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의 열망
삼하 7장 1-17절
주요내용 = 마음의 성전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 다윗의 마음에는 깊은 근심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이렇게 좋은 백향목 궁에 평안히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 휘장 가운데 있다고 하는 근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성전건축은 허락치 아니하셨지만 대신 세 가지의 귀한 약속을 하셨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항상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존귀케 하시리라는 약속이었고, 둘째는, 다윗의 아들로 성전을 짓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다음은, 다윗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것을 일명 다윗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다윗 언약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심령성전 건축에 관해서도 귀한 진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1.성전은 아름다운 양심 속에 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2절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고통이요 양심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선한 양심을 성전 삼고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심을 아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양심을 버리면 믿음을 버립니다. 그래서 딤전3:9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 이라 했고, 고전 8:11에 양심이 상하면 영혼이 망한다고 했으며, 딤전1:19에 양심을 버리면 믿음에 대하여 파선함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양심은 하나님의 장막과 자신의 궁궐을 비교함에서 나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함은 궁궐의 환경이지만 하나님을 향하여는 장막의 환경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하는 생각은 임금을 받드는 것과 같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고작해야 내가 아쉬워야 찾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었습니까? 이런 상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다고는 하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다윗처럼 괴로워 하고 안타까워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2.성전건축은 복 중의 복이오 영광 중의 영광임을 알아야 합니다.
4-17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복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건축을 생각만 해도 상상치 못할 복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그의 후손으로 성전을 건축할 뿐 아니라 다윗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며 또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같은 원리는 학개서에도 나타납니다. 학2:18에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고, 2:7에 내가 내 영광으로 충만케 하신다고 하셨으며, 2:9절에 이 곳에 내가 평강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예수 믿으면서도 영육간의 복을 모르고 계시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복의 하나님을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복이 임하지 않았다면 마음의 성전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측면에서 성전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성전입니다(고전3:16). 그러므로 여기서 성전을 짓자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를 믿자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아름다운 신앙을 소유하자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을 바로 모심이 복 중의 복이요 평강 중의 평강이요 영광 중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3.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참된 안식처를 지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5절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무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솔로몬의 기도처럼 하늘의 하늘들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황금과 보석으로 잘 짓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실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지었던 것도 결국은 하나의 온전한 것에 대한 모형이었지 하나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신 집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을 한 번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좁지는 않습니가? 어둡지는 않습니까? 죄와 세속로 더럽지는 않습니까? 불신과 염려와 근심으로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온갖 잡념과 세상의 것으로 혼란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신 마굿간보다 결코 낫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문제점은 아무리 고쳐봐야 역시 그렇다고 하는 점입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행17:24). 그러므로 혹시 아주 철저히 살아가는 데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혹시 내 손으로 지은 율법의 집은 아닌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4.하나님께서는 오직 성령으로 지으신 집에 거하십니다.
13절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을 다윗에게 허락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먼저, 다윗은 성전의 설계도나 성전에 쓰일 재료들을 전쟁을 통하여 얻어 비축했고 국가의 모든 기관들과 이웃 나라들이 이에 협력하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여 두었고, 이제 솔로몬이 할 일은 오직 그 준비된 것으로 성전만 지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솔로몬은 성령의 예표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로 모든 것을 다 예비하셨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그 공로를 성도들에게 적용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솔로몬은 이런 측면에서 성령의 예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건축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이것이 바로 심령성전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성전의 모든 값비싼 재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신성 즉 성령으로 지어져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고전3:12에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이 나오는데 여기 불에 타는 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을 뜻하고 타지 않는 것들은 성령을 따라 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신령한 재료인 성령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폭을 넓혀 말씀드리면 성전은 고전 3:11에 말씀한 대로 성전의 터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하고, 또 건물은 갈5:22-23에 명시한 대로 성령의 아홉 가지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이 성령으로 난 마음에 만이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만 잘 붙어 있으면 열매는 자동으로 맺혀집니다. 여기 예수님께 잘 붙어 있다는 말은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를 잘 믿어 그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이 진리를 삶에 잘 접목한 말씀이 골2:6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럴 때 9절 대로 그 안에 있는 신성의 모든 충만을 경험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이미 받은 구원에 견고히 서서 날마다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고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이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더욱 뚜렸이 경험하게 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다윗의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 하십시다.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모두 성전의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에는 무궁한 하나님의 복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모두 예수 잘 믿고 성령 충만하므로 마음 속에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