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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집 돌보기 - 생태적 회개의 여정] (1) 누이요 어머니인 대지
기후재앙에 휩쓸린 지구… 결국 모든 생명이 죽어간다
오늘날 전 세계는 폭염과 태풍, 홍수, 대형 산불 등 빈발하는 기후재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들은 이러한 기후위기의 현상들이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오직 경제적 이익과 성장에 집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생태적 위기에 빠진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을 촉구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교회가 회칙의 정신을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환경 위기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많은 노력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반대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들의 관심 부족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보편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인간이 저지른 피해를 복구하려면 모든 이의 재능과 참여가 필요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14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우리는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며 ‘피조물의 비통한 호소’에 개인과 공동체의 생태적 회개를 통해 ‘행동으로 응답하자’고 촉구했다. ‘피조물의 목소리’는 창조주를 찬미하는 감미로운 노래지만, ‘인간이 가하는 학대를 한탄하며 애원하는 고통의 부르짖음’이다. 누이요 어머니인 지구는 ‘우리의 학대와 파멸행위를 끝내라고 울며 애원한다.’
극심해지는 기후재난
필리핀 중부, 비사얀 제도의 남부에 위치한 보홀섬의 투비곤(tubigon) 지역에서 70년 넘게 살고 있는 아르투로(Arturo Aplacedor, 74)씨는 지난해 12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라이’로 집을 잃었다. 장애를 가진 30대 딸과 부인, 세 가족이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집이 무너진 것은 3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르투로씨는 “이전에도 태풍이 자주 불어 왔지만 라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대한 괴물 같았다”고 말했다. 코코넛 나무로 지은 집은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세 가족의 유일한 보금자리가 삽시간에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투비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아르투로씨는 자신의 땅이 없었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형편에 태풍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타클로반교구 산하 단체인 소셜 액션 센터(Social Action Center)에서 자재를 지원해준 덕분에 새로 집을 지었지만 또 다시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면 더는 감당할 수가 없다.
보홀섬 주민 대부분은 코코넛 나무로 집을 짓고 산다. 보홀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주민들은 시멘트나 벽돌로 집을 짓는다. 튼튼하게 지어진 집은 매년 보홀섬을 강타하는 크고 작은 태풍을 견딜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다. 태풍 피해는 돈이 없어 튼튼한 자재로 집을 지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 몫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되는 재난
필리핀은 기후재난에 워낙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파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무차별한 산림 벌목으로 지난 세기 동안 숲이 전체 땅의 70%에서 20%로 줄었고, 전체 열대우림은 3.2%만 남았다. 나무가 사라지니 홍수 피해가 더 극심해졌다.
대기와 수질 오염도 심화됐지만 가장 심각한 건 기후변화다. 필리핀에는 매년 20여 차례 태풍이 찾아온다. 지구 온난화로 태풍이 더 강력해졌다. 2013년 슈퍼 태풍 하이옌은 11월 50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200만 채 이상의 집을 무너뜨렸다. 지난해 12월 태풍 라이는 400명이 넘는 희생자와 3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넉 달 뒤인 지난 4월에는 태풍 ‘메기’로 200여 명이 사망했다.
기후재난은 전 세계적이다.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소(UNDRR)의 지난 4월 전 세계 재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20년 연간 평균 350~500건의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다. 이전 30년 동안의 연평균 수치보다 5배 증가한 수준인데, 2030년에는 매년 560건, 하루 평균 1.5건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했다.
재난의 사회적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영국 자선단체인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의 기후재난 피해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대형 재난 피해액이 202조 원이 넘는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재난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됐고, 빈곤층 비율이 높은 필리핀, 방글라데시, 미얀마, 인도 등의 피해가 컸다. 잦은 재난은 빈곤을 가속화한다. UNDRR은 2030년까지 기후변화와 재난의 영향으로 1억 명 이상이 추가로 빈곤 상태에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실패
2015년,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과 관련해 두 가지 큰 성과가 있었다. 하나는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의 ‘파리기후변화협약(이하 파리협약)’ 채택, 다른 하나는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다.
기후위기는 어느 한 나라의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새로운 기후대응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데 공감했고, 그 논의의 결과로 파리협약을 채택했다. 파리협약의 최우선 목표는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및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추구”다.
2020년 만료된 교토의정서를 대신하는 파리협약은 2016년 11월 발효됐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을 갖는 보편적 첫 기후 합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국제사회는 이를 토대로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연대와 협력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애당초 파리협약에는 각국 탄소 감축 목표에 부여하려던 국제법상의 구속력이 제외됐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은 각국의 경제적 이해득실에 휘둘리며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열렸지만,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기후재난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감축해 지구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 상승 이내로 제한하는 실질적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지만 참가국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각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종교와 시민사회단체의 분노로 이어졌다. 총회 기간 중인 11월 5~6일 글래스고에서는 그레타 툰베리가 이끄는 청년 기후활동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 종교와 기후환경 단체 10만여 명이 COP26의 실패를 선언했다.
찬미받으소서, 가톨릭교회의 노력
파리협약 채택을 반년 앞둔 시점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위기의 근본 원인이 피조물과 인간, 하느님이 이루는 공동체성의 파괴라고 진단했다. 깨어진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통합적 생태론’을 바탕으로 인류가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전환하는 ‘생태적 회개’가 요구된다고 선언했다.국제사회의 노력이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공동의 집’ 지구의 파멸을 향한 시계는 점점 더 긴박해지고 있다. 반면 종교와 시민사회의 생태위기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연대는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특히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신앙의 영역으로 수용하려는 교회의 노력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교황청은 회칙 반포 5주년을 맞아 2020년 5월 24일부터 2021년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를 지내고, 이후 지속 가능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7년 여정에 동참해 줄 것을 전 세계교회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한국 주교단은 2021년 5월 성명서 ‘기후 위기, 지금 당장 나서야 합니다’를 발표하고 5월 24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개막 미사를 거행했다. 이어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후 특별 사목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를 발표해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와 함께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동참하도록 촉구했다. 각 교구는 일제히 7년 여정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향후 7년 동안 이어갈 ‘공동의 집’ 돌보기에 나섰다. 수원교구와 춘천교구는 204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2022년, 7년 여정의 첫해를 지내고 있다. 프랑스교회는 지난 4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통합적 생태론의 실현을 다짐했고, 페루와 브라질 주교단은 정부를 향해 생태적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촉구하고 나섰다.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7월 총회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가르침에 따라 생태환경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다짐했다. 빈번한 기후재난 피해지역인 필리핀에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7년 여정을 추진하고 모든 사목 활동과 정책에 회칙의 가르침을 통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에서 11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와 12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부유한 국가들이 ‘더 야심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특별히 “선진국들의 ‘생태적 부채’를 지적하지만 가난한 나라들 역시 ‘차등적 책임’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이 느리다고 해서 우리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분명히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에, 교황은 “우리 모두가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의 집 돌보기 - 생태적 회개의 여정] (2) 주님, 찬미받으소서
전 세계 향한 교황의 질문 “공동의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세상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주목하고 있다. 교황이 반포하는 문헌 중에서도 가장 높은 교도권적 위치를 지닌 회칙. 신자들에게는 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하지만 왜 교회 밖에서도 이 책에 주목하는 것일까. 「찬미받으소서」는 도대체 어떤 책일까.
교황 회칙을 읽는 교회 밖 사람들
지난해 7월 15일 KBS ‘지구의 경고:100인의 리딩쇼’는 ‘지구의 회복을 위한 독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선택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종교·나이·종사 분야가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찬미받으소서」를 낭독했고, ‘공동의 집’ 지구의 문제에 깊이 공감했다.
KBS가 「찬미받으소서」를 선택한 것은 이 책이 말하는 바가 ‘가톨릭’을 넘어 보편적으로 의미 있음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리딩쇼에 참여한 이들 중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의 반응이 눈길을 끌었다. 길현희(32)씨는 이 낭독에 참여하면서 “환경문제가 우리 세대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종교가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KBS의 다큐멘터리 이전에도 「찬미받으소서」는 교회 밖에서 꾸준히 읽혀왔다. 문장과 내용이 읽는 이들의 깊은 공감을 불렀기 때문이다.불교환경연대는 2017년 「찬미받으소서」로 스터디모임을 진행했다. 스터디모임에 동참한 불교환경연대 유정길 운영위원장은 “책 내용이 환경과 생태문제를 폭넓게 인지하고 있었고, 양극화, 많은 생명과의 관계, 미래 세대의 문제 등에 관해 명확하게 지침과 방향을 제시해 굉장히 감동하면서 읽었다”면서 “이웃종교의 입장에서도 변화의 계기가 됐고, 더불어 같이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개신교계에서도 한경균 목사(소금의집 디아코니아 국장)가 이끄는 독서클럽 등이 「찬미받으소서」 강독을 열었다. 이 독서클럽은 여러 목회자, 신학자, 신학생 등이 함께하는 모임으로 「찬미받으소서」를 문장 단위로 읽어나갔다. 한 목사는 “개신교에도 수준 있는 문헌들이 많이 있지만, 이 책처럼 확장성이 있는 문헌은 없을 것”이라면서 “신학적으로 정교하게 설득하면서도 복잡하고 현란한 신학적 용어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글이 작성돼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찬미받으소서」의 기원, 프란치스코 성인
교회 안팎에서 공감을 받는 「찬미받으소서」가 어떻게 반포됐었는지를 알기 위해 세계교회의 중심인 교황청, 그중에서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이하 인간발전부)를 찾았다. 인간발전부는 교황청에서 「찬미받으소서」 정신의 확산을 담당하는 부서다.
“교황님은 재위 첫 미사, 첫 강론에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선택하시면서 피조물과 인간의 보호라는 주제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것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인간발전부 차관 알레산드라 스메릴리 수녀는 「찬미받으소서」의 첫 단추를 ‘프란치스코’에서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모아 대화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때 이미 교황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이, 「찬미받으소서」의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역사상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도 “저는 매력적이고 감탄을 자아내는 한 인물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회칙을 쓰고 싶지 않다”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연 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 헌신, 내적 평화가 어떠한 불가분의 유대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역설했다.(10항)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명 역시 프란치스코 성인이 지은 ‘태양의 찬가’에서 인용했다.
‘태양의 찬가’는 성인이 선종하기 1년 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중에 지어 부른 노래다. 아시시의 산 다미아노 수도원 인근에는 성인이 ‘태양의 찬가’를 부른 장소가 보존돼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태 환경보호를 증진하는 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추대했지만, 사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생태’나 ‘환경보호’를 언급한 적이 없다. ‘생태’라는 말자체가 자연을 남용한 결과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성인의 생태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저작이 ‘태양의 찬가’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총본부 JPIC(정의 평화 창조보전)위원장 하이메 캄포스 신부는 “이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느님이 모든 것의 아버지라는 인식 아래 모든 피조물과 형제처럼 친교를 나누며 살아온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의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님께서 회칙에서 생태만이 아니라 가난, 환경, 정의, 평화 등을 모두 이야기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이라면서 “회칙은 성인이 행하신 모든 중요한 내용을 현대의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동의 집,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찬미받으소서」의 의미를 ‘통합생태론’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발견했다. 통합생태론은 자연환경뿐 아니라 인간적, 사회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교황은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오늘날의 문제들이 세계적 위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시각을 요구한다”(137항)면서 통합생태론을 촉구한다.
작은형제회 캄포스 신부는 “회칙은 우리가 서로 다른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위기와 생태적인 위기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지구상의 모두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려준다”며 “‘공동의 집’이라는 말로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굉장히 잘 인식시켜줬다”고 평가했다.
회칙이 반포된 지 7년이 지난 지금, 통합생태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후변화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간발전부 차관 스메릴리 수녀는 “우리가 만일 생태적 여정에서 뒤로 후퇴한다면, 점점 더 많은 전염병, 기후문제를 겪을 것이고, 이것은 기아를 의미하고 기아는 전쟁을 의미한다”면서 “모든 것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찬미받으소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시작으로 선대 교황들의 가르침을 들면서 교회 가르침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세계 곳곳에서 열린 21번의 주교회의를 인용한다. 또 동방정교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의 말까지도 인용해 지역과 종교를 넘어 생태와 정의에 관한 가르침을 연결·발전시킨다.
교황은 회칙에서 ‘공동의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기후변화, 물의 문제, 생물다양성 감소 등 지구가 직면한 문제와 인간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 세계적 불평등 등 인간사회의 문제를 진단한다.
이어 성경과 교회의 전통이 전하는 이해와 통찰을 전한다. 특히 창세기를 묵상하며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계획”이 “모든 피조물이 저마다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76항)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인간이 초래한 생태위기의 근원들’을 분석하면서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 지나친 인간중심주의, 상대주의 문화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환경·경제·사회생태론을 포함한 ‘통합생태론’을 설명한다. 또 생태를 위한 국제적·지역적 대화, 정치·경제·과학·종교의 대화를 살핀다. 마지막으로 ‘생태적 회개’를 이끌 생태교육과 영성을 다룬 교황은 지구를 위한 기도와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로 회칙을 마무리한다.
교황의 찬미기도, 세상을 움직이다
“찬미받으소서”라는 기도로 시작해, 피조물을 위한 기도로 마무리된 이 회칙은 세상을 움직였다. 가장 큰 영향으로 꼽히는 것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교황은 이 협약의 중요성을 내다보고 회칙의 발표 시기를 앞당겼다.
아일랜드의 생태신학자 숀 맥도나 신부는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짧은 문헌으로 생태문제에 관한 국제적 개입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가톨릭교회를 곧장 논의의 중심으로 옮겨 놓았다”고 평가한다.
당시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은 회칙 반포에 “회칙을 환영한다”면서 “회칙이 국가적 이익보다 세계적 공동선을 우선시해, 올해 파리에서 이 야심차고 보편적인 기후협약을 채택하도록” 각국 정부를 독려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도 “회칙의 이 분명한 메시지를 따라 파리에서 강하고 지속성 있는 보편적 기후 협약을 추진할 것”이라 말했고,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 역시 “세계 지도자들이 기후변화를 억제할 담대한 행동을 취하라는 교황의 간청을 고려하기를 바란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황의 이 ‘찬미기도’는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예수회 총원 ‘사회정의와 생태환경 사무국’(SJES) 사무국장 제비어 제야라즈 신부는 “매년 세계 각국의 신자·비신자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찬미받으소서」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봐 왔다”고 증언했다. 그는 “비신자들도 「찬미받으소서」가 교회의 외침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외침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돌입한 첫 해인 지금 그 의미가 크다.
생태신학자 이재돈(요한 세례자) 신부는 “회칙은 가톨릭교회의 사목 방향을 바꾸는 공식적인 문서이며, 세계 공동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회칙은 교회의 교리, 전례 등에 반영되고 세계 수많은 사람의 교리서 역할을 하기에 그 영향력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평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계획한 인간발전부는 ‘찬미받으소서 운동 플랫폼’을 구축하고 전 세계 모든 신자·단체들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인간발전부 차관 스메릴리 수녀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은 회칙의 내용이나 성찰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라면서 “이 여정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열쇠는 많은 이들의 참여”라고 전했다.
[공동의 집 돌보기 - 생태적 회개의 여정] (3) 지구의 울부짖음
우리 모두의 문제… 생활을 바꿔야 고통 멈출 수 있습니다
교황청은 지난해 11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지침으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플랫폼’(Laudato Si’ Action Platform, laudatosiactionplatform.org)을 공식 출범했다.
7년 여정 플랫폼은 지속 가능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향후 7년 여정의 지침이자 청사진이다. 플랫폼은 이 뜻깊은 여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생태적 위기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그 목표를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설정했다.
▲ 지구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 ▲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 ▲ 생태적 경제 ▲ 지속 가능한 삶 ▲ 생태교육 ▲ 생태영성 ▲ 공동체의 활성화와 강화
본 기획은 이후 3~9회에 걸쳐 7년 여정의 7개 목표를 검토한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플랫폼’ 행동 목표 1
“지구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은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생물종 다양성을 보호하며,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공동의 집’을 보호하라는 요청입니다. 이를 위한 행동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탄소 중립 실현, 생물종 다양성의 보호, 지속 가능한 농업, 깨끗한 물의 보호 등입니다.”
미국 아메리카가톨릭대학의 태양광 프로젝트
미국 아메리카가톨릭대학교(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어느 곳에나 설치돼 있는 태양광 전지판이다. 캠퍼스에서는 옥상, 벤치 위, 쓰레기통에서도 태양광 전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워싱턴 D.C. 지역에서 가장 큰 태양광 전지판 건설을 앞두고 있는 이곳에서는 벤치 위 태양광 전지판을 통해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충전하는 등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쓰레기통에 페트병을 넣으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활용해 병을 압축시켜 더 많은 쓰레기를 담을 수 있다.
올해 6월 시작돼 내년 봄 완성되는 새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는 태양광 전지판 총 1만5000개를 설치한다. 연간 1만 메가와트 전력을 생산해 지역에 공급, 매년 700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이는 무려 자동차 1547대의 운행을 중지하는 효과를 지닌다.
존 가비(John Garvey) 당시 총장은 이 야심찬 계획이 “대학이 추진하는 지속 가능성 장기 계획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은 지난 2020년 ‘지속 가능성 계획’(Sustainability Plan, 2021~2025)을 설정했다.
지속 가능한 세상 건설 노력
이 계획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가르침에 영감을 받아 진행하며 5년마다 목표를 재설정한다. 특히 아메리카가톨릭대학은 2016년 대비 2025년 에너지 사용 20% 감소를 목표로 정했고, 올해는 15% 감소를 달성했다.
이 태양광 프로젝트는 워싱턴 D.C.가 2032년까지 100%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루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는 장기 계획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비 전 총장은 “이 프로젝트는 지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목표에 부응하는 것인 동시에 보편교회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통해 실현하려는 7개 목표 중 하나인 ‘지구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학이 속한 워싱턴대교구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적극 참여하는 대표적인 교구다. 교구는 ‘「찬미받으소서」 행동 계획(Action Plan)’ 책자를 만들어 개인과 가정, 본당, 학교들에서 이를 위한 활동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구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 부분에서 워싱턴대교구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들을 2020년에 취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개인과 가정, 본당, 학교 등에서 가능한 실천 사항들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창문과 문틀 주변을 밀봉하거나 코팅하기’, ‘물 소비 감소’, ‘모든 전구를 LED 전구로 교체하기’, ‘정원 만들기’ 등이 포함돼 있다.
기후위기는 인간 활동의 산물
아메리카가톨릭대학이 화석 연료 사용을 멀리하고 태양광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칙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이 순간 “지구가 울부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울부짖음을 상징적인 동시에 실제적으로 함축한 용어가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실제 상황인가?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회칙에서 성찰을 촉구하는 ‘공동의 집’ 지구의 생태위기는 이미 과학자들의 객관적 연구, 빈발하는 기후 재난 현실들에 비추어 자명하다. 나아가 기후위기가 인간 활동 때문이라는 공감대도 충분하다.
지난 1월 잡지 ‘시사IN’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조사의 보고서 ‘2022 대한민국 기후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 활동 때문이라고 본 응답자가 86.7%로 대다수였다. 기후위기 실체를 부정하고 지구 온난화가 단순한 자연 현상이라는 주장은 이제 완전히 지지를 잃었다.
더욱이 상황은 진실을 회피하려는 나태함이 지속될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위기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 준다. 회칙은 이에 대해서도 예언적인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상황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표징들을 볼 수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예언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찬미받으소서」 61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전이라는 신화’를 맹신해서도,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개입이 금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찬미받으소서」 60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두 가지 극단적인 관점에서 중용을 취함으로써 현실성 있는 미래 계획을 모색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한국교회의 응답들
국내에서도 ‘지구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이 이뤄지고 있다. 수원교구는 지난해 9월 11일 ‘수원교구 탄소 중립 선포 미사’를 거행하고, 2030년까지 교구·본당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전력 100%를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춘천교구도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7년 여정에 동참해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포했다. 대전교구는 9월 26일 대전 주교좌대흥동성당에서 탄소 중립을 선언할 예정이다.
대전교구와 수원교구에서는 지속 가능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각각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이사장 김대건 베드로 신부)과 공동의집에너지협동조합(이사장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을 만들었다.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은 2019년 2월 구성된 이래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전교구 갈마동성당에 1호 햇빛발전소를 세웠고, 유성구 구암동에 2호, 청양 화성면에 3호, 관저동성당에 4호, 도마동성당에 5호, 천안월랑성당에 7호 등 총 6개 햇빛발전소를 완공했다. 법동성당에 6호, 온양신정동성당에 8호, 용전동성당에 9호 등 총 3개 햇빛발전소가 건설되고 있고, 이는 모두 9월 중 완공될 예정이다. 지난해 3월 100여 명이었던 조합원 수도 올해 8월 15일 기준 620명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12월 창립총회를 한 공동의집에너지협동조합은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탄소 중립 실현을 선언한 수원교구에서 설립, 신자들이 스스로 생산자가 되겠다고 밝히는 등 생태적 회개를 위한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
재생 에너지 전환의 걸림돌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운영위원회 최경해(마리아) 위원장은 “기후위기 70~80%가 에너지 문제”라며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없이는 기후 위기 극복이 어렵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활동으로, 우리는 다같이 공동의 집에 살고 있는 형제이기 때문에 하느님 뜻을 알아들어야 하고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지역에서의 에너지 자립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동참”을 당부했다.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역이 태양광 발전이다.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로 교회 안에서 태양광 발전을 통한 에너지 전환 속도는 느린 편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경관 문제다. 적지 않은 본당에서, 그 필요성과 명분에 대해 공감하지만, 공동체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대전의 한 본당에서는 본당 사목회 차원에서 태양광 발전소 설치로 가닥을 잡았지만,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수려한 본당 건물의 경관을 해친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다. 이 본당 주임 신부는 이에 대해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라며 “아직은 생태 환경 보전 소명이 신앙의 영역으로 충분히 들어오지 못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환경 정책은 재생 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다. 윤석열 정부는 탄소 중립의 대의는 유지하고 있지만, 재생 에너지보다는 핵 발전 비중 대폭 확대를 정책 방향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운영 허가가 만료된 핵발전소의 계속 운전을 허용하고 새 핵발전소 건립을 추진한다. 삼척 등 화력 발전소 건설 역시 강경하게 추진하고 있어 종교계와 환경 단체를 포함한 시민 사회 연대를 통한 강력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공동의 집 돌보기 - 생태적 회개의 여정] (4)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기후위기로 인한 더 크고 결정적인 고통은 가난한 이들 몫이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플랫폼’ 행동 목표 2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은 생태 정의를 증진하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수호하도록 불리웠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우리의 행동은 토착 원주민, 난민과 이주민,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연대를 증진하며, 사회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점검하고 계발하는 것입니다.”
115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이 잠기고 도시가 마비됐다. 하지만 피해의 크기는 똑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말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반지하 방으로 쏟아진 빗물을 퍼내야 했다. 누군가가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며 잠을 청할 때 누군가는 창문을 뚫고 들이친 비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누구도 피할 수 없었지만 더 크고 결정적인 고통은 가난한 이들의 몫이었다. 지구의 울부짖음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태풍보다 무서운 삶의 현실
태풍이 잦은 필리핀에서도 보홀섬은 태풍의 직접적인 타격을 덜 받는 편에 속했다. 보홀섬 동쪽에 있는 레이테섬과 사마르섬의 산악 지역을 지나며 태풍의 세력이 쇠퇴하는 덕분이다.
하지만 보홀섬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주민들은 최근 20년 사이 날씨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점점 더 더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풍의 횟수가 늘고 강도도 세졌다고 말했다. 달라진 날씨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보홀섬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아르투로씨는 “2010년쯤부터 쌀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민들은 수확량 감소로 수익이 줄어드는 현실을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필리핀을 덮친 태풍 라이는 며칠 동안 보홀섬을 휩쓸었고, 수많은 집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사라졌다. 당시 태풍으로 피해 입은 주민들을 도왔던 타클로반교구 산하 단체인 소셜 액션 센터(Social Action Center) 프로젝트 매니저 다이디(Daidee)씨는 “태풍이 불어 닥친 며칠 사이 도시가 사라져 버렸다”며 “태풍의 위력도 무서웠지만 하룻밤 사이에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의 현실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정부도 태풍 피해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워낙 피해 지역이 광범위해 모든 집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값싼 코코넛 나무 자재조차 구할 수 없어 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아들과 보홀섬의 안테케라(Antequera)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알린 라사카(Arlyn Lasaca)씨도 태풍 라이로 큰 피해를 입었다. 냄비 몇 개와 침대, 작은 TV가 살림의 전부인 얇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집은 소셜액션센터의 도움으로 새로 지은 집이다.
그는 “태풍이 불자 눈 깜짝할 새에 집이 날아가 버렸고 갈 곳이 없으니 흙바닥에 천막을 쳐놓고 며칠간 지냈다”며 “세부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큰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형편에 새 집을 짓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총구 겨누는 기후위기
보홀주의 주도인 타그빌라란 시내를 지나면 반쪽이 사라진 체육관 지붕, 담장과 창문이 부서진 성당, 무너진 집의 잔해들 사이로 잘 가꿔진 정원을 갖춘 깨끗하고 견고한 집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나운 태풍의 공격에도 집을 잃지 않았고, 금세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48항)고 밝혔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가난한 이들, 여성, 유색 인종, 청소년 등 보다 취약한 이들을 향한다는 것이다.
기후 불평등은 나라간, 계층간, 그리고 세대간의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온실가스의 70%는 세계 인구의 20% 이하인 선진국들이 배출하지만 그 피해는 온실가스의 3% 미만을 배출하는 개발도상국의 10억 명이 겪는다. 또한 견고하고 안전한 집을 갖지 못한 가난한 이들은 폭염에 목숨이 위험해지거나 태풍과 폭우에 집을 쉽게 잃게 되는 상황에서 불평등을 경험한다.
지난 6월 있었던 태아와 5세 이하 아이 등 62명을 청구인으로 하는 아기들의 ‘기후변화 소송’은 세대간의 기후 불평등을 대변한다. 이들은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지난 2018년 대비 40%로 규정한 것은 아기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 “가장 중요한 생물권 보존 지역에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기의 현대와 미래를 희생해 가면서 부유한 국가들의 발전에 계속 이바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해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찬미받으소서」 52항)
기후 불평등의 현장, 한국에서도 재현되다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재킷 촬영지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삼척의 맹방해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 실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맹방해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변이란 뜻의 명사십리(明沙十里)란 수식어가 붙은 곳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해변과 그 끝에 걸린 백두대간은 ‘천혜’의 자연이란 말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맹방해변의 ‘명사십리’라는 수식어는 이제 옛말이 됐다.
포스코에너지가 출자한 삼척블루파워에서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석탄 운송을 위해 맹방해변 앞 바다에 항만부두 및 방파제를 만들면서 심각한 해안침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설물은 모래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방해했고 명사십리였던 맹방해변의 모래를 깎아 내려갔다. 게다가 유실된 모래를 채워넣는 과정에서 해변에 적합한 것이 아닌 인근 하천의 퇴적토를 사용했다는 정황도 주민들에 의해 알려졌다. 거뭇거뭇한 모래가 쌓인 맹방해변은 아름다웠던 과거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바다가 아름다움을 잃자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바다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이곳에서 민박집을 하는 주민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
상맹방 주민 이순주(49)씨는 “우리 마을은 주로 농사와 민박을 하는 주민이 많은데, 해변이 훼손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마을 분위기가 크게 침체됐다”며 “서울에서 맹방으로 시집와서 가장 좋았던 것이 아름다운 해변을 보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젠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이들은 그 자리에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초미세먼지량은 연간 570톤으로, 30년의 운영기간 동안 대기오염물질에 의해 최대 1081명의 조기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기후솔루션은 발표했다.(「생명을 앗아가는 나쁜 전기, 석탄화력」)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발전소가 설치돼 있거나 설치될 지점으로부터 반지름 5㎞ 이내에 속하는 지역을 지원한다. 이는 발전소로 인한 피해가 반경 5㎞ 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삼척의 경우 시청을 비롯해 많은 시민거주지가 발전소 반경 5㎞ 안에 있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클 것으로 삼척석탄화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공동대표 성원기)는 우려하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농작물이다. 삼척에서 주로 재배하는 감자, 시금치, 딸기 등 농작물에 석탄분진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장본인은 삼척에 없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으로 수혜를 받는 사람들 역시 삼척에 없었다. 망가진 바다와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 아래 살아갈 주민들만이 삼척에 남아있을 뿐이다. 기후 불평등의 현장은 필리핀에서도 한국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공동의 집 돌보기 - 생태적 회개의 여정] (5) 생태적 경제
공동의 집 살리기 위해, 조금의 불편 이겨낼 순 없나요?
① 제로에이블을 찾은 손님이 가지고 온 플라스틱 용기에 섬유유연제를 담고 있다.
② 제로에이블을 찾은 손님이 가루세제를 재활용 용기에 담아 무게를 재고 있다.
③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카페 ‘얼스어스’는 냅킨 대신 손수건을 제공하고 있다.
④ 카페 ‘얼스어스’는 조리도구도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용기를 덮을 때 랩 대신 실리콘 덮개를 사용하고 있다.
⑤ 손님들이 제로에이블에 가져온 우유팩은 휴지와 핸드타월로 재활용된다. 매장에 손님들이 가져온 우유팩이 쌓여 있다.
⑥ 제로 에이블에서는 다쓴 우유팩 10개를 가져오면 쿠폰에 도장을 하나 받을 수 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플랫폼’ 행동 목표 3
“생태적 경제는 경제가 인간 사회의 하위 체제로서, 그 자체로서 인류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윤리적 투자, 화석연료를 포함해 지구와 사람에게 해로운 활동에 대한 투자 철회, 순환 경제 지지, 그리고 적절한 임금과 복지를 보장하는 일자리로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20년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묶어두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1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을 2.1톤으로 줄여야 한다.
2015년 현재 1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은 4.5톤이다. 전 세계 하위 소득 50%는 불과 0.69톤, 이는 2030년 1인당 탄소 배출 목표치의 3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탄소 배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소득 상위 10%는 23.5톤, 상위 1%는 74톤, 상위 0.1%는 무려 216.7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탄소 배출의 수치를 기업들에게 적용해보면 문제는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화석연료 기업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책임자였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구에 따르면, 지난 1988년부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71%의 책임이 단 100곳의 화석연료 생산기업에 있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정의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도 어렵게 만든다. 기후위기 상황에도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으니,더 많은 부를 갖고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이들이 지금 누리는 풍요와 편리를 포기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기후 소송, 그리고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운동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 철회 확산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우리는 엄청난 오염을 유발하는 화석 연료, 특히 석탄과 석유와 더불어 소비량은 적지만 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의 점진적인 대체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165항)라고 밝힌다. 파괴가 아닌 상생을 위한 실천 중 하나가 바로 기업의 행태를 바꿀 수 있는 건전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바로 온실가스 배출을 무절제하게 야기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다.
2015년 6월, 노르웨이는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극적인 결정을 내렸다. 9000억 달러 규모의 국부 펀드 운영에서 석탄 관련 모든 투자를 철회하기로 한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 결정으로 90억에서 100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손실이 막대하고 나아질 현실적 전망이 없는 산업의 주식을 계속 보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2020년 10월, 북유럽의 노르디아 자산운용, 덴마크의 국영 펀드 MP 펜션, 핀란드 교회 연금기금 등 총 3조 4000억 달러를 운용하는18개 국제 투자사들은 석탄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 재고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베트남에서 진행 중인 ‘붕앙2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을 향해 주주 참여 철회와 향후 대응 방안 제시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 에너지 산업이 경제성이 떨어지는 화석발전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저탄소 발전과 에너지 공급과 소비를 효율화하는 투자로 재편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줌에 따라 기후변화를 위험으로 인식하고 기업들의 투자 방향이 달라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가톨릭교회의 화석연료 기업 투자 철회
2012년부터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350.org)의 집계에 따르면, 9월 4일 현재 전 세계 1546개 기관이 투자 철회를 서약했고, 투자 철회 금액 규모는 총 40조 57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리고 이 투자 철회 선언을 한 기관 중에는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세계적인 조직과 수도회 등이 다수 포함된다. 실제로 전체 참여기관 중 3분의 1 이상이 종교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투자 철회를 선언한 가장 대표적인 기구는 국제 카리타스다. 국제 카리타스 의장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은 지난 2018년 4월 “기후위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크게 고통 받고 있으며, 화석 연료는 이 불의의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라며 “국제 카리타스는 화석연료 산업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벨기에 룩셈부르크대교구, 이탈리아 살레르노-캄파냐-아체르노대교구 등과 팍스 뱅크 등 가톨릭계 은행들, 총 35개 가톨릭 기관들이 함께 투자 철회를 선언했다. 이에 앞서 60여 개 가톨릭 기관들이 투자 철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2016년 10월 전 세계 각국 교구와 수도회, 원조기구 등이 한꺼번에 투자 철회 운동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주교회의는 지난 2월 ‘환경적으로 파괴적인 산업에 대한 기부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주교들은 생태에 관한 새로운 사목 서한을 통해 “재정적 자원은 공동선, 창조의 완전성,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며 “교회는 2025년까지 생태학적으로 해로운 활동에 투자한 금융 기관과 기업에서 자산을 완전히 매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개인 생활양식의 변화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업에 강제하는 것이 투자 철회 운동이라면, 개인적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실천하려는 것이 윤리적 소비다. 기후변화가 우리 삶과 가까워지면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국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이나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된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캠페인이다. 거절하기(refuse)와 줄이기(reduce), 재사용하기(reuse), 재활용하기(recycle), 썩히기(rot) 등 5R을 실천하는 이 운동은 일회용컵이나 빨대를 받지 않고, 음식을 포장할 때 플라스틱 수저나 나무젓가락을 거부하고, 받은 일회용품을 재사용하는 것이 골자다.
한국에서는 2018년 ‘쓰레기 대란’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구호에 그쳤던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쓰레기 배출이 적고 재사용이 가능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생기면서 실천으로 이어졌다. 알맹상점을 필두로 속속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숍은 현재 서울에만 9곳 이상이 운영 중이다. 교회 안에서도 대전교구 불당동본당에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알맹이 상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도 지난 7월 대구 동성로에 제로웨이스트숍인 ‘카페 베네인’을 열었다.
「찬미받으소서」는 “사회적 압력이 기업의 이윤에 손실을 입히면 기업들은 생산 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 줍니다.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입니다”(206항)라고 밝히고 있다.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기준에 도덕적인 가치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문을 연 카페 ‘얼스어스’와 경기도 안양에서 지난 2월부터 운영 중인 ‘제로 에이블’은 제로웨이스트 매장이다. 두 가게의 특징은 30대 젊은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소위 MZ세대로 분류되는 두 가게의 사장은 ‘지구가 아파요’, ‘북극곰이 사라지고 있어요’ 등의 슬로건을 보고 자랐다. 평균 기온이 1℃ 높아지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졌다는 오래전 메시지는 내 삶과 긴밀한 연결고리가 없는 구호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후가 변해 커피콩과 포도 재배가 어려워져 커피와 프랑스 와인값이 오르고, 때 아닌 홍수와 가뭄을 겪어야 하는 눈앞의 변화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생활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했다. 그렇게 길현희 대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카페 ‘얼스어스’를 열었고, 박상환 대표는 제로웨이스트&리필스테이션인 ‘제로 에이블’을 운영하게 됐다.
길현희 대표는 “커피가 좋아서 카페를 열었고, 환경에 관심이 있으니 그와 관련된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얼스어스를 열었다”고 말했다. 거대한 가치나 이념을 실현시키려 하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끝에 환경문제가 함께했던 것이다. 무겁지만은 않게 환경문제에 접근한 덕분에 이를 수용하는 이들도 환경을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 조금 비싸더라도 도덕적인 가치를 둔 제품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맛있는 케이크가 있다는 소문에, 혹은 친환경제품이 궁금해 우연히 두 매장을 찾은 손님들은 “매장을 둘러보며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운영자의 신념을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냅킨을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집에서 포장할 용기를 가져와야 하고, 직접 제품을 담고 무게를 재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매장을 찾은 손님들은 기꺼이 이를 감수하고 돈을 지불한다. 북극곰의 위기가 인간에게도 위기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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