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구주께서
죽으시는 죽음과 그리고 부활과 승천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성육신과 그리고 구주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인격은 물론 주님의 사역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부활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들과 지금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요.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구주께서 부활하신 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그 죽으심을 통하여 이 십자가 구속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향한 입증과 승인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성육신 하신 구주를 입증하시고 승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주를 부활을 통하여 구주께서 행하신 모든 것들을 입증하고 승인하신 것은 다른 말로 구주께서 그 성육신
하셔서 인생의 삶을 30년 동안 사시고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통한 모든 사역의 역사를 입증하는 것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인 유대의 백성들과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사역과
또 예수님의 어떤 인격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역사 그 모든 것들을 거절하고 부인하고 배척하고 정죄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구주를 향한 모든 부인하고 배척하고 정죄하는 일들이
잘못되었음을 주님께서 간접적으로 증거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역사를
사실상 입증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입증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하신 모든 사역에 대한
일에 대한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승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영원과거에 계획했던 창세전에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루시고자 하시고 성취하시고자 한
계획하셨던 일들을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한 구속 역사의 모든 것들을 성취하셨다 라는 것을 직접적이고도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부활에 대한 일인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부활시키지 아니하시고 무덤에 장사된 후에 그리스도께서 음부로 가셨는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지 아니하셨다 라면 그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승인하고 입증하는 것을 증거로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성육신 하셔서 30년 동안 인생의 삶을 사시고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사시면서 사역을 하시고 역사를 하셨던 모든 구주에 대한 것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구주를 향하여
배척하고 정죄하고 부인하고 거절한 모든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의 입을 잠잠케 하신 일이 바로 부활의
사건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를 입증하시고 승인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창시자인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심으로
말미암아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의의 요구들을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완전히 만족시켰다 라고 로마서 3장 24절은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으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죽음에 온전히 만족하셨다 라는 것과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 인하여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라는 증거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 25절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바로 우리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께 전혀 탕감받을 수 없고 전혀 청산되어질 수 없는 태산 같은 무거운 죄의 빚을 진 자들이
바로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인류인 것입니다.
첫째 사람 아담 안에 포함되어진 인류는 바로 이 하나님께 크게 죄를 빚진 자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아담
곧 마지막 아담인 마지막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죽으심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라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는 것을 우리는
철저하게 상고하고 이것을 깊게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리신 그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부활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다른 말로 우리가 나타내 말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과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하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시키신 그 사실로 인하여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을 인정하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증거이신 것입니다.우리의 칭의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그 그리스도를 향한 또는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모든 요구들이 바로 인류를 포함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온전히 만족되었다라는 강한 증거가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자로서 인정하셨다 라는 강한 증거가 바로 부활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한 우리의 탕감받을 수 없고 결코 청산되어질 수 없는 죄라는 빚이 온전히 해결되었다 라는 증거요
탕감받았다라는 지불 영수증이며 증거 자료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죄의 빚이 온전히 탕감받아졌고 청산되어졌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하나님께서 주님을 향하여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사건을 통하여 바로 구주께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신 구속의 역사에 대한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입증하시고 승인하신 사건이 주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모든 성취 안에서의 성공이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간접적으로
암시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부터 21절에 부자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12:16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부자의 땅이 풍성하게 열매를 내매
12:17 그가 속으로 생각하여 이르되, 내 열매를 쌓아 둘 곳이 내게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에 내 모든 열매와 물건을 쌓아 두고
12:19 또 내 혼에게 말하기를,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 12: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지 못한 자는 이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부자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정말 모든 것을 소유한 성공한 자로 나타났지만 그가 죽을 때 그가 소유한 모든 것들은 헛된
것이 되어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아무리 세상에서 권세와 부와, 재물을 소유한 외형적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에는 하나도 결코 가져가지 못하고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바로 죽음이 사람의
성공의 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생전에 행하시고 일하시고 역사하시고 인격을 취하신 그 모든 것들을 가지신 그분이
바로 이 사망에 거하여 음부에 갇혀진 채 죽게 되었지만 그분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주께서는 살아생전에 소유한 모든 것들을 다시 소유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라는 사실로 누구도 이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삶이 아니라 성공한 삶을 산 자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 바로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3장 15절에서는 하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님을 살리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통치자를 죽였도다. 그러나 그분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으며 우리는 그 일에 증인이니라.
또한 사도행전 10장 41절에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요.모든 백성에게 보여 주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신 증인들 곧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신 우리에게 보여 주셨느니라.
모든 백성에게 주님의 부활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신 증인들 곧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신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라고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신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분을 살리셨다라고 말씀 하시고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14장 9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그분께서 죽은 사람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기록들은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분의 역사에 대한 그분의 일들과 인격과 사역과 모든 행하신
일들을 입증하시고 승인하는 증거로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죽으셨지만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인생의 삶을 통하여 이루신 모든 사역과 역사들이 바로 그분의 부활 안에서
바로 성공의 증거로서 나타났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스스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1절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데요.모든 백성에게 보이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신 증인들
곧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그분과 함께 먹고마신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도행전 10장 41절 말씀을 통하여 사도 베드로 선생님은 제자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신 자들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한 증인들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한 그 모든 제자들은 낙담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어떤 제자들은 자신들이 바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귀향하는 그러한
제자들도 있었고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은 몹시 실망하고 좌절하는 가운데 문을 꼭 닫고 정말 비통한 마음 가운데 주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실망하고 절망 가운데 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죽음을 통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셔서 무덤 속에 들어가신 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그 제자들은 그 어떤 일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그러한 나약한 자들이었음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늘 주님 곁에 있어서 주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통하여 성공하는 삶을 살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에 죽음 안으로 들어간 예수님을 보고는 크게 낙심하고 절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결코 무덤 안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제 3일에 바로 이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24장 41절부터 43절에 기록한 말씀인 것입니다.
24:41 그들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할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여기에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24:42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그분께 드리매
24:43 그분께서 그것을 받으사 그들 앞에서 잡수시더라.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셨죠.
육의 몸을 가지고 제자들을 대하셨던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의 몸이 되셨습니다.
영의 몸을 가지신 그분은 이제 어떤 제한이 없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받으셔서 제자들 앞에서 친히 잡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부활의 날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가지 특별한 주요한 일을 행하셨는데
그것은 요한복음 20장 22절에 제자들 안으로 그 영을 내쉰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성령님을 받으십시오.
첫 번째로는 부활의 날에 바로 그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제자들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성령님을 받으십시오라고 말씀하시고 두 번째 사건으로는 바로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면서 불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려서 예수님께서 잡수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은 부활하신 사건을 통하여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변형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부여해 주신 일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계시의 말씀인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성령님으로 나타난 생명의 호흡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부활을 통하여 생명의 양식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으로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이며 바람인 성령님을 부여해 주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신 이 부활하신 영의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로 생명 양식을 제공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계시해 주기 위한 것으로
이렇게 주님의 부활의 날 동안에 제자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일을 보여주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친히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부활의 놀라운 결과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위선적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유대의
백성들이나 또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
요한복음 10장 15절 말씀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요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알 듯이 내가 아버지를 아노니 나는 양들을 위해
내 생명을 버리노라. 10:17 이러므로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내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그것을 버리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 하시는데요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생명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3장 15절에 여러분은 생명의 창시자를 죽였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는
이 일의 증인님들입니다. 생명의 창시자인 그분은 목숨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분입니다.
생명의 창시자는 사도 행전 3장14절의 바나바라는 살인자와는 큰 대조를 이루는 말입니다.
살인자는 생명을 죽이는 자이지만 창시자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기원자시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18절에 나에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다만 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목숨을 버릴 권위도 있고 다시 얻을 권위도 있습니다.
목숨을 버릴 권위도 있으시고 다시 얻을 권위도 있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또 18절 하반절 마지막에 이 명령은 내가 나의
아버지께 받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그 죽임을 당하신 것은 외부에 어떤 사람들 때문에 외부적인 환경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의 창시자인 그분이기 때문에 생명의 창시자인 그분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으셨고 또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취할 수도 있다라고 얘기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통하여 모든 인류들과
그 안에 특별히 주님을 쫓고 주님을 따르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 말씀을 주신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양들을 위하여 곧 인류 가운데서 믿는 자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리라고 내게 명령하셨으므로
난 이것을 행합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내게 다시 일어나라고 명하셨으며 나는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지금 나는 성공의 증거로 제자들 앞에 사람들 앞에 목격한 바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스스로 그분은 생명의 창시자로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이므로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셔서 그분의 생명을
다시 취하신 것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그 부활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나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성취 안에서의 성공의 모습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성육신 하신 그 순간부터 30년의 인생을 사시고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이 구속의 사역들이
전혀 헛되이 행하지 않고 모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성공적으로 성취되었다 라는 것을 인쳐주시고 확증시켜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서 성육신하시고 성령님으로 잉태하셔서 신적인 본성을 가지시고 또 사람 여인의
몸을 취하셔서 바로 이 인성의 본성을 가지시고 세상에 태어나셔서 이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삶을 사셨지만 만약에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무덤에 계속 머물러 계셨다면 그동안에 하셨던 예수님의
모든 일들과 사역들이 실패의 표시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3일후에 다시 살아 나시므로 인하여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성공의 증거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그분의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리스도가 하신 모든 일들을 입증하고 승인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의 그 행한 모든 일들에 대한 성공에 대한 표시로 스스로 일어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주님에 의하여 친히 일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살리시는 하나의 관점과 하나의 입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계시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나셨고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는 일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님 스스로 주님 자신의
생명을 버리셔서 다시 살아나신 이 두 가지 유형의 방면을 우리가 인식하고 주님의 부활을 묵상해야 될 것입니다.
부활은 주님의 위대한 성공에 대한 표시입니다. 또한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 부활하신 것은 사망과 사탄과 음부와 무덤을
정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라고 사도행전 2장 24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의 결코 붙잡혀 계실 수 없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부활은 이 사탄으로 인하여 기인된 모든 사망과 음부와 무덤을 이긴 것일 뿐만 아니라
정복한 그리스도에 대한 승리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탄으로 인하여 기인된 것들은 사망이요 음부요 무덤인 것입니다.
사단은 죄의 근원으로서 죽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사탄과 사망과 음부와 무덤 이 죽음은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한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아주 하나님과 반대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 무리로 형성된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시키셔서 살아나시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주께서 행하신
모든 것들을 입증하시고 그분이 하신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이루시고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성공하셨다 라는
것을 증명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 사단으로 인하여 기인된 그러한 사망과 음부와 무덤과 같은 그 모든 어둠에 속한 것들을
정복하여 승리를 거두신 것이 바로 구주의 부활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바로 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멸하시고 사망을 정복하셨다라고
히브리서 2장 14절에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14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2: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사단 곧 마귀를 멸망시켰다라고 말씀 하고 계신데요.
그러므로 사망과 음부와 죽음을 이기고 통과하고 정복한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열쇠와 음부의 열쇠와 죽음의 열쇠
그 모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이제 그리스도 자신의 손 안에 있게 하셨다라고 계시록 1장 18절은 우리에게 기록하고
있습니다.1:18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이기고 음부인 무덤을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에 이제 사망과 음부의 열쇠는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서는 이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분명히 드러났으니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 곧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무엇을 통하여 사탄 마귀를 멸하셨습니까? 히브리서 2장 14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단 마귀를 바로 멸망시키셨습니다. 어떻게 그분이 이 사탄 마귀를 멸망시킬 수가 있으셨습니까?
만약에 그분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이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 마귀를 멸망시킬 수가 없었겠죠.
그런데 그분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사탄을 멸하시고 사망을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을 삼키는 부활을 통하여 사망을 온전히 폐하셨던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52절, 53절 말씀입니다.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15: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우리의 썩을 몸이 썩을 것과 죽을 것에서 부활하거나 변형되어 영광과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때를 위해서 생명이
죽음을 이기는 것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썩을 몸이 변형되는 것으로 완결된다라는 것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죽을 영을 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썩을 몸이 변형된 것으로 완결되는 이 두 끝 사이에 우리의 타락한 혼이
부활의 실제이신 생명주신 영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유기적인 신진대사적인 어떤 변화와 변형되는 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일들이 이렇게 발생되는 것임을 우리에게 성경은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망을 삼키는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폐하시고 사망을 아무런 효력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삼키는 부활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자인 마귀를 멸망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사망을 삼키는 부활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온전히 폐하시고 그리고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사망을 패배시킨 것만이 아니라 사망을 완전히 폐하셨던 것입니다.
사망이 결코 자리 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사망은 전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사망이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을 조금도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망의 그 권위와 냄새와 맛을 모두 잃어버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사망의 능력을 가진 자 마귀를 멸망하셨던 것입니다.
그 사탄을 정복하시고 사망을 폐하심으로 말미암아 음부와 무덤을 이기시고 그리스도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믿는 자들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그 사망 안에서 우리 또한 음부와 무덤을 이길 것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과 사탄과 음부와 무덤을 모두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것을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부활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죽음에 대한 것은 아주 대부분 보편적으로 설명하고 교제의
말씀을 나누고 인도하는 목자들이 이 십자가 죽음에 대한 것은 많이 말씀하고 있지만 부활과 승천에 대한 것은
그렇게 많이 예배를 통해서 말씀으로 나누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아~ 부활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망을 정복하여서 승리를 거두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덤을 완전히 정복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음부와 무덤을 정복하여 승리를 거두신 이 일들을 선포하는 것은 사탄에 대한 승리의 포고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사단 곧 마귀를 멸망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죽음과 사망을 삼키는 부활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단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죄를 무효화시킨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향한 입증일 뿐만 아니라 승인이고 승인일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한 완전한 성공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비록 죽임을 당하셨으나 생명의 창시자인 그리스도께서는 사망과 사탄과 음부와
무덤을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그 것들안에 있는 사망을 폐하시고 마귀를 멸망 시키므로 곧 사탄을 완전히 정복하심으로
말미암아 음부와 무덤을 이기시고 승리의 열쇠를 가지셔서 그를 쫓고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 또한 음부와 무덤을
이기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이런 모든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과 더불어 자신의 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장면을 우리가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오게 했을까요? 예 사탄을 멸망시키시고 음부와 무덤을 포함한 모든 사망을
정복한 구주에 대한 승리일 뿐만 아니라 부활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3장 31절 32절의 말씀입니다.
13:31 그러므로 그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도다. 13:32 만일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자신 안에서
그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요, 즉시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라.
누가복음 24장 26절에서도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24:26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고 구주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는 일이라고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밀알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하나 그대로 남아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어떻게 죽는데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까? 여러분 이게 이해하기가 굉장히 난해한 말씀인데요.
한알의 밀 안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생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밀알이 죽음이라는 깜깜한 어둠 가운데 땅에 뿌려질 때 죽을 때 어둠 가운데 묻혀 질 때 흙 아래 갇혀질 때
바로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을 때 동시에 그것이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하여서 그 죽음 안에서 그 어떤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만일 밀알들이 땅에 심겨지지 않는다면 죽지 않는다면 깜깜한 어둠 가운데 묻어지지 않는다면 그 밀알은 죽지도
자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 들어간 씨 죽음 가운데 들어간 씨 깜깜한 어둠 가운데 묻혀진 씨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결국 그 생명으로
인하여 성장하고 자라게 되어서 밀알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그 씨가 나타나는 그 일이 영화롭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롭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영화롭게 되는 것을 착각하고 오해하여서 다른 것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 어떤 그 개체적인 것이 밀알이면 밀알이라는 것이 변형되어져서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화되어지고 변형되어져서 찬란한 꽃을 피우는 그것이 바로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한알의코스모스가 있다면 코스모스 씨앗을 땅에 뿌렸는데 그 뿌린 씨앗이 땅에 들어가서 죽음 가운데 어둠 가운데
묻혀져서 그것이 자라고 성장하고 결국 어떤 것으로 나타납니까? 코스모스라는 꽃으로 나타내게 될 때 바로 그 코스모스
그 씨앗이 영화롭게 되는 것은 바로 코스모스 꽃을 찬란하게 피우는 그것이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의 몸을 가지신 분이셨으나 마치 높은 변화 선상 위에서 변화되어져서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여주신
것처럼 변화되고 변형되어지는 것이 그분의 영화롭게 되는 것에 대한 부분적인 한알의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분이 제3일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변형되어져서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밀알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주 예수님께서는 땅에 떨어져 죽으신 한알의
밀알로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바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땅속 깜깜한 어둠 속인
무덤이란 음부 속에 들어갔지만 땅속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음부 속에 들어갔지만 사실 그 죽음 가운데 또 한편으로
자라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알의 밀알에는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창시자이셨기 때문에 그 한 알의 밀알이 수많은 밀알들로 나타나게 되어서 수많은 밀알들을
산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많은 밀알들이 그분의 영화롭게 된 것입니다.
마치 코스모스 씨가 뿌려져서 땅속에 들어간 씨, 죽음 가운데 들어간 씨, 어둠 가운데 묻혀진 씨가 꽃을 피우는 것이
바로 코스모스가 영화롭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한알의 밀알로 땅속에서 죽어짐을 통하여 그 밀알 안에는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생명이 자라고 성장하여 결국에는 수많은 밀알들을 산출하셨는데 이 수많은 밀알들이 그분의
영화롭게 됨이라는 것입니다.
영화로움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화되어지고 변형되어진 결국에 그것이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합당한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은 바로 이 주님의 영화롭게 됨에
모델이며 모형이라고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오늘날 합당한 교회 생활 안에서의 성도들의 교제는 성도들의
모습은 성도들의 삶을 나타내는 것들 모두가 바로 주님의 그 영화롭게 됨에 또 하나의 나타남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을 통하여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23절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어떻게 영광스럽게 될 수가 있었습니까? 바로 사람 여인의 몸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지니신 그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곧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한 알의 밀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인성을 지니신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분이셨지만 그분이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인성을 지니신 그 인성의 껍질 안으로부터 그분의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어야만 바로 부활 안에서
많은 이들이 산출되어지는 그 영화롭게 되는 일들을 가져올 수가 있게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크신 긍휼에 따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살아있는 소망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인성의 껍질 안으로부터 그분의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어야만 그분이 영화롭게 되는 일
곧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본성을 가진 인성의 껍질이 산산이 으깨지고
눌려지고 쪼개지고 압박당해지고 찔려짐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산산이 산산이 부서졌던 것입니다.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부서져야만 그분의 신성한 생명이 해방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영화롭게 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인간의 본성을 지니신 인성의 껍질을 산산이 부서뜨렸던 것입니다.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는 것이
가장 큰 주님의 목마름이요 갈망이요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인성의 껍질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시고 고통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산산이 으깨지고 눌려지고 깨어지고 쪼개지고
부서짐을 통하여 그분 안에 신성한 생명이 부활을 통하여 해방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인성의 껍질이 십자가 위에서 부서져야 되고 부활을 통하여 그것이
해방되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지금 한 이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한 알의 밀알이신 주님 안으로부터 그 한 알의 밀알 안에는 생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한알의 생명의 밀알이신 주님
안으로부터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그 본성이 해방되어지는 것이 바로 그분의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화롭게 되는 일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거듭나게 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는 주님께서 간절한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옵소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육신 되셨을 때 하나님이셨지만 성령님으로 잉태하셔서
신성한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셨으나 또한 사람 여인의 몸을 통해서 오셨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지니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되셨을 때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며 또한 인성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으로 잉태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통해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 아기 예수님으로 태어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 사람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곧 하나님이신 신성과 사람이신 인성을 가지셨으므로 말미암아 결코 하나님만이 아니셨습니다.
그렇다고 인간만이 아니셨습니다. 성육신 하셔서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신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긴바 되어 하나가 되는 절차 하나가 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분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껍질을 가지신 주님께서 그 껍질을 통과하고 부서져서 구주의 껍질이
벗겨짐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는 일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요한복음 12장 23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영광스럽게 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 그분의 영화롭게 됨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알의 생명의 밀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지니신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 인성의 껍질이 벗겨져야 됩니다.
인성의 껍질이 벗겨지고 그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어져서 하나로 어우러져야 됩니다.
이 일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의 껍질이 부서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반드시 선제적으로 그분이 가져야만 바로 죽음을 통해 부서진 구주의 인성의 껍질이
구주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인성이 신성안으로 옮긴 바 되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인성이 신성안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영화롭게 되어져서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분의 신성과 그분의 인성으로
더불어 부활하신 것입니다.
신성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또 인성만도 아닙니다.
그분이 부활하셔서 살아나셨을 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더불어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서 다시사셨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성의 이 부활이 그분의 영화롭게 됨인 것입니다.주님의 인성의 부활은 주님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겨지는 일입니다. 바로 변화되어지고 변형되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그분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긴 바 되었을 때 영화롭게 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지금 영광 안에 계십니다라고 얘기를 하면은 그분이 하늘에 계신 것으로
그렇게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들을때 단순히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신 것만을 이해를 하고 강조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24장 26절에서는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고린도전서15장 43절에서도 그분을 영광 안으로 이끈 그분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 그분의 영광으로 이끈
그분의 부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그분이 영광 안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주님의 인성의 껍질 안으로부터 해방되셔서 신성과 더불어 바로
이 부활하시는 것이 그분의 영화롭게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겨지는 것 그것이 영화롭게 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그분이 영광 안으로 들어가셨는데요.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고 영화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밀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인성을 지니신 분이셨으나 부활을 통하여 신성한 생명이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인성이 신성안으로 옮긴 바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화롭게 되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본래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하는 자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나사렛 사람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죠? 갈릴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얘기를 그토록 성경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주님께서 천한 신분의 사람이 되셨다 라는 것을 계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천한 신분의 사람이셨습니다.
그 천한 신분의 사람이신 한알의 밀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천한 신분의 소유자인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분으로서 삶을
사셨지만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산산히 부서지고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본성이 부활을
통하여 해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영화롭게 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분의 비천한 인성이 놀랍도록 고귀하고 거룩한 신성함으로 옮긴바 되어진 이것이 주님의 영화롭게 됨인 것입니다.
영화롭게 됨은 놀라운 변화 하늘과 땅 사이처럼 극과 극을 나타낼 때 영화롭게 된다 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가장 비천한 그 목수의 아들인 나사렛 출신의 비천한 인성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부서졌을 때 그 인성의 껍질 안에 가장 중요한 주제요 내용물이요 중심인 그 신성한 생명이 부활을 통하여
해방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껍질이 부서져야 됩니다. 그 껍질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통하여 인성의 껍질이
쪼개졌을 때 창에 찔림 받았을 때 그것이 흘러나와 해방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비천한 나사렛 출신의 그분의 인성이 사람 여인의 몸을 통해서 오신 그 인간의 인성이 신성 안으로 옮긴바 되어진 것이
그분의 부활을 통해서 이 일이 발생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분이 비천한 삶을 사시고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소유자로 삶을 사셨지만 그분께서 삶을 사시는 33년 반
동안의 생애의 기간을 통하여 정말 아름다운 미덕들을 지닌 인격을 지니시고 그분의 어떤 위엄과 영광과 그분의 도덕적인
어떤 아름다운 품성들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그분의 부활은 그분의 모든 것들을 영화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부활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영화롭게 하셔서 믿는 자들을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구주를 영화롭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맏아들로 나시게 한 것이 바로 부활 사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맏아들의 탄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33절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은 시편 제2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시기 위하여 부활 아래서 하나님께 낳으신 바 되셨다 라고
로마서 8장 29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8: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장 18절 말씀을 통하여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였습니다.
그런데 성육신 후에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였던 그분이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던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후에 부활을 통하여 그분은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시려고 그분의 인성안에서 하나님께 낳아진 바 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부활을 통하여 성육신하신 그분은 인간의 껍질을 지니시고 인성의 껍질 안에서 사셨던 분이십니다.
그 인성의 껍질 안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신성한 생명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 계셨어요
보이지 않고 바깥으로 해방시켜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께 낳으신 바
되셨습니다. 부활은 이와 같이 여러 방면에 그 인류를 향한 인간을 향한 모든 정말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서 축복해
주시려고 하셨던 모든 것들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그리스도의 그 구속사역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들을 주시기위하여 노심초사하면서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영원부터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외아들 한 분이셨던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부활의 날에 하나님께 맏아들로서 낳으신바 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편 2편 7절에 기록된 똑같은 말씀입니다.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맏아들이란 무엇입니까? 맏아들이 첫 번째 아들이고 다른 수많은 아들들이 계속 나타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맏아들입니다.그러므로 우리들은 맏아들 아래에 있는 그분의 허리에서 산출되어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낳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맏아들로 낳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아주시기 위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0절에서는 수많은 아들들을 말하고 있는데요.만물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또 하나님을 통하여
존재함으로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시려고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시는
것은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도 많은 형제들에 관해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부활을 통하여 낳으셨고 맏아들이라는 말은 그 후에 다른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다른 아들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이 로마서 8장 29절인데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그 주님께서 자신의 몸이요 지체로 산출시키신 교회를 구성하는 그분의 형제들에게 오셔서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선포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히브리서 2장 12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내가 교회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을 통하여 인성을 입으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껍질을 지니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곧 성령님으로 잉태하심으로 신성을 지니셨고
그리고 사람인 여인의 몸을 통하여 인성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얘기해서도 안 됩니다.
전적으로 사람이십니다라고 얘기해서도 안 됩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잉태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을 입으셨고 사람의 몸을 통해서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사람이 되신 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부활 안에서 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맏아들로 낳으셨다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이렇게 하나님의 맏아들의 탄생으로 보여지게 하는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육신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인간적인 본성은 없고 오직 신성한 본성만 있었던 것입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는 신성한 본성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본성도 가지고 여인의 몸을 통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 독생자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기 위해서 하나님 사람이 되신 이분이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는 신성한 본성은 물론 인간적인 본성을 지니신 분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맏아들로
이 세상 우리에게 계시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이 그리스도 안에 포함된 우리들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들이오 맏아들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을 통하여 우리가 신성한 본성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오
맏아들의 형제들이라고 베드로후서 1장 4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예 우리는 주님의 영광과 미덕에 이르도록 부름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약속들은 탁월한 미덕인 우월한 미덕 아름다운 최고의 품성을 지닌 최고의 도덕적인 수준을 지니신 정말 아름다운
미덕의 품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생명 능력을 통하여 그분의 영광에 이르도록 믿는 이들 안에서 오늘날 성령님을 통하여
이행되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면 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으로 잉태하셔서 신성을 지니시고 사람의 몸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이루셨기 때문에 하나님 사람이
되신 것이 바로 성육신인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전적으로 사람입니다. 신성한 본성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껍질을 지니신 한알의 밀이신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산산이 부서짐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한 생명이 부활을 통하여 해방되심으로 생명주는 영이 되셨으니
이 생명주는 영을 통하여 인간이 신성한 본성을 소유할 수가 있게 되었던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일인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신성하시지만 또한 인간적인 본성을 소유하고 계신 성육신하신 분입니다.
성육신은 주 하나님의 독생자를 신성한 본성을 지니신 그분께서 인간적인 본성을 소유하게 한 사건이 성육신 사건입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 모두 두 종류의 모든 본성을
소유하고 계신 것처럼 그분의 부활 안에서 주님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육체 안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던 신성한 생명이
부활을 통하여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본성을 인간에게 주입시킴으로
말미암아 인간 또한 인간적인 본성과 신성한 본성 모두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거듭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신 것처럼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부서짐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생명의 부활을 통해 해방되어져서 신성한 생명의 본성을 우리에게
주입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을 지닌 사람이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하여 부활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그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의 해방이었던 것입니다.
부활이 아니면은 주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인성을 지니신 인간의 껍질만을 지니시고 계셨기 때문에 그분 안에 계셨던
신성한 생명과 본성이 전혀 바깥으로 유출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신성한 생명과 본성이 유출되어져서 해방되어지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산산이 그분의 인성의
껍질이 완전히 쪼개지고 으깨지고 눌려지고 압박당해지고 완전히 파쇄되어야만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해방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신성한 본성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아니한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해방되어진 이 생명주는 영이신 그분의 영화롭게 되는 이 거듭나게 하는 그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부활은 성공의 증거였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는 사망과 사탄과
음부와 무덤을 이긴 그분의 승리였고 또 주님과 하나님의 어떤 관점에서 볼 때는 그분의 영화롭게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0절에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맏아들의 탄생을 갖게 한 것이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영화롭게 되는 일이었다라는
것을 말씀 드리면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1부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