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의두심언추야연정명부댁(擬杜審言秋夜宴鄭明府宅)」 두심언의 시(詩)를 본떠 짓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는 거제도 유배객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지은 거제유배문학 「의두심언추야연정명부댁(擬杜審言秋夜宴鄭明府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는 김진규가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 두심언(杜審言 645~708)의 「추야연임진정명부댁(秋夜宴臨津鄭明府宅)」을 의고(擬古, 옛 시를 본떠 지음)한 작품이다. 이번 김진규(金鎭圭)와 두심언(杜審言)의 두 작품의 문학적 공통점과 더불어 김진규가 본떠 지은 시풍(詩風)의 특징을 요약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우선 문학적 공통점을 보자면, 두 시 모두 5언 8구의 엄격한 오언율시(五言律詩)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고대 한시의 격률과 평측(平仄), 압운(押韻)을 완벽하게 맞춘 정형미를 보여준다. 먼저 ①제목의 '정명부댁(鄭明府宅, 정씨 성을 가진 현령의 집)'에서 알 수 있듯, 두 시 모두 가을밤(秋夜)에 지인의 집[임진(臨津)현의 현령(명부)집]에서 열린 연회(宴), 즉 공간과 상황의 유사성을 그 배경으로 삼았다. 둘째 ②두심언이 유랑 혹은 좌천 중에 정명부의 초대를 받아 "의탁할 곳 없는데 나를 불러준 이는 오직 그대뿐(行止皆無地 招尋獨有君)"이라며 고독 속의 위로와 감사를 노래했듯이, 김진규 역시 자신의 정치적 처지나 유배·방랑의 외로움을 타인의 연회 속에서 달래는 '소외된 자의 고독과 감사'라는 애잔한 정서(방랑과 고독)를 공유했다. 그리고 ③연회가 깊어감에 따라 새벽 종소리나 물시계 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가을밤의 쓸쓸함과, 헤어진 후에도 흥취가 남아있는 듯한 여운으로 시를 마무리하는 구조적 공통점을 지닌다.
○ 다음으로 김진규가 본뜬 시풍의 특징을 살펴보면, 당나라 초기·성기 시풍을 숭상하던 조선 후기 문단의 경향에 발맞추어 김진규는 두심언의 시를 모방(擬)했다. 그가 구현한 시풍의 구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①두심언은 손자인 시성(詩聖) 두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심전기·송지문과 함께 율시(律詩)의 격률을 완성한 초당 시기의 대가다. 김진규는 이를 본받아 대구(對句)의 짜임새가 정교하고 자구(字句) 하나하나가 정밀하게 조화를 이루는 초당(初唐) 율시의 전형적인 격조를 재현했다. 둘째 ②의고(擬古)를 통해 감정을 절제했다. 원시(原詩)의 표현과 시적 전개를 차용하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슬픔이나 과도한 감정 표출을 억제했다. 대신 당나라 시 고유의 담백하고 청아한 분위기(淸건)를 유도하여 문학적 격조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③송나라 시의 철학적·관념적 화풍에서 벗어나 당나라 시의 감각적 심상과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했던 조선 후기 신당파(新唐派) 문인들의 미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4-1) 다음 ‘寒’ 운목의 오언율시 「의두심언추야연정명부댁(擬杜審言秋夜宴鄭明府宅)」 ‘두심언의 「가을밤 정 명부의 저택에서 잔치를 열다」 시를 본떠 짓다’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앞서 보신 두보의 시가 아닌, 두보의 할아버지이자 당나라 초기의 대시인인 두심언(杜審言)의 시풍을 본떠(擬) 지은 오언율시다. 만남과 헤어짐의 무상함과 험난한 세상살이(당쟁과 유배 등) 속에서도, 가을밤 소중한 이들과의 술자리를 통해 슬픔을 달래고 서로를 위로하는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정서가 돋보이는 한시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저자가 두보의 조부(祖父) 두심언(杜審言) 시를 본떠 지었다(擬倣)고 썼다. 두심언은 당나라 초기 율시(律詩)의 기틀을 완성한 대가다. 김진규는 두심언이 정 명부(명부는 현령을 뜻함)의 집에서 가을밤 잔치를 즐기며 지었던 시의 운치와 격조를 빌려와, 자신이 처한 서글픈 현실을 위로하는 시로 탈바꿈시켰다. [3~4구]는 현실 도피와 취향(醉鄕)의 대구다. 세상살이를 '미친 파도(狂瀾)'에 비유했는데, 이는 숙종 시절 치열했던 서인과 남인의 당쟁 속에서 유배와 정계 은퇴를 반복해야 했던 김진규 자신의 비극적인 정치적 삶이 투영되어 있다. 이 험난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곳은 오직 술에 취해 근심을 잊는 '취향(醉鄕)'뿐이라는 고백이다. [5~6구]에서는 오동나무 잎을 스치는 차가운 이슬 소리와 시들어가는 국화를 통해 가을밤이 깊어감과 동시에 자신들의 인생과 좋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시각적·청각적으로 보여줬다. 마지막 구절의 '가산(加餐)'은 옛 한시나 편지에서 "밥을 더 많이 먹고 건강을 돌보라"고 할 때 쓰는 전형적인 위로의 표현이다. 밤이 깊어 잔치는 끝나가고 현실은 여전히 미친 파도처럼 거칠겠지만, 서로의 안위와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시를 따뜻하게 매듭짓고 있다.
**「의두심언추야연정명부댁(擬杜審言秋夜宴鄭明府宅)」** ‘두심언의 「가을밤 정 명부의 저택에서 잔치를 열다」 시를 본떠 짓다’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離合元難定 만남과 헤어짐은 본래 정하기 어려우니
酣歌且盡歡 흥겹게 노래 부르며 우선 즐거움을 다해보세.
醉鄕多樂地 취한 고을(술기운 속)에는 즐거운 땅(樂地)이 많으나
世路捴狂瀾 세상 살아가는 길은 온통 미친 파도 같구나.
露冷庭梧響 이슬은 차가워 뜰의 오동나무에 소리를 내고
秋深砌菊殘 가을이 깊어 가니 섬돌 가의 국화는 시들어 가네.
起看良夜促 일어나 보니 이 좋은 밤도 재촉하듯 지나가니
聊與勸加餐 애오라지 그대에게 밥 한 술 더 들기를 권하노라.
4-2) 다음 ‘文’ 운목(운통)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추야연임진정명부댁(秋夜宴臨津鄭明府宅)」은 '시성' 두보의 시가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이자 초당(初唐)의 대표 시인인 두심언(杜審言 645~708)이 지은 한시다. 이 시는 두심언이 관직에서 밀려나 사방으로 유랑하며 처지가 매우 곤궁했을 때, 임진(臨津)현의 현령(명부)이었던 친구 정씨의 초대를 받아 가을밤 연회에 참석한 후 고마움과 자신의 심경을 담아 지은 작품이다.
「추야연임진정명부댁(秋夜宴臨津鄭明府宅)」 가을밤 임진현 정명부의 집 연회에서 / 두심언(杜審言 645~708)
行止皆無地 나아가고 머무름에 내 한 몸 의탁할 곳 없는데
招尋獨有君 이리 불러서 나를 찾아주는 이는 오직 그대뿐이구려.
酒中堪累月 술에 취해 있으니 몇 달의 시름도 견딜 만하고
身外卽浮雲 내 몸 밖의 세상일은 그저 떠도는 뜬구름일세.
露白宵鐘徹 이슬은 희게 내리고 밤새 종소리 맑게 울려 퍼지는데
風淸曉漏聞 바람 맑은 새벽녘엔 물시계 떨어지는 소리 들려오네.
坐攜餘興往 앉은 자리의 남은 흥취를 그대로 품고 돌아가니
還似未離群 도리어 아직 그대들과 헤어지지 않은 것만 같소.
[주1] 5연의 '露白(이슬이 하얗게 내리다)'은 판본에 따라 '霜白(서리가 하얗게 내리다)'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주2] 명부(明府) : 한나라 때 대수(군수)를 높여 부르던 말이었으나, 당나라 때에는 현령(현재의 지자체의 군수·시장급)을 일컫는 호칭으로 쓰였다.
[주3] 행지(行止) : 세상에 나아가 관직을 얻는 일(行)과 물러나 쉬는 일(止)을 뜻한다.
[주4] 누월(累月) : 여러 달, 혹은 수개월의 오랜 시간을 말한다.
[주5] 효루(曉漏) : 새벽녘의 물시계(자격루) 소리를 뜻한다.
○ 내용인즉, [1~2연]에선, 고단한 유랑길에 만난 참된 우정을 표현했다. 벼슬길이 막혀 "세상 어디에도 내 한 몸 둘 곳 없다(行止皆無地)"고 한탄하던 와중에, 자신을 잊지 않고 따뜻하게 불러준 친구 정명부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화려한 연회 자체보다 벼슬을 잃은 자신을 알아주는 진정한 벗을 만난 기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3~4연]에선, 세상 근심을 잊게 하는 술에 취해 인생을 묘사했다. 술에 취해 있는 동안만큼은 몇 달간 쌓인 고단함과 서글픔을 모두 견뎌낼 수 있다. 그리고 술기운 속에서 바라본 세상의 명예, 부귀영화 등은 모두 부질없는 '뜬구름(浮雲)'에 불과하다고 고백하며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5~8연]에선, 깊어가는 가을밤의 묘사와 여운을 서술했다. 시간의 흐름을 시각(흰 이슬)과 청각(밤 종소리, 새벽 물시계 소리)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새벽이 찾아왔지만, 시인은 연회에서 얻은 마음의 위로와 감동(여흥)이 너무나 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치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는 듯한 깊은 여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