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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장 9-19절. 스데반이 요셉과 애굽 생활을 말함
구절 해설
9절.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patriarchs became jealous of Joseph and sold him into Egypt. Yet God was with him,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Καὶ οἱ πατριάρχαι, ζηλώσαντες τὸν Ἰωσὴφ, ἀπέδοντο εἰς Αἴγυπτον·
and the patriarchs, having envied the Joseph, sold into Egypt
직역하면 ‘조상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아버렸다’는 뜻입니다.
시기하여’(ζηλώ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envied) 몹시 시기한 것을 가리킵니다.
‘팔았더니’(ἀπέδοντο)는 부정과거로서(sold) 과감하게 팔아버린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요셉의 형제들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요셉을 팔아버린 것은(창 37:12-36)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사랑하신 예수님을 거역하고 죽인 것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스데반은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καὶ ἦν ὁ Θεὸς μετ’ αὐτοῦ,
and was being the God with him,
‘계셔’(ἦν)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being) 하나님이 계속 함께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9절.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 스데반은 요셉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들어가게 된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출한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죄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표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요셉도 이스라엘 자손을 7년 가뭄에서 구출한 구원자로서 예수님의 표상이 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유대인의 조상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조상들은 항상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조상들처럼 의인이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잡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51절에서 <너희도 너희 조상들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리는도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3. 유대인의 조상들은 나쁜 짓을 해서 요셉을 애굽에 팔았으나,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하시느냐’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즉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과연 누구와 함께하시느냐가 성공적인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간 사울 왕은 실패자가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윗은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삼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으나, 하나님이 떠나가시자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446장에도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라고 했습니다.
10절.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rescued him from all his afflictions, and granted him favor and wisdom in the sight of Pharaoh, king of Egypt, and he made him governor over Egypt and all his household.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καὶ ἐξείλατο αὐτὸν ἐκ πασῶν τῶν θλίψεων αὐτοῦ,
and He rescued him from all the afflictions of him,
직역하면 ‘그가 그의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져내셨다’는 뜻입니다.
‘건져내사’(ἐξείλατο)는 부정과거로서(rescued) 단호하게 건져내셨다는 뜻입니다.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καὶ ἔδωκεν αὐτῷ χάριν καὶ σοφίαν ἐναντίον Φαραὼ, βασιλέως Αἰγύπτου,
and He granted him favor and wisdom before Pharaoh, king of Egypt,
‘주시매’(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He granted) 단호하게 주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때 애굽 왕은 힉소스 왕조 최후의 왕인 아포피스(Apophis)왕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애굽 본토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셉을 중용하게 되었습니다. Baker.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καὶ κατέστησεν αὐτὸν ἡγούμενον ἐπ’ Αἴγυπτον καὶ ὅλον τὸν οἶκον αὐτοῦ.
and he appointed him governor over Egypt, and over all the house of him.
직역하면 ‘그가 그를 애굽과 그의 모든 집의 통치자로 임명했다’는 뜻입니다.
세웠느니라’(κατέσ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appointed) 의지를 가지고 확실하게 세운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요셉은 예수님의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
즉 요셉은 동족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세운 구원자가 되게 하셨는데, 바로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버림 받아 죽으셨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려서 구주가 되게 하셨고, 예수님은 높이 들려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10절.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1. 요셉은 애굽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했습니다.
첫 번째로 보디발의 가정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강간하고자 했을 때 요셉이 거절하자, 보디발의 아내는 앙심을 품고 요셉이 자기를 강간하려고 했다고 고발을 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노예의 신분이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어 큰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감옥에서도 총무 역할을 담당하다가, 파면당한 장관들의 꿈을 해석해주었는데, 그 꿈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애굽왕의 꿈을 해석하도록 불려가서, 그 꿈 해석으로 인해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이처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였습니다.
이런 요셉이 당한 여러 가지 환난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을 예표합니다.
2. 요셉이 애굽 왕 앞에서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였다고 했습니다.
은혜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아무런 결실이 없고, 지혜만 있고 은혜가 없으면 오히려 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즉 은혜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늘 이용만 당하고,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반면에 지혜는 있는데 은혜가 없으면, 오히려 미움을 받아서 제거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와 지혜가 구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앞에서 요셉에게 은혜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11절.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a famine came over all Egypt and Canaan, and great affliction with it, and our fathers could find no food.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ἦλθεν δὲ λιμὸς ἐφ’ ὅλην τὴν Αἴγυπτον καὶ Χανάαν, καὶ θλῖψις μεγάλη,
came then famine over all the Egypt and Canaan, affliction great
‘들어’(ἦ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came) 흉년이 갑자기 확 임하는 무서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있을새’라는 동사는 첨가된 것이지만, 잘된 번역입니다.
남부 애굽의 에일레이디아(Eileythia)에 있는 귀족의 무덤 묘비에 기록된 글에 의하면, 애굽에 여러 해 동안 기근이 있었는데, 바바(Baba)라는 사람이 해마다 성읍에 곡식을 공급해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바바>는 애굽 18왕조가 시작되기 직전에 즉 요셉을 중용했던 아피포스(Apiphos)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바바>는 요셉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습니다.
이 아피포스 왕은 지금 고고학적으로 많은 자료로 입증된 메르넵타 2세가 즉위한 BC 1325년으로부터 430년 이전이 바로 아피피스(Apophis) 왕의 재임기간이 됩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이때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시작한 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καὶ οὐχ ηὕρισκον χορτάσματα οἱ πατέρες ἡμῶν.
and not were finding sustenance the fathers of us
직역하면 ‘우리 조상들이 양식을 계속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발견하지 못했다’에서 동사(ηὕρισκον)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finding) 계속 찾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1절.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 당시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세상의 구원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요셉이 없는 곳에는 기근과 궁핍이 닥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야곱의 가정이라고 할지라도 요셉이 없으므로, 궁핍과 기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요셉이 예언한 대로 7년간 대흉년이 계속된 것입니다.
12절.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en Jacob heard that there was grain in Egypt, he sent our fathers there the first time.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ἀκούσας δὲ Ἰακὼβ ὄντα σιτία εἰς Αἴγυπτον,
Having heard now Jacob [there] is grain in Egypt,
‘듣고’(ἀκού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확실하게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ἐξαπέστειλεν τοὺς πατέρας ἡμῶν πρῶτον·
he sent the fathers of us first
‘보내고’(ἐξαπέστειλ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ent) ‘보냈다’는 뜻이고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갈킵니다.
12절.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요셉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즉 구원자 요셉으로 말미암아 큰 가뭄 중에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복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이 복된 소식을 듣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이 아들들은 바로 요셉을 애굽이 팔았던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이 큰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해야 곡식을 얻어서 죽음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회개해야 용서받고 구원받는 이치와 같습니다.
13절.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n the second visit Joseph made himself known to his brothers, and Joseph's family was disclosed to Pharaoh.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καὶ ἐν τῷ δευτέρῳ, ἐγνωρίσθη Ἰωσὴφ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αὐτοῦ,
and on the second, was made known Joseph the brothers of him
직역하면 ‘두 번째에는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알려지게 되고’(ἐγνωρί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made known) 과거에 명백히 알려지게 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요셉에게 두 번째 보낸 것은 창세기 4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καὶ φανερὸν ἐγένετο τῷ Φαραὼ τὸ γένος Ἰωσήφ.
and known become to Pharaoh the family of Joseph
‘드러나게 되니라’(φανερὸν ἐγένετο)에서 앞의 단어는 ‘알려진’(known)이라는 부사이고, 뒤의 단어는 ‘되었다’(become)는 부정과거 동사로서 확실하게 알려진 과거 사실을 가리킵니다.
13절.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 요셉이 자신을 형제들에게 알리기까지 두 가지 시험을 합니다.
첫째는 아버지 야곱이 아들을 우상시하는 지나친 애정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시험을 합니다.
이전에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우상시하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들에게 속아서 요셉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잃은 뒤로도 다시 베냐민을 우상시하면서 놓아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에 대해서 <내가 아들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를 바라노라>고 고백하는 신앙을 갖도록 시험합니다(창 43:14).
둘째로 요셉은 형들이 요셉을 판 죄를 뉘우치고, 이제는 베냐민을 위해서 대신 죽고자 하는 사랑을 갖도록 시험합니다.
만일 형들이 베냐민도 종이 되게 만들고 자기들만 곡식을 가지고 가서 다시 아버지를 속이려고 했다면, 요셉이 이번에는 형들을 처벌하고 베냐민과 아버지만 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대표적으로 나서서 베냐민과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이 대신 처벌을 받겠다고 함으로써 이 <메시야적 희생>(messiahnic sacrifice)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만듭니다.
14절.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Joseph sent word and invited Jacob his father and all his relatives to come to him, seventy-five persons in all.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청하였더니
ἀποστείλας δὲ Ἰωσὴφ, μετεκαλέσατο Ἰακὼβ τὸν πατέρα αὐτοῦ,
Having sent then Joseph, he called for Jacob the father of him
‘보내어’(ἀποστείλα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sent), ‘청하였더니’(μετεκαλέσατο)는 부정과거로서(he called) 확실하게 부른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καὶ πᾶσαν τὴν συγγένειαν, ἐν ψυχαῖς ἑβδομήκοντα πέντε.
and all the kindred, in soul seventy five
창세기 46장 27절과 출애굽기 1장 5절과 신명기 10장 22절에는 70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성경에는 창세기 46장 27절에는 75인으로 되어 있고, 26장 20절에는 므낫세의 두 아들과, 에브라임의 두 아들과 에브라임의 손자까지 합하여 다섯 사람을 포함해서 75인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이 70인역을 사용해서 75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14절.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 창세기 46장 26-27절에는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가족이 66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이 1장 5절에는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가족들은 모두 70명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46장보다 출애굽기 1장에는 요셉의 가족 4명이 더 보태졌기 때문입니다(요셉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사도행전 7장 14절에서 75명이라고 한 것은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후에 더 낳은 자손 5명을 합하여 75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7장 14절은 출애굽기 1장 5절의 칠십인 역본(Septuagint)을 따른 것입니다: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자손은 야곱의 며느리들을 빼고, 야곱이 낳은 자손 66명에다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9명을 합한 75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46장과 출애굽기 1장과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은 다 옳은 기록입니다.
하여튼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전통대로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조상들의 숫자가 75인이라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15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Jacob went down to Egypt and there he and our fathers died.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καὶ κατέβη Ἰακὼβ εἰς Αἴγυπτον,
And went down Jacob to Egypt
‘내려가’(κατέβη)는 부정과거로서(went down) 내려간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καὶ ἐτελεύτησεν αὐτὸς καὶ οἱ πατέρες ἡμῶν,
and died he and the fathers of us
‘죽고’(ἐτελεύ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died)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5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 야곱과 12명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복을 당대에 얻지 못했습니다.
단지 오랜 후에 구원자 모세를 통해서 자손들이 출애굽과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약속을 얻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시간 계산과 하나님의 시간 계산은 다릅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야 다시 가나안 천국 본향에 들어가게 됩니다.
16절.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rom there they were removed to Shechem and laid in the tomb which Abraham had purchased for a sum of money from the sons of Hamor in Shechem.
세겜으로 옮겨져
καὶ μετετέθησαν εἰς Συχὲμ
and they were carried over into Shechem
‘옮겨져’(μετετέ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were carried over) 과거에 옮겨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καὶ ἐτέθησαν ἐν τῷ μνήματι, ᾧ ὠνήσατο Ἀβραὰμ τιμῆς ἀργυρίου
and were placed in the tomb which had bought Abraham for a sum of silver
‘산’(ὠνήσα)은 부정과거 중간태로서(had bought) 자기를 위해서 과거에 산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장사되니라’(ἐτέ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placed) ‘놓여졌다’는 뜻인데, 무덤에 장사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παρὰ τῶν υἱῶν Ἐμμὼρ ἐν Συχέμ.
from the sons of Hamor in Shechem
여기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산 사건(창23:16-20)과 야곱이 세겜에서 땅을 산 것(창33:19)을 축약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에브론에게서 막벨라 굴을 산 사건(창 23장)과 야곱이 세겜에서 땅을 산 것(창33:19)은 별개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막벨라 굴에는 아브라함과(창25:9-10)과 이삭과(창35:29)과 야곱이(창50:13)이 장사되었고, 야곱이 산 세겜 땅에는 요셉이 장사되었습니다(여호수아 24:32).
그런데 스데반은 두 가지를 축약해서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요셉의 형제들은 헤브론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
스데반이 야곱과 열 두 아들들이 세겜에 장사되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애굽에 장사되지 않고, 가나안 땅에 장사되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 스데반의 축약식 발언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NIV-SB 1655.
16절.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1.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아브라함이 산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도 믿음의 조상들이었지만, 생전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지 못하고 무덤도 돈 주고 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의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는 이 땅이 아니고, 죽은 후에 천국 본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17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s the time of the promise was approaching which God had assured to Abraham, the people increased and multiplied in Egypt,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Καθὼς δὲ ἤγγιζεν ὁ χρόνος τῆς ἐπαγγελίας, ἧς ὡμολόγησεν ὁ Θεὸς τῷ Ἀβραάμ,
as now was drawing near the time of the promise, that had made the God to the Abraham,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때가 점점 가까우매’란 뜻입니다.
‘가까우매’(ἤγγιζ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drawing near)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말씀하신’(ὡμολόγησεν)은 부정과거인데(had made) 원형(ὁμολογέω)은 ‘동일하게 말하다, 약속하다, 동의하다, 고백하다, 공언하다’(speak the same, promise, agree, confess, publicly declare)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ηὔξησεν ὁ λαὸς, καὶ ἐπληθύνθη ἐν Αἰγύπτῳ,
increased the people and was multiplied in Egypt,
직역하면 ‘그 백성이 번성하고 애굽에서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번성하여’(ηὔξησεν)는 부정과거이고(increased), ‘많아졌더니’(ἐπληθύν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multiplied) 과거에 번성하고 많아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7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란 창세기 15장 13절에 약속하신 때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 땅에서 객이 되어 4백 년 만에 나오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430년 만에 탈출하게 됩니다.(출 12:40)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하신 때로부터 이 약속이 이루어진 때까지는 540년이 지났습니다.
아브람이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창 12:4).
그리고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습니다(창 21:5).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99세 때 나타나셔서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창17:1).
이삭은 야곱을 60세에 낳았습니다(창 25:26).
야곱이 일백 삼십 세에 가족들과 함께 애굽에 들어갑니다(창 47:9).
그렇다면 출애굽 한 때는 아브라함이 처음 하란을 떠날 때로부터 친다면 645년 후이고, 할례의 언약으로부터 친다면 620년 후의 일이 됩니다.
모세가 80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왔으니,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의 시점은 최소한 540년이나 흐른 후의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생각에 더딘 것 같지만,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King James Bible: Till another king arose, which knew not Joseph.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ἄχρι οὗ ἀνέστη βασιλεὺς ἕτερος ἐπ’ Αἴγυπτον,
until that there arose king another over Egypt,
직역하면 ‘다른 왕이 애굽에 오르매’란 뜻입니다.
‘오르매’(ἀνέστη)는 부정과거로서(there arose) ‘올랐다’는 뜻이고, 과거에 왕위에 오른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ὃς οὐκ ᾔδει τὸν Ἰωσήφ.
who not had known the Joseph
‘알지 못하는’에서 동사(ᾔδει)는 대과거(pluperfect)로서 새 왕이 왕위에 오르기 이전에 요셉을 알지 못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란 애굽 제 18왕조의 창시자 아모세(Ahmose)를 가리킵니다. (혹은 아메스; Aames라고도 호칭함)
이 아모세는 힉소스 왕조(Hyksos)를 쫓아내고, 새 왕조를 창설했는데, 이전에 힉소스 왕조는 이스라엘 백성 같은 셈족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었는데, 아모세가 새운 왕조는 애굽 본토인을 선호하고, 셈족을 싫어하여 나라의 공신인 요셉도 무시하고, 이스라엘 백성도 탄압했던 것입니다.
1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 애굽의 왕으로서 7년 흉년을 극복한 위대한 총리였던 요셉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알지 못한 새 임금>이란 고의적으로 요셉을 무시한 왕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새 왕이 왜 요셉을 고의적으로 무시했을까요?
네, 그것은 요셉을 중용했던 힉소스(Hyksos) 왕조가 무너지고, 쿠테타를 통해서 새 왕조가 설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요셉을 중용했던 힉소스 왕조를 무너뜨린 제 18왕조는 순수한 애굽인의 왕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 힉소스 왕조는 팔레스틴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는데, 18왕조는 순수한 애굽인의 왕조였기 때문에, 요셉 같은 외국인을 고의적으로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본토민인 애굽 사람을 중용하고, 외국인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노동으로 노예 정책을 썼고 인구 억제 정책을 썼던 것입니다.
18왕조의 첫 왕은 아모세(Ahmose)였고, 모세 당시의 왕은 아모세의 손자인 투트모세 1세(Tutmose 1)였습니다.
19절.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t was he who took shrewd advantage of our race and mistreated our fathers so that they would expose their infants and they would not survive.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οὗτος κατασοφισάμενος τὸ γένος ἡμῶν,
he having dealt treacherously with the race of us,
직역하면 ‘그가 우리 족속을 교활하게 다루어’란 뜻입니다.
‘교활하게 다루어’(κατασοφισ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e having dealt treacherously with) 원형(κατασοφίζομαι)은 ‘교활하게 다루다’(deal craftily with)는 뜻입니다.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ἐκάκωσεν τοὺς πατέρας,
he mistreated the fathers,
‘괴롭게 하여’(ἐκάκω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mistreated) ‘괴롭게 했다, 나쁘게 다루었다’는 뜻입니다.
그 어린아이들을 내버려
τοῦ ποιεῖν τὰ βρέφη ἔκθετα αὐτῶν, εἰς τὸ μὴ ζωογονεῖσθαι.
of the making the infants abandon of them,
‘내버려’라는 말은 두 단어로 되어 있는데(ποιεῖν ἔκθετα) 앞의 동사는 ‘만들어’(making)란 뜻이고, 뒤의 단어(ἔκθετα)는 ‘버리게’(abandon)란 형용사입니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εἰς τὸ μὴ ζωογονεῖσθαι.
into the not to live
‘살지 못하게’에서 동사(ζωογονεῖσθαι)는 부정사형 동사(to live)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잔악한 법령을 만든 왕은 세티 1세(Seti 1)였고, 출애굽 당시의 바로는 메르넵타 2세(Mernephtah 2)였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성경에 언급된 애굽 왕 바로>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한 애굽 왕 바로는 BC 2300년경 제 12왕조의 아멘넴핫 3세(Amenemhat 3)였을 것입니다.
2. 요셉을 중용했던 애굽 왕은 BC 2266-1700년 동안 지배했던 힉소스 왕조 최후의 왕인 아포피스(Apophis)였습니다.
3.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출 1:8)은 BC 1700년경 제 18왕조의 시조 아모세(Amose)였습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이 낳은 사내아이를 강물에 던져 죽이라고 공포했던 애굽 왕(출 1:22)은 BC 1366년 제 19왕조의 세티(Seti) 1세였습니다.
5. 이스라엘 백성을 심히 압제했고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출 2:15) 애굽왕은 BC 1350년 람세스(Ramseses) 2세였습니다.
6. 출애굽 당시의 애굽 왕(출 14:5+31)은 BC 1300년의 메르넵타(Merneptha) 2세였습니다.
7. 솔로몬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준 애굽 왕(왕상 3:1)은 BC 1033년 제 21왕조의 최후 왕인 피네템(Pinetem) 2세였습니다.
8. 르호보암 때 유다를 침공한(대하 12:2) 애굽 왕은 BC 966년 제 22왕조의 시삭(Shishak) 1세였습니다.
9. 히스기야 왕 때(왕하 18:21, 19:9) 애굽왕은 BC 693년 제 21왕조 이디오피아 출신 디르하가(Tirhakah)였습니다.
10. 유다의 요시아 왕과 전쟁을 했던 애굽왕 바로(왕하 23:29-30, 역대하 35:20-24)는 BC 612년 제 26왕조의 느고(Nech)였습니다. (혹은 나키: Naki라고도 함)
11. 여호야김과 그 아들 시드기야와 동맹한 애굽왕 바로 (렘 37:4-7, 겔 17:15-17)는 BC 591년 호프라(Hophra)였습니다. (Uhabra 혹은 Apries라고도 함)
19절.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1. 뚜뜨모세 1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썼던 교활한 정책이란 산파들에게 은밀히 지시해서 이스라엘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살리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민족 말살 정책을 가리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낳은 아들들은 나일강에 던져서 죽게 만든 잔인한 정책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갈대 상자에 숨겨서 나일강에 띄워놓았던 것입니다.
설교
1. 요셉은 우리 성도의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는 요셉처럼 가정이나 직장이나 나라에서 구원자,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가정에 있을 때도 구원자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직장과 같은 보디발의 가정에서도 구원자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애굽 나라에서도 구원자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2. 요셉은 9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어느 곳에 가든지 형통하고 구원자로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즉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고 성령님이 늘 함께하셔야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도 형통하고, 구원자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성공적인 사람 은혜를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나, <사울>은 하나님이 떠나가셔서 실패한 인생 남을 해치는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삼손>은 처음과 끝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지만, 중간에 하나님이 떠나가셔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 집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엄마가 없었어도 환상과 꿈을 가지고 살았으며, 보디발의 가정에 가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가정 총무가 되었고, 감옥에 가셔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감옥 총무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나라의 총리가 되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지혜롭게 대처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는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는 기도 외에는 이런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에게 곡식을 주기 이전에 두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요셉 자기를 우상시 하다가 요셉을 잃어버린 과거의 잘못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베냐민을 우상시하지 않는지 시험을 합니다.
즉 요셉은 시므온을 잡아두고 베냐민을 데려와야 다시 곡식을 주겠다고 형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버지가 완강하게 베냐민을 주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창 43:14).
물론 아버지는 자식을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에 어느 목사님은 딸이 6명인 가정에 독자로 태어나서 너무나 우상시 되어 자랐습니다.
그 결과 말을 더듬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을 생명처럼 사랑하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우상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둘째로 요셉은 형들이 동생 베냐민을 과거에 자기에게처럼 미워하는지, 아니면 형제간에 우정과 사랑으로 희생하는지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베냐민의 배낭에 은잔을 넣어놓고 베냐민을 감옥에 가두고, 형들은 모두 자유롭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형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형들이 이제는 과거 요셉 때와는 달리 르우벤이나 유다가 자신이 베냐민 대신에 종이 되겠으니 베냐민을 아버지께로 돌려보내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울어버렸습니다.
이처럼 형제들 간에 희생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것을 <메시야적 희생>(messiahnic sacrifice)라고 합니다.
물론 메시야적 희생이 너무 지나치면 안 되지만, 가족과 형제 간에는 이런 사랑과 희생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 충만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시고, 많은 사람을 돕고, 구원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