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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妙法의 四力 : 信力 行力 佛力 法力(신력 행력 불력 법력)
信力 行力 佛力 法力(신력 행력 불력 법력)
우리들이 불도수행하는 과정에서 성불(개불:즉신성불)하기 위한 네 개의 요소의 힘 즉 에너지를 말합니다.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어의구전 어서 970쪽)
信力이란 오로지 대어본존님을 믿는 마음입니다.
行力이란 余事(여사)를 섞지않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부르고(자행)과 절복 등의 화타행을 하는 것입니다.
法力이란 妙法에 갖춰진 광대심원한 이익을 말합니다.
佛力이란 부처가 중생을 구하는 서원을 세워 그 성취를 원하는 것 즉 부처님의 힘입니다.
"대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며 불성(佛性)이란 법성(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보리(菩提)이니라. 소위(所謂)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 상행(上行) 무변행(無邊行) 등(等) 보현(普賢) 문수(文殊) 사리불(舍利弗) 목련(目連) 등(等), 대범천왕(大梵天王) 석제환인(釋提桓因) 일월(日月) 명성(明星) 북두(北斗) 칠성(七星) 이십팔수(二十八宿) 무량(無量)의 제성(諸星) 천중(天衆) 지류(地類) 용신(龍神) 팔부(八部) 인천(人天) 대회(大會) 염마법왕(閻魔法王) 상(上)은 비상(非想)의 구름 위로부터 하(下)는 나락(那落)의 불길 바닥까지 모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갖추고 있는 바의 불성(佛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이 수제(首題)를 봉창(奉唱)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自身)의 법성(法性)의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顯出)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느니라. 예(例)컨대 새장 속에 있는 새가 울 때, 하늘을 나는 많은 새가 동시(同時)에 모이는데 이를 보고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성우문답초 어서 498쪽)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수지(受持)하는 사람을 수호(守護)하는 공덕(功德)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렵고 뛰어난 공덕(功德)이며 신묘(神妙)하니라고 말씀하신 문(文)이로다. 이는 우리들 중생(衆生)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어다 라는 문(文)이니라.
대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우리들 중생(衆生)의 불성(佛性)과 범왕(梵王)·제석(帝釋) 등(等)의 불성(佛性)과 사리불(舍利弗)·목련(目連) 등(等)의 불성(佛性)과 문수(文殊) 미륵(彌勒) 등(等)의 불성(佛性)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깨달음의 묘법(妙法)과 일체불이(一體不二)인 이(理)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일체(一切)의 불(佛) 일체(一切)의 법(法) 일체(一切)의 보살(菩薩) 일체(一切)의 성문(聲聞) 일체(一切)의 범왕(梵王) 제석(帝釋) 염마(閻魔)·법왕(法王) 일월(日月) 중성(衆星) 천신(天神) 지신(地神) 내지(乃至)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천(人天)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불성(佛性)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功德)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니라. 나의 기심(己心)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본존(本尊)으로 숭앙(崇仰)하고, 나의 기심(己心) 중(中)의 불성(佛性)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불리어서 모이는 것과 같고,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妙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그러므로「만약 잠시라도 가지는 자(者)는 내가 즉 환희(歡喜)하며 제불(諸佛)도 또한 그러하니라」고 설(說)하심은 이 심(心)이니라. 그러므로 삼세(三世)의 제불(諸佛)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子)로써 부처가 되셨으니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이고 일체중생(一切衆生)·개성불도(皆成佛道)의 묘법(妙法)이라 함은 이것이로다. 이러한 취지(趣旨)를 깊이 깊이 알아서 부처가 되는 도(道)로는 아만편집(我慢偏執)의 마음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여야 하는 것이니라."(법화초심성불초 어서 557쪽)
"정직히 방편을 버리고 오직 법화경을 믿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 업 고의 三道가 법신 반야 해탈의 三德으로 전하여 三觀 三諦 즉 一心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所住하는 곳은 상적광토 이니라.
능거 소거 신토 색심 구체구용 무작삼신의 본문수량의 당체연화의 부처란 日蓮의 제자 단나 등의 中의 일이니라.
이것이 즉 법화의 당체 자재신력이 나타나는 바의 공능이니 결코 이를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를 의심하지 말지어다."(당체의초 어서 512쪽)
위 어문의,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但 법화경을 믿고 란 信力입니다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行力입니다.
법화의 당체 이란 法力입니다
자재신력 이란 佛力입니다.
신력 행력을 힘쓸때 본존의 불력 법력에 의해서 성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생이 즉신성불의 이익을 얻는 것은 모두 妙法 五字의 대어본존님의 法力과 구원원초 자수용신이신 日蓮大聖人의 佛力에 의하는 것입니다
".석존의 因行果德의 二法은 妙法蓮華經의 五字에 구족 하였다 우리들이 이 五字를 수지하면 자연히 그의 因果의 功德을 물려 주시느니라."(관심의 본존초어서 246쪽)
위 어문의 수지하면 이란 신력 행력입니다.
五字란 법력입니다.
자연히 물려 주시느니라 란 불력입니다.
信力이란, 오로지 唯一 이 어본존을 믿고. 이 어본존 外에는 부처가 되는 길이 없다고 강성하게 믿는 것이 信力입니다.
行力이란, 해가 나오면 등불이 소용없다 비가 내리면 이슬이 별수없습니다. 지금 말법에 들어오면 余經도 法華經도 소용없습니다. 고로 余事를 섞지않고, 但 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하고 타인에게도 전해가는 것을 行力이라 합니다.
法力이란, 迹中化他(적중화타)의 三世의 諸佛의 인과의 공덕을 가지고 本地自行의 妙法 五字에 구족함입니다. 고로 이 어본존의 力用化功廣大(역용화공광대) 利潤弘深(이윤홍심 : 이윤 즉 이롭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 넓고 깊음)인 것을 法力이라 합니다.
佛力이란, 구원원초의 자수용신 나의 몸의 당체 자행화타의 인과의 공덕구족 원만의 妙法 五字를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의 大悲力을 가지 고 한폭의 만다라 본존으로 도현해서 말법의 유치의 중생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들 중생이 이 본존을 수지하면 자연히 그의 자행화타의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어 如我等無異(여아등무이)의 깨달음을 여는 것은 오로지 佛力인 것입니다
※ 四力의 관계성에 대해서
"비유하면 蓮華가 물에 살아도 만약 日光을 얻지 못하면 고사하는 것 처럼 중생의 善根도 佛力을 만나지 않으면 관행을 이룰수가 없다."(대지론 권一)
"꽃은 신력과 같고 蓮은 행력과 같고 물은 법력과 같고 태양은 불력과 같다 바로 알아라.
蓮華는 물에 의해 자라고 우리들의 信力 行力은 반드시 法力에 의해 자라는 것이다.
만약 물이 없으면 蓮華는 자라지 못한다.
法力이 없으면 어찌 信行이 일어나겠는가 때문에 본존을 우러러 받들어 法力을 기원하라.
물에 의해 蓮華가 자란다 해도 만약 日光을 얻지못하면 고사하는 것은 의심 없느니라.
우리들 중생도 法力에 의해 信力 行力이 일어난다 해도 만약 佛力을 얻지 못하면 信行의 퇴전 의심 없느니라.
蓮華가 만약 日光을 얻으면 반드시 잘 번영하고 꽃피는 것과 같이 우리들 중생도 佛力을 받으면 信行成就해서 재빨리 보리를 얻는 것이다.
法界에 가득찬 善根도 佛力을 못 만나면 아귀계 중생이니라."(니치칸 상인 관심의 본존초 문단)
※ 자행(自行)과 화타(化他)에 대하여
"일체(一切)의 법(法)은 모두 이는 불법(佛法)이라고 알고 나면 교훈(敎訓)해야 할 선지식(善知識)도 필요없고 생각하는 마음, 말하는 말, 행(行)하는 행위(行爲), 거동(擧動)이란 거동(擧動),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사위의(四威儀) 소작(所作)은 모두 부처의 마음과 화합(和合)해서 일체(一體)이므로, 죄과(罪過)도 없고, 장애(障碍)도 없는 자재(自在)의 몸이 되는데, 이를 자행(自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자재(自在)인 자행(自行)의 행(行)을 버리고 흔적도 없는 무명망상(無明妄想)인 벽사(僻思)의 마음에 주(住)하여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교훈(敎訓)을 배반(背反)하므로 어두움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 영구(永久)히 불법(佛法)을 배반(背反)하는 것을 슬퍼하고 슬퍼할지니라. 지금 되돌려서 생각을 바르게 하여 깨달음에 돌아가면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자신(自身) 이외에는 없다고 알았노라. 나의 마음의 거울과 부처의 마음의 거울과는, 오직 일경(一鏡)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이면(裏面)을 향(向)하여 나의 성(性)의 이(理)를 보지 못하므로 무명(無明)이라 하고, 여래(如來)는 표면(表面)을 향(向)하여 나의 성(性)의 이(理)를 보셨느니라. 고(故)로 명(明)과 무명(無明)은 그 체(體)가 오직 一이니라. 거울은 하나의 거울이라 해도 향(向)하는 방법(方法)에 따라 명매(明昧)의 차별(差別)이 있다. 거울은 이면(裏面)이 있다 해도 표면(表面)의 장애(障碍)로 되지 않으며, 다만 향(向)하는 방법(方法)에 의(依)해서 득실(得失)의 둘이 있으니, 상즉융통(相卽融通)하여 일법(一法)의 이의(二義)니라. 화타(化他)의 법문(法門)은 거울의 이면(裏面)을 향(向)함과 같고, 자행(自行)의 관심(觀心)은 거울의 표면(表面)을 향(向)함과 같으니, 화타(化他)의 때의 거울도 자행(自行)의 때의 거울도 나의 심성(心性)의 거울은 오직 하나로서 다름이 없다. 거울을 즉신(卽身)에 비유(譬喩)하고, 표면(表面)을 향(向)함을 성불(成佛)에 비유(譬喩)하며, 이면(裏面)을 향(向)함을 중생(衆生)에 비유(譬喩)함이라. 거울에 이면(裏面)이 있음을 성악(性惡)을 단절(斷絶)하지 않음에 비유(譬喩)하고, 이면(裏面)을 향(向)할 때·표면(表面)의 덕(德)이 없음을 화타(化他)의 공덕(功德)에 비유(譬喩)하며, 중생(衆生)의 불성(佛性)이 나타나지 않음에 비유(譬喩)하느니라. 자행(自行)과 화타(化他)는 득실(得失)의 역용(力用)이니, 현의(玄義)의 一에 가로되 「살바실달(薩婆悉達)·조왕(祖王)의 활을 당겨 팽팽함을 이름하여 역(力)이라 하고 칠개(七個)의 철고(鐵鼓)를 부수고 하나의 철위산(鐵圍山)을 관통(貫通)하여 땅을 뚫고, 수륜(水輪)을 통과(通過)함과 같음을 이름하여 용(用)이라 함 자행(自行)의 역용(力用)이니라 모든 방편교(方便敎)는 역용(力用)의 미약(微弱)함이 범부(凡夫)의 궁전(弓箭)과 같다. 왜냐하면 옛날의 연(緣)은 화타(化他)의 이지(二智)를 받아 이(理)를 비춤이 고루 미치지 않으며, 신(信)을 생(生)함이 깊지 않고 의심(疑心)을 제(除)함이 다하지 못함이라 이상(已上) 화타(化他). 지금의 연(緣)은 자행(自行)의 이지(二智)를 받아서 부처의 경계(境界)를 극(極)하고, 법계(法界)의 신(信)을 일으켜 원묘(圓妙)의 도(道)를 더하며 근본(根本)의 혹(惑)을 끊고 변역(變易)의 생(生)을 손실(損失)함이라, 다만 생신(生身) 및 생신득인(生身得忍)의 양종(兩種)의 보살(菩薩)을 함께 이익(利益)케 할 뿐만 아니라, 법신(法身)과 법신(法身)의 후심(後心)의 양종(兩種)의 보살(菩薩)도 또한 함께 이익(利益)하니, 화(化)의 공(功)은 광대(廣大)하고 이윤홍심(利潤弘深)함은 확실(確實)히 이 경(經)의 역용(力用)이니라 이상(已上) 자행(自行)」 자행(自行)과 화타(化他)의 역용승렬(力用勝劣)이 분명(分明)함은 물론(勿論)이니 상세하게 이것을 보아라, 일대성교(一代聖敎)를 거울에 비춘 교상(敎相)이로다. 극불경계(極佛境界)란 십여시(十如是)의 법문(法門)이며, 십계(十界)에 서로 구족(具足)하여 십계(十界)·십여(十如)의 인과(因果)·권실(權實)의 이지(二智)·이경(二境)은 나의 몸 안에 있어서 일인(一人)도 누락(漏落)됨이 없다고 통달(通達)하고 해료(解了)하여 불어(佛語)를 남김없이 깨닫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어서 5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