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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
빌붙지 말고 개척하라. / 김학중 목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도 성공하는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땀 흘리지 않고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는
희망도, 발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7월 15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10년 전 16살의 나이에 32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었던
‘칼리 로저스’(26)라는 여성의 근황을 소개하였습니다.
‘칼리’ 씨는 10년 동안 파티, 마약, 성형수술에 빠져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고,
그 결과 3차례나 자살시도를 하였습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소방관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현재 간호사 준비를 하고 있는 ‘칼리’ 씨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거액의 돈 때문에 행복이 아닌 고독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지금이 과거보다 더 행복합니다.”
이처럼 ‘불로소득(不勞所得)’, 즉 ‘직접 일을 하지 아니하고 얻는 수익’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이 아닌 고통과 절망을 몰고 오기 마련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과 대기업의 수장(首長)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몰래 조성한 비자금 때문에 어떠한 수모를 겪고 있는지,
여러분도 언론보도를 통해 똑똑히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대와 사회는 진정한 개척정신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앞장설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의 밝은 미래를 여는 개척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안에서 싸우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17:14-18)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가나안 땅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 지파는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였습니다.
특히 요셉 지파의 경우, 요단강 동편과 서편 양쪽에서 광활한 땅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지파는 자신들의 땅이 너무 좁다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여호수아를 찾아와 이렇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 복을 주시므로 …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17:14).
즉 요셉 지파는 자신들이 한 지파의 지분밖에 얻지 못했다고 우겼습니다.
이미 두 지파의 지분을 얻었으면서도
한 지파의 지분밖에 얻지 못했다고 떼쓰는 요셉 지파를
여호수아는 차분히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들이 (당신들 말대로) 정말 큰 민족이라면,
(아직도 가나안 땅에서 버티고 있는) 다른 부족들의 산지를 개간해보시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큰 민족’이라며 큰소리치던 요셉 지파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산간 지방은 우리가 살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게다가 그 지역에 사는 부족들은 무시무시한 최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위험한 전쟁도, 힘든 개간작업도 하기 싫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대신, 요셉 지파는 자신들의 인구가 많다는 핑계로
오히려 다른 지파들의 땅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요셉 지파의 요구는 ‘우리가 너희들보다 힘이 세고 많으니,
너희들의 몫을 우리에게 내놓으라’는 조폭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지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안 그래도 요셉 지파와 유다 지파가 워낙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바람에
상당수의 지파들은 그때까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 지파가 더 욕심을 부리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심각한 내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를 다시 한 번 설득했습니다.
‘(당신들 말대로) 당신들은 정말 큰 민족이오.
당연히 더 많은 땅이 필요할 것이오.
그러니, 자, 이제 큰 민족답게,
험한 산지라고 투덜대지 말고 개간해보시오.
당신들이 앞으로 개간하는 땅은 모두 당신들의 소유가 될 것이오.
그리고 그 산간 지방의 부족들이 아무리 최첨단 무기를 가졌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대범하게 도전해보시오.
여러분처럼 힘세고 큰 민족이라면, 그들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겠소!’
결국 요셉 지파는 스스로 ‘큰 민족’이라며 큰소리친 것 때문에,
꼼짝없이 산간 지방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문제를 놓고 찬반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합리적인 역할분담을 유도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추진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한 분야들에는
대기업들의 진출이 제한되거나 금지됩니다.
현재 동반성장위원회는 제과점, 음식점, 플라스틱봉투 제조업,
자동차 전문수리업 등의 십여 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6일, ‘한국휴게음식업중앙회’는
‘커피, 햄버거, 피자’ 등의 업종들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 위하여 정식 수순을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만일 이 분야들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롯데리아’,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은 더 이상 신규출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이 제도는 전문가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오히려 지금도 턱없이 미비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제도가 오히려 창업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국내 유통, 제조, 서비스업들의 국제 경쟁력만 저하시킨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다국적 기업들을 규제하면 FTA(자유무역협정)나 WTO(세계무역기구)와 마찰을 빚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저 같은 비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정말 옳은 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힘센 대기업들이 안 그래도 힘든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을 더 이상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라는 옛말처럼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면 대기업들도 온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진국가들의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되는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을 보호, 육성하기 위하여 힘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즉, 힘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 합리적이고 건전한 경영방법입니다.
또한 자신보다 체급이 훨씬 낮은 상대와 싸우는 것은
정정당당한 경기가 아니라 일방적인 괴롭힘입니다.
그러므로 힘센 대기업들은 과감하게 세계시장으로 나가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세계적인 식견과 판단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주먹’은 ‘골목대장’이 되어 어린아이들의 용돈이나 빼앗는 건달이 아니라,
정식으로 링 위에 올라가 세계적인 ‘주먹’들과 정정당당히 겨루는 사람입니다.
교회 속에서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남다른 지식이나 영적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성도들 앞에서 으스대거나 큰소리치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위대하고 강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성도들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감싸줍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까?
안에서 동료들과 다투지 말고 밖으로 눈을 돌리십시오.
아군을 향해 총질하지 말고, 적군을 향해 앞장서서 돌격하십시오.
진정한 ‘개척자’는 동료들의 땅을 탐내는 사람이 아니라,
담대하게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2. 말로 만리장성을 쌓을 수는 없다. (18:1-10; 19:40-48)
요단강 동편에서 땅을 얻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그리고 요단강 서편에서 땅을 얻은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반 지파,
도합 다섯 지파들은 모두 자신들의 땅을 이미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일곱 지파들은 여전히 ‘실로’에 세운 ‘하나님의 성막’ 주변에 모여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추측하건대, 수십 년 동안 함께 모여 살며 서로에게 정들었던 사람들이
막상 뿔뿔이 헤어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한군데 모여 무작정 세월을 보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여호수아가 나서서 호통을 쳤습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18:3)
그리고 여호수아는 각 지파별로 세 사람씩, 총 스물 한 명을 선정하여,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지도를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들이 차지할 만한 땅들을 표시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의 지도가 완성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성막’ 앞에 다시 모여 제비뽑기로 땅의 임자들을 정하자고 하였습니다.
일곱 지파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마침내 일곱 지파들도 자신들의 땅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매끄럽지만은 않았습니다.
한 예로, 시므온 지파는 뜬금없이 유다 지파 땅의 한복판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유다 지파가 인구에 비하여 너무 많은 땅을 차지한 까닭에
그 땅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19:9).
다행히도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의 다소 황당한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었습니다.
결국 시므온 지파는 힘들이지 않고 ‘유다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가나안 남부의 넓은 땅을 차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므온 지파의 약삭빠른 잔꾀는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흡수통합 되었고,
그 결과 시므온 지파의 땅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지파들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요셉 지파나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다른 다섯 지파들이 자신들의 땅을 부지런히 정복하고 있을 때,
한데 모여 앉아 노닥거리기만 하던 일곱 지파들의 마지막은 애처로웠습니다.
비록 일곱 지파들이 ‘하나님의 성막’ 앞에 모여 있었을지라도,
그들이 말장난만 하며 허비한 시간에 대하여
그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집단이든 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다툼과 분쟁만 남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들은 넘쳐 나는데 막상 일할 사람은 없고,
그래서 일이 진척이 안 되면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서로 원색적인 비난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2005)의 저자로 유명한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의 이민규 교수님이
지난 2011년 『실행이 답이다』(2011)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이민규 교수님은 ‘꿈을 이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실행’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시간, 이 곳에도 큰소리만 치고 실행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결심’조차 못하고 있고,
어떤 분들은 ‘결심’은 했으나 주저주저 하며 실행을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어렵게 시작했으나 ‘작심삼일’의 덫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무런 행동과 실천 없이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지금부터 실행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3.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19:49-51)
우여곡절 끝에 요단강 양편에서 지파별로 땅 분배가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수아에게도 땅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의 땅 중에서 가장 개발되지 않은
산간 지역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힘으로 성벽을 쌓고 마을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절친이었던 ‘갈렙’이 앞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갈렙은 자신의 지위와 공로를 내세워 손쉽게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스스로 최전방의 선봉에서 서서 개척자가 되겠다며 나섰습니다.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었던 여호수아 역시 갈렙과 동일한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옛말에 ‘용장 밑에 약졸 없다’, 즉 ‘용맹한 지휘관 밑에 약한 병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집단의 지휘자가 가진 도덕성과 경영철학이
사실상 그 집단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영학자 ‘니시무라 가쓰미 교수님’은
『용장 밑에 약졸 없다』(2011)에서
“부하직원이 일을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상사 책임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변변한 무기도 없고, 군사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강력한 부족들을 몰아내고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라는 훌륭한 리더를 세워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여호수아가 연로했을지라도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도덕성과 사기가 전반적으로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국가와 우리가 소속된 집단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자들의 판단과 행동이 결국 여러분의 운명과 직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건전한 개척자 정신을 유지해야
여러분 역시 위대한 개척자들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판과 (중보)기도’의 관계를 혼돈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같은 편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심지어 원수들을 위해서도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지도자들의 이념, 철학, 성향 등이 우리와 다를 때,
우리가 그들을 건전한 시각에서 비판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사회지도자들이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특히 우리의 지도자들이 건전한 ‘개척자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 꿈의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저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여러분의 마음이 들지 않을수록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들로부터 맑은 영성의 강물이 흘러내리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개척자가 되는 길을 살펴 보았습니다.
첫째, 애꿎은 동료들의 것을 빼앗으려 들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여러분의 눈을 돌리십시오.
둘째, 여러분이 낭비한 시간과 정력은
언젠가 여러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셋째,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개척자 정신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