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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개요
ㅇ 언 제 : 2023. 3. 21(화)
ㅇ 누 가 : 끼리끼리 4명
ㅇ 어 디 : 매화(천연기념물)를 찾아서
ㅇ 날 씨 : 맑음
ㅇ 여 정 : 화엄사(구례) - 선암사(순천) – 백양사(장성)
나들이여정(앨범)
탐매(探梅)
지독한 추위도 봄을 이기진 못합니다.
올해도 섬진강변으로부터 들려오는 개화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른 봄 고고하게 홀로 피어나는 매화는 곧잘 선비의 지조에 비교되곤 했는데요, 그래서 ‘선비의 꽃’이라 불렸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대 매화가 있습니다.
바로 구례 화엄사 ‘들’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입니다.
전라남도로 탐매(探梅) 여행가자고 미끼를 던졌더니 봄 바람난 이들이 입질했습니다. ㅎ
늙은이 4명이 남도 홍매화를 보기 위해 길 떠납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조금만 미루면 놓치기 일쑤인 게 꽃구경입니다.
혹여 지지는 않았는지 불안하지만, 꽃 잔치로의 초대는 어느 여행보다 설렙니다.
와유(臥遊)하며 찻물에 매화 띄워 은근한 향기도 마셔보자며 수다를 떱니다.
단아한 매화와 함께 우리 여정도 내내 향기로울게 분명합니다.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라 3대 매화 중 첫 번째 화엄 ‘들’매를 만나러 구례 화엄사로 가마를 몹니다.
화엄사
구례에서 동쪽으로 시오리 떨어져있는 신라고찰 '화엄사(華嚴寺, 사적 505호)'입니다.
삼국시대 중엽 어느 봄날, 이곳 지리산자락에 터를 잡았습니다.
화엄경(華嚴經) 글자를 따서 지은 화엄종 중심사찰로 많은 고승들이 머물며 화엄사상을 펼쳐나간 곳이라네요.
급수(?) 높은 장애 노인네임을 내세워 절 꼭대기까지 가마로 이동합니다.
그러다보니 거꾸로 절 구경을 하네요. ㅎ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최대라는 각황전(覺皇殿)의 웅장한 외양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3m가 넘는다는 거대한 불상들도 덩달아 우람합니다.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는 팔각석등(국보 12호)은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죠.
조선시대의 우수한 예술성을 잘 나타냈다는 대웅전(보물 299호)도 힐끔거립니다.
장대한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고찰(古刹)답게 석탑도 참 많네요.
국보(4점)와 보물(5점) 사이사이로 보이는 지리산 노고능선도 장쾌합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으로 도피한 빨치산들의 은신을 우려해 불태우려 했다는데요, 담당 경찰이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빨치산이 숨지 못하도록 문짝을 떼어낼 것을 건의하여 훼손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른 오전인데도 매화구경 온 꾼들이 꽤 많네요.
‘들’매
각황전각 중건기념으로 ‘계파’선사가 심었다는 ‘홍매화(紅梅花)’를 친견합니다.
‘화엄매(華嚴梅, 천연기념물 485호)’인데요, 다른 매화보다 검붉어 일명 ‘흑매화(黑梅花)’라고도 불린다죠.
대개는 이 홍매화를 ‘들’매로 착각하는데, 실은 길상암자 가기 전 길가에 피어있는 '백야매(白野梅)'가 천연기념물이라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매화가 참 예쁩니다.
꽃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조금 모자라도 괜찮고, 조금 덜 풍성해도 좋습니다.
예쁜 꽃 피우느라 애썼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깊은 밤 동산 위에 하현달이 떠오르면
매화꽃 사각사각 옷깃을 여는 소리
총총한 은하의 별들 졸음 쏟아 눈 감네
남녘의 폭설 속에 설중매 개화(開花) 소식
길 떠난 탐매(探梅) 선비 은근히 부럽구나.
날 새면 나도 따라서 청매 향기 찾으리] (‘한휘준’/남도 탐매)
3월 11일부터 26일까지 홍매화 & 들매화 촬영기간으로 콘테스트도 열린답니다.
매화를 세상에 알리는 출발점이라는데요, 이유 있는 야단법석의 현장을 둘러봅니다.
주말엔 홍매화에 바치는 작은 음악회까지 열어 어울림의 선율도 선사한다는데... 아쉽네요.
귀여운 동자승들의[不見, 不聞, 不言] 배웅에 경건모드(^^)가 미소로 바뀝니다.
자연의 색을 그대로 담은 채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구례 화엄사를 나섭니다.
오찬
점심 먹고 가잡니다.
구례장터에 들려 장구경하다가 소머리국밥을 먹을까도 생각했었는데... 3/8장이랍니다.
지난 늦가을에 동기생들과 함께 들렸던 ‘장어명가’가 생각났습니다.
오롯이 구이로만 승부하는 집구석입니다.
여전히 숯불에 누워 노릇노릇한 몸매를 자랑해댑니다.
그 유혹에 노인네들 지갑이 절로 열립니다.
장어뼈튀김은 생각보다 고소했고, 쌈 싸먹을 때 밥과 함께 올려먹는 도라지무침도 좋았습니다.
쫀득한 맛이 일품인 장어구이에 반했습니다.
꺼억~ 트림 한번 더하고, 벌어진 배꼽을 추스르며 다시 나섭니다.
두 번째 매화인 ‘선암’매를 보기 위해 선암사로 달립니다.
선암사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자락에 자리한 ‘선암사(仙巖寺, 사적 507호)’입니다.
낯익은 선암사 오름길은 벌써 봄이 점령했습니다.
이곳에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향하던 산행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현존하는 한국의 고대다리 중 가장 정교하다는 승선교(昇仙橋, 보물 400호)와 강선루(降仙樓)에서 머뭇거립니다.
반원형의 홍예교(虹蜺橋)가 물에 비쳐 원형을 이룰 때 선녀가 오르내렸다는 곳입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아치(Arch) 안에 담긴 강선루와 용머리를 카메라로 복사합니다.
세속과 결별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은 곳이라는데, 늘 봐도 아름답습니다.
해탈을 일깨우는 삼인당(三印塘) 연못에 눈 맞추고는 고찰로 들어갑니다.
고요보다 적막에 가까운 사찰을 풍경소리가 깨칩니다.
태고총림(太古叢林)이자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산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는 ‘뒤깐(^^)’은 볼 일 없어도 필히 들려야 합니다.
커다란 솥을 내세워 절규모를 자랑하는 송광사스님에게 선암사스님이 대꾸했답니다.
“우리 절 뒷간은 얼마나 깊은지 어제 눈 똥이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라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木魚)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때론 퍼질러 실컷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요, 요즘 그런 심정입니다.
‘선암’매
선암사는 미술문화재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꼽는다죠.
건물과 글씨는 물론 담장 따라 서있는 늙은 매화나무까지도 모두 보물이자 기념물입니다.
빛바랜 단청에 천년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조심조심 선암사 매화성지(梅花聖地)로 들어섭니다.
사군자(四君子)중 하나인 매화는 예부터 귀로 듣는 꽃이라 했습니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고요해야 진정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꽃입니다.
고즈넉한 사찰 담장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선암매(仙巖梅, 천연기념물 488호)’를 만납니다.
고려 때 중건한 선암사 상량문(上樑文)에도 기록이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답니다.
선암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왔음을 알 수 있는데요, 매화를 보기위해 절을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가장 생육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한 모습의 백매와 홍매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수백 년 살아온 노매(老梅)의 등걸에 낀 이끼도 예사롭게 보이질 않네요.
대지를 일깨우며 산사를 감싸는 매향(梅香)은 어쩜 영혼의 향기입니다.
역시 자연은 누리는 자의 것인데요, 한참을 취하다가 가야할 곳이 남아 서둡니다.
이제 다시 장성 백양사에 있는 ‘고불’매를 찾아갑니다.
백양사
내장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백양사(白羊寺)’의 문을 두드립니다.
불경을 읽을 때마다 흰 양이 찾아와 설법을 들었다하여 백양사라 불리게 되었다죠.
애기단풍을 보러 산악회에서 많이도 찾았던 곳입니다.
백제 무왕(632년)때 창건한 절로 거대한 바위를 뒤에 두고 좌우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려 경치가 매우 수려합니다.
가을과 달리 사람들이 들썩이지 않아서인지 봄 사찰풍경이 조금은 을씨년스럽습니다.
고요한 길 따라 발걸음을 옮깁니다.
도열하듯 서있는 숲길을 지나노라니 가장 먼저 ‘쌍계루(雙溪樓)’가 눈에 들어옵니다.
계곡을 막아 만든 연못에 기암절벽과 함께 어른거리는 사찰모습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물위에 비친 백학봉우리의 반영(反影)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 얼마나 그리워했던가요?
“근데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거야?“ ㅎ
꿈지럭대다가 깜짝 놀라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총총 발걸음을 옮깁니다.
‘고불’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천연기념물 486호)’를 친견합니다.
고불(古佛)은 '원래의 부처 모습'을 뜻하는데, 백양사가 1947년 고불총림(古佛叢林)으로 승격될 때 부처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명명됐다는군요.
공사로 어수선한데요, 그래도 반갑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통로 담장 옆에 위치하여 가지가 담장 너머까지 뻗어있습니다.
수령이 350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크기도 5m가 넘는다죠.
세 줄기로 뻗은 고목의 세련된 모습이 일품입니다.
단 한그루에 불과하지만, 은은하고 매혹적인 그 향기는 경내를 가득 채울 정도로 진합니다.
이 꽃나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솟구치는데요, 아름다운 색과 은은한 향기가 더욱 정취(情趣)를 북돋웁니다.
공사소음에 매향을 맡기가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아한 ‘고불’매 모습을 보고 또 보며 감탄합니다.
취하다가 아쉬움의 발걸음을 떼는 늙은이들에게 문전에 서있는 석비(石碑)가 묻습니다.
“이 뭣고?”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는 늙은이들이 저마다 씨부렁댑니다.
백양사 지붕위에 걸쳐있는 백학봉만이 낌새를 알아차린 듯 다시 또 들리랍니다.
매화이야기
이젠 복귀합니다.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합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세상사입니다.
혼자서 끙끙~ 앓아내며 견뎌야할 운명이기도 합니다.
매화는 알겠죠.
호남5매(湖南五梅)와 산청3매(山淸三梅)가 일찍부터 소문났습니다.
호남오매로는 오늘 본 선암사 ‘백’매와 백양사 ‘고불’매를 비롯하여 전남대학교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 소록도 국립명원 ‘수양’매가 낍니다.
산청삼매는 경남 산청군 관내에 있는 ‘정당’매와 ‘남명’매, 그리고 ‘분양’매를 일컫습니다.
안동 도산서원에 있는 ‘도산’매가 유명했었는데, 안타깝게도 1986년에 후계목도 없이 죽어 이젠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죠.
‘퇴계’선생이 풍기군수를 할 때 ‘두향’이란 관기(官妓)가 선물한 것이라는데요, 퇴계가 유언으로 ‘저 매화나무에 물을 줘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답니다.
저녁으로 추어탕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화제는 매화이야기입니다.
매화처럼 살자며... 헤어집니다.
에필로그
화려한(?) 탐매여행(探梅旅行)이었습니다.
매화들과 함께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한설(寒雪)에서도 꿋꿋이 은은한 향기를 피운 노매(老梅)의 고고한 풍치 앞에서 늙은이들의 마음도 열렸습니다.
들녘에 핀 꽃들은 어느 하나를 골라 주인공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모든 꽃이 욕심 없이 어울려 있으니 비로소 전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 친구와 이웃을 드러내주는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은 자연 상태의 매화가 주는 교훈입니다.
아름다운 자태와 진한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매화(梅花) -.
고찰(古刹)의 고즈넉함과 우아함에 매향이 더해진 행복한 Healing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보지 못한 강릉 오죽헌 ‘율곡매(栗谷梅, 천연기념물 484호)’는 또 숙제로 남깁니다.
매화가 지닌 깨끗하고 맑은 향기가 그리우면 또다시 찾을 겁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여전히 많이 남았습니다.
수욜(3. 22) 아침에 갯바위가
첫댓글 조계산으로 코스를 선정했으면 같이 갔을 껄~~~껄껄껄, 아쉽네요
멋진사진 기억새록새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