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부터 원령공주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인간과 자연, 과학의 발달과 자연 파괴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런 주제의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소녀
광산의 기계를 돌보는 파즈는 어느 밤,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빛나는 목걸이를 목에 건 소녀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파즈의 팔에 안기게 되죠.
이 신비한 소녀의 이름은 시타입니다.
아름다운 계곡 곤도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대대로 전해오던 전설에 대해 시타에게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습니다.
시타는 어느 날 정비 비밀 조사관 무스카 일행에게 납치됩니다.
시타가 가지고 있는 펜던트는 라퓨타의 주민이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성 라퓨타로 갈 수 있는 지도이자 열쇠였습니다.
또한 라퓨타의 문을 열 수 있는 주문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시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타는 납치도중 펜던트를 노리는 해적 도리일당에게 또다시 습격을 당하고 비행선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마침 파즈에게 발견된 것입니다.
시타와 파즈는 탄광의 봅 할아버지를 통해 이 펜던트가 비행석이라는 사실과 라퓨타와 관련된 비밀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 라퓨타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하지만 시타는 다시 무스카에게 납치되고 파즈는 라퓨타에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보물을 노리던 도리일당과 연합하여 시타를 쫓아가게 됩니다.
한편 라퓨타에 도착한 시타는 무스카의 진짜 목적이 보물이 아니라 라퓨타의 발전된 기술이며 그가 그 기술을 무시무시한 병기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파즈와 시타는 라퓨타를 파괴하는 주문 ‘바루스’를 외우게 되고 결국 라퓨타는 하늘 높이 사라지게 됩니다.
◆ 비행석과 초전도체, 그리고 토카막
하늘을 날게 하는 돌인 비행석은 고도화된 과학기술의 결정체를 상징하는데요.
이 시대에 비행석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초전도체입니다.
한번쯤 액체 질소 등에 차가워진 작은 금속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티브이에서 보셨을 텐데요.
초전도체는 공중에 떠 있는 속성을 이용하여 자기부상 열차에도 이용되고 아직은 그 정도가 몇 밀리에 불과하지만 비행석과 가장 가까운 물질로 여겨집니다.
이 초전도체는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말하는데, 초전도 현상이란 어떤 물질이 전기 저항이 0이 되고 내부 자기장을 밀쳐내는 등의 성질을 보이는 현상입니다.
아직은 물질의 온도가 영하 240˚C 이하라는 한정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래도 이 초전도 현상은 많은 응용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토카막이죠.
◆ 토카막이란?
핵융합시에 발생하는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하는 도넛형 장치입니다.
토카막 내부에 가두어진 플라스마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자기장뿐 아니라 내부에 전류를 흐르게 하여야 하며 플라스마가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또 다른 자기장도 필요합니다.
즉 장치 내부에 전류가 흐르게 하고 자기장을 가두는 물질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초전도체의 역할입니다.
물론 핵융합시 발생하는 플라스마를 가두는 다른 많은 장치들이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초전도체입니다.
아직은 꿈의 기술로 불리는 핵융합이지만 초전도체를 통해 길을 열었으며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로 찾아올 날도 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2040년을 목표로 핵융합 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라퓨타의 비행선이 첨단 과학기술을 상징하듯 초전도체와 핵융합은 이 시대 첨단 기술의 상징 아닐까요?
◆ 빛나는 비행석과 야명주
파즈와 시타가 자신들을 쫓아오는 도리일당을 피하기 위해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봅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봅 할아버지는 돌들이 수근 거린다며 불을 끕니다. 그 순간 어둡던 지하 곳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돌들이 빛을 냅니다.
그 빛은 별이 가득한 광활한 우주처럼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봅 할아버지는 그 이유가 돌 안에 들어있는 비행석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렇다면 현실에서 그런 돌은 무엇일까요?
가장 유명한 것은 중국의 진시황과 서태후의 부장품으로 발견되기도 했던 야명주(夜明珠)입니다.
말 그대로 밤에 빛나는 구슬이죠.
많은 사람들은 이 야명주가 빛을 내는 이유로 돌의 성분 중 하나인 우라늄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라늄 동위원소 구조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빛이 발산된다고 합니다.
트리튬도 수소 동위 원소 중 하나로 낮은 온도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우라늄처럼 빛을 내는데 이 성질을 이용한 것이 시계의 야광 눈금, 비상구의 표지판, 소총의 가늠쇠에 사용됩니다.
“사람이 만든 비행석이 사람을 불행하게 할 수도,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봅 할아버지는 비행석을 두고 이런 충고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천공의 성 라퓨타’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자 하는 말일 것입니다.
기술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수를 하기도 하죠.
‘라퓨타’가 가장 처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입니다.
그런데 이 공중도시 라퓨타의 명칭에 대해 몇 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스페인어에 능통했던 그가 스페인어로 창녀를 뜻하는 라푸타(la puta)에서 따왔다는 설과 라퓨타 사람들의 언어로 ‘높다’를 뜻하는 ‘랖’과 군주를 뜻하는 ‘운트’가 합쳐진 것이라는 설. 그리고 걸리버는 ‘바다에서 춤추는 햇살’이라는 뜻의 ‘랖’과 날개를 뜻하는 ‘아우티드’가 합쳐진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짜 라퓨타의 어원일까요?
라퓨타는 어디에 가치 두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타락 본능을 대표하는 창녀가 될 수도 있고 정신적 군주가 될 수도 혹은 바다에서 춤추는 햇살 위의 날개도 될 수 있습니다.
첨단의 기술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