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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있느니라고 우리가 찬양을 들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든 것을 만드실 때 때를 따라 만드셨는데 우리도 때를 알고 때에 맞춰서 살 수 있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 아니고 오늘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오늘 전에 있었던 지난주에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었죠. 그래서 그리고 그 수상자는 한국 사람 한강이라는 사람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는 책을 써 낸 한국 작가 한강이었어요. 그러니까 한국 역사에서 노벨상으로는 두 번째이고 그리고 문학상으로는 처음 있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또 축하하고 어떤 사람들은 감격까지 하는 상황이었는데 또 한편에서는 이것이 스웨덴의 한림원이 역사 왜곡 한 작품을 선정했다 해서 노벨 문학상의 가치를 추락시켰다라는 비판의 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한강이라는 작가가 한 말의 일부를 인용하기 때문에 다음 세 가지 정도만 말을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첫째는 소설은 소설이죠. 음악 작품이 있고 미술 작품이 있죠. 건축도 작품이 있습니다. 소설도 하나의 작품이에요. 소재는 다양합니다. 자연을 쓸 수 있고 역사를 쓸 수 있고 과학 의학 종교 또 가장 많이 사용된 성경도 소재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판단은 사용된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완성된 작품에 있는 것이죠. 피카소가 사람의 얼굴을 이상하게 그렸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렇게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하는 말이지만 절대적인 평가는 아니죠. 모든 작품을 다 가루는 절대적인 평가는 아닙니다. 분명히 주관적인 요소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동의하지 않고 싶으면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번째는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거짓에 기반하거나 아니면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당연히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펑가의 영역이 바뀌어서 문학을 넘어서 이제 역사와 사실의 영역으로 간다 논쟁이 더 치열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에요. 그 부분으로 제가 갈 마음은 없고 오늘 설교를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한강이라는 작가가 8년 전에 가진 인터뷰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이전의 작품 채식주주의와 소녀는 온다는 얘기를 하는데 내용이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끝에 인터뷰를 한 사람이 묻습니다.
요새 제일 관심사가 뭐예요?
이렇게 이렇게 물어요 요새 제일 관심사가 뭐예요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요즘 관심사는 아주 밝은 것 밝고 눈 보시고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질 수 없는 더럽혀지지 않는 인간의 어떤 지점 투명함 그런 거에 관심이 있어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허구가 아니에요.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이 아니라 언어는 그런 것으로 사용될 수 있었지만 작가 자신도 속한 사실의 또 역사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근데 이 부분에서 저는 성경에 가득한 말 중에 하나 영광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떠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셔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어져서 그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 옷은 빛처럼 희어졌다고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우리는 볼 수 없는 그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장면이지만 그의 못지 않은 영광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의 말씀과 그의 행함을 통해서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의 강치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전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외모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을 두고 하는 말이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리고 자신의 본질도 보여주는 영광 투명함이에요.
오늘 우리 상황에서 적용을 해본다면 우리가 따르고 믿고 믿고 따르는 그 주 예수 그리스도는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하는 것이 억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맞는다면 우리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밝은 것, 투명한 것,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질 수 없는 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자체로 영광스러운 것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 그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이 마음과 행실의 인격에서 보여줘야 할 밝음과 투명함이 있다는 것이에요.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쓴 편지를 우리가 지난 주들을 통해서 보았는데 거기에서 기도했듯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지난 주일 말씀으로 우리가 들었듯이 교회 성도들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 그것들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듣고 배운 대로 행하라 하시는 거예요.
오늘의 말씀도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그 말을 인용한 겁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우지도 않았고 그 성도들을 만나지도 않은 교회입니다. 그런 면에서 골로새서 교회는 골로새서는 다른 서신보다 오늘 우리 교회 상황과 더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나 우리 교회 성도들이나 그 누구도 바울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둘 다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진 복음 사랑과 기도의 열매이고, 또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을 듣는 사람 듣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죠. 오늘 봉독된 말씀은 교회를 위한 사도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어요. 교회를 위한 사도의 기도 이 기도가 골로새 교회만 아니라 우리 교회 또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함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말씀은 9절에 있는데 우리가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는 그냥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라고 돼 있지만, 헬라어 성경을 보면 지식이라는 말이 함께 나와요. 중요하게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 아마 그 지식을 포함해서 아마 하나님이 아는 것으로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근데 우리가 지식을 살려서 말을 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머리로만 아는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고 다른 종교들에 가서도 다 들어볼 수 있는 일반 종교 지식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 보이신 마음과 뜻을 아는 식이에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신 그것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뜻이라고 하는 말도 그러니까 하나님 머릿속에 있고 하나님만 아시는 그 계획을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미 다 보여주신 알려주신 생명과 구원의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인생을 갖고 계신 뜻은 하나님 안에만 있지 않고 이미 여러분에게 성경을 통해서 다 알려주셨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아는 지식은 머리에만 있지 않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기 때문에 그래서 채워지기를 그래서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지식과 함께 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에요. 영어로 하면 스피리처 위즈덤 언더 스탠딩인데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이 말은 신비한 비밀스러운 그래서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 아는 그러한 뜻이 아니고요.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것들과 연결된 거예요. 그래서 성령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에게는 늘은 다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신령한입니다. 다만 하나님과 멀어진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는 거죠.
그리고 지혜와 총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총명에는 여러 부분들을 연결해서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어요. 이 그림을 한번 보세요. 여기에 여러 점들을 만들어 보았는데 이 점들을 그냥 두지 않고 연결해 나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예술이고요. 일이고요.
그런데 이 점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요. 다른 그림들이 나올 것이에요. 이것을 삶에 적용을 해서 보자면 지혜와 총명이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있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는 정말로 지혜와 존명에 이르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같은 내용들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이를 수 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에 이를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같은 만남들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사랑에 이를 수 있고 미움에 이를 수 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서 어떻게 연결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을 얻게 되는데, 이 부분에 있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지는 것이 교회를 위한 사도의 기도요.
또한 우리 각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그렇다면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 충만하게 되는 것 그것의 목적을 목적이입니다. 그 목적은 뭐냐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지식은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지식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따르는 하나님 주님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려면 그에 맞는 지식이 있어야 돼요. 그에 맞는 배움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머리에 또 몸에 충만하게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뇌에 합당한 행함이 뒤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어떤 방향을 내 속에 있는 방향이 내 행실을 다스린다. 내 말과 행동을 다스린다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의 목적입니다.
세 번째는 10절 12절에 기록된 것인데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지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여기에 네 가지 말씀이 영어로 하면 본사로 이렇게 나오는데 첫 번째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기도 한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잘 기억하셔야 돼요. 열매인데 악한 일의 열매가 아니라 선한 일의 열매이다 하는 것이에요. 둘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지식이 자란다. 수학 지식이나 정보 지식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냥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에 대한 지식은 관계 속에서 자랄 수 있어요.
특별히 사랑이 많으면 그만큼 더 잘 자라는 것이 인격에 관한 지식입니다. 어떤 사람을 아는 지식을 우리가 가졌다고 할 때 처음에 얻은 지식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죠. 앞으로 더 알아갈 부분이 있고 그것은 관계 속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더욱더 그렇다. 관계 속에서 사랑의 관계 속에서 자라 갑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많은 종교들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네이처 내추럴한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자, 심판자, 전지전능하신 분, 무소무지하신 분, 무한한 분, 영원한 분 이렇게는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 신 거드라는 이름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에요.
이것을 비교해서 말하자면 여러분이 저를 아는 데 있어서 내가 인간이다 사람 한국인 남자 중년 직업으로는 목사 이런 식으로 안다 하는 것과 이런 것들만 아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 이런 것들은 믿음이 없이도 사랑이 없이도 관계가 없이도 다 알 수 있는 거고, 관계를 가져도 새롭게 잘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렇게 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방식입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이 하나님 지식은 구원받기에는 충분하지만 전부가 아니에요. 하나님에 관한 전부가 아닙니다. 그와 동행하면서 그에게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기도 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기도 하면서 실패나 성공 같은 일들을 통해서 관계를 통해서 계속 자라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 우리가 갖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이 바뀌신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지 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신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서 선한 일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로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면 한번 이 말씀에 순종하여서 선한 일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가보세요.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길로 가보세요. 그러면 거기에서 만난 하나님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 번째 내용과 연결되는데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되어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 합당하게 행한다고 하는 그 말씀 앞에 있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려주는 말씀이에요.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 행함이라는 것은 워킹하고 두행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말에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한 열매를 맺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시험이나 고난 대접과 반대가 있으면 더 어렵습니다. 그때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렵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필요한 때가 됩니다.
그 능력이 바로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그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스러운 힘을 따라 주시는 능력이에요. 견딜 수 있고 오래 참을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견딘다고 하는 것은 군인이 자기 포스트에 서 있어서 적군의 공격이 있지만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것을 견딘다고 하는 거고, 성경적인 언어의 의미로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화를 내기 전에 내가 화를 내서 무엇을 하기 전에 오래오래 참는다. 코가 길다는 구약적인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용기가 많아서 내가 힘이 있어서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다는 당하는 모든 어려움들은 내 아내 있는 힘으로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지나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만이 지나가게 하실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지금 바울이 세 번째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데 저도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스러운 힘을 따라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만나는 내적 외적 이런 어려움들을 능히 이겨내고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는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게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기쁨으로 감사하는 거예요. 감사지요. 여기 기쁨으로 라는 말은 앞에 절보다 여기에 더 맞습니다. 그래서요 제가 여기다 기쁨으로 감사한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 서양 사람들 중 일부에게 이렇게 좋은 거를 주시기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좋은 것을 나도 받을 수 있도록 자격을 주셨다 생각을 해보세요. 그 좋은 것을 성경은 기업이라고 해요. 영원하신 기업 영광의 위협 하늘에 두신 기업 기업 혹은 유업 영어로 인헤리턴스라고 하는데 그거를 받도록 해주셨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쁘고 감사하죠. 지금 말한 이 기업은 사람들의 믿음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거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전하고자 하고 여기서는 다만 여기까지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이 좋은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셨다 하는 겁니다.
성경은 그것을 자리를 옮겨주셨다 하는 것인데 13절 14절에 표현돼 있습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나라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성령 죄사함을 얻었도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나중에 나중에 이제 믿을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일들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시고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에 두시고 그 안에서 성령 곧 죄사함을 얻게 하셨다.
여러분에게 이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성경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마음에 품고 잘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비되고 있는 것이 단순히 땅과 하늘, 빛과 어둠이 아니에요. 땅이든 하늘이든 어둠이든 빛이든 자연적인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실 때는 하늘만 빛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대비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어둠이라고 하는 말로 상징해서 표현되는 그 세계 그래서 그런 의미로 어둠의 다스림이 있고 아버지께서 정말로 사랑하시는 아들의 다스림이 있다 하는 것이에요.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든 하나님을 떠난 곳이 바로 어둠의 권세 아래가 되는 것이고, 어디든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라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됩니다. 그 나라가 바로 어둠이 아니라 빛의 나라이고 눈부시기에 밝은 하나님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속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또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나라로 들어가야 하고 그 나라에 머물러야 하고 그 나라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로 하자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하고, 또 그를 아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주께 합당한 길로 행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하는 겁니다.
쉽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위해서 기도한 겁니다. 그 기도는 골로서의 교회만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우리 교회를 향한 기도이고 또한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귀하게 받고 이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