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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지난 20202년 10월 하프 종주 이후 나머지 구간인 '배내고개 → 능동산 → 샘물산장 → 천왕산 → 재약산 → 파래소 유스호스텔'의 14km, 9시간 구간을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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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載藥山]
높이: 1,189.2m
위치: 경남 밀양시 단장면
영남 밀양 청도 일대 해발 1,000m 이상의 준봉들로 이루어진 영남알프스 산군 중의 하나인 재약산은 산세가 부드러우면서도 정상 일대 사자봉 주변은 억새지대이었으나 점차 억새가 볼품이 없어 억새 명산에서는 제외된다. 얼음골, 표충사, 층층폭포, 금강폭포 등 수많은 명소를 지니고 있다.
표충사 못 미쳐서 오른쪽으로 뚫린 계곡이 옥류동천이다. 오솔길을 따라 2㎞ 거리에 홍룡폭포가 있고 1.8㎞를 더 오르면 20m쯤의 폭포 2개가 연이은 층층(칭칭)폭포가 있다. 층층폭포에서 2㎞ 지점에는 늦가을의 명소인 사자평 분지와 폐교된 사자평분교(산동초등학교 고사리분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고사리마을로도 불렸던 이 일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가구가 민박을 받으며 식사를 팔았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됐다. 한편, 표충사에서 북쪽으로 1.5㎞쯤 등반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가 영롱한 높이 25m의 금강폭포가 있다.
재약산 아래 대찰 표충사가 있고, 영축산으로 넘어가면 통도사, 가지산을 넘으면 석남사, 운문산을 넘으면 운문사가 있다. 그래서 예부터 이 일대의 산길은 아무리 험준해도 선승의 표연한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표충사 주위는 송림이 울창하다. 석탑과 사우들도 정갈하다. 원효가 창건했으며 사명대사와 효봉스님을 배출한 대찰. 특히 유품전시관을 두고 해마다 향사를 지내는 등 사명대사의 호국 성지로 유명하다. 전시관에는 국보 75호인 청동 은입사 향완과 선조가 하사한 금란가사 등 보물과 문화재들이 가득 진열돼 있다.
재약산 명칭과 높이
재약산은 천황산이 일본 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일환으로 밀양시에서 재약산과 천왕산을 통합하여 천왕산 사자봉이 재약산 주봉이 되었다. 지형도에는 아직 천왕산과 재약산이 구분되어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산하"에서는 지형도상의 사자봉(천왕산)을 재약산으로, 이전의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표시한다.
인기 명산 100 [83위]
해발 1,000m가 넘는 산군이 알프스 풍광과 버금간다고 하여 붙여진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하는 재약산, 남쪽으로 표충사를 품고 있는 계곡에 층층폭포, 흑룡폭포가 있으며, 북쪽 남명리 천황사 계곡에 얼음골이 있어 영남지역의 나들이 코스로 사계절 인기가 있다. 재약산은 예전에 억새 명산이었으나 점차 억새가 볼품이 없어 억새 명산에서는 제외된다.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산세가 부드러우면서도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벽을 갖추고 있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삼복더위에 얼음이 어는 천연기념물 제224호 얼음골이 있다.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하고 서산대사가 의병을 모집한 곳인 표충사가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애초 6월 마지막 주 토요산행은 강원 정선의 상원산, 옥갑산 연계 산행을 할 예정이었다. 사실 상원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행을 시작한 이후 안내 산악회가 아니면 당일 산행이 불가능한 산 중 하나라 이번 이전 2번을 시도했으나, 다 성원 미달로 산행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2020년 7월은 홍천 백암산[산행기]을, 2020년 12월은 백두대간 대덕산[산행기]으로 대체 산행을 다녀왔었다. 이후 같은 안내 산악회에서 청옥산, 상원산 등 강원도 오지 산행을 다시 계획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바로 신청했다. 그리고 6월 3주 차 토요일에 다녀온 청옥산이 대단히 만족스러워[산행기], 마지막 주 상원산도 기대가 컸었다.
산악회 게시판에서 상원산행 공지를 발견했을 당시인 5월 14일만 해도 신청자가 몇 되지 않아 마중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회비를 입금하고 버스에 자리 하나를 신청했다. 이후 앞의 두 번과 같이 성원 미달로 취소되는 일이 없기를 빌며 신청현황을 지속해서 확인했다. 5월 말까지는 신청자가 거의 없어 성원 미달에 의한 세 번째 산행 취소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유월 들어 신청자가 늘기 시작하더니 유월 10일경 버스 출발 최소 인원인 20명을 넘어 최고 28명까지 달했다. 이 상태라면 성원 미달로 산행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거라 안심했다. 그리고 6월 20일 산악회 카페 주인장이 상원산행 게시판에 "정상 출발 예정이니 입금을 서둘러 달라!"는 공지를 올렸다. 사실상 끝났다.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등산객의 성지 신사역으로 시간에 맞춰 가면 된다. 세 번 시도만이다!
주인장이 그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산행 취소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산행 나흘 전에는 신청자가 성원에서 1명 모자란 19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처 상상도 못 한 상황이라 성원인 20명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한 자리 더 신청할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취소가 늘어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기상청 중기예보를 확인했다. 중기예보라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토요일 비다! 해서 추이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기상청 사흘 예보인 단기 예보에 토요일이 포함되는 첫날 예보를 확인하니 충청 이북은 비다! 그러자 산행 취소가 급증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Plan B가 아닌 다른 대책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같은 조건의 다른 산악회 무박 토요 백두대간 산행은 거의 취소자가 없었다. 이유가 뭘까? 역시 인증? 아니면 산악회의 정책? 상원산을 진행하는 산악회는 24시간 전에 취소하면 전액 환급해주나, 백두대간을 계획한 산악회는 24시간 이내에는 환급 불가는 같으나 72시간 내에는 취소 수수료가 있다.
성원 미달에 따른 산행 취소는 기정사실이라 급하게 여기저기 산악회 카페를 돌아다니며 토요일 갈만한 산행 계획을 찾았다. 대부분 산악회가 국립공원, 계곡 등으로 딱히 원하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해서 가능하면 피하는 일요 산행까지 뒤졌으나 마찬가지라, 그나마 가기는 해야 하나 언제든 갈 수 있어 뒤로 미뤄뒀던 산행지를 찾아보니 영남알프스가 눈에 띈다. 울주군청이 영남알프스 9봉 인증 시 선착순 기념 은화를 지급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중이라 휴일, 평일 가리지 않고 전국의 산악회가 영남알프스로 몰리고 있다. 고로 서울에서는 거의 매일 영남알프스로 향하는 산악회 버스가 있다. 이번 토에는 마침 2곳의 산악회에서 영남알프스 종주 중 작년 가을에 했던 영남알프스 하프 구간[산행기] 외의 나머지 코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문제라면 내가 확인했을 때는 만원으로 마감된 상태였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으로 취소하는 신청자가 한두 명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라 미리 대기자로 신청할까 고민하다가 아직 공식적인 상원산행 취소를 통보받지 못한 상태라, 안내 산악회 주인장의 공식 취소 문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금요일 아침 폰에 알림음이 울려 확인해 보니 상원산행을 진행했던 산악회 주인장의 산행 취소 문자다. 정확히는 취소가 아니라 8월 1일 일요산행으로 연기한다는 거지만. 해서 이번 상원산행의 회비를 연기된 8월 1일 산행비로 이월해 달라고 답장을 보내고 영알을 진행하는 산악회 중 한 곳의 사이트에 접속해 산행 게시판에 빈자리 있으면 하나 달라고 글을 남겼다. 내가 자리 요청 후 정확히 29분 뒤에 카페 주인장이 빈자리가 있으니 회비를 입금하라고 댓글을 남겼다. 볼 것도 없이 바로 입금하고 그 사실을 다시 댓글로 알리고 배정받은 자리를 보니 정확히 내가 원하는 자리다. 이 산악회는 김밥과 생수를 제공하는 만큼 특별한 점심 준비는 필요 없고, 날이 흐리다니 카메라는 작고 가벼운 거로 가져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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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10분 양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라 다른 산악회에 비해 10분이 늦다. 거기다 김밥과 생수를 제공하니 일찍 일어나 점심 준비를 할 필요도 없어, 평소보다 20분 늦게 기상해 등산 준비를 하기 위해 아지트로 이동하느라 밖을 보니 비가 한참이다. 해서 바로 기상청 예보 사이트로 들어가 상황을 보니 충북 이북 지방에 비가 내리고 있고, 남쪽은 흐리기는 했으나 비는 없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지역도 9시 이전에 다 그치는 거로 나왔다. 잠깐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챙기기로 했다. 그렇게 우산을 포함해 배낭을 싸고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한 이유는 평소 마을버스가 6시 즈음에 도착하기에 6시 6분 지하철을 타는 건 아슬아슬하나, 6시 12분 차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5시 56분경 마을버스 상황을 보니 두 버스 중 하나는 1분 후 정류장 도착 예정이고, 다른 버스는 아직 출발도 안 했다. 이런, 아니 내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 버스 시간도 달라지나? 뭐 어쨌든 이미 걸어가기는 늦었고, 정류장으로 가 여차하면 택시를 타기로 했다.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라 우산은 배낭 옆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서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지하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버스는 소식이 없고, 와중에 빈 택시도 없고. 다음 지하철을 타면 아슬아슬하기는 하나 산악회 버스를 탈 수는 있기에 이렇게 된 마당에 마을버스를 타기로 굳히고 버스를 기다리자, 6시 7분에 버스가 나타났다.
마을버스는 불광역 하나 전 정류장에서 승객이 내리고 타느라 한 번 정차한 거 외에는 신호를 이리저리 잘 피해 6시 10분에 불광역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불광역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피하는 걸 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가 정차하기를 기다리다 문이 열리자마자 버스에서 뛰어내려 역으로 뛰었다. 교통의 연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광역으로 뛰느냐 양재역에서 뛰어올라오느냐 차이가 있을 뿐 뛰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역으로 뛰어내려가 지하철 현황을 보여주는 LED를 보니 전철은 아직 연신내역을 떠나지 않았다. 해서 한숨 돌리고 여유 있게 승차장으로 내려가 조금 후 도착한 전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보며 양재역으로 향했다. 불광역으로 뛴 덕에 양재역에서 느긋하게 출구로 나오니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으나 배낭 옆 주머니에 든 우산을 꺼내는 번거로움을 이길 정도는 아니라 비를 맞으며 산악회 버스 정차장으로 향했다.
영남알프스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산악회가 양재역을 거치는지 관찰했다. 이미 잘 알려진 산악회 외에도 서너 개의 작은 산악회가 양재역을 거치고 있었다. 7시가 가까워져 오자 일군의 산악회 버스가 지정된 정차장으로 몰려왔다. 해서 가까이 다가가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았으나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신청한 안내 산악회 버스는 한 대도 없고, 모두가 다른 유명 산악회 버스였다. 해서 그 버스의 목적지를 살펴보니, 전부 국립공원 아니면 까만 소 인증 산행지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인증은 중요하다. 와중에 배틀봉을 공개해 유명한 강원 두타산행 버스는 두 대! 그런데 애초 출발 예정 시각이 7시 10분이 가까웠음에도 내가 신청한 산악회 버스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아 산악회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10분에 경남 함양의 황석, 기백산행을 선두로 서너 대가 등장했다.
애초 양재역 출발 예정 시각인 7시 10분에 도착한 버스가 우중에 정신없이 등산객을 태우고 출발한 이후에도 20여 명의 등산객이 남아 있었다. 해서 그 대부분이 나와 같이 천왕산, 재약산 연계 산행하는 동지라고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7시 15분이 지나자 버스가 한 대씩 들어와 남은 등산객을 태우고 떠났다. 물론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없다. 동지라고 생각했던 등산객이 동행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실망도 하고. 문제는 이 산악회만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다는 거다. 어쨌든 계속 버스가 도착해 기다리던 등산객을 태우고 떠나고 남은 등산객은 나를 포함 두 명이었다. 기다리는 사람 숫자가 너무 적고 이미 예정보다 10분이 지났으나 버스가 보이지 않아 내가 이번 산행 시간 계획을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패드를 꺼내 확인하려는 순간, 다른 한 등산객이 재약산 가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고, 일단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둘이 기다리고 있는데 7시 21분에 버스가 나타났다. 산악회 버스 중 28인승에는 특히 단독 좌석은 약간 불편하기는 하나 배낭을 들고 탈 만한 여유가 있다. 이번에 같은 산행을 계획한 두 산악회 중 이 산악회를 선택한 이유가 버스 때문이라 배낭을 들고 버스에 타 내부를 둘러보고 흠칫했다. 텅 비었다! 예상대로 오지 않는 등산객을 기다리느라 늦게 도착한 거다. 뭐, 10분 정도야. 일단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옆자리 두 좌석을 제외하고는 앞뒤가 다 빈자리다. 해서 산악회 사이트에 들어가 산행 신청현황으로 양재에 도착하기 전 점거됐어야 할 자리 중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봤다. 옆자리 바로 뒤 두자리다! 아마, 비 때문에 산행을 포기했을 거다. 어쨌든 다른 등산객보다 먼저 파악해 횡재했다! 모든 짐을 들고 그 자리로 옮겨, 배낭을 포함 짐은 통로 쪽 자리에 두고 난 창가 쪽 자리에 앉자마자 모든 걸 벗고 슬리퍼를 신었다.
널찍한 두 자리를 차지하고 퍼질러 앉아 가끔 창밖으로 기상 상태를 확인하며 책을 읽는 중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웠다. 혹시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신청한 등산객이 죽전이나 신갈에서 타는 이변이 생길까 봐 약간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불가피한 상황에서 환급할 수 없는 시간에 산행을 취소해야 하는 등산객을 위한 사이트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다 지쳐 잠깐 눈을 붙였다가 버스의 덜컹거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휴게소다. 아쉬웠다, 막 잠이 들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슬리퍼 바람으로 버스에서 내려 가랑비가 내리는 휴게소 화장실을 다녀와 버스 주차장 쪽을 보니 관광버스로 꽉 찼다. 대부분이 산악회 버스다.
산악회 버스에서 제공하는 김밥과 생수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 앉아 있으니,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지도를 나눠준 후, 버스가 출발하자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주의 사항만 들었으나, 별 내용이 없었다. 다만, 산행에 주어진 시간이 6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8시간으로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랐다. 아마, 7월 4일 산행으로 잡혀 있는 남덕유산과 혼동을 일으킨 거 같다. 사실, 코스의 총 거리가 10km에 불과하니 6시간이면 충분해 더 고민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면 책을 보다가 지치면 다시 자고를 반복하는 중에 창밖으로 기상도 확인했는데, 청도를 지나자 비가 내린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날씨는 화창했다. 그리고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고 순간, 등산화 끈을 다시 매며 등산 준비를 마쳤다. 이후 주변의 산을 구경하고 있는데, 버스가 힘겹게 급경사를 올라가더니, 11시 37분경 이번 산행 들머리인 얼음골 주차장에 도착했다.
등산 준비 중 비나 이물질 침투에 대비한 미니 스패츠는 등산화 끈을 다시 매고 비가 내릴 거 같은 날씨가 아니라 착용하지 않았으나, 휴게소 이전에 배낭 옆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우산은 꺼내는 게 귀찮아 그냥 들고 가기로 했고, 화창한 날씨에 맞게 바람막이는 벗어 배낭에 넣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꺼내 쓰고 배낭을 둘러매고 버스에서 내렸다. 물론 버스가 들머리에 도착하기 전 대장이 다시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하고 가장 중요한 마감 시각을 발표했다. 11시 40분 들머리 도착 기준으로 소요 6시간, 17시 40분 즉 오후 5시 40분 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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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우리가 들머리인 얼음골 주차장으로 향할 때 앞에서 달리고 있던 버스의 소속을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그 버스의 소속을 확인한 순간 내가 큰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산행을 계획한 두 개 산악회 중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산악회였다. 아니, 정확히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같이 온 산악회는 주인장과 안면이 있어 만원이라도 자리를 요청하면 비는 대로 자리를 만들어주나, 초면의 산악회에 그걸 바랄 수는 없었다. 문제는 두 개 산악회가 같은 산행을 계획 중이라는 걸 망각하고 웬 산악회 버스? 하고 있었던 거다. 동시에 도착한 그 버스를 보자 비록 자리는 좀 불편하나, 그거야 배낭을 짐칸에 넣으면 해결될 문제라 앞으로 이 산악회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버스 확인 후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두 대의 버스에서 내린 50여 명이 넘는 등산객이 주차장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산행 준비 중인 게 보였고, 우로 보이는 능선에는 케이블카 정류장이 보이고 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전각이 늘어서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진만 찍었으나 이 글을 쓰면 확인해보니 "동의각(東醫閣)"이다. 동의각? 허준과 관련 있나? 해서 찾아보니, 뭐 뻔한 지자체의 관광 홍보다!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고,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등산객의 움직임을 보니 우리 대장은 일군의 등산객을 이끌고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산악회에서 제공한 지도를 보면 그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맞아 대장을 따라가려는 순간 다른 산악회에서 온 등산객이 저기까지 갈 필요 없이 밑에 보이는 계곡을 건너 바로 가면 된다며 뒤에 처져있던 등산객을 선동해 데리고 갔다. 산세로 보나 길로 보나 그 등산객의 말에 혹해 나도 그를 따라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계곡을 보니 얼음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폭포를 이루고 있고 그 밑에서는 더위를 피해 물놀이는 즐기는 두세 팀의 가족이 보였다. 피서지 겸 계곡 물놀이 장소로 최고다. 바로 앞이 주차장이라 한여름 피서기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거 같아서 아쉽지만. 계곡을 건너 매표소에서 천 원을 내고 7분가량 올라가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끝에 절이 나타났다. 천왕사다! 생각보다 작다. 천왕사를 지나 급경사의 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올라가자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이다. 그런데 문제는 천 원씩 관람료를 받는 매표소에는 어느 순간부터 얼음이 얼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자그마하게 붙어있었다. 뭐 지구 온난화라 그럴 수도 있지만, 왜 철조망을 쳐서 계곡으로 접근해 얼음을 볼 수 없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기 돌 밑에 얼음이 있으니 그렇게 알고 돈 내도 아니고 뭘 보여주고 돈을 받는 게 정상 아닌가?
돈 받는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하나, 애당초 얼음골의 얼음이 목표가 아닌지라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천 원 기부했다고 생각하고 너덜에 만들어진 급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보통 등산로도 급경사는 힘든데, 계속되는 너덜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체력소모가 심했다. 그렇게 올라가는 데 누군가 너덜에 널린 돌 두 개를 골라 표지석으로 삼아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울클릿지?” 어떤 암릉일지 궁금했으나 하산주를 위해 최소 마감 한 시간 전에 날머리에 도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기에 못 본 척하고 헉헉거리며 계속 올라갔다. 앞서가던 등산객을 대부분 추월하며 가 산행을 시작한 지 50분 정도 지난 12시 33분경 뭔지 모를 안내문이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 안내문을 보니 허준이 그 스승을 해부한 것으로 알려진 암굴로 “동의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물론 후대의 작품일 거다. 그리고 그 뒤로 나뭇가지에 리본이 달린 길이 있었고, 그 왼쪽 옆에는 "폐쇄 등산로"라는 안내문이 보란 듯이 서 있었다. 그 경고문 뒤 너덜에는 칠순에 가까운 노년의 산꾼이 올라가고 있었다. 경고문만 보면 과거에는 등산로가 있었다는 얘기라, 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으나, 어느 앱에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폰을 보며 눈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저 노년의 산꾼을 따라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산꾼이 나를 보더니, 굴은 조금 위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애초 굴에는 관심 없었으나, 굴을 보러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간다면, 당연히 폐쇄된 등산로로 갈 거라는 건 나란 인간의 특성이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노년의 산꾼이 권하는 걸 모른 척할 수 없어 굴을 보러 올라갔다.
안내문 위로 10여 미터 올라가자 대략 2m가량의 암굴이 있었다. 허준이 저기서 스승의 시체를 해부했는지는 그만이 아는 거고, 비박지로는 딱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미 비박꾼이 애용하고 있는 거 같았다. 어쨌든 굴을 보러 왔으니 사진 몇 장 남기고 그 노년의 산꾼이 갔던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동의굴에서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는 동안 계속 급경사의 너덜을 올라 암벽 뒤로 모습을 감췄던 그 노년의 산꾼이 나타나 길이 없다고 했다. 확인을 위해 조금 더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암벽이 둘러싸고 있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다만, 오른쪽에는 다른 곳과 달리 암벽 틈으로 기어올라갈 수 있을 만했다. 해서 저기가 길 같다고 얘기하니, 그 산꾼은 본인은 포기하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라 하고 그 암벽을 기어올랐다. 올라가자 인간의 흔적이 있기는 했으나 뚜렷이 길이라고 할 만한 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아래에서 그 노년의 산꾼이 어떠냐고 큰 소리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해서 "올라오지 마십시오!"라고 외치고 길을 찾아 다시 앞에 보이는 암벽을 기어오른 후 우로 돌아가자 저 밑으로 너덜의 정규 등산로가 보였다.
계속되는 암벽과 물에 젖어 축축한 낙엽이라는 최악의 상태에서 계속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고 결론 내리고 다시 그 암벽을 기어 내려와 마지막에는 거의 너덜지역으로 떨어지다시피 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동의굴로 돌아온 시각이 정확히 1시였다. 12시 33분에 동의굴 안내문을 보고 시작한 암벽 등반이 실패로 끝난 후 1시에 원위치했으니, 27분간 길을 찾아 헤맸다는 얘기다. 그 27분을 앞으로 남은 코스에서 만회하지 못하면 하산주 시간이 그만큼 짧아진다. 돌아온 동의굴 안내문 뒤로 난 너덜길을 통해 헉헉대고 올라가다가 두 여성 등산객을 추월하기도 하며 올라 1시 23분에 능선에 도착했다. 그 능선 왼쪽으로는 철계단이 뻗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잠깐 혼돈에 빠졌다. 내가 생각하는 길과 달랐기 때문이다. 난 분명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천왕산이라고 생각했는데, 등산 앱은 철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대략 2분 정도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등산 앱이 시키는 대로 왼쪽을 택해 철계단으로 올라갔다. 약간의 경사를 지닌 등산로를 따라 15분가량 가자 앞에서 말소리가 들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등산객의 모습이 보였다. 주 능선이다. 소위 얘기하는 영남알프스 환 종주 시 주 등산로! 이제 고생 끝났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정신없이 주 능선으로 향했다. 그 결과 1시 42분에 도착했다. 동의굴 암벽에서 헤매고 있을 때 잠깐 본 시각을 보고 12시 30분까지 천왕산에 도착하는 거로 목표를 정했었다. 마감 시각 한 시간 전인 3시 40분까지는 날머리에 도착하기 위한 시간 계획에서 나온 거다. 그런데 1시 42분이라 무언가 대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 해서 얼음골 갈림길을 떠나 천왕산으로 급하게 향하며 등산 앱이 알려준 시속 포함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상황을 파악했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천왕산 정상을 보며, 먼저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는지 확인했다. 500m 단위로 현재 속도, 평균 속도, 소요 시간 등을 알려주는 등산 앱의 정보에 의하면 들머리에서 3.5km까지 평균 속도 1.5km로 왔다. 산악회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구간 거리는 10km다. 고로 남은 거리는 6.5km고. 남은 구간의 대부분이 하산이라 최소 평균 2km/h로 달린다고 가정하면 날머리까지 2시간 15분. 그럼 날머리 도착 시각은 3시 57분, 대략 4시경이다. 물론 지도의 거리가 정확하다는 전제다. 그럼 하산주 마실 시간이 30분이라는 얘긴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이상했다. 소요 시간과 지금까지 온 거리는 명확하다. 해서 지금까지 소요 시간과 내가 알고 있는 남은 시간을 합해봤다. 소요 2시간, 남은 시간 3시간, 고로 5시간! 아니 왜? 이런 계산 결과가 나올까 하며 다시 하나씩 따져보니 출발 시각에서 잘못을 범했고, 그에 따라 마감 시각까지 달라진 거였다. 습관적으로 출발 시각을 10시를 기준으로 한, 10시 40분이라 각인 후 산행에 주어진 6시간을 계산하니 당연히 마감 시각은 4시 40분! 실제는 11시, 5시! 저 아래로 샘물산장을 보며 깨달은 거다. 고로 현재 남은 시간은 4시간 정도라 유유자적해도 된다!
착오가 발생한 시점과 그를 바로잡은 후의 남은 시간을 계산하니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물론 산악회 지도가 알려주는 거리에 2~3km는 더해야 한다는 현실도 고려해서. 어쨌든 2시 6분에 1차 목적지인 천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인증을 찍고 있는 몇몇 등산객과 관광객이, 그 주변에는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십여 명의 등산객이 있었다. 인증을 찍는 그룹이 사진사와 모델을 서로 바꾸는 빈틈을 노려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까만 소의 공인 대상이 아니라 인증꾼이 몰리지 않아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인증을 남기기로 했다. 해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등산객 사진을 찍어 주고, 사진을 부탁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찍느라고 찍었는데, 찍힌 게 없다. 셔터가 문제다. 해서 이왕 시작한 마당이라 인증을 남기기 위해 정상석 주위를 배회하다 혼자서 우물쭈물하는 등산객을 보고 다시 기브 앤 테이크로 서로 인증을 남겼다. 이후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등산객처럼 바위에 주저앉아 산악회에서 제공한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먹으며 다시 정상석을 배경으로 찍힌 사진을 확인했는데, 찍힌 게 없다! 돌아버리는 순간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동일한 결과다. 허탈하지만, 어쩌겠는가 해서 천왕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겠다는 미련은 버리고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내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배낭을 둘러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목표인 재약산을 향해 떠나려고 하는데, 정상석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등산객이 보여 사진을 찍어주고 시험 삼아 나도 찍어 달라고 부탁해 세 번째 인증을 찍고 미련 없이 천왕산을 떠나 재약산으로 향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재약산과 중앙의 천왕재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고개 즉 천황재를 향해 내려가는데 간월산, 신불산 코스와 같이 곳곳의 숲사이로 비박터가 보였다. 역시 비박의 성지 영알이다.
천왕산에서 800m를 내려가자 데크로 휴식 공간을 만들어 둔 천왕재가 나오고 일군의 등산객이 휴식하거나 휴식 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천왕재는 산악회 B 코스 하산지점이다. 그런데 내가 막 천왕재에 도착했을 때 10여 명의 건장한 체격에 비박 배낭을 진 야영팀이 단체 구호를 외친 후 거기를 떠나 재약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군대 선후배 아니면 대학 운동권 선후배의 모임으로 보이는데. 애당초 천왕재에서 쉴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던지라 계속 다음 목적지인 재약산으로 가던 길을 가다 보니, 그 야영 팀의 바로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체격이 좋아도 짊어진 짐이 보통이 아니고, 소수가 아니라 10여 명이 같이 움직이는 팀이라 속도는 거의 빈 몸이나 다름없는 나를 따를 수 없어 내 진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10여 명을 한꺼번에 추월하기에는 등산로가 너무 좁아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그들이 암릉을 우회하는 사이에 그것을 넘어 추월해야 했다.
그들을 추월하는 과정에서 뒤로 보이는 천왕산의 후경(?)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긴 후 암벽을 오르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 "죄송합니다!"하고 재빨리 피했다. 막판에 발을 굴러 정상에 오르면 갑자기 정면으로 비석이 얼굴에 부딪힐 것처럼 나타나는데, 이게 정상석 후면이다. 인증꾼 입장에서는 까만 소 인증을 위해 힘들게 올라와 줄 서서 인증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웬 불한당이 뒤에서 나타나니 얼마나 짜증 나겠는가? 당연히 죄송하다고 얘기하고 재빨리 인증에 방해되지 않도록 다른 바위로 옮겨 주위를 보니 아래로 데크 전망대에 쉬고 있는 몇 명의 등산객이 보였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정상석 있는 곳을 눈을 돌려 살펴보니, 인증을 찍을 분위기가 아니다. 해서 그저 남들 인증 찍는 사이사이 비는 시간에 정상석만 방해받지 않고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으나 그것도 불가능했다. 내가 그랬듯이 끊임없이 넘어오는 등산객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부탁의 말도 안 들리는데!
정상석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방해를 받으며 사진을 찍은 마당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폼잡고 인증을 남기는 건 진작에 포기하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말 수는 없어, 카메라를 폰처럼 이용해 셀카 몇 장 찍는 거로 만족했다. 그렇게 인증을 찍은 후 다시 길을 재촉해 고사리분교를 향해 출발했다. 암벽을 뛰다시피 하며 내려가는데, 팀으로 보이는 중년의 등산객 무리 중 한 여성 등산객이 "혹시, 산악회에서 왔습니까?"하고 묻는다. 해서 동행한 산악회명을 알려주고, 어디서 왔느냐고 되물으니 인천의 같은 이름의 산악회라고. 산에서 자주 마주치는 산악회 중 하나다. 그리고 “표충사 가려면 이쪽으로 가면 됩니까?”하고 되묻는다. 이번에 동행한 산악회도 A 코스는 고사리분교에서, B 코스는 재약산 정상에서 천왕재로 돌아가 표충사로 하산하는 거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인천에서 온 팀도 서울 팀 B 코스와 같았다. 해서 마감 시각이 몇 시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6시 30분 그때 시각이 3시 20분이니 시간은 차고 넘친다. 고로 뒤로 돌아갈 이유가 없어 "맞습니다. 이리 내려가시면 됩니다!"하고 답해주고 나무 계단을 따라 빠른 속도로 하산했다.
그런데 고사리분교 방향으로 하산하는 나무 계단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3시 20분에 거의 뛰다시피 내려가기 시작해 3시 33분에 아래에 도착했으니 계단만 13분을 내려갔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 임도로 보이는 길을 따라 2분가량 내려가자 "사자평", "고사리분교" 갈림길이 나타났다. 사자평에서 고사리분교 방향으로 내려가도 되나, 하산주 마실 시간을 빼면 이동에 주어진 시간이 1시간 정도라 사자평 습지보다는 내 목을 축이는 게 더 중요해 바로 고사리분교 방향으로 틀었다. 재약산 정상을 뒤로하고 작전도로(군사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3시 50분에 옥류동천 갈림길에 도착했다. 사실 작전도로도 사자평습지에서 발원한 옥류동천을 따라 난 도로였으나, 본격적인 절경이 펼쳐지는 시점에서 계곡으로 길을 낸 거로 보였다.
계곡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계단 끝에 전망대 비슷한 게 보이고 물소리가 요란한 거로 봐서 아래에 폭포가 있는 거 같았다. 계곡 갈림길에서 계단을 따라 3분 정도 내려가자 예상대로 폭포가 나타났다. 그런데, 생각 외다. 자그마한 폭포일 거로 생각했는데, 거대한 폭포다. 놀라운 광경에 동영상과 사진을 찍으며 폭포 밑으로 내려가 폭포수 한 모금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귀차니즘에 계단을 따라 하산했다. 그런데 바로 아래 또 폭포가 있었다. 이 폭포 또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연이은 폭포에 감탄하고 내려가서야 그 두 폭포를 붙여서 층층폭포(칭칭폭포)라 부른다는 걸 알았다. 처음 층층폭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작은 폭포 서너 개가 이어질 거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거대한 두 폭포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좁고 높은 협곡이라 도저히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건 불가능해 계곡 위 20여 미터 부근에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지류가 나오고 그 지류를 건너는 다리에서 바로 보이는 작은 폭포가 있었다. 위에서 보고 온 층층폭포 대비 작은 거지 만약 다른 산에 있었으면, 이름을 날렸을 만한 폭포로 그 이름을 구룡폭포라고 하는 간헐폭이였다. 역시 구룡폭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급경사의 산비탈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소로 물이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 유심히 살펴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폭포 상단이다. 그리고 더 내려가지 중단, 마지막으로 전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쾌 큰 폭포임에도 그 폭포에 대한 어떠한 안내문도 없어, 이건 폭포 취급 안 하나 궁금해하며 계속 갔다.
이름 모를 폭포를 지나 5분가량 가자 앞에 계곡 쪽으로 뻗어 나온 전망대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니, 얘들도 여기저기 인기 있다는 투명한 바닥을 댄 전망대를 설치했나?"였다. 그런 전망대를 과히 좋아하지는 않아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가까이 다가가 현실을 보고는 생각이 싹 바뀌었다. 일단 그 전망대는 ‘폭포 취급하지 않는 물줄기’라 생각했던 것을 포함한 거대한 흑룡(홍룡)폭포 전망대로, 계곡 쪽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면 전경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겁을 주기 위한 투명한 재질이 아니라, 구조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철망으로 바닥을 댄 전망대였다. 그 전망대에서 흑룡폭포의 전경에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4시 21분에 2km 떨어진 표충사로 향했다. 5시까지 도착하면 30분간의 하산주 타임이 가능하니 서둘러야 했다.
4시 25분 표충사에서 1.7km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갑자기 길이 넓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계곡 옆으로 나 있었다. 여기부터는 폭포나 협곡이 없고, 표충사까지 쉽게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해서 우리의 돌고래 조는 새벽녘 폭우를 뚫고 백두대간을 달리느라 속옷까지 젖었다는데, 나는 지옥의 얼음골 너덜 2km에 더해 동의굴 암벽을 헤매느라 땀으로 속옷까지 젖은 상태라 알탕은 몰라도 세수와 탁족은 간절해, 알탕하기에 적당한 소를 찾으며 계곡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갔다. 그런데 옥류동천의 관리 지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한 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소가 있으면 "계곡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세우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밀양시청이겠지?! 그 안내문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계곡으로 가 등산화와 양말에 윗도리까지 벗고 물로 들어갔다. 대략 6분 정도 세수와 탁족을 하는 동안 옆으로 지나가던 등산객이 하나둘 들어와 같이 씻었다.
6분의 세족식을 마친 후 빠르게 모든 복장을 다시 갖추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막걸리를 향해 빠르게 내려갔다. 그 시각이 4시 37분으로 표충사까지는 대략 1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가까웠다. 그러나,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없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상가 주차장에, 최소 5시까지는 도착해야 30분의 갈증 해소 타임을 가질 수 있어 서둘렀다. 4시 46분에 돌탑 군락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다. 표충사가 멀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돌탑 군락에서 표충사까지 생각보다 멀어 4시 54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가 주차장까지 6분 만에 가야 한다. 그런데 그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옥류동천을 구경하며 그 옆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 5시 정각에 일주문을 통과했다. 다시 말해 표충사 영역을 5시에 벗어날 수 있었고, 상가 도착 시각은 예측할 수 없었다.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버스에 몸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초조하게 차량이 빈번히 오가는 도포를 따라 내려가다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많은 인파가 옥류동천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걸 보는 순간 "다,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시각이 5시 13분이었다. 35분에 버스로 간다고 하면 주어진 시간은 20분 정도, 충분하다!
3
상가로 들어서 먼저 버스 위치를 파악하고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라는 이유는 시각을 확인하면 절대 들어갈 수 없어서다. 들어가 빈자리에 앉아 도토리묵 무침과 막걸리를 주문하자, 묵은 없다는 답이 돌아와 벽에 붙은 차림표를 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려 산채전으로 바꿨다. 해물파전이야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거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채전을…. 그런데 식당에는 등산객 남녀 한 쌍이 해물파전을 안주로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실 시간도 얼마 없음에도 식당을 골라 들어갔는데, 그 기준이 손님이었다.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도 그 등산객 한 쌍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은 없는데 주인장 혼자 전 부치랴 밑반찬 깔랴,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불가능한 상황이라,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냉장고로 달려가 일단 막걸리와 잔만 들고 와 갈증 해소 차원으로 막 막걸리 한 잔 들이켰다. 이후 주인장이 전을 팬에 올리고 익는 동안 죽순 무침과 김치를 가져와 그걸 안주로 마셨다. 문제는 그 시각이 5시 20분이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막걸리가 예술이다. 해서 도가와 상품명을 머리에 새겼다. 밀양 클래식 막걸리! 혹시 그 동네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마셔보기를 권한다. 나를 그 식당으로 유도한 한 쌍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두 산악회 중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산악회를 이용한 등산객으로 그 산악회의 마감 시각은 5시 30분이라고 했다. 아니 시작은 같이했는데, 우리보다 10분 빠르다니, 마감 시각이 10분 늦은 산악회를 선택한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한 순간이다! 5시 22분 주문한 산채전이 나오고 그걸 안주로 갈증 해소 음료를 마시며 그 한 쌍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5시 30분 가까웠다. 그러자 그 두 양반은 정신없이 버스로 가고, 나와 같은 산악회 등산객이 식당으로 들어오더니, 비빔밥 가능하냐고 묻고 "예"라는 대답에 바로 주문하고 앉는 걸 보며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는 탁월함에 갑자기 존경심이 생겼다. 거의 주문과 함께 나온 비빔밥을 비비며, 계산 먼저 해달라고 카드를 내미는 그에게 반했다. 그걸 보고 나도 계산 부탁한다고 카드를 내밀었다.
물로 꽉 찬 위장에 산채전을 꾸역꾸역 쑤셔 넣고,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산객을 따라 나도 등산화를 다시 신고 배낭을 메고 식당을 나섰다. 그 시각이 5시 38분이다. 마감 2분 전! 마감 전이라는 당당함으로 버스로 다가가니 버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솔 대장과 등산객 한 명이 수고했다고 인사를 한다. 역시 "수고했습니다!"라고 답례를 하고 분위기를 보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등산객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서 당당하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달려갔다. 그렇게 볼일을 보고 인천과 서울의 동일 이름 산악회의 두 버스 기사가 얘기를 나누는 걸 뒤로 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았다.
그런데 마감 시각이 5시 40분이 지났으나, 버스는 출발할 분위기가 아니라 뭔 일인가 살펴보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두 명의 등산객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나도 모르게 짜증이 몰려왔으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창밖으로 주변 산세를 감상하고 있는데, 버스로 달려오는 두 여성 등산객이 보였다. 내가 동의굴 암벽에서 20여 분 동안 헤맨 후 다시 정규 등산로로 돌아왔을 때 바로 앞에 있는 것만으로 나를 위로했던 둘이다. 예상대로 늦은 두 등산객이 그 두 여성이다. 그래 봐야 2분 정도 늦었지만. 버스를 보자 빠르게 달려와 다른 얘기 없이 바로 자리에 앉아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 시각이 5시 43분이다. 속리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는 동안 손톱이 뒤집어질 뻔한 위험을 감수하고 식혜를 먹고, 양재로 향해 9시 39분에 출발했던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영남알프스 산행을 마쳤다.
산악회 계획 A 코스에 따라 '얼음골 → 천왕사 → 동의굴 → 얼음골 갈림길 → 천왕산 → 천왕재 → 재약산 → 고사리분교 갈림길 → 옥류동천 갈림길 → 층층폭포 → 구룡폭포 → 흑룡폭포 → 표충사 → 상가주차장'의 13.74km(트랭글 기준), 5시간 37분의 얼음골에서 올라 옥류동천으로 하산한 최고의 산행이었다. 이동 5시간 8분, 휴식 29분!
짧은 너덜 지옥을 경험하고 싶다면 2km 정도의 영남알프스 얼음골을, 더 긴 구간을 원하면 7km 조금 넘는 지리산 화엄계곡을 권한다.
옥류동천(玉流洞川)이라는 놀라운 계곡을 발견한 산행이다. 계곡을 이루는 칭칭, 구룡, 흑룡과 이름을 얻지 못한 작은 폭포 감상 후 욕탕에서 즐기는 세족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옥류동천!
서울에서 왕복 8시간을 허비하며 갈만한 영남알프스는 아니나, 얼음골에서 시작해 옥류동천으로 끝내는 구간만큼은 그 8시간을 축복이라 여기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