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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수심이 90m나 되는 곳에 세워진 금문교( Golden Gate
Bridge)"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의 양쪽에는 227m 높이의 교각탑이 세워져 있고 교각과 교각사이에 2가닥의 줄을 늘여서 다리를 지탱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선의 길이가 약 3km (2,825m)가 되고 폭은 6차선 다리를 만들어 차들이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교각과 교각 사이에 연결된 2가닥 줄입니다. 멀리서보면 보통줄 같은데, 실제로는 그 줄의 직경이 1m가 되고 그 안에는 무려 27,000개의 철선이 합해서 큰줄을 만들고, 그 줄이 육중한 다리판을 떠메고 있는 것입니다.
27,000가닥의 가는 철선이 합해서, 육중한 다리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협력의 엄청난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금년에 우리는 성전 건축이라는 위대한 과제를 본격적으로 실현하겠다는 결정을 선포하고 열심히 기도하여 왔습니다. 이제 많은 일들이 진척되어 얼마있지 않으면 시공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있기 까지 너무 많이 수고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큰빛 식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연약한 힘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예외없이 마음을 합쳐 협력한다면 엄청난 힘을 만들어 낼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학의 법칙이며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축복의 길 입니다.
오늘은 협력이라는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협력이라는 것을 현대 언어로는 네트워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부터 제자들에게 네트워킹을 철저하게 가르치셨고, 사도 바울은 <서로 서로>라는 개념으로 네트 워킹을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신 말씀 입니다….
다같이… 시133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네 가지 포인트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1.협력의 필요성 /
2. 협력의 방법 /
3. 협력의 결과 /
4.협력의 원동력
I.왜 협력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협력은 하나님의 방법이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형제들의 연합과 협력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협력은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협력이 힘을 만들어 냅니다. 파우워를 형성시켜 준다는 말 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워도 협력의 기적입니다. 기부츠라는 협동 농장의 원리도 한마디로 협력의 원리 입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라고 인정받는 것도 온 교인이 선교에 협력하는 마음의 결과입니다.
협력은 상승작용을 하게 합니다.많은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그래서 협력은 무한한 축복의 보고 이기도 합니다.
협력은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성지순례를 하면서 느낀 것도 서로 서로 협력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 졌다는 사실 입니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을 붙들어 주고 힘들 때 기도해 주고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는 돌봄과 베품 속에서 얼마나 즐거움이 컸는지 모릅니다.
영광회 플로리다 수양회가 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도 협력과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협력은 무엇 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줍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 하시는지 모릅니다. 장가가고 시집간 아들 딸들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다른 것 보다도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 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큰 집에 산다 할지라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고 다툰다면 그것이야 말로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시 133…)
협력은 다른 사람을 존경하도록 만들어 줍니다.상대의 필요를 인정하게됩니다.
협력의 사례를 생각해 보실까요? :
주식회사 :구멍가게 1,000개 보다 더 효과적 일 수 있습니다.인력도 많이 줄일 수 있고 생산력도 높일 수 있으며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쟁 :
노르만디 상륙 작전을 했던 연합군의 승리를 보십시오. 히틀러의 독일군을 항복 시킨 것은 바로 연합의 힘이었습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것도 연합의 힘이었고, 한국전쟁의 승리도 17개국 연합군의 힘이었습니다.
어업 :
수천명이 낚시질 하는 것보다 협력 어업을 하면 수 천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의 어업은 모두 협렵어업입니다.
대기업 :
삼성/현대/대우/휴렛 패커드 (HP) 프린터 기계와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의 경우 두 사람의 인격적이고도 철저한 협력이 오늘날 이 회사의 기적적인 성장을 가져온 것 입니다. 이회사는 전 직원이 사기가 충천하고 회사에 대한 대단한 프라우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의 분위기가 전셰계적으로 협력 분위기입니다.
/토론토 실업인 협회 북미 최대의 단체로 부상/큰빛 신용조합
연구 단지 :
요즘에는 아인슈타인 같은 개인적인 천재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협력할 줄 아는 연구팀이 필요한 시대 입니다. 독일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를 보면 수천 수만명의 연구진이 함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 있는 실리콘 벨리) 우리나라 대덕단지도 수 만명의 연구진이 함께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지금 과학 선진국이 된것 아닙니까?
정치 :
유럽 연합의 막강한 힘의 비결…유럽연합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별국가의 주권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운동 :
히딩크 감독의 어려운 결단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류 선수(김병지 선수)를 탈락시키는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팀웍을 만들어 냈습니다. 팀웍이 한국 축구의 영광을 가져오게 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은 팀웍의 승리였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가 거함 브라질을 격침 시켰을 때 세계가 놀란 적이 있습니다. 월드컵 본선에 9번이나 올랐지만 한번도 결승까지 간 적이 없었던 프랑스의 승리의 개가는 그들 자신도 믿기 어려운 기적 이었습니다. 대회가 끝난 후 세계 축구 연맹 FIFA는 도데체 어떻게 프랑스가 우승 할 수 있었는지 본격적으로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팀의 우승 비결을 <자케 감독의 용병술은 철저한 팀 플레이가 요체>라고 결론지었습니다.자케 감독의 리더쉽의 핵심은 바로 선수 기용에 있어서 팀워크를 중시하는 선수를 우대하고 스타 플레이어를 철저히 무시한데 있었습니다.
단독 드리볼로 골을 터트리는 선수보다도 마지막 순간에 패스해 골로 이어주는 겸손한 선수를 등용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선수 명단에서 그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에릭 칸토나 선수를 명단에서 빼버렸을 때 온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언론의 집중 포화에도 불구하고 자케 감독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밀어 부쳤습니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메스컴으로부터 선수들을 완벽하게 격리시켰습니다.
그 결과 자케 감독의 용병술은 결국 결승전에서 두 개의 골을 터트린 지네딘 지단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탄생 시켰습니다.
자케의 축구철학에 충실했던 지단은 화려함을 즐기기 보다는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돕는 팀을 위해 헌신 할 줄 아는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자케는 지단을 중심으로 11명 모두가 공격과 수비에 나서는 전 방위 작전을 펼침으로서 몇 명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는 막강한 브라질의 삼바 축구를 3대 0으로 꺽고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 입니다.
운동 뿐만 아니라 은행 조직도 그렇습니다.스위스 은행은 세계적으로 가장 신용이 있는 은행입니다. 여러분이 스위스 은행이라고 하면 하나를 말하는 줄 아시지만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위스에는 563개의 금융기관이 있는데 그 금융기관 모두가 세계적인 신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스위스에 있는 은행이 세계적으로 신용을 얻고 있느냐면,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 그가 반 유대인 정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반 나치들은 스위스로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치 정부가 이것을 알게 되었고, 비밀 스파이를 스위스로 보내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안 스위스 정부는 새 은행법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기밀을 누설하는 은행원은 6개월간 징역, 혹은 5만프랑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수 만명의 은행원들이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신용을 지켰고, 그들은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그들이 법이 무서워가 아니고 정말로 우러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때 스위스 은행의 신용이 확립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신용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들의 신용은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장하는 교회와 성장하지 않는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교회의 특징은 목사님이 사찰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을 다 합니다. 이런 교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 교회는 최대한 200명을 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은 지도자가 일을 다 맡기고 분담하며 나눕니다.
적재 적소에 인물을 발탁하여 맡기는 교회는 성장합니다.
우리교회도 여러분이 얼마나 잘하시는지 모릅니다. 모든 분들이 협력을 잘해 주시기에 이렇게 교회가 건강하게 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4:11절은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겠느냐 한 사람이면 패하나 두 사람이면 능해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협력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푼돈을 모아서 주식회사를 만들면 거기서 훨씬 많은 일을 할 있습니다.
물방울이 모여서 시내가 되고 강이 되고 댐이 되면 훨씬 일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석탄불도 따로 따로 피우는 것 보다 함께 피워서 큰 용광로가 되면 엄청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협력할 때 큰일을 합니다.
저와 여러분 한명 한명은 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큰빛교회의 모든 성도가 힘을 합하면 정말 큰빛을 발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협력할 때 인간의 생각만 가지고 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한자로 협(協)자는 십자가 옆에 힘력이 3개있는 것이 협자입니다.
진정한 협력은 예수님의 십자가 중심으로 사람들의 힘이 모이는 것이 진짜 협력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희생과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협력은 십자가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내게 좀 희생이 되더라도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협력할 때에는 상승작용이 일어납니다.
기러기가 날아갈 때에 V자로 날아가는데 앞에 날아가는 기러기가 바람을 일으키면 뒤에 따라가는 기러기는 그 바람의 상승작용 때문에 힘이 덜 들게 날아간다고 조류학자들이 발표한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쉽게 날아갈 수 있느냐면 71% 힘이 덜 든다고 했습니다. 협력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김치를 만들어도 서로 협력하면 50%의 힘을 세이브 할 수 있습니다.제가 부억에서 김치 담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고 있으면 옆에 있는 저도 신이 날 정도로 재미있게 일 하십니다. 집에서 그렇게 하신다면 모두 병이 나실 정도로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모두 표정이 밝으십니다.
교회에서도 잘되는 부서는 대개 팀웍이 잘되는 부서입니다. 위원장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분들이 많을수록 그 위원회는 능력있게 쓰임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이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격려해주고 도와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물을 부어 소방수 역할을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도 힘이 빠져서 못합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와서 하소연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사님 일 좀 할려고 하니까 텃새 부려서 못하겠어여. 눈치 보여서 못하겠어여.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그런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잘 되는 가정교회를 보십시오.
각 가정교회의 특징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성장하는 가정교회의 공통점은 서로 협력하는 것 입니다.
성지 순례가서도 느낀것은 잘되는 가정 교회 목원들은 기념품 하나를 봐도 어떻게 하면 우리 목장의 식구들에게도 나눠 줄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닥스사다의 도움을 받아 성벽을 재건 했던 느헤미야서를 보시면 느헤미야는 자기 홀로 이 사역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치 않은 것입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함께 하는 협동의 사역으로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협동의 원리를 중시한 리더였습니다. 우리가 느헤미야 3장을 읽어보면 무려 75명이상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왜 느헤미야는 이런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여기서 열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느헤미야 혼자 이 사역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여기에는 <함께>라는 단어와 <그 다음은 >이라는 말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누가 한 것이고…그 다음은 누가 한 것이고…
바울의 로마서 16장도 마찬가지 원리 입니다. 40명 정도의 사람들의 명단은 무엇을 말하는 것 일까요? 사도행전의 역사는 바울의 행전이 아니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협력의 역사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어떻게 협력할까요?
먼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삼위일체 방법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협력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 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완전히 협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구원의 역사도 삼위 하나님의 협력을 모르면 절대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네트워킹 하신는 분 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적인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제일 우선순위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목사, 기도하는 장로, 기도하는 권사를 통해 자기 일을 하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열일을 해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가랴에서는 슥4:6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힘으로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기 일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 일을 가장 잘 협력하는 방법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아말렉이 쳐들어와 모세가 산에 올라 손을 들고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잡고 하루종일 손을 들고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영적인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기도의 협력자가 최고의 협력자입니다.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요?
각각 자기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잘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수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수 십개의 위원회를 위한 수 십명의 사람들/ 수 백개의 목장 운영을 위한 사람들/ 선교센터 운영/ 도서실/ 크리스챤 북 스토아/ 크리스챤 스쿨/ 협동조합/ 대학생 선교/ 노인 아파트/ 영어학교/ 서예/ 노인대학/ 스포츠 선교단/ 어린이 집/ 장애우 학교/ 컴퓨터 교실/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이 시작 된다면 그때 무엇이 필요합니까? 바로 여러분의 달란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교회는 바로 문자 그대로 커뮤니티 처치가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주십시오. 나는 십자가 아래 숨기고 주님이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하십시오. 내가 뭐나 된 것 처럼 행동하면 그 때부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항상 좌우를 살피면서 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4:10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의 가장 중요한 원리중의 하나가 은사를 따라 섬기는 것입니다.
은사에 적합한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내 은사에 맞는 사역인 것입니다. 두가지가 다 충족되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 우리가 어떤 일을 좋아하지만 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은사에 맞는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저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제가 1년 후에 개인 작품전을 열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도 웃을 것 입니다. 이것을 오늘의 사회에서는 전문성이라고 말합니다.
한 공동체가 잘 돌아가려면 전문성이 존중되고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여 적합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일이 맡겨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자원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라면 나에게 적합한 일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객관적 평가를 받아 사역의 장에 서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사역은 소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목장교회에서부터 이것을 실행하여 보십시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마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안에 존재하는 가장 고도의 욕구를 자아실현의 욕구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은사에 맞는 봉사를 발견한다면 인생의 살맛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희랍어로 은사를 나타내는 말인 카리스마는 본래 카라라는 말 즉 기쁨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은사에 맞는 일을 하면 너무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은사의 원리를 잘 사용하여 적재 적소에서 지도자들이 일하게 함으로 단시일에 예루살렘 성의 중건이라는 대업을 실현하게 된 것입니다.
제일 큰 시험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유혹하는 마귀의 전략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안 해도 돼, 나는 빠져도 돼’라는 생각입니다.
C.S 루이스 라는 분은 책을 많이 썼는데 그 글 가운데 ‘악마의 편지’라는 글이 있습니다. 마귀가 조카를 훈련시키는 글이 있는데, 마귀가 조카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마귀가 조카가 있는지 모르지만…
“너 나쁜 인간 만들려고 애쓸 것 없다. 내게 필요한 인간은 오직 남에게 관심 없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면 족하다. 인간으로 하여금 나는 빼달라고 주장하게만 만들어라 그러면 우리 일은 성공이야”라고 마귀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나는 빠져도 된다고 하면 마귀가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빠져도 된다는 분 없기를 바랍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III.협력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협력의 결과는 언제나 놀랍습니다. 주식회사들의 경우 브랜드 이름 값만 해도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 합니다. 요즘엔 브랜드 파워라는 말도 생겼습니다만 정말 브랜드 파워를 실감하는 시대 입니다.
사례를 보실까요?
1886년 미국 조지아 주 아틀랜타에 사는 약제사 존 S. 펨퍼튼 이라는 사람은 <코카 Coca>라는 나뭇잎과 <콜라 Kola>라는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원료로 톡 쏘는 맛의 음료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원료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 유명한 코카콜라 브랜드의 원조가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코카콜라는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전 세계인들에게 심기 위해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들에게 무려 50억 병이나 되는 코카 콜라를 보급 하면서 세계적인 조직망을 갖고 지구촌 브랜드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그런 네트워킹이 세계 제1의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낸 것 입니다.
: 코카 콜라/맥도널드/나이키/만다린
우리 한국인들의 리더십에서 결격사항 제 1호가 바로 <협동 정신의 결여>이라고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다를까요?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가르칩니다.
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여러 지체들이 연결되어 협동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요즈음 말로하면 인간의 몸이야말로 가장 탁월하게 네트워킹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주님은 교회를 몸이 되게 하셨을까요? 주의 일이야말로 혼자 할 수 없는, 해서도 안될 팀-스피리트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님의 사역이 진전되지 못하는 현장을 보면 우리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비 협동적입니다. 세상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쓴 이규태씨는 특히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이 협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산업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잉된 경쟁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그는 이런 변질된 오늘의 한국인들을 '독속의 게'에 비유합니다.
독속의 게 하나 하나는 모두 독밖으로 기어 나올 충분한 역량이 있는데 기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게 하나가 기어 나오려하면 다른 게가 뒷다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게들의 생존방식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한국인들이 또 한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자주 말하는 상생의 철학을 익혀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목장 공동체에서부터 배워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신앙생활의 원리를 "서로 서로"의 원리로 소개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서로 서로를 지원할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이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순종하고 실현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IV.협력의 원동력은 서로 격려하는 것 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의 느헤미야나 신약의 사도 바울의 경우를 봐도 성경에 세심하도록 여러 지도자들의 이름과 사역의 내용을 상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격려하기 위해서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격려받지 못한다면 어떤 일에 지속적으로 헌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수 천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격려의 반대는 낙심입니다. 영어로는 격려를 'encouragement'(in+courage)라고 합니다.
격려받으면 용기가 생깁니다. 낙심은 영어로 'discouragement'라고 합니다. 낙심하면 용기를 잃어버립니다. 의욕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10:24)고 말합니다.
한국인들의 의식속에는 유교문화의 전통이 생각보다 뿌리가 깊습니다. 그런데 유교문화는 성경적으로 율법주의적 경향을 갖습니다. 따라서 책망과 정죄에는 빠르지만 격려의 전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좀더 서로를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챤 유머리스트인 마크 퉤인은 "칭찬보다 공동체를 건강하고 견고하게 세워갈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칭찬을 모르는 가정을 들여다 보십시오. 감옥이 아닙니까? 칭찬을 모르는 부부관계를 보십시오. 원앙(원한과 앙심으로 맺어진 부부)의 부부가 아닙니까? 칭찬을 모르는 목장이나 교회를 들여다보십시오. 찬바람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느헤미야의 격려가 사역의 효율성을 증대시킬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격려가 분위기 띄우기 용도의 감상적이 아닌 진지한 격려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격려가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시적 효과밖에는 가져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격려한다는 것이 결코 평가를 간과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느헤미야 3장에는 사역을 소홀히 한 사람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은 느헤미야 3장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느헤미야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느헤미야가 남들을 격려하기 위해 너무 바쁜 나머지 자신을 격려하는 것을 잊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태도야 말로 진정한 격려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에 이런 격려자가 또 한 사람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 사람은 이름 조차도 '격려자'였습니다. 바나바이지요. 그는 본래 안디옥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자기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자 사울이라는 방금 회심한 청년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를 격려하여 그를 지도자의 반열에 세웁니다.
그리고 세계선교 여정에 나서며 그를 동반합니다. 처음에 이 두사람의 관계를 기술하며 사도행전은 "바나바와 사울이--"하다가 나중에는 "사울과 바나바가--"로 바뀝니다. 리더십의 주도권이 이양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이 된 사울이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지도자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역의 무대 저편으로 조용히 퇴장한 지도자 그가 바로 바나바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바나바가 이런 느헤미야가 우리 시대에 우리 사회에 우리교회에 필요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런 격려자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1849년에 미국 뉴 잉글랜드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관 감정관으로 일하던 한 남자가 너무 고지식하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실직을 당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뜻밖에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잘된 일 아니에요. 이제야 말로 당신이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실때가 되신 것 같으네요. 글을 쓰고 싶어 하셨잖아요. 소원대로 글을 쓰시지요."그리고 아내의 부탁으로 교회친구 몇 사람이 그날 밤 그를 찾아와 그에게 창작활동을 할 것을 격려합니다. 그리고 불과 반년이 못되어 소설 하나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 소설이 유명한 "주홍 글씨"였던 것입니다. 이 남자는 청교도 문학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기게 된 나타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실직하던 밤부터 꾸준히 그를 찾은 친구가운데 한 사람은 유명한 시인 롱펠로우였습니다. 그에게 만일 아내의 격려가 없었다면 친구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가 만일 자기의 은사를 발휘하여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위대한 정신사의 유산을 잃을뻔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진실로 저와 여러분이 이런 협동의 원리, 은사의 원리 그리고 협력과 격려의 원리를 다시 배워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존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사역에 좋은 사람들만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 없이 사람을 고릅니다. 내가 일하기 편하고 좋은 사람, 내 눈에 보기 좋은 사람과 일합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은 엘리트들만 뽑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 탁월한 사람들만 데려다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얼마든지 엘리트들만 골라서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쓰십니다. 그분은 탁월한 사람도 쓰시지만 우리가 보기에 형편 없는 사람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가 아닙니다. 준비된 그릇, 순종하는 그릇, 순결하고 깨끗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능력을 지닌 몇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를 불러 함께 일하기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봉사자가 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