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오백여든여덟 번째
재신론 Anatheism
지난해 어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51%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특히 2, 30대에서 두드러진답니다. 삶이 힘들어서 초월적인 어떤 힘에 의지하고자 종교를 갖게 된 사람도 있고, 맹목적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누군가는 모태신앙으로 종교를 갖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불쑥 ‘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믿는 신이 참된 신일까?’하는 영혼의 밤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밤을 거쳐야만, 무신론을 거쳐야만 신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며 진지하게 신의 재발견을 얘기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보스턴 칼리지 철학과에 석좌교수 Richard Kearney 리차드 카니가 <Anatheism 재신론>이라는 저술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접두어 Ana는 ‘본래대로 다시, 새로이’라는 뜻이니 굳이 한자로 표기한다면 재신론再神論이 되겠지요. 저자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신의 죽음 선언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상황에서 전지전능하고 편재遍在하는 신은 고통받는 인간의 심정을 알지 못했고, 그 고통받는 인간을 구할 힘도 없었고, 또 사람들이 고통받는 그 장소에도 없었다며, 바로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신, 그 이후의 신이 어떤 존재이고, 이 새로운 신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재신론의 모험이자 도전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카니 교수가 말한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일상의 신비’가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는 가끔 일상 안에서 초월을 발견하고, 종교적 신이 없이도 신비를 경험합니다. 그저 짧은 소견으로는 일상에서 초월자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통해 에피파니 Epiphany, 신의 현현顯現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