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캄캄한 밤에 어쩌자고 혼자서 길을 나와 이렇게 헤매는가. 따발총을 쏘듯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누가 개구리 울음소리를 낭만으로 묘사했는가. 개굴개굴 애정행각을 벌이는지 사랑싸움을 하는지 귀청이 찢어질 듯 떼 복창을 한다. 지극한 구애와 야단법석 수다에 오금이 저린다.
백미러를 힐끔거린다. 칠흑같은 어둠이 스멀스멀 손을 내밀어 어깨를 짓누르고 목을 조를 것 같다. 보이지 않지만 주시하는 눈길을 피하여 앞을 본다. 전방을 주시하며 불빛이나 민가를 찾는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집 한 채,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차창에 여인 하나가 불쑥 고개를 디밀 것 같다. 아니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고 “저어기까지만 태워 주세요.” 한다면 어쩌지 싶다. 계속 앞으로 나가기에는 밤길은 너무나 무섭다. 뒤돌아 가기엔 한참을 와 버렸다. 핸들을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논두렁으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진퇴양난은 전시에만 사용되는 사자성어는 절대 아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이유로 부부싸움을 했는지, 그날 난 왜 참지 못하고 집을 나와야만 했는지 중요하지가 않다. 밤 10시가 넘어 현금과 신용카드, 통장과 차를 가지고 나온 중년의 여자에게 그날은 단지 개구리 울음소리와 무서움만으로 기억될 뿐이다.
여자는 다짐했다. 이번만은 본때를 보이리라.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손을 봐 주리라. 일주일쯤 집을 비우고 연락 두절하리라. 둥지를 잃은 자, 불안과 불면의 밤으로 불침번을 서게 하리라. 화생방전을 펼치듯 야금야금 눈물 콧물 다 짜게 하리라. 고엽제를 뿌린 듯 바싹 타들어 가는 심정이 어떤지 알게 해 주리라.
집을 나서며 나름 계획도 세웠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쓴다. 잠은 청결하게 정돈된 호텔 침대에서 잔다. 전망 좋은 카페에 나오면 차 한 잔을 한다. 밥값이 얼마이든 금액을 보지 않고 곳곳의 음식을 먹고 즐긴다. 먼 길 채비에 든든히 챙겨 온 가방 탓인지 한 달도 거뜬할 것 같다.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으로 곧장 달려가야 할 길이었다. 가는 길에 경주에 있는 무궁화 다섯 개는 되는 호텔에서 잠자기, 감포로 가는 구불렁 길도 달려보고 포항 호미곶도 구경하고 영덕이나 울진 포구에서 시구도 떠올려 보기, 그리고 더 가서 주문진이나 묵호항에서 회도 맛보고 짭조름한 갯내와 함께 취해 보기. 〈묵호〉 시인 이동순의 시에 나오는 나포리 다방과 묵호 극장도 둘러볼 것이다. 하지만 왠지 출발부터 불길한 기운이 살살 감긴다.
첫아이를 낳고 반년이나 되었을 때 첫 번째로 집을 나왔다. 당시에는 시어머니와 시동생 둘, 여섯 식구가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고단한 시집살이와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있던 힘든 시기였다. 그날의 싸움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저런 일로 엉킨 실타래를 잘 풀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컸던 탓이다. 내가 무엇을 서운해하는지 모르는 남편을 향한 미움이 송곳처럼 뾰족해져 어린 것을, 안고 기저귀 가방 하나만 달랑 챙겨 나왔다. 마땅히 갈 데가 없었다. 친정에 가기도 그렇고 친구 집에 갈 수도 없었다.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무작정 왔는데, 막막해졌다. 어린 것은 가슴팍에 달려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나오긴 나왔는데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가 더 고민이었다. 모른 척 들어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터미널 근처 동네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신랑이랑 싸웠다고 하며 좀 나와서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궁색하지만 몇 시간이라도 버티다가 들어갈 셈이었다. 반 시간이 나 지났을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친구가 아니라 피식 웃는 남편이었다. 눈치 있는 친구 덕분에 첫 가출은 승리를 가장한 패전으로 끝났다.
하지만 지금은 신혼도 아니고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집으로 바로 들어간다면 노장이 택할 전술이 아니다. 어떻게 되돌아왔는지 차를 돌려 송정 바닷가에 차를 세운다. 환한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무서움으로 가득 찼던 오줌을 버리며 살 것 같다. 라이브 카페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에 차를 세워서 그런지7080 노래가 가슴을 뜯는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혼자서 라이브 카페도 못 들어가는 주제에 호텔에서 혼자 잘 생각을 다 하다니 싶어 웃음이 피식 난다. 신혼의 가출은 눈앞이
캄캄하더니 중년의 가출은 무슨 배짱인지 느긋하기만 하다. 연륜도 있으니 노장다운 체면과 전략은 있는 법이다.
딸아이에게 살짝 전화를 건다. 문고리를 안에서 걸지 말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치사하게 눈치를 긁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쁜 것, 제 아빠를 닮아 일부러 하는 짓이 밉상이다. 아빠를 닦달해서 엄마를 찾게 하는 것이 딸의 도리이거늘 전화조차 안 받다니, 이번 달 용돈은 어림없다. 그냥 차 안에서 날밤을 새고 아침에 들어갈까 하고 좌석을 뒤로 넘겨 누워본다. 밤하늘에 연인들의 축포가 조명탄처럼 펑펑 터진다. 계속 에어컨을 켜둘 수도 없어 열어둔 차창으로 모기가 들어와 웽웽거린다. 작은 모기 한 마리에 차를 돌린 난 얼마나 가벼운가 자책한다. 설마 사람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안에서 문고리까지 잠그지는 않았겠지. 전술을 바꾸어 행운을 빌어본다.
대문은 방호벽인 양 육중하게 닫혀있다. 살짝 손잡이를 돌린다. 잠겼다. 젠장! 암호를 외치듯 비밀번호를 누른다. 척하고 열리는가 싶더니 컥 소리를 내더니 개구멍만큼 열린다. 욕이 나오려 한다. 다시 호기 좋게 나가야 하는지 치사하게 벨을 울려야 하는지 짧게 고민한다. 패잔병처럼 조심히 벨을 누른다. 적막만이 흐른다. 문을 두드려 보지만 감감무소식이다.
“00야, 문 열어, 빨리!”
문이 열린다. 왜 이렇게 문을 늦게 여냐는 말에 딸아이는 이어폰 탓이라며 무전병이라도 된 양 웅얼거린다. 아들은 사타구니에 베게 하나를 끼고 숙면에 들었다. 안방에서는 개구리 떼창보다 높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정도의 전시상황이면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 이번 패자 부활전 역시 전 씨 가문에 남씨댁의 완패다. 평생 포로 생활을 해야 될지도 모를 것 같은 예감에 완전군장을 했던 가방을 떨어뜨린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문구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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