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전란에 싸여 절대적인 식량이 부족했던 수많은 유럽인들의 생명을 구한 게 감자라는 말이 전해진다. 유명한 안네의 일기를 보면 주인공 안네는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면서 감자 한 알로 하루를 연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침에 받은 삶은 감자 한 알을 정성스럽게 하루 분량으로 쪼개어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유럽인들은 줄기 하나에 수없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감자에 대한 반감이 커서 악마의 식물이라고 혹평하고 경멸했지만 실제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면서 그들이 얻은 가장 값진 보물은 잉카의 황금이 아닌 바로 이 감자라고 생각한다.
현대적인 정미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쌀은 대부분의 영양소를 잃고 만다. 쌀 중에 쌀눈과 쌀겨에 대부분의 영양소가 모여 있지만 발달한 정미 기술은 이들을 모조리 깎아서 버리면서 백미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의 영양소가 날아간 빈껍데기만 먹는 꼴이다. 때문에 각종 채소를 함께 섭취하지 않고 쌀밥만 먹을 경우 배불리 먹는다 하더라도 일정한 시일이 지나면 영양실조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감자에는 인체에 절대 필요한 필수 영양소인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 안네의 경우처럼 아주 소량의 감자로만 연명한다 하더라도 쉽게 치명적인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다. 감자에 숨어 있는 이런 장점들이 전란 중에 신음하던 많은 유럽인들을 구했듯이 감자는 그야말로 천혜의 식품인 것이다. 요즘은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긴 하지만 말이다.
감자에 얽힌 에피스드도 있다. 중세 잉글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너무나 싫어해서 거부감을 가졌지만 지금은 영연방이 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아일랜드 인구는 대여섯 배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해 칠백만 명 정도가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해 감자가 썩는 병이 퍼지면서 대흉작이 아일랜드 전역을 덮치는 바람에 벡만 명 정도가 굶어 죽고 백만 명 정도는 바다를 건너 살 길을 찾아 떠나게 된다. 유명한 케네디 가문의 조상들도 당시 바다를 건넌 백만 명 중에 섞여 있었다.
[감자같은 선수]
만루홈런, 특히 투아웃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친 선수는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팬들 역시 짜릿함을 넘어 그야말로 환호하며 전율하게 된다. 그것이 대역전 홈런이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만루홈런의 전제 조건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 전제에 감자와 같은 역할을 해 준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투아웃에 주자가 없음에도 엄청난 집중력으로 볼을 골라내며 볼넷을 얻어내 기어코 출루에 성공한 선수도 있을 것이고, 불리한 볼카운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공을 보면서 커트를 거듭하다 안타를 친 선수도 있을 것이다. 또 빗맞은 땅볼을 친 뒤 혼신의 힘으로 1루까지 전력질주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에 성공한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투아웃 상황이면 대체로 팬들은 '이번 회는 어렵겠네?'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선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일지라도 선수들이 대단한 집중력을 가지고 달려들 경우는 경우는 사뭇 다르다. 앞서의 만루홈런은 이 전제조건들인 선수들이 단 하나라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성립하지 않는다.
두세 점 득점한 뒤에도 상황은 여전히 무사 2,3루나 무사 2루, 혹은 무사 3루인데 어찌된 일인지 어수선한 공격력을 보이며 추가 득점을 무산시키는 아쉬운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상황에 맞는 배팅이 아닌 자신을 위한 배팅 탓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들이다. 이런 어수선함의 결말이 경기 후반에 팀의 발목을 잡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되니 더욱 아쉽다. 적당히 점수를 낸 이후라거나 투아웃 상황에서 나선 타자가 타석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적당히, 혹은 어정쩡한 스윙이나 무기력한 스윙으로 물러나는 것은 뒤에 올지 모를 엄청난 가능성까지 함께 없애버리는 일이다.
팬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야구를 보면서 멋진 만루홈런이 나오면 홈런을 친 선수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멋지게 장작 역할을 수행한 감자와도 같은 선수들이 만들어냈던 과정들을 마치 영사기 필름처럼 촤르르륵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팬들은 만루홈런을 친 선수 못지 않게 그 조건을 충족시켜 준 선수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
투수들도 마찬가지다. 실점한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점에 평정심을 잃고 흥분하면서 추가 실점을 허용하는 게 문제다. 엎질러진 물은 쓸어담기 힘들지만 그런 상황일수록 더욱 차갑게 자신을 다스리면서 집중력을 가지고 더 엎지르지 않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노력은 팀이 영양실조로 쓰러지지 않도록 해 주고 반격의 여지를 만들어 주는 감자와도 같은 선수들이 해내야 할 역할인 것이다.
집중력 있는 수비 하나는 팀을 안정화시키는 견인력이다. 우리 투수가 몇 점을 실점하거나 수비에 임해 자신의 타격부진에 대한 고민을 떠올리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법한 분위기일지라도 타구 하나하나에 더욱 냉정하게 집중하면서 잡아내는 수비들이야말로 흐름이 상대편으로 어느 정도 넘어갔을지라도 그 흐름을 완전히 넘겨주는 일을 막는 역할이 될 것이다. 이 역시 역전의 여지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자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도록 해 주는 보이지 않는 감자와도 같은 역할이다.
'왜 우리 팀은 2사에 주자가 몇 있어도 기대감이 별로일까?'나 '왜 상태 팀이 2사 후라도 주자만 나가면 불안해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팬들을 계속 지배하게 되면 그 팀은 강팀이 못 된다. 감자와 같이 알찬 선수들이 많을 때 그 팀은 끈끈한 응집력을 갖추게 되면서 비로소 강팀이 된다. 한화의 후반기의 모습은 반드시 그럴 것이다.
한화 이글스가 승리를 거두는 데 있어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 숨을지도 모를 우리 선수들의 감자와도 같은 멋진 활약들을 보면서 어쩌면 가을쯤에 우리 모든 이글스 선수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영웅 이야기에 담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언제나 한화 이글스 파이팅!!!!!
첫댓글 자다가 목이말라 물마시고 시간이나
보려다 카페왔는데 청죽님 글올라온거
보자마자 그냥 클릭했습니다.
이런걸 믿고본다고하던가요..
역시..제 개인적으로 이 카페에서
가장 보고싶은 전형적인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감자..읽는동안
제가 스스로 느낀건 흔하고 흔하기에
그 가치를 더욱 모르고 살아가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다른 표현일수있겠지만 그 흔한감자같은
존재들이 있기에 지탱하고 유지되는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깨달음..야구뿐만이 아닌
살아가는 인생에서도 그러하다는거..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다고 무심히
생각했던것들을 돌이켜봅니다.
제게 감자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서현님 감성이 저와 비슷하신 듯.^^
주위에도 이런 고마운 존재들이 참 많습니다.
세상 역시 그런 이들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늦은 시간에 잠도 안 오기에 허둥지둥 썼다가 맞춤법이 여기저기
엉망이라 고치는 중에 서연님 댓글을 보고 반가움에 깜짝 놀랐네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청죽님 글은 정갈함이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전문적이고 분석적인 글들도
많은 유용한 정보를 전해주지만
우선 청죽님 글은 스트레스가없어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읽고나면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십니다.
너의 생각은어떠한것이냐..라고 되묻는듯..
저는 자게에다 야구에 대한 저의
글이나 생각들을 잘 남기지않습니다.
이유는 그것들이 저도모르게
제가보는 야구라는 편견속에
사로잡히게되고 공유보단 자꾸 저와
다른생각들과 대립하고 다툼이 되고..
그들을 설득하고자 좀더 제 생각에
타당성을 높이려고 스트레스를받게
되는것같았습니다.그래서 되도록
깊게 관여하지않았지만 청죽님 글엔
늘 답하고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전문 영역으로의 접근은 불을 보듯 한계가 뻔해서
가급적이면 언급을 피하는 편인데 어쩌다가 관여할 땐
역시 한계를 또다시 절감하면서 불편함을 느끼곤 합니다.ㅎㅎ.
나와 다른 생각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사실 무모한 일이긴 합니다.
서연님 답글을 보니 한 시간 정도 꼼지락거린 보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감자같은 선수!
멋진글에 감사드립니다.
퐝이글스님 고맙습니다.
사진속 선수들이 감자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봅니다!
팀에 필요한 자원들이죠.
저 선수들까지 영양가를 갖추면 한화 정말 무서워질 겁니다.
감자하면 떠오르는게 김동인 소설이죠~~~ 청죽님께서 말씀하신것첨 안네나 복녀도 감자가 상징하는 것은 생명줄이나 매한가지 같네요. 저는 강원도 태생이라 어려서 부터 먹은게 감자입니다. 감자밥, 감자부침,감자떡,감자수제비 등등.. 고구마를 먹으면 소화가 안되는데 감자는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되죠. 저만 그런가 몰라두 ㅎ 감자의 독특한 향이 있는데 전 그게 그렇게 좋을수가 없네요. 울선수들도 감자같은 선수들이 많아야겠죠.가을야구 아니 우승을 향해 가려면요~~~
야구없는 긴휴일 아쉽지만 청죽님 글로 위안을 삼습니다
저도 감자로 만든거 다 좋아합니다!!
감자전 먹고 싶어요..ㅎ
감자를 꼭 강판에 갈아서 부쳐야 제맛이징~~~
믹서기에 가는건요?
맛이 덜 하겠죠?
믹서기에 갈면 감자의 쫄깃한 맛이 없어서 맛이읎어~~~~
아하ㅋ
그냥...
사드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사주세요!!!
이번에! 우리카페 2관왕 올스타
고공비행님께 쏘라고합시다!
푸하하하하하~~~~!!!!
좋은 생각이지 싶습니다!!!!
음악방 고고~~!!!
고구마, 수제비, 보리밥...마흔 무렵 용서하고 화해했지만 제가 마흔 살이 넘도록 싫어했던 음식입니다. 어린시절 너무나 많이 먹어서 질렸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감자는 어릴 때 많이 먹었어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껍질째 삶을 경우 감자 특유의 아리아리한 맛을 무척 좋아하죠. 향은 물론이고요.
감자 특유의 향을 아시는 것 보니 확실히 본고장 출신다우십니다.
저는 감자에서 나는 향은 구수함이나 고소함들과는 차원이 좀 다른
자연의 향기쯤으로 받아들입니다.
잘보고 추천 하고 갑니다^^
로사리오님 감사합니다.^^
멋진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최강한화님.
추천수가 11개가 올라와서 확인해보니
역시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같은생각이었네요
감자에 비유한 너무나 멋진글입니다
별것 아닌 글에 늘 격려차 달아 주시는 헤르메스님 같은 분들 때문이겠죠.
오늘도 즐겁고 짜릿한 저녁을 기대합니다.
게임이 안풀리고 연패를 할지라고 청죽님의 글을 보면 언제나 힐링이 됩니다.
야구가 없어 허전하고 답답할때도 언제나 좋은들 감사드립니다 ...^_^
마음 편한 게 제일이죠.
쥔장님께 위안을 얻습니다.
우리 팀은 2사에 주자가 몇 있어도 기대감이 별로이고 상태 팀은 2사 후라도 주자만 나가면 불안하다는 생각이 저만이 아니었나 보네요. 경기 볼때마다 그런 생각이 저를 지배해 보는 내내 힘들었거든요 ㅠㅠ
단지 노심초사로 그랬던 건 아니고 팀 성적이 나쁜 이유였거든요.
점차 나아지더군요. 타선이 좀 더 시원시원해졌으면 좋겠어요.
무더위 잘 나야할텐데...
볼때마다 빵 터집니다ㅋ
발랄하신 구백님 짱이십니다.ㅋㅋㄴ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암사합니다.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일랜드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들 참 많죠.
'아일랜드인의 기질'이란 것도 세간에 널리 회자되고요.ㅋㅋ.
아일랜드 대기근에 관한 이야기들은 저도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찾아서 많이 읽었더랬습니다.
그보다 나키님 글 못 읽고 넘어가는 날은
너무나 적적합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종종이라도 올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