을 타고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을 그리는 시각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온갖 “거름더미에 코를 처박고” 천상의 빛인 이성을 “짐승보다도 더 짐승처럼 구는 데” 에나쓰는 인간의 가엾은 꼴을 한없이 비아냥거린다. 듣다 못한 주님이 “너 파우스트를 아느냐?”라고 물으시니 “그 박사요?!”하고 냉큼 대답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주님은 “나의 종이니라”하신다. 그러면서 좀 더 부연하시는 말씀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어두움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파우스트를 시험하라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에 맡긴다. 그렇게 그려짐으로써, 한 인간이 방황하겠지만... 궁극적으로 구원되는 큰 그림이 제시된다.
● 파우스트 제1부
악마가 제일 먼저 제공하는 것은 젊음이다. 인생을 다시 살게 한다. ~~철학, 법학, 의학, 신학, 즉 중세 대학의 4대 학부 전 분야를, 그러니까 모든 학문을 섭렵한 노지식인이 회의에 빠져서 독배를 들기에 이르는 상황의 기나긴 모놀로그로 작품이 시작된다. (이 기나긴 독백에서 독자가 초장에 지칠 수도 있다).
들었던 독배를 던지는 건, 마침 울려오는 부활절 종소리 때문인데, 부활절 종소리란 종교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죽음의 실족으로부터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이런 어린 날, 젊은 날의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곰팡이 가득한 서재를 벗어나 파우스트는 사람들 속으로 나서본다.
악마는 맨 먼저 노학자 파우스트의 나이를 30년 빼준다. ~~~젊어진 파우스트가 맨 먼저 해보는 멋진 일은 - 사랑이다.
청순함의 대명사가 된 인물 그레트헨, 파우스트가 사랑하게 된 그 지순한 소녀를, 파우스트의 사랑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파우스트 1부는 감옥 장면으로 끝난다. 감옥에 갇혀, 고통으로 광증에 사로잡혀 있는 그레트헨을 파우스트가 구출해내려 한다.
● 제2부 제1막
우아한 어느 지대의 풀밭에서, 즉 대지의 힘으로 다시 깨어난 파우스트에게 가히 경계가 없는 활동의 무대가 펼쳐진다.
● 제2부 제2막
인조인간이 등장한다. 스승 파우스트가 사라진 이후, 조수 바그너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 제2부 제3막
고대 그리스의 인물 헬레나가 직접 등장하여 고대 그리스의 운율로 이야기한다. 스파르타 메엘라오스 왕의 비로,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가 그녀를 납치해 감으로써 트로이 전쟁을 유발했다는 <일리아스>의 이야기에 이어진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스파르타로 돌아온 헬레나는 이제,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여자. 비난받는 환향녀이다. 떠났던 왕궁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희생제물이 되는 운명이다. 그 위기를 피하여 피신해 간, 스파르타 부근에 있는 게르만의 성에서 파우스트가 성주로 등장한다.
● 제2부 제4막
슬픔에 젖었던 파우스트가 현실로 돌아가서, 황제에 맞서 대립황제를 제압하려는 싸움에서 황제를 돕는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조력으로 가상의 전투가 벌어지고 이를 통해 파우스트가 돕는 황제 편이 이긴다.
● 제2부 제5막
파우스트 자신은 이제 스스로는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며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100세 노인이다. 그의 집에는 어떤 악귀들조차 범접을 못한다.
두 눈을 뜨고도 맹목적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눈이 먼 그에게서 내면의 눈이, 심안이 떠진 것이다. 그 순간에 드디어, 오래 미루어졌던 계약의 말이 나온다. 순간을 향해 하는 말.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누려 마땅한 자는
날마다 그것들을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자뿐.
하여, 위험에 에워싸여 있음에도.
여기서 아이도, 어른과 노인도 그 알찬 세월을 보낸다.
그런 무리를 나는 보고 싶노라.
자유로운 터에 자유로운 백성과 서고 싶노라.
그 순간에게 내가 말해도 좋으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11574~82행)
작품의 끝 <심산유곡>은 어딘가 깊은 산속 계곡을 파우스트의 영혼이 올라가는 장면이다. 그의 영혼은 궁극적으로 구원되는 듯 보이며, 장려한 합창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그리고 그 알 듯 모를 듯 신비로운 <신비의 합창>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가네“로 마무리된다.
“모든 무상한 것은
다만 하나의 비유.
다다를 수 없는 것이
여기서 이루어지네.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 행해졌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가네. “(12104 ~ 11행)
[파우스트 수용과 간략한 연구사]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를 생전에 출간하지 않았다.
[[헌사]]
다시 다가오누나 너희, 흔들리는 희미한 모습들!
일찍이 아직 흐린 내 눈길에 모습 보여주었던 이들.
이번에는 내가 너희를 붙잡아 볼까?
내 가슴 아직도 저 광기로 끌림이 느껴지니?
바짝 다가오네! 그래, 너희 강렬하게 여기 있는 것이리,
너희 나를 에워싼 몽롱한 안개에서 솟아오르니.
내 가슴이 젊은 날처럼 고동친다.
너희의 행렬을 감도는 마법의 입김으로 하여.(1~8)
[[무대 위에서의 서연]](단장. 극단 전속 시인. 광대)
-단장
자네 둘, 찬으로 자주 나를,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도와준 자네들,
말해보게, 이 독일 땅
우리 사업에서 무얼 희망하나?
나는 많은 무리를 즐겁게 해주기를 몹시 바라고 있네,
그들도 살고 그 덕에 우리도 살잖나.
기둥이 섰고 무대도 떵떵 박아놓았으니
누구든 잔치를 기대하지.
벌써들 와 앉아 있네, 귀 쫑긋하고 ~~~
-시인
아 저 요란한 무리 이야길랑 저에게 하지 마세요.
저런 사람들 보기만 해도 정신이 다 달아나요.~~~~
아! 거기 우리 깊은 가슴속에서 솟는 것.
입술이 수줍어하며 더듬거리는 것.
어긋나버리는가 하면 간혹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반짝이는 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
진정한 건, 후세에도 간직됩니다.
-광대
후세 이야길랑 하지 마세요.
내가 후세 이야기나 하고 싶어 한다면
당대는 누가 재미있게 해주나요?~~~
-단장
하지만 무엇보다 사건이 많이 일어나야 하오!~~~
-시인
모르시네요, 그렇게 뚜드려 맞춘 게 얼마나 나쁜지.~~~
-단장
그런 비난으로 날 마음 상하게 하진 못하네.
-시인
가서 다른 하인을 찾아보시죠!
시인이 최고의 권리.~~~~~
무얼로 시인이 만인의 가슴을 뒤흔드나요?~~~
누가 폭풍을 몰아쳐 열정이 되게 하나요?
저녁노을을 엄숙한 뜻으로 불타게 하나요?
누가 모든 아름다운 봄꽃들을
연인이 가는 오솔길에 쏟아붓나요?
누가 별 뜻 없이 푸르른 잎들을
영예의 화환으로 엮어 온갖 공로에게 주나요?~~~
-광대
힘을 그렇게 써보시죠, 그 아름다운 힘들을
그러면서 시인의 업무를 해보세요.~~~
오류는 잔뜩, 진실은 불티 한 점.
그렇게 양조되죠, 최고의 음료. ~~~
-시인
그렇다면 내게 저 시절도 다시 다오
나 스스로가 아직 이루어지는 중이던 때,
빼곡이 들어찬 노래의 샘이
그침 없이 펑펑 솟던 때.
내 눈엔 안개가 세상을 감싸고 있고
꽃봉오리들은 아직 기적을 약속하고 있던 때,
수천 가지 꽃들을 내가 꺾던 때,~~~
고통에 가득 찬 깊은 행복,
증오의 힘, 사랑의 위력,
나에게 내 젊음을 돌려다오!
-광대
젊음이야, 친구여. 당신이 때에 따라 필요로 하긴 하지요.
전장에서 적들이 당신에게 밀려올 때.
당신 목에 기를 쓰며
더없이 어여쁜 아가씨들이 매달릴 때.
가장 빨리 달린 자에게 주는 월계관이 멀리서,
어렵사리 도달한 목적지에서 손짓할 때.
격렬한 회로리 춤이 끝나고
퍼먹고 퍼마시며 밤들을 보낼 때.~~~
-단장
말은 충분히 오갔네.
이젠 행동으로 보여주게.
자네들이 새끼 꼬듯 입에 발린 칭찬을 엮어가는 그 시간에~~~
[[천상의 서곡]]
-라파엘
태양은 예나 다름없이 층층의 천공에서
다투듯 부르는 노래를 울리고
그 정해진 행로를
완성하네. 천둥 발걸음으로.
그 광경 바라보며 천사들 힘을 얻네.~~~
-가브리엘
또 빠르게, 불가해하게 빠르게
화려한 땅덩이가 이리저리 돌고 있네
낙원의 밝음과 으스스한
심연의 어둠이 교차하네.~~~
-미카엘
또 폭풍에 폭풍이 다투어 포효하네,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광란하며 사방에서
심원한 작용의 연쇄를 일으키네~~~
-셋이서
그 광경 바라보며 천사들 힘을 얻네.
아무도 당신을 규명하지 못해도
당신의 모든 드높은 위업들은
태초의 첫날에 그러했듯 장려하네.
-메피스토펠레스
오 주님, 또 한 번 다가오셔서
저희들 다들 어찌 지내냐 물어주시니~~~
-주님
더는 할 말이 없느냐?
늘 불평하러만 오느냐?
네 눈에는 땅 위에 제대로 된 건 영원히 없단 말이냐?
-메피스펠레스
그럼요. 주님! 저긴, 늘 그렇듯, 정말이지 고약해요.
비참한 나날을 보내는 dslrks들이 불쌍하죠.~~~
-주님
너 파우스트를 아느냐?
-메피스토펠레스
그 박사요?
-주님
나의 종이니라!
-메피스토펠레스
하기야! 그자. 주님 섬기는 게 별스럽기도 하죠.
그 바보는 마시는 것도 먹는 것도 지산의 것이 아니죠.
뭐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를 먼 곳으로 몰아가는데
자기가 미친 줄 어렴풋이 알고는 있죠. ~~~~
-주님
그가 지금은 혼란스럽게 나를 섬길 뿐이더라도
머지않아 내가 그를 분명함으로 이끌어가겠노라
정원사는 아느니라, 어린 나무가 푸르러지면,
그것이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장래의 나날을 치장할 것을.
-메피스토펠레스
내기하실래요? 저자를 잃으실 텐데요.
허락만 해주셔서 제가
그를 제 길로 살짝 인도하면요!
-주님
그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그동안만은 그걸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메피스토펠레스
감사합니다! 죽은 건
제가 절대로 즐겨 잡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건, 통통하고 생생한 뺨이죠.
시체가 찾아오면 전 집에 없는 겁니다.
저야 생쥐 잡는 고양이 같죠.
-주님
그럼 좋다. 네게 맡기겠다!
이 정신을 그 원천으로부터 끌어내어
그를 인도하라, 네가 그를 붙들 수 있거든
네가 가는 길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그러다가 부끄러워하며 서거라. 이렇게 고백해야 할 때면.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고.
-메피스토펠레스
좋습니다! 오래 안 걸릴 겁니다.
내기에 질까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요.
제가 제 목적에 도달하거든
가슴 터지도록 승리를 구가하게 해주세요.
그가 흙먼지를 처먹도록 만들겠어요. 그것도 게걸스레.
우리 아주머닌, 저 유명한 뱀처럼.
-주님
너는 언제든 자유롭게 나타나도 된다.
너 같은 것을 나는 미워한 적 없다.
모든 부정하는 영들 중에서는
심술쟁이가 나한테 제일 부담이 적다.
인간의 활동은 너무도 쉽게 느슨해질 수 있고
인간은 곧 무조건의 휴식을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즐겨 그에게 동무를 붙여주지.
자극하며 작용하고, 악마로서, 이루어주고 마는 동무 말이다.~~~~
-메피스토펠레스
때때로 저 노인을 보는 것도 괜찮단 말이야
그래서 난 조심하지, 사이가 아주 틀어지지 않도록.~~~
[[비극 제1부]]
● 밤
-파우스트
나는 이제, 아!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도 신학까지!
철두철미 연구했다. 뜨거운 노력으로.
한데 여기 내가 서 있구나. 가련한 바보가!~~~
한데 알게 된 거라곤,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
지옥도 악마도 날 겁나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게선 모든 기쁨이 사라졌고~~~
그래서 마술에 몸 바쳤다.
영의 힘과 입을 빌려 내게
비밀의 말이 전해지지 않을까 하고.
더 이상 식은 땀 흘리며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할 필요 없었으면.
인식했으면, 무엇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오 너는, 가득한 달빛아.
내 고통을 마지막으로 내려다보는 것이리.
내가 그 많은 한밤중
이 책상 앞에서 지낼 때 너를 보았지.~~~
아! 높은 산 위에서
네 고운 빛 속을 걸을 수 있다면.
산중 동굴 근처를 정령들과 함께 감돌 수 있다면,
네 어스름 속에서 풀밭을 거닐 수 있다면,
모든 앎의 자욱한 연기를 벗어나
네 이슬에 몸 씻고 건강해졌으면!
아아! 나 아직 감옥에 박혀 있지?
저주받을 갑갑한 벽 구멍.
고운 하늘빛조차도
채색유리창으로 흐릿하게 꺾이는 곳!
이 책 더미로 비좁아진 곳
버러지들이 갉아 먹고, 먼지 덮인,~~~
그런데 너 아직 묻느냐. 왜 네 마음이
가슴속에서 두렵게 옥죄이는지?
왜 까닭을 알 수 없는 고통이
네 모든 생명의 솟구침을 억누르는지?~~~
도망쳐라! 자 드넓은 땅으로 나가라!
이 비밀 가득한 책,
노스트라다무스가 직접 쓴~~~
네가 별들의 운행을 알게 되면
또 자연이 너를 가르치면
네 영혼의 힘이 열릴 것이다.~~~
영들의 세계가 닫혀 있는 게 아니다.
네 감각이 닫히고, 네 마음이 죽었을 뿐!
자아, 씻어내거라, 배우는 사람아. 꾸준하게
속세의 가슴을 아침노을에다!
근심은 항시 새로운 가면을 쓰며
집과 뜰로, 아내와 아이로 나타나고
불, 물, 단검과 독약으로 나타난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모든 게 두려워 너는 덜덜 떨고
결코 잃지도 않을 것, 그런 걸 두고도 노상 징징 운다.
~~~
이제 내려오라, 맑은 수정 잔아!
네 오래된 벨벳 케이스에서 나오라~~~~
-천사들의 합창
그리스도 부활하셨네!
이 기쁨을 필멸의 인간에게,
멸망의 근원이자
고질적이고 유전된
결함들에 얽매인 인간에게.
-파우스트
● 성문 앞에서
● 서재
-파우스트
내가 떠나온 들판과 풀밭
깊은 어둠이 뒤덮고
예감에 찬 신성한 전율로써
우리 마음속에서 보다 나은 영혼을 일깨운다.
거친 충동은 이젠 잠들었다.
온갖 맹렬한 행동들과 더불어.
인간에의 사랑이 눈을 뜨고
신에의 사랑도 이제 눈뜬다.
조용히 해라, 복술강아지야! 이리저리 내닫지 말아라!~~~
-파우스트
나는 놀기만 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지내기에는 너무 젊단 말이야.
세상이 내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참고 지내라! 참고, 없이 지내라!
그게 영원한 노래지~~~
오 축복받았구나, 승리의 영광 속에
피 묻은 월계수를 두 뺨 주위로 드리우는 자.
숨 가쁘게 돌아가는 춤이 끝난 후
한 처녀의 품에 안기는 자.
-메피스토펠레스
하지만 누군가는 갈색 즙을
저 밤에, 다 마시지 않던데요.
-파우스트
염탐이, 네 재미인 모양이구나.
~~~~
-정령들의 합창
아! 아!
네가 부수었구나.
아름다운 세계를
억센 주먹으로.
-파우스트
그럼 나도 좋다!
내가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하면.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하면,
그때면 네가 나를 묶어도 좋다.
그때면 나 기꺼이 멸망하겠노라!
그때면 조종이 울려도 좋다.
그때면 너는 너의 종살이에서 풀려나리라.
시계는 서고, 시계바늘은 떨어지리.
나의 시간이 지나간 것!
-메피스토펠레스
~~~
당신 피 한 방울 쪼끔 짜서 서명하시고요.
-파우스트
그래야 만족하겠거든
그런 허튼 짓이라도 해주지.
-메피스토펠레스
피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즙이니까요.
● 라이프치히의 아우어바흐 술집
-프로쉬
아무도 안 마셔? 안 웃어?
내가 얼굴 찌푸리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너희들 오늘 젖은 지푸라기 꼴이구나.
여느 때는 노상 활활 타더니만.
-브란더
네놈 탓이야, 네가 가만히 있잖아.
멍청한 짓도 안 하고, 되잖은 짓도 안 하고.
-지벨
다투는 녀석들은 밖으로 나가!
가슴 열고 노래 노래 부르자, 퍼마시자, 소리치자!
~~~
● 마녀의 주방
● 길거리
-파우스트
고우신 양갓댁 아가씨를 감히 제가
팔을 내밀어 모셔다드려도 되겠습니까.
-마가레테
전 양갓집 아가씨도 아니고 곱지도 않아요
누가 바래다주지 않아도 집에 갈 수 있고요. (뿌리치고 퇴장)
● 저녁
-마가레테
알 수만 있다면 참 좋겠는데
오늘 그 신사 분은 누구일까!~~~~
● 산보
● 이웃 여자의 집
-마르테
하나님께서 내 남편을 용서하시길,
그이가 나한테 잘한 일이야 아무것도 없지만!
무작정 세상으로 나가버렸지.
나를 생과부로 혼자 놔두고. ~~~~
-마가레테
마르테 아줌마!
● 길거리
-메피스토펠레스
~~당신은 내일이면, 지극히 정중하게
가엾은 그레트헨을 유혹할 거 아닌가요.
온 영혼을 바친 사랑은 그녀에게 맹세하며?
-파우스트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것이다.
● 정원
-마가레테
잘 알겠어요, 선생님께서 저를 아끼시는 것을.
몸을 낮추셔서 저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을요. ~~~~
-파우스트
당신의 눈길 하나, 말 한 마디가
이 세상 모든 지혜보다 더 재미있소.
-마가레테
억지로 그러지 마셔요! 어떻게 제 손에 키스를 하실 수 있어요?
이렇게 흉하고, 이렇게 거친데!
● 정자
● 숲과 동굴
-파우스트
숭고한 영이여, 그대가 내게 주었다. 내가 청했던 것.
모두 내게 주었다. 불에 감싸인~~~~
-파우스트
꺼져, 이 뚜쟁이야!
-메피스토펠레스
좋소이다! 선생은 욕을 하시고, 나는 웃어야 하죠.
사내아이 계집아이를 창조해 놓으신 신께서도~~~
● 그레트헨의 방
● 마르테의 정원
● 우물가에서
● 성벽 안 좁은 길
● 밤
-발렌틴(군인. 그레트헨의 오빠)
전에 내가 이렇게 술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런저런 자가 제 자랑 하길 좋아하고~~~~
● 성당
● 발푸르기스의 밤
“이 장면은 브로켄 산으로 다투어 몰려드는 온갖 마녀들의 혼잡한 무리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며, 간간이 시대비평도 섞인다. 그레트헨이 극한의 고통을 겪는 동안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이끌려 혼란스러운 환락의 장소를 헤메고 있다. 이 장면은 1808년에 쓰였다. 앞의<tdj당>장면은 <원 파우스트>에서는 <성벽 안 좁은 길>과 <밤> 사이에 있다가 <단편>(1790)에서는 <성벽 안 좁은 길>다음에서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가 <파우스트>(1808)에서부터는 <밤>다음<발푸르기의 밤> 앞으로 왔다.
-메피스토펠레스
빗자루 하나 필요하지 않나요?
나는 최고 힘센 숫염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길로 가도 갈 길이 아직 멀어요.
-파우스트
내 두 다리에 아직 힘이 느껴지는 한
이 울퉁불퉁한 지팡이 하나면 충분하다네.~~~
● 발푸르기스 밤의 꿈 혹은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금혼식
● 흐린 날. 벌판
-파우스트
비참에 빠져 있구나! 절망하고 있구나! 그토록 가련하게 오래 길 잃고 지상을 헤매다가 이젠 갇히기까지 했구나!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채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다니. ~~~
● 밤. 트인 들판
● 감옥
파우스트
(2부)
요한 볼프강 폰 괴태
[제1막]
● 우아한 지대
“파우스트. 꽃이 만발한 풀밭에 누워 있다. 지쳐 불안하게 밤을 청하며. 어스름. 정령들의 무리가 둥둥 떠돌고 있는데. 우아하고 작은 자태들이다.”
-에어리얼
흐드러진 꽃들의 봄비
모두의 머리위로 하늘하늘 내리면,
벌판의 초록빛 축복~~~
공중에 원 그리며 이 사람의 머리 주위를 떠도는 너희. 여기서 고귀한 요정들의 방식에 따라 너희를 보여주어라. 이 마음에 쌓인 흑심한 투쟁을 가라앉혀 주거라. 비난의 혹독하게 달군 화살을 뽑아 주거라. 끔찍함을 겪은 그의 내면을 씻어내 주거라. 밤이 머물며 쉬는 시간은 네 차례. 그 휴지(休止)를 지체 없이 다정하게 채우거라. 우선 그의 머리를 서늘한 베개에 뉘어놓고, 다음으로 레테 강물의 이슬 속에서 씻어주거라.~~~
-합창
~~~
소망에 소망 이루려면
저기 찬란한 빛을 바라보아라!~~~
-에어리얼
귀 기울여라! 호렌들의 폭풍 소리에 귀 기울여라!~~~
-파우스트
생명의 맥박이 신선하게, 생생하게 뛴다.~~~
대지여. 너 지난밤에도 굳건했구나.
이제 새 힘 얻어 내 발치에서 숨 쉬며
벌써 나를 즐겁게 에워싸기 시작하는구나.~~~~
이런 것이구나. 그리움에 찬 희망이
최고의 소망을 향해, 한 마음으로 나아가다
성취의 좁은 문. 그 양 날개가 활짝 열린 것이 보이면. ~~~~
● 제국령 팔츠 옥좌가 있는 홀
● 부속실들이 딸린 드넓은 홀
-꽃 파는 아가씨들
그대들의 갈채를 받고자
우린 오늘 밤 치장을 했어요
우린 피렌체 아가씨들.
독일 궁정의 호화로움을 따라왔지요. ~~~~
-열매달린 올리브 가지
난 만발한 꽃을 탐내지 않아요
모든 시비를 피하지요
그런 건 내 본성에 맞지 않아서요.~~~
● 궁정 정원
“아침 해. 황제. 궁정 인사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점잖게. 눈에 띄지 않게. 풍습에 따른 차림을 하고. 둘 다 무릅을 꿇는다.”
-파우스트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폐하. 마술의 불꽃놀이를?
-황제(일어서라는 손짓을 하며)
짐은 그 같은 장난을 많이 소망하노라-
갑자기 짐이 활활 불타는 천지에 있는 걸 보았다.
마치, 내가 플루톤(저승의 신 하데스의 별칭)이 된 것 같았다.
암반이 온통 어둠과 숯이었다. ~~~~
-메피스토펠레스
바로 그러하십니다. 폐하! 자연의ㅐ 원소 하나하나가
폐하를 지엄하신 분으로 무조건 인정하기 때문이죠.
-황제
우리 제국이 그대들 덕에 지대한 복지를 누리는구나.
바라건대 보답 또한 공로와 같게 하라.
제국의 땅 아래를 그대들에게 맡기노니
그대들은 보물들을 지키는 가장 합당한 관리자가 되어라.~~~
-황제
이제 궁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물하겠으니,
어디에 그걸 쓸 것인지 말해 보거라.
-시동(받으며)
저는 즐겁게, 명랑하게, 기분 좋게 살 겁니다.
다른 시동(마찬가지로)
저는 곧바로 애인에게 목걸이와 반지를 마련해 주겠습니다.
● 어두운 회랑
-메피스토펠레스
왜 날 이 음침한 통로로 끌고 온 거죠?
저 안에서도 충분히 신나지 않나요.~~~
-파우스트
그런 말 하지 마. 자넨 벌써 오래전부터
그런 걸 지겹도록 해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자네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건
오로지 나한테 설명을 않겠다는 심산이지.
그러나 난 안 하지 못할 고통을 당하고 있네.
내무대신과 헌작관이 이제 날 다그쳐.
황제의 소망이라네. 그 일이 당장 일어나게 해야 하네.
헬레나와 파리스를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거야.
남자 중의 남자, 여자 중의 여자를
분명한 모습으로 보겠다는 것이야.
얼른 일을 시작해. 난 약속을 어길 수 없어.
-메피스토펠레스
경솔하게 약속을 하다니 멍청했군.
● 환하게 불 밝힌 홀들
-금발여인
저기, 한마디만 해주세요! 이 잡티 없는 얼굴 좀 바줘요.
하지만 괴로운 여름엔 그렇지 않답니다
여름엔 수백 개 갈색 홍반이 동아나
하연 피부를 끔찍하게 뒤덮는답니다.
처방이 필요해요!
-메피스토펠레스
안됐습니다! 이렇게 빛나는 귀하신 분에게
오월이면 살쾡이 새끼처럼 얼룩이 생기다니.
개구리 알, 두꺼비 혀를 혼합해서
보름달빛에 세심하게 증류하세요.
그런 다음, 달이 줄어들면, 깨끗하게 바르세요,
그럼 봄이 와도 얼룩이 생기지 않을 거요.
-갈색 머리의 여인
무리가 밀려드네요,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저도 처방을 부탁해요! 발에 동상을 입었어요.
걸을 때도 춤출 때도 지장이 커요.
인사하는데도 몸놀림이 둔하다니까요.
-메피스토펠레스
제 발로 한번 지그시 밟아드리게 해주십쇼.
-갈색 머리의 여인
아이, 그런 건 연인들끼리나 하는 짓인데요.
-메피스토펠레스
제가 밟는 건, 아가씨! 더 큰 의미가 있답니다.
그 어떤 병에 걸렸든, 같은 것에는 같은 것을 써야 하죠.
즉 발은 발이 치유하죠. 온 몸이 다 그렇다니까요.
가까이 오세요! 조심! 내 발을 다시 밟지는 마요.
-갈색머리의 여인
앗! 아얏! 아 뜨거! 세게도 밟으셨네.
말발굽에 밟힌 것 같아.
-메피스토펠레스
치료되었습니다.
이젠 춤도 실컷 추실 수 있고.
연회 식탁 밑에서 애인과 발장난도 실컷 할 수 있어요.
●기사의 홀
-의전관
구경거리를 알리는 일이 저의 오랜 업무지만
영(靈)들의 은밀한 주제가 저를 방해합니다
그 복잡한 조작은 감히 이해할 만하게
설명해 보려 해도 잘 안 됩니다.
소파가 있고, 의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황제는 바로 벽 앞으로 모시지요.~~~~
연인들도, 유령이 나타나는 으스스한 때에
애인 곁에서 사랑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영들은 등장하시라! (나팔소리)
-천문학자
바로 연극을 시작하라.
폐하께서 명령하셨다. 막을 열어라!
막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벽걸이 양탄자가 사라집니다. 불에 타서 말리듯이
장벽이 쪼개집니다. 방향을 바꿉니다.~~
(파우스트. 무대 전면의 다른 쪽에서 솟아 올라온다)
-천문학자
사제의 옷을 입고, 관을 쓴 마법사입니다.
이제 그가, 자신 있게 시작했던 것을 완수합니다.~~~
-파우스트(거창하게)
그대들의 이름으로, 어머니들이여, 왕좌에 앉아
무한 속에 영원히 외롭게 거하시는,
하지만 어울려 계신 분들이시여. 그대들의 머리를 감돕니다.~~~~
-숙녀
오! 피어나는 젊음의 힘이 눈부시네!
-두 번째 숙녀
복숭아처럼 싱싱하고 단물이 흐르네!
~~~
(헬레나, 걸어나오며)
-메피스토펠레스
그녀로구나! 이 여자 앞에선 나도 좀 쉬어야겠네.
예쁘긴 한데, 그래도 내게는 별 감흥을 주지 않으니 말이야.
-파우스트
내 두 눈이 아직 붙어 있는 건가? 생각 깊은 곳에서
가장 풍부하게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보이는 건가?~~~
언젠가 나를 황홀하게 했던, 저 고운 자태.
마법의 거울 속에 비쳐 행복하게 했던 저 자태는
이런 미인에 비하면 거품 같은 모상에 불과했구나!
그대로구나. 내가 모든 솟구치는 힘을.
내 열정을 송두리째,
애착, 사랑, 경배, 광기를 모두 바칠 이는.
-메피스토펠레스
정신 차리고 하던 역할에서 벗어나지 말아요!
[제2막]
●높고 둥근 천장의 좁은 고딕식 방
-메피스토펠레스 (커튼 뒤에서 나오며, 커튼을 들고 뒤돌아보는 사이, 파우스트가 낡은 침대에 몸을 뻗고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 누워 있거라. 불운한 자! 유혹을 당해
풀기 어려운 사랑의 굴레에 묶여버렸으니!
헬레나가 마비시키는 자
그리 쉽게 맑은 정신을 되찾지 못하느니.
(두리번거리며)
위를 보고,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고스란히 그대로네.
채식 유리창이 좀 더 흐려진 것 같고,
거미줄이 늘었네.
잉크는 말랐고 종이도 누렇게 빛바랬다.
하지만 모든 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구나.~~~
(그는 털외투를 내려서 흔든다. 귀뚜라미, 딱정벌레, 나방이 떨어져 나온다.)
-곤충들의 합창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그대 오랜 후원자시여.~~~
-메피스토펠레스
어린 것들이 날 놀라게 하며 기쁘게 하누나!
씨만 뿌려도, 시간이 흐르면 거두는군.
낡은 외투를 한 번 더 털어야지
아직 여기 한 마리! 수많은 구석에서
너희, 사랑스러운 것들, 서둘러 숨어라. ~~~~
-조수
~~~
이 방은, 파우스트 박사님 시절 그대로
그분이 떠나신 때부터 손 하나 안 댄 채로,
옛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
그분은 어디로 가셨나?
나를 그분께로 인도하게. 그분을 모셔 오든지.
-조수
아! 그분의 분부가 워낙 지엄해서요.
제가 감히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
내가 들어가는 걸 거부하신다고?
나는 행운을 그에게 좀 더 빨리 가져다줄 사람인데.~~~~
-학사(복도를 휘달려 오며)
대문, 방문 다 열려 있네!
이제,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 군.
지금까지처럼, 곰팡이 속에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오드라 들고, 자신을 망치다가
삶 자체에 시달려 죽진 않겠구나.~~~
●실험실
-호문쿨루스
그러시겠죠, 당신은 북방에서 나서,
안개 같은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죠.
그 기사들과 성직자들의 혼잡한 세상.
그런 곳 그 어디에도 당신 눈이 트였겠어요!
음침한 곳만이 당신의 집이지요.~~~
-메피스토펠레스
아아! 넘어가자! 저 다툼들일랑
전제정 치하와 노예 상태의 다툼들일랑 옆으로 밀쳐놓자.
지루하다. 그런 다툼은 끝나는가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까.~~~
그들은 자유를 얻고자 싸웠다고들 하지.
자세히 보면, 그건 노예 대 노예의 싸움일 뿐.
-호문쿨루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반항적이니 내버려 두세요.
누구든 자신을 지켜야 해요. 할 수 있는 한.
소싯적부터요. 그렇게 해서 마침내 어른이 되는 거죠.~~~
●고전적 발푸르기의 밤
-에리히토
오늘 밤의 으스스한 잔치에, 자주 그래왔듯,
나도 참속하지, 에리히토, 음침한 여자. ~~~~
화톳불이 이글거린다, 붉은 불꽃 날리며,
대지에는 쏟아진 피바다와 불빛 비쳐 번들거리고
밤의 희귀하고 기이한 광채에 이끌려,
그리스의 전설의 군단이 몰려들었다.~~~
●페네이오스 강 상류에서
●페네이로스 강 하류에서
●페네이오스 강 상류에서
●에게 해의 바위 만
[제3막]
●스파르타의 메엘라오스 궁전 앞
“헬레나 등장하고 포로가 되어 온 트로이 여인들의 합창대 합창대장인 판탈리스”
-헬레나
경탄도 많이, 비난도 많이 받는, 헬레나예요.
해안에서 오는 참이에요. 거기로 상륙했지요.
아직도 그네처럼 출렁거리는 파도에 취해 있어요.
그 파도, 프리기아 벌에서부터 우리를 말갈기같이
높은 물 등에 태워, 실어다 주었지요. 포세이돈의 호의로
에우로스의 힘으로, 조국의 만에, 와 닿았네요.
저기 아래선 이제 메넬라오스왕이 귀환을 기뻐하고 있지요.
그의 전사들 중 가장 용감한 이들과 더불어서요. ~~~
-헬레나
그만하면 됐다! 나는 남편과 함께 배를 타고 왔다.
한데 남편은 자신의 도시로 나를 먼저 보냇다.
그러나 어떤 뜻을 그가 품었는지, 그건 짐작치 못하겠다.
내가 아내로 온 건지? 왕비로 온 건지?
아니면 제후들이 겪은 혹독한 고통과 그리스인들이 오래
견뎌온 불운에 대한 희생제물로 온 건지?
나는 정복당했다.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르겟다! ~~~
텅 빈 배 안에서부터 이미 남편이 내게 눈길 주는 일이
드물었고, 기운 나게 하는 말 한 마디 없었으니까.~~~~
-합창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온갖 생각을 하지 마세요.
왕비시여, 썩썩 걸어가십시오.
좋은 마음으로!
길흉화복은
인간에게 예기치 않게 닥칩니다.
미리 알려준대도, 우리가 그걸 믿지 않고요. ~~~
-헬레나
되는 대로이게 하라! 무엇이 날 기다리든, 내게 합당한 건
지체 없이 이 왕궁으로 오르는 일.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서 많이도 그리워했던,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집.
다시 내 눈앞에 서 있구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합창대장
아름다움 곁에서 추함은 얼마나 추한지.
-포르키아스
총명함 곁에서 우둔함은 얼마나 우둔한지.
●성 안뜰
-헬레나
제가 초래한 재앙을 제가
범할 수는 없습니다. 저 자신이 비통하군요! 무슨 엄한 운명이
저를 따라 다니는지, 사방에서 남자들의 가슴을
이다지 혹하게 하여, 그들이 자기 자신도
그 밖의 어떤 품위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게 했어요. 납치하는가 하면
유혹하며, 싸우며, 이리저리 피해 가며.~~~~
-파우스트
놀랍군요. 오, 왕비시여. 제가 동시에 봅니다.
확실하게 명중시키는 분과, 여기 명중 당한 사람을.
저는 봅니다. 화살을 써아 보낸 활이,
저자에게 상처를 입히는군요. 화살에 화살이 뒤따릅니다.~~~
-린케우스
저를. 왕비시여. 돌아보십시오!
부자가 눈길 하나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 부자는 그대를 뵙고서 그 즉시 느낍니다.
자신이 거지처럼 가난하고 또 제후처럼 부유하다고. ~~~~
보물들은 저를 추적했습니다
날카로운 제 눈길만 따라갔지요.
모든 주머니 속이 들여다보였죠.
모든 궤짝이 제겐 투명했고요.
하여 금덩이들은 제 차지였죠.
온갖 휘황찬란한 것은 보석이죠.
이젠 에메랄드만이 쓰임새 있네요.
그것이 그대 가슴을 초록빛 되게 하네요.~~~
-헬레나(파우스트에게)
당신과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올라서
제 곁으로 오십시오! 빈자리가
주인을 부르고 있고 그래야 제 자리도 든든해집니다.
-헬레나
그럼 말해주세요. 어찌 하면 나도 그렇게 아름답게 말할 수 있나요?
-파우스트
그건 아주 쉬워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지요.
하여 가슴에 그리움이 넘쳐흐르면.
돌아보며 묻지요.
●그늘진 숲
-헬레나
사랑, 인간적인 행복을 누리라고,
그것은 고귀한 둘을 가까워지게 하지만
신적인 즐거움을 위해서는
사랑이 귀한 셋을 만든다.
-파우스트
모든 것을 이제 다 얻었으니
내가 그대 것이요, 그대는 내 것.
이렇게 우리 결합되어 있으니,
절대 변할 수는 없어요.
-합창대
긴 세월 누렸던 기쁨이
소년의 부드러운 모습 가운데서
이 한 쌍 위에 모아졌네
오, 이 결합은 얼마나 감동적인지!
-헬레나(파우스트에게)
옛말 하나가 유감스럽게도 증명되네요, 제게서.
행복과 아름다움은 지속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 (※이 문구는 괴태가 열 번이나 고쳐썼다고 전한다)
쌂의 끈, 사랑의 끈이 끊어져 버렸어요.
그 둘을 한탄하면서, 저도 고통스럽게 안녕을 고합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안깁니다, 그대에게.
페르세포네여. 아이를 받아주소서, 저도 받아주소서!
(그녀가 파우스트를 안는다. 육신이 사라진다. 옷과 너울이 그의 품 안에 남는다.)
[제4막]
●고산지대
-파우스트
가장 깊은 외로움을 내 발 아래에서 보며,
이제 나 조심스레 이 산정의 자락에다 발 디딘다.
-메피스토펠레스
당신이 무얼 지향했는지 맞혀보라고요?
그건 분명 숭고하게 대담한 것이었죠.
둥둥 떠올라 그렇게나 달 가까이 갔던 당신.
아마 당신의 중독이 당신을 거기로 끌고 갔겠죠?
-파우스트
절대 아니네! 이 땅의 테두리가
아직은 위대한 행위를 위한 공간을 허락하지.
나는 놀랄 만한 일을 이루어야겠다.
대담한 근면을 쏟을 힘이 느껴진다.
-메피스토펠레스
그러니까 명성을 얻으려는 거요?
당신이 여성 영웅과 함께 있다 왔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차릴 테지요.
-파우스트
지배를 얻겠노라. 소유를!
행동이 모든 것이고, 명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메피스토펠레스
전투에 이기기 위한 전략이오!
큰 뜻을 가지고 각오를 단단히 하시오.
당신의 목적을 생각함으로써.
황제를 위해 우리가 옥좌와 나라를 보존한다면
그럼으로써 당신은 무릎 꿇고
끝없는 해변을 봉토(封土)로 받지요.
-파우스트
넌 벌써 이런저런 것을 해냈지.
이제, 전투도 이겨보거라.
-메피스토펠레스
아니오. 당신이 이기는 것이오! 이번에는
당신이 총사령관이오.
●앞산 위에서
“북과 군악 소리가 울려오고
황제의 막사가 세워진다.
황제, 총사령관, 친위병들.“
-총사령관
여기를 보십시오, 군주시여, 우리의 우익을.
이런 지형을 전쟁의 이론은 원하지요.~~~
-황제
칭찬 외에는 달리 할 게 없구나.
여기서 팔과 가슴의 힘을 시험해 볼 수 있겠구나.~~~
●대립황제의 막사
-황제
어찌 됐건 이제! 우리가 전투를 이겼구나.
뿔뿔이 달아나던 적도 평범한 전장에서 다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지체 없이 즉시 그대들 네 명의 합당한 이들과,
계약을 하겠노라. 왕가와 조정과 제국을 위해.
(첫번째 제후에게)
군대의 질서정연한 현명한 배치는, 오 제후여! 그대 작품이었지.~~~
그대를 대원수로 임명하노라. 검을 수여하노라.
-황제
~~~나는 지금 즉시, 그 소유의 경계를 넓혀주는 바이오.
우리로부터 등 돌렸던 저자들의 상속분을 가지고 말이오.
그대들 충신들에게 그 많은 아름다운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동시에, 기회에 따라 귀속, 매입 그리고 교환을 통해
더욱더 넓혀갈 우선권을 주노라.~~~
-성직자(남아서 열정적으로 말한다)
재상은 갔습니다만 주교는 남아 있습니다.
엄숙한 경고의 정신이 한 말씀 아외지 않을 수 없게 해서요!
아버지 같은 마음이, 근심으로 폐하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황제
이 즐거운 시각에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가? 말하라!
[제5막]
●트인지대
-나그네
그래! 이것이야. 짙푸른 보리수나무들,
저기, 그 오랜 수령의 힘이 넘치는구나.
저 나무들을 내가 다시 찾는구나.
그 오랜 방랑 끝에!
이게 옛 자리인가.
저 오두막, 폭풍 거세였던 파도가
저 해안 모래언덕으로 나를 내동댕이쳤을 때
나를 받아주었던 곳!
그 집 주인들께 축복을 드리고 싶구나.~~~~
-바우키스(몹시 늙은 할머니)
이제 막 오신 분! 가만! 가만!
조용히! 영감이 자고 있어요!
긴 잠을 자야 늙은이들은
잠깐 깨어 얼른 할 일을 한다오.
-나그네
말씀해 주셔요. 할머니, 당신이 그분이시죠.~~~
언젠가 할아버지와 함께
젊은이의 생명을 구하느라 애쓰신 분이시죠?~~~
바우키스이시죠, 부지런히
반쯤 죽은 입에다 기운을 떠넣어 주시던 분이죠?
(남편이 등장한다)
무릎 꿇게 하세요. 기도하게 하세요.
참으로 가슴이 벅차네요.
-필레몬(바우키스에게)
서둘러 상을 차리구려.
뜰 안, 상쾌하게 꽃 피는 곳에다. ~~~
-필레몬
이 젊은이가 이 놀라운 일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겠지.
당신은 이야기하길 좋아하지, 이 친구에게 알려주구려.
-바우키스
그러죠! 그건 기적이었다오!
오늘까지도 내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요.
저 일은 전체가
올바른 일로써 되어간 게 아니거든.
-필레몬
저 해변을 그에게 주신
황제께서 죄를 지으실 수야 있겠소?~~~
우리 모래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첫 발을 디디더군.
막사들, 오두막들! - 그러더니 푸른 풀밭에
금방 궁전이 들어서는 거야.
-바우키스
~~~~그는 이웃이라고 떠벌리는데
우린 그에게 굽신거려야 해요.
-필레몬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제의를 했지.
새로 생겨난 땅에서 멋진 농사를 주겠다고!
●궁전
“드넓은 관상용 정원. 곧게 이어지는 큰 운하.
고령에 이른 파우스트. 거닐며, 생각하며.“
-파우스트(성을 내며)
빌어먹을 종소리! 너무나도 치욕적으로
상처 입힌다, 음험한 화살처럼.
눈앞엔 나의 왕국이 무한히 펼쳐져 있는데
등 뒤에서 저 불쾌한 소리가 나를 놀려댄다.
시샘하는 종소리를 통해 상기시킨다.
나의 전체 소유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저 보리수 서 있는 자리, 저 갈색 건물
저 타락한 작은 교회는 내 것이 아니다.
저곳에서 쉬었으면 좋으련만
낯선 그림자에 소름이 끼친다.
눈에 박힌 가시오, 발바닥에 박힌 가시이다.
오! 내가 여길 떠나 멀리 가버렸으면!
“호사스러운 배, 낯선 세계 각지에서 온 생산품들이
풍성하게 색색깔로 실려 있다.
메피스토펠레스, 세 명의 용사들.“
-합창대
여기에 우리는 상륙해요.~~~
-메피스토펠레스
~~~
전쟁, 거래 그리고 해적질
그게 삼위일체, 떼어놓을 수 없으니.
-메피스토펠레스
우선 저 위에 정돈해 두거라
홀에 홀마다.
값진 것들은
모조리 다
그분이 오셔서
그 풍부한 걸 보시면
모든 걸 계산하실 게다.~~~~
-메피스토펠레스(파우스트에게)
근엄한 이마로, 어두운 눈길로
당신은 당신의 고귀한 행복에 대해 듣고 있군요.~~~
-파우스트
그 빌어먹을 여기!
바로 여기가, 나를 괴롭게 짓누른다.
매사에 노련한 네게 말하노니.
내 가슴 속에서 찌르고 찌르는 가시들을,
내 심히 견뎌내질 못하겠구나!
이런 말 하는 게, 부끄럽긴 하다만,
저 위의 늙은이들이 좀 비켰으면 좋겠다.
몇 구르 안 되는, 내 것이 아닌 나무들이
내가 소유한 온 세계를 망치는 구나.
저기서, 사방 멀리를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를 가장 혹독하게 괴롭히는 건
풍요로움 가운데서, 우리에게 결핍된 것.
저 작은 종의 소리. 저 보리수의 향기가
교회안에서인 듯, 무덤안에서인 듯 날 에워싼다.~~~
-메피스토펠레스
여기서 대체 무얼 망설이십니까.
벌써 오래전부터 강제로 이주시킬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파우스트
그러면 가서 저것들을 옆으로 치워다오! -
내가 늙은이들을 위해 봐둔
아름다운 작은 농장은 너도 잘 알 게다.
-메피스토펠레스
다 옮겨다 내려놓겠습니다. ~~~
“그가 요란하게 휘파람을 분다.
그 세 용사 등장한다.“
-메피스토펠레스
어서! 영주께서 명령하시는대로 하라.
-세 용사
늙은 주인은 우리 대접이 나빴으니.
질탕한 잔치가 우리한테는 온당하지요.
-메피스토펠레스
여기서도, 오래전에 벌어진 바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봇의 포도밭 얘기가 벌써 있었잖아요.(왕상 21장)
●깊은 밤
-린케우스, 망루지기
보려 태어났어요
바라보려 섰고요.~~~
사방으로 불Rch이 튀는 게 보인다.
보리수들이 드리운 두 겹 어둠을 뚫고,
점점 더 세차게 이글거림이 헤집는다.
몰아치는 바람으로 부채질되어
아! 저 안쪽 오두막이 활활탄다.~~~
아무런 구조가 없구나.
아! 선한 노인들.
여느 때는 그리도 불을 조심스레 다루더니
화염의 제물이 되고 있네!
※파우스트가 노인의 집에 불을 지르는 대목
-파우스트
너흰 내가 하는 말에 귀가 먹었더냐!
내가 맞바꾸겠다 했지, 빼앗겠다 했더냐.
신중치 못한 거친 짓.
저주한다. 저주를 너희끼리 나누어라.
●한밤중(네 명의 잿빛 여인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여인
내 이름은 결핍
-두 번째 여인
내 이름은 빛
-세 번째 여인
내 이름은 근심.
네 번째 여인
내 이름은 궁핍.
-셋이서
문이 잠겨 있네요, 우린 들어갈 수 없어요.
이 안엔 부자가 살아서, 우린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요.
-결핍
이런 데선 내가 그림자가 되거든요.
-빛
이런 데선 내가 없어져버려요.
-궁핍
나한테서는 호강에 겨운 얼굴을 돌려버리지요.
-근심
너희 자매들아, 너흰 들어갈 수 없지ㅐ, 들어가선 안 되지.
근심, 근심이야 열쇠구멍으로 숨어들어 가지만. (근심이 사라진다)
-셋이서
구름이 흐른다, 별들이 사라진다!
저 뒤에, 저 뒤에! 멀리서부터, 멀리서부터.
저기 그가 온다. 우리 형제, 저기 그가 온다.----------죽음이.
-파우스트(궁전 안에서)
넷이 오는 게 보이더니 셋만 돌아가는 군.
그들이 하는 말의 뜻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소리에 여운이 남았는데, 이렇게 들렸다 - 궁핍
그 다음에 음산하고 운이 맞는 단어가 따랐다. - 죽음
~~~~
나도 전에는 그랬지, 침울에 싸여,
불경한 말로 나 자신과 세계를 저주하기 전에는.
이제는 공기가 저런 유령들로 들어차서
어떻게 그걸 피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
여기 누가 왔나?
-근심
질문하시니 대답하죠. 네!
-파우스트
한데 너, 넌 대체 누구냐?
-근심
한번 와봤어요.
-파우스트
물러가거라!
-근심
올 자리에 와 있는걸요.
-근심
귀가 제 말을 듣지 못하더라도
가슴속에선 분명 천둥이 일걸요.
모습 바꾸며 나타나서 저는
무서운 폭력을 행사하지요.
오솔길들에서, 파도 위에서
영원히 소심한 길동무는
늘 나타나죠. 결코 찾지 않았건만.
아첨도 받고, 저주도 받으며,
당신은 여태 근심을 몰랐나요?
-파우스트
나는 다만 세상을 달려왔다.
욕망 하나하나의 머리채를 틀어쥐었고
내게 흡족하지 않은 건, 떨쳤으며
내게서 벗어나는 건, 가게 두었다.
나는 다만 갈망하고, 다만 이루어내었고
또다시 소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을 돌파해왔다. 처음에는 거대하고 힘 있게,
그러나 이젠 현명해졌다. 생각이 깊어졌다.
지산의 일은 이제 충분히 잘 아는데,
저 높은 곳을 행한 전망은 막혀버렸다.
바보이지, 두 눈 깜박이면서 그곳으로 향하며,
구름 너머에 자기 비슷한 것이 있다고 지어내는 사람!
그런 바보는 단단히 서서, 여기를 둘러보아라.
유능한 사람에게는 이 세계가 입 다물고 있지 않는 법.
영원 속으로 헤매어 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가 인식하는 것, 붙잡힌다.
지상의 날을 따라 그렇게 거닐지라.
유령이 출몰하면, 걷던 걸음을 그냥 걷거라.
계속 걸어가는 가운데서 고통과 행복을 찾으리.
그, 그 어느 순간에도 만족하지 않는자!
-근심
내가 한 번 내 것으로 소유한 사람
그에겐 온 세상을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영원한 침울이 내려앉아
태양이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고
바깥으로는 모든 감각이 완전해도
안에는 암흑이 깃들어 있어.
온갖 보물이 있어도
제 것으로 만들 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이 망상이 되고,
희열이든, 괴로움이든
그걸 다른 날로 밀쳐두고,
오직 미래만 기대하며
그래서 결코 완수하지 못한다.
-파우스트
닥쳐라! 그런 식으로 네가 날 대적하지는 못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듣고 싶지 않다.
꺼져라! 그 고약한 주절거림
그건 가장 현명한 사람의 얼도 빼놓겠다.
-근심
그가 가야 하나, 그가 와야 하나,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네
잘 닦인 길 한가운데서
더듬더듬 휘청인다. 고작 반 발짝씩 내딛다가.
그가 점점 더 길을 잃는다.
모든 사물들을 비뚤게 본다.
자기도 다른 이들도 무겁게 짓누르며,
숨을 돌리며, 또 숨 막혀하며,
아주 숨 막히진 않았는데, 생기가 없네.
절망한 건 아닌데, 헌신이 없네.
그렇게 멈출 수 없는 굴러감.
고통스러운 단념, 내키지 않는 의무.
때로는 풀어주고, 때로는 짓누르고.
쪽잠과 불편한 깨어남
그에게 붙어서 그 자리에서
지옥행 준비를 시키지.
-파우스트
축복받지 못한 유령들! 너희는
인간 족속을 수천 번 이런 식으로 다루지.
그저 그런 나날들까지도 바꾸어놓지.
그물에 얽매인 고통의 끔찍한 혼란으로.
악령들이란, 내 알지, 떨치기가 어려워,
영이 매어놓은 엄중한 끈이 끊기질 않아.
하지만 너의 힘, 아 근심아, 숨어들어 커져도,
나는 그걸 인정하진 않겠다.
-근심
그 힘을 겪어보세요, 제가 얼른
저주를 내리며 당신을 떠날 테니!
인간은 평생토록 맹목(盲目)이니,
이제 파우스트! 당신도 종국에 눈머시오. (근심이 그에게 입김을 훅 분다)
-파우스트(눈이 멀어서)
어둠이 깊게, 더 깊게 스며드는 것 같다.
하지만 내면에-선 환한 빛이 켜지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 그걸 완성하고자 서둘러야겠다.
주인의 말, 그것만이 중하다.
침상에서 일어나라, 너희 종들아! 한 사람 한 사람 다!
내가 대담하게 생각한 것을, 즐겁게 실행하라.
연장을 들어라, 큰 삽을 휘둘러라, 작은 삽도,
정해진 것은 즉시 성사되어야 한다.
엄한 지시에 따른 재빠른 근면함.
더없이 아름다운 대가가 따른다.
위대한 작업이 완성되도록 하자면
수천의 손을 지휘하는 하나의 정신이면 족하다.
●궁전의 큰 앞뜰
-메피스토펠레스 (감독관으로 앞서며)
이리로, 이리로! 들어와, 들어와!
후들후들거리는 너희 레무레스(죽은자의 혼령)들아.
인대와 근육, 뼈다귀를 모아
기워놓은 반쪽짜리들아.
레무레스들(합창대를 이루어)
우린 제꺼덕 대령합니다.
어렴풋이 들은 바로는,
아마, 아주 넓은 땅라죠.
우리가 맡게 될 건.
뾰족하게 깍인 말뚝들, 저기 있고
측량에 쓸 사슬 길게 있고.
우리가 왜 불려온 건지
그건 잊었네.
-메피스토펠레스
여기서 중요한 건 예술적 노력이 아니다.
그저 제 몸 크기대로 파내면 된다!
가장 긴 놈은, 제 몸 길이대로 눕고,
너희 다른 자들은, 그 사방으로 진디를 떠내거라.
우리 선조들을 위해 행했듯.
길쭉한 사각형을 파라!
궁전에서 비좁은 집으로.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결국엔 끝장나는 거지.
-레무레스들(장난스러운 몸짓으로 파며)
나도 젊었고 살았고 사랑했지.
그건 달콤했던 것 같네.
즐거운 소리 울리고 신났던 곳
거기서 내 두 발이 놀았지.
헌데 음험한 늙은이 날
그 지팡이로 쳤네.
무덤 문에 걸려서 나 비틀거렸지.
그 문이 왜 하필 열려 있었담!
-파우스트(궁정에서 나오며, 문기둥을 더듬는다)
삽질 소리가 나를 참으로 즐겁게 하네!
내게 부역하는 일꾼들이구나.
땅을 고르게 하고
파도에다 그 경계를 그어주고
바다를 단단한 끈으로 둘러치는구나.
-메피스토펠레스
그러나 너는, 오로지 우리를 위해 애쓰는 거야
네가 쌓은 제방들, 네가 쌓은 물막이들로써.
넌 벌써 넵투누스, 물의 악마를 위해
성대한 연회를 마련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너희는 다 망했어-
지수화풍이 다 우리와 결탁했거든.
하여 파멸로 치닫게 되어 있지.
-파우스트
감독관!
-메피스토펠레스
여기있습니다요!
-파우스트
어떻게 하든 가능한 한.
일꾼들을 무리에 무리로 모으고.
향락으로, 엄격함으로, 기운 돋아 주거라.
돈 주고, 마음 사고, 꽉꽉 밟아라!
매일매일 새 소식을 듣고 싶다.
기획한 수로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메피스토펠레스(반쯤 죽인 소리로)
들리는 바로는, 소식 들은 바로는.
수로가 아니라, 무덤이라 하던데요.
-파우스트
습지가 산맥까지 뻗어서,
이미 이루어놓은 것을 죄다 버리고 있다.
썩은 물웅덩이의 물을 빼내기 위해 하는
이 마지막 공사가 아마도 최고의 성취이리라.
수백만을 위한 공간을 열겠노라.
안전하진 않아도, 활동하며 자유롭게 거주할 곳 말이다.
벌판은 푸르고, 비옥하다. 사람들과 가축들이
새 땅 위에서 곧바로 쾌적해질 것이며,
힘차게 솟은 언덕 주위로 곧 이주해올 것이다.
용감하고 바지런한 백성들이 쌓아올린 곳으로.
그 안, 여기는 낙원 같은 땅
저기 바깥에서는, 높은 바닷물이 가장자리까지
세차게 밀어닥쳐, 제방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데,
틈새를 메우려, 다들 똘똘 뭉쳐 서두르는구나.
그렇다! 이 뜻에다 내가 완전히 몸 바쳤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누려 마땅한 자는
날마다 그것들을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자뿐.
하여, 위험에 싸여 있음에도,
여기서는 아이도, 어른과 노인도 그 알찬 세월을 보낸다.
그런 무리를 나는 보고 싶노라.
자유로운 터에 자유로운 백성과 서고 싶노라.
그 순간까지 내가 말해도 좋으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나의 지상의 나날의 흔적은
영원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
그런 드높은 행복을 미리 느끼는 가운데
지금 내가 지고의 순간을 누리고 있다.
(파우스트가 맥없이 뒤로 쓰러진다. 레무레스들이 그 몸을 붙들어 바닥에다 누인다)
-메피스토펠레스
어떤 쾌락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어떤 행복도 그에겐 충분치 않다.
계속 바뀌는 형상들에 쫓아가 붙더니.
고약하고 공허한 마지막 순간을
이 가엾은 자는 붙들고자 소망하는구나.
나한테는 그렇게 완강히 저항하더니만.
시간이 주인이 된다. 늙은이가 여기 모래에 누워 있다.
시계가 멈추었다-
-합창대
멈추었다! 한밤중처럼 고요하다.
시곗바늘이 떨어진다.
-메피스토펠레스
떨어진다. 다 이루었다.
-합창대
지나갔다.
-메피스토펠레스
지나갔다니! 멍청한 말이다.
왜 지나가?
지나갔다는 것과 순수한 무(無)는 완벽한 매한가지.
영원한 성취라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성취된 것은, 무가 낚아채 가잖나?
“이제 지나갔다!” 거기서 무얼 읽을 수 있나?
아무것도 없었던 것과 다름없는데.
그런데도 마치 뭔가 있기라도 한 듯 요란하게들 뱅뱅 돈다.
나야 그러는 대신 영원한 공허를 사랑하지.
●매장
-레무레스(독창)
누가 집을 이렇게 형편없게 지었나,
큰 삽과 작은 삽으로?
-레무레스들(합창)
너한텐, 삼베 옷 입은 곰팡내 나는 손님아,
이 정도면 너무나도 좋은 곳이지.
-레무레스(독창)
누가 홀을 이렇게 형편없게 마련했나?
탁자랑 의자는 어디 간 거야?
-레무레스들(합창)
잠깐 동안 빌린 거였다네.
채권자들이 참 많거든
-메피스토펠레스
육신은 누워 있고, 정신은 떠나려 하네.
얼른 피로 쓴 조항을 내보여 주어야겠다-
하지만 요즘엔 유감스럽게도, 악마에게서
영혼을 탈취해가자니 반발이 많고,
새 길로 가자니 우리가 내키질 않네.
여느 때는 내가 혼자 다 처리했는데
이젠 돕는 이를 도울 자들을 데려와야 하겠네.
~~~
-천사들의 합창(장미Rch을 뿌리며)
장미, 너희 눈부시게 하는 것들.
향유를 주는 것들!
나부끼는 것들, 떠도는 것들,
남몰래 생기 주는 것들,
작은 꽃가지로 날개 단 것들,
작은 꽃봉오리의 봉인 풀린 것들
서둘러 피어라
봄은 싹 틔워라
보랏빛, 초록빛으로.
나르거라, 낙원을
영원히 잠든 이에게로.
●심산유곡(숲, 바위, 황야 성스러운 운둔자들이 산 위쪽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협곡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합창과 메아리
큰 숲, 흔들리며 다가오고
바위들, 묵직하게 짓누르고
뿌리들, 엉기고.
줄기에 줄기 빼곡하고
물결에 물결, 물 튀기고
동굴, 가장 깊은 동굴, 지켜주고.
사자들, 살금살금 말없이
다정하게 우리를 맴돌며
우러러보고 있네, 성소를.
신성한 사랑의 터를.
-파터 세라피쿠스(중간지대)
아침의 작은 구름이 떠다니네.
전나무들의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어렴풋이 느껴진다, 무엇이 그 안에 살고 있는지?
그건 어린 영들의 무리.
-사마리아 여인(요한복음 4장)
샘물에 대고 간구합니다, 언젠가
아브라함이 양 떼를 이끌고 갔던 샘
구세주께서 서늘히
입술을 대신 물동이에 대고.
이제 거기서 쏟아지는,
넘치며 영원히 맑게
사방 온 세상을 흐르는
정(淨)하고, 풍부한 샘물에 대고.-
-참회하는 여인(예전에 그레트헨이라 불렀던 여인. 몸을 붙이며)
굽어살피소서, 굽어살피소서,
그대 비할 데 없으신 이
그대 빛 가득하신 이.
그대 얼굴을 자비롭게 제 행복에로.
일찍이 사랑했던 이
이제 더는 마음 흐리지 않은이
그이(파우스트의 영혼)가 돌아옵니다.
-신비의 합창
모든 무상한 것은
다만 하나의 비유.
다다를 수 없는 것이
여기서 이루어지네.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 행해졌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가네. -Finish
[Review]
주님;
그가 지금은 혼란스럽게 나를 섬길 뿐이더라도
머지않아 내가 그를 분명함으로 이끌어가겠노라
정원사는 아느니라, 어린 나무가 푸르러지면,
그것이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장래의 나날을 치장할 것을.
메피스토펠레스;
내기하실래요? 저자를 잃으실 텐데요.
허락만 해주셔서 제가
그를 제 길로 살짝 인도하면요!
주님;
그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그동안만은 그걸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이 책 1부, 천상의 서곡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서 설정된 악마이며 이 책의 1.2부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파우스트를 신뢰한다는 주님을 향해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 있게 그를 유혹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흡사 성서의 욥기에서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장면과 유사한 이 부분에서 괴테는 성서의 내용과 전혀 다른 파우스트라는 인간의 전 생애를 그려냈다. 성서에서 욥은 끝내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그 시험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 책에서 파우스트는 끝없는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어 생을 마감한다.
“나는 다만 세상을 달려왔다.
욕망 하나하나의 머리채를 틀어쥐었고
내게 흡족하지 않은 건, 떨쳤으며
내게서 벗어나는 건, 가게 두었다.
나는 다만 갈망하고, 다만 이루어내었고
또다시 소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을 돌파해왔다. “
마지막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자들을 향해서 그 소리가 자신이 세운 궁전의 운하를 파는 소리로 착각하며 생을 마감한 파우스트에게서 독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삽질 소리가 나를 참으로 즐겁게 하네!
내게 부역하는 일꾼들이구나.
땅을 고르게 하고
파도에다 그 경계를 그어주고
바다를 단단한 끈으로 둘러치는구나. “
이 책의 역자인 전영애 교수는 파우스트를 시험하겠다는 메피스토펠레스를 향해 주님이 한 말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 한다”라는 대목이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뜻이라고 했다. 주님은 방황의 끝에 다시 돌아올 인간의 모습을 택했다면 괴테는 인간이 마지막 까지 방황하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철학과 법학 의학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신학까지도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자 ‘파우스트’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곧 마가레테와의 사랑에 눈이 멀어서 “당신의 눈길 하나, 말 한 마디가 이 세상 모든 지혜보다 더 재미있소. “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불행에 빠뜨리고 만다. 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절세의 미녀 ‘헬레나’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정신을 못차리는 파우스트를 향해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렇게 조롱한다. “여기 누워 있거라. 불운한 자! 유혹을 당해 풀기 어려운 사랑의 굴레에 묶여버렸으니! 헬레나가 마비시키는 자 그리 쉽게 맑은 정신을 되찾지 못하느니. “ 결국 헬레나는 파우스트에게 “행복과 아름다움은 지속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홀연히 떠나갔다. ※전영애 교수는 이 문구를 괴테가 열 번이나 고쳐 썼다고 했다.
모든 것을 얻었으나 모든 일에 만족함을 모르는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가 다가와 이렇게 유혹한다. “당신이 무얼 지향했는지 맞혀보라고요? 그건 분명 숭고하게 대담한 것이었죠. 둥둥 떠올라 그렇게나 달 가까이 갔던 당신. 아마 당신의 중독이 당신을 거기로 끌고 갔겠죠? “ 그러자 파우스트는 ”절대 아니네! 이 땅의 테두리가 아직은 위대한 행위를 위한 공간을 허락하지. 나는 놀랄 만한 일을 이루어야겠다. 대담한 근면을 쏟을 힘이 느껴진다. “라고 대답한다. 이에 파우스트의 마음을 알아챈 메피스토펠레스는 조심스럽게 ”그러니까 명성을 얻으려는 거요? “라고 되물어 본다. 이에 파우스트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지배를 얻겠노라. 소유를! 행동이 모든 것이고, 명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
메피스토펠레스는 이제 파우스트의 속뜻을 완전히 알아채고, 황제를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고 파우스트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되고, 황제로부터 끝없는 해변에 연이어진 커다란 봉토(封土)를 받게 된다. 파우스트는 그곳에 커다란 성을 세우고 수로를 만들어 백성위에 군림하는 군주가 된다. 그러나 이 일은 다시 파우스트를 파멸로 이끌어 간다.
파우스트는 자기가 차지한 영토 안에서 아직도 취하지 못한 작은 땅이 있음이 늘 못마땅했다. 선량한 노인 부부가 살고 있는 그곳엔 아름다운 보리수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곳에선 가끔 울려오는 교회 종소리가 그를 괴롭게 한다. 그 종소리는 파우스트의 내면에 잠재된 양심의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종소리! 너무나도 치욕적으로
상처 입힌다, 음험한 화살처럼.
눈앞엔 나의 왕국이 무한히 펼쳐져 있는데
등 뒤에서 저 불쾌한 소리가 나를 놀려댄다. “
“그 빌어먹을 여기!
바로 여기가, 나를 괴롭게 짓누른다.
매사에 노련한 네게 말하노니.
내 가슴 속에서 찌르고 찌르는 가시들을,
내 심히 견뎌내질 못하겠구나!
이런 말 하는 게, 부끄럽긴 하다만,
저 위의 늙은이들이 좀 비켰으면 좋겠다.
몇 구루 안 되는, 내 것이 아닌 나무들이
내가 소유한 온 세계를 망치는 구나.
저기서, 사방 멀리를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
결국 파우스트의 마음을 알아챈 메피스토펠레스는 부역하는 자들을 시켜서 노인의 집을 불태우고 만다. 이 대목에서 괴테는 또 다시 성서(열왕기상 21장1절)에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왕을 상기시킨다.
파우스트의 삶은 한마디로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길을 끝없이 달려간다. 파우스트가 말한 대로 욕망 하나하나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삶을 돌파해 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다른 양심의 소리에 근심하고 떨었다.
“근심은 항시 새로운 가면을 쓰며
집과 뜰로, 아내와 아이로 나타나고
불, 물, 단검과 독약으로 나타난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모든 게 두려워 너는 덜덜 떨고
결코 잃지도 않을 것, 그런 걸 두고도 노상 징징 운다. “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썼다는 이 작품은 어쩌면 괴테 자신의 삶이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떤 것이 진정한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이 원고를 임종을 앞둔 1832년 정월에 최종적으로 수정하였고 그해 3월에 운명하였다고 한다.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난 괴테는 전쟁을 계기로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생전에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반 기독교인이나 말 뿐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비 기독교인이다” 이 작품에서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근심,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으로 그렸다. 파우스트는 결국 노쇠에 이르러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를 매장하기 위해 준비하는 ‘레무레스‘(망령)들의 삽질 소리까지도 또 다른 운하를 만드는 소리로 착각하며 방황하는 것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12,111행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희곡을 단편적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책 속에는 괴테만의 언어가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여주에서 여백서원이라는 정원을 가꾸며 생활하시는 전영애 교수님의 일상을 그린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나서였다. 황무지를 손수 가꾸시며 정원으로 가꾸시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시며 독일에서 괴테 문학에 대한 권위로 더 잘 알려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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