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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무엇을 감사하여야 할까?
시편136:23~26
2005년 19월 18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23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설교: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합니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 바르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합니다.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합니다.
사실 추석은 우리 민족의 고유 추수감사절입니다. 물론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조상, 태양, 달인 것이 문제이지만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추석, 한가위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각 나라, 각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민족고유의 문화를 없애고 모두 다 유대민족의 문화로 바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화가 타락하여 우상문화가 되었다면 그것을 바로잡고 개혁하여야 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한민족의 고유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잘 선용하여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문화를 발전 계승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문화 속에 있는 우상 숭배 문화, 귀신문화,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문화로 바꾸어야 하고 부모공경, 어른 공경문화, 예의 범절 문화는 그대로 잘 계승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명절에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분명 우상숭배이기에 고쳐야 하고 살아계신 어른들에게 공경의 표시로 세배를 하는 것은 감사의 의미와 효의 의미로 잘 전승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설날, 추석이 우상종교에서 출발했으니 없애야 한다고 하나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입니다. 그 설날과 추석을 고유문화로 인정하고 그것은 우리 신앙에 맞게 고쳐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장례문화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문화가 우리 한국에 있습니다.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하는 것은 전부 한국에만 있는 고유문화에 기독교문화를 옷 입힌 것입니다. 고인을 신으로 모시는 위패를 없애고 고인의 직분을 써 놓는 것, 고인의 영정 앞에 상을 차려 제사를 드리던 것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한국식 기독교 문화입니다.
장례를 3일장을 치르는 것도, 가족 친지 조객들이 다 모일 수 있고 고인과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문상의 기회를 주고 자손들의 친구, 문상객들이 조의금을 들고 와 상부상조하는 기간이 3일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하게 사신 분은 자기의 장례를 자기가 살아 있을 동안 여기 저기 부조한 돈으로 자신의 장례를 다 치르게 됩니다. 한국만이 갖고 있는 좋은 문화입니다.
오늘 주일이 추석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이후 아마도 주일에 명절이 겹친 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상대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 앞으로 12년 동안 명절과 겹치는 날이 7번이나 있답니다.
문제는 이런 절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날을 세상 그 어느 날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인가? 여러분들이 이날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를 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추수감사절이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까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시편136편은 다윗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로 지은 시입니다. 그 136편을 보면 믿음의 사람 다윗이 어떤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어떻게 감사한지를 살피며 함께 은혜를 나누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이 제일 심각한 문제는 죄 문제이고 그 죄로 인한 타락입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해 내셨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설교대로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란 흔히 예수 믿어 죄사함 받고 천국 가는 것만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란 말을 할 때는 3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질병에서 치유 받는 경우를 구원이라 하고 둘째는 고난과 환난, 핍박에서 벗어날 때 구원이라 하고 셋째는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을 구원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이 세 가지의 구원을 다 체험케 됩니다. 예수를 믿어 천국 가는 영적 구원은 물론이고 우리의 질병을 치료받는 구원도 허락하시고 환경의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구하여 내시기도 합니다.
그중에도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것을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여러분이 예수를 안 믿었다면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마도 기가 막힌 모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고 온갖 못된 짓은 다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남성들 중에는 바람깨나 피우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성도들 중에도 보통이 넘는 화려한 인생들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과거의 여러분을 돌아보세요? 모태신앙인은 그런 경험이 없이 살았을 터이지만 예수 믿기 전의 여러분의 모습은 기막힌 모습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술 담배에 찌들었던 인생, 도박에 빠져 엉망진창이었던 인생,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았던 인생들이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로 나왔고 어느 날 강권적인 인도하심으로 예수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국가적인 구원이 우리나라에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건은 6.25동란 중에 일어났던 기적이 하나가 있는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군을 파견하는 결정을 내려진 것입니다. 그 날 아침 유엔에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서 그 회원국들이 참석하게 되었는데 만일 소련 대표가 거부권을 행하면 유엔군을 참전시킬 수 없게 되는 긴급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전 보장 이사회에 참여하려던 소련군 대표가 차를 타고 UN 센타에 가려고 가는데 차가 도중에 엔진이 멈추었습니다. 아무리 차려 고치려 해도 원인을 앐 없었습니다. 결국 뒤늦게 유엔 회의장에 참석해 보니 이미 안전보장 이사회는 끝이 났습니다. 만장일치로 UN군을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이 끝이 났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세계역사에 기적 중에 기적이라고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24절을 보세요.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이 우리 개인과 나라에 베푸신 구원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난과 궁핍을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우리 영이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행하며 살면 하나님은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삼서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창세기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그가 형통한자가 되어 하는 일마다 잘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을 이끄시고 영혼에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풍요와 만족을 채우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23편을 보세요.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引導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引導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로서 육신의 만족을 채우시는 분임을 언급하시고 있고 두 번째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육을 다 책임지시고 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복의 원리를 아십니까? 기독교의 복의 원리는 기본이 30배요, 보통60배 많으면 100배의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셨다하면 적어도 30배, 많으면 100배입니다. 이런 원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이 복을 우리에게 베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벼농사, 몇 배 거두시는지 아십니까? 저도 잘 몰라 제 부친께 여쭈어 보았더니 볍씨 한가마를 뿌리면 제일 시원찮은 땅도 40가마요. 좋은 땅에, 잘나오는 땅은 100~120가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기한 전에 떨어지고 蝗蟲이 몰려오고 태풍이 불어 닥쳐 되는 일이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나라는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해야 할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조선말기 복음을 받을 때만해도 세계열강들이 우리나라를 삼키려고 얼마나 힘을 썼습니까? 風前燈火같은 우리나라가 결국 1909년 일제에 먹힐 때는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나라였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었고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 나라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 땅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 복음은 놀랍게 이 땅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수천년 내려오는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서당에 의존해던 교육제도를 개혁하고 수많은 학교가 세워져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해 숭실대학교, 명지대학교등 유명한 기독교 대학들이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세워졌습니다.
교회적으로 보면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 그리고 1909년의 백만인 구령운동 등 세 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교회에 일어난 이 세 차례의 부흥운동은 한국 교회의 놀라운 교세 신장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 영적 운동은 우리 민족을 어두움에서 일으켰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압제와 핍박으로 36년간 연단을 받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된 후 1950년대 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50$이었습니다. 필리핀은 그때 700$로 아시아에서 지일 살기 좋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세계 부자나라들의 모임인 OECD에 들어갔으며 세계열강들과의 경쟁을 하는 국가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23절을 보세요.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또 25절을 보세요.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땀과 노력으로 되어졌다고 하나 실상,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올림픽을 치루고 월드컵을 유치하고 세계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은혜, 성경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13~14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할렐루야
3. 신앙의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중에 정말 감사한 것은 신앙의 자유라는 선물입니다. 물론 이것은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을 당하며 순교를 당한 피 값으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마음껏 교회를 세우고 마음껏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어디서든지 기도하고 전도할 수 있는 은혜, 이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개인적인 핍박은 있을 수 있으나 법적으로,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교회가 5만 교회요, 하나님이 새우신 목사가 12만 명이 넘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나라는 헌법에 종교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나 또 한편으로 종교를 대적할 수 있는 자유도 허락하여 타종교를 공격하고 테러를 가하는 것도 허락해 놓았습니다. 많은 국가가 교회를 세우려면 국가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철저하게 국가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교회 헌금도 세금을 내야하고 목사가 세워지는 것도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명예살인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가족 중 여성이 이슬람 신자로서의 행동에 오점을 남겨 가족의 종교적 명예를 실추시켰을 경우 가족 중 남성이 그 여성을 살해하여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제도입니다. 이슬람 국가사회에 남아 있는 가장 반인권적인 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성이 남에게 강간을 당했다든지 옷을 벗은 몸을 남에게 보여준다든지 하면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중동의 요르단의 경우 명예살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관대한 편이어서 명예살인의 발생 건수와 빈도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요르단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1/3이 명예살인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라고 금지하고 있고 중남미 과테말라에서는 남자가 여성을 강간해도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하면 무죄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쿠웨이트에서는 투표권은 21세 이상의 남성에게만 부여하고 있고 아이티라는 나라에서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죽여도 처벌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파키스탄에서는 “강간당한 여성이 가해자를 고소하려면 그것을 목격한 4명의 성인 회교도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대개 반기독교 국가, 이슬람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여성들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이름은 있어도 사용할 곳이 없었습니다. 아기씨, 언년이, 안성댁, 서천댁, 누구 엄마 하다가 끝났습니다. 이것이 100년 전에, 그리고 짧게는 50년 전의 우리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엄청난 변화를 맞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추석 명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이 놀라운 복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