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리구 봉사자 김철우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26일 예정인 문충 신앙 올레길의 자료를 올리오니 참고하시고 주변 분들과 함께 보람있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문충 신앙 올레길 참가자를 위한 자료
1) 문충 신앙 올레길의 이해
문충 신앙 올레길은 포항 지역에 처음 공식적인 공소가 세워져 공소 예절이 있었던 문충 지역과 경주 성동 성당간의 통행로였던 오어지 대골에서 덕동댐 상류까지 차량 통행이 없는 옛길을 말한다.
이 길은 신라 때 원효 대사가 고선사에서 오어사로 오갔던 가장 가까운 길이며 포항 지역의 초기 교우였던 유치수 필립보가 걸어서 경주와 부산까지 신앙생활을 이어갔던 길이다.
또한 김종륜 루카 순교자의 손자인 김경호 야고보 회장이 미사 성구를 등짐지고 문충 공소 공소예절을 위해 오갔던 길이기도 하다.
2) 문충 신앙 올레길과 유치수 필립보
유치수 필립보의 삶과 신앙-- 오천성당 20년사에서 정리함.
문충리에 살던 유치수 필립보는 24세 무렵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을 구하러 떠돌아다니다 예천 유천면의 임장하의 집에 머슴살이를 하며 연명하였다. 27세 때 유치수는 그의 성실함으로 주인집 딸과 결혼하여 대릴사위가 되었고 이후 분가하여 화전민이 사는 문경 백화산으로 들어갔다. 이곳 문경 백화산은 박해를 피해 모여든 신자들의 피난처였고, 유치수 부부는 그들과 함께 살며 1898년 필립보와 루시아라는 세례명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해 고향인 문충으로 돌아와 살게 되었다.
유치수 필립보는 귀향하여 대대로 유가의 전통을 이어가던 본가의 기제사를 철폐하고 집안의 문중 행사와 제례를 동생에게 넘겨주고 신앙생활 중심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교중 미사를 위한 1박 2일의 길
유치수 필립보는 1926년 경주 성당(성동성당) 건립 이전 까지 부산지역으로 5박 6일의 길을 걸어 일 년에 네 차례의 대축일 미사를 다녔다. 1926년 경주 성당이 건립되고 난 뒤에 그는 문충에서 경주까지 산길을 걸어(이 길이 문충 신앙 올레길이다!) 주일미사에 참여하였다. 그에게 경주 성당의 설립은 복음중의 복음이었으며 꿈에도 그리던 성전과 신부님을 뵈옵게 되니 천하를 얻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경주 성당의 2대 신부님인 가닥스 신부님은 자전거로 포항을 경유하여 문충으로 미사를 집전하러 오셨는데 신부님의 자전거를 구경하러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놀라기도 하였으며, 경주성당의 김경호 야고보 회장은 미사 성구를 등짐으로 지고 미사 시간에 맞추어 1박 2일의 산길을 걸어 문충으로 오갔다고 한다.
문충 공소 교우들의 대축일 미사참례의 길
1931년 유치수 필립보는 자신의 집 옆에 세 칸 겹집의 초가로 문충 공소를 세워 공소 예절을 진행하였으며 부근의 교우들이 늘어나 20여 신자들이 생기게 되었고 축일에는 가족과 이웃의 교우들까지 모여 경주까지 산길을 걸어 미사에 참례하였다.
1931년에서 1945년까지 경주 성동 성당의 세례대장에 의하면 주소지가 문충으로 기록된 것이 20여건 확인되었는데, 문충의 신자들은 세례를 받기위해 또한 대축일 미사참례를 위해 이 산길을 늘 걸어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50년 포항본당이 설립될 때 까지 약 25년간 유치수 필립보 가족은 손자 유만준 요한까지 데리고 이 산길을 걸어 미사 참례를 하였다.
3) 유치수 필립보의 손자 유만준 요한의 증언
유치수 필립보의 손자 유만준 요한은 1931년생으로 경주 성당 2대 신부님께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7살 무렵 처음으로 경주까지 산길을 걸어 미사참례를 하였는데 그의 기억으로는 가다가 다리가 아파 어머니의 등에 업혀갔던 기억이 있었으며 포항 성당이 세워질 때 까지 이 길을 걸어 미사에 참례하였다 한다.
이른 새벽밥을 먹고 주먹밥이나 간단한 음식을 준비한 뒤 교우들은 옛날부터 있었던 문충 지역과 경주를 이어 주는 가장 가까운 길인 안항사 윗쪽 대골로 들어가 계곡을 따라 올라가 산을 넘으면 남향의 아담한 왕산 마을이 나오고 계곡을 따라 걸어 가다가 계곡물로 점심을 먹고 보문을 거쳐 경주에 도착하면 저녁때가 되고 성사를 본 뒤 그곳 교우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으며 다음날 미사에 참례를 하고 다시 돌아오면 어두운 밤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문충 공소에 오신 가닥스 신부님은 1909년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우리나라에 오시어 경주 성당 2대 신부님으로 계셨으며 이후 대전 목동 천주교회 주임신부로 재직 시 1950년 8월 19일 북한의 포로가 되어 감옥에 계시다 1950년 12월 16일 굶어 옥사하셨다고 신부님의 증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유만준 요한은 한국 전쟁중 군 입대를 하여 4년 8개월 복무 후 2등 중사로 1955년도 제대를 하였으며 군 복무 중 휴가차 집에 와서 성사를 보러 죽도 성당에 나갔을 때 구 신부님의 증언을 들었다 한다. 구 신부님은 가닥스 신부님과 함께 한국 전쟁 중 포로가 되어 하청리 감옥의 독방에 감금되었는데 자신은 화장실 옆의 감방이라 하느님이 내려주신 감사의 양식인 구더기가 있어 그것을 먹고 살아날 수가 있었으나 가닥스 신부님은 식량이 없다는 핑계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다. 이제 유만준 요한은 오늘날 까지 음식에 대해서는 먹을 만큼만 먹고 밥 한 톨도 남기지 않는 철저한 절약 정신과 살아있음에 감사드리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포항 지역 신앙인의 원로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는 분이다.
대구대교구 4대리구 시복시성위원회는 초기 진목정 범굴의 발견과 개발 활동을 시작으로 신앙 선조들의 시복 시성을 기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이며 신앙의 역사를 재 조명하고 성지 순례와 지역 역사 자료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곳 신앙 올레길을 2011년도에 시작하여 20여 차례의 답사와 조사활동을 통하여 찾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자연이 훼손 되지 않도록 하며 집으로 돌아 가실 때는 주변의 쓰레기들도 갖고 가는 모범 신앙인이 되시길 당부드리며 앞으로는 4대리구 초기 신앙의 역사 자료를 정리하여 우리 지역 신앙 활동의 뿌리가 올바르게 되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단체가 되겠습니다.
첫댓글 수고 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