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침략
* 침략 시작 : 리빙스턴과 스탠리의 탐험 이후
* 침략 전개 : 열강은 베를린 회의(1884)에서 분할(나누어 쪼갬) 원칙(방법)에 합의 함 → 베를린 회의는 비스마르크의 중재(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킴)로 베를린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분할에 관한 회의로, 주최국인 독일제국은 카메룬과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을 얻었다. → 결과 : 라이베리아(미국의 통치권 아래)와 에티오피아(이탈리아의 통치권 아래)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체 나라가 열강의 식민지가 됨.
* 영국 : 이집트를 보호국(다른 국가의 보호 아래에 있는 국가)으로 만들어, 수에즈 운하를 장악함. ‘종단정책’으로 케이프타운~카이로를 연결하는 아프리카의 땅을 식민지로 만듦. 또한 영국은‘3C정책’으로 식민지를 확장했음.
* 종단(縱斷) : 세로로 끊거나 길이로 자름. 남북의 방향으로 건너가거나 건너옴.
* 종단정책 : 19세기 말에, 아프리카의 남(케이프타운)과 북(카이로)을 식민지로 연결하려는 영국의 식민화 정책. 1890년대 중부의 여러 국가를 식민지화하는 데서 시작하여 이집트와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진출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완성되었다.
* 3C정책 :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이 추진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카이로와 케이프타운, 인도의 콜카타를 연결하는 식민지 확장정책이다. 세 도시의 첫 번째 글자가 모두 C로 시작되어서 3C정책이라 불린다. 영국은 카이로에서 아프리카를 지나 케이프타운까지 연결하는 종단정책을 추진하다 프랑스의 횡단정책과 충돌하였고, 결국 1898년 파쇼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이 종단정책은 러시아의 남하정책과도 충돌하였으며, 이후 독일의 3B정책과 충돌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열강들끼리의 식민지 쟁탈 전쟁이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과잉(잉여. 남아도는) 생산물을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아 벌어진 전쟁이다.
* 프랑스 : 알제리~마다가스카르를 연결하는, 횡단정책 추진
* 횡단(橫斷) : 도로나 강 따위를 가로지름. 대륙(넓은땅)이나 대양(넒은바다) 따위를 동서의 방향으로 가로 건넘.
* 횡단정책 : 알제리를 거점으로 삼아, 동쪽의 마다가스카르 섬까지 진출하여, 아프리카를 동서로 연결하려는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종단정책과 대립되었다.
* 독일 :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를 연결하는, 3B정책을 추진함. 이러한 독일의 3B정책은 종단정책을 추진하던 영국과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와 충돌함. 그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다.
⑤ 제국주의 열강의 충돌과 대립 : 남아도는 물건을 팔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 팔지 못하면 공장이 문을 닫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 국가가 문을 닫을 판이었다.
* 파쇼다 사건(1898) :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이 파쇼다에서 충돌함. →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확대 경쟁이 치열해지는 19세기 말의 상황 속에서, 아프리카 분할 점령을 놓고 1898년에 영국(종단 정책)과 프랑스(횡단 정책)가 수단의 도시인 파쇼다에서 충돌을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아프리카 남북의 요지를 차지한 영국은 케이프타운과 카이로를 연결한 아프리카 종단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시 인도의 콜카타까지 연결하는 3C정책을 추구하였다.
* 모로코 사건(1905. 1911) : 프랑스와 독일이 모로코를 놓고 대립. → 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인 모로코의 지배를 둘러싸고 1905년과 1911년 두 번에 걸쳐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한 사건으로, 두 차례 모두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여 독일의 진출을 억제하였다.
* 거점(據點) : 어떤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 = 근거지. 근본이 되는 곳. 바탕이 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