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한권종
어제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쓴다.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용기가 생겼기에 순천에서 하는 모임에 참가하기로 했다.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선생님이 학교 행사 때문에 참가가 어렵다는 댓글을 보면서 이동 수단이 고민되었다. 나는 운전을 30분 이상하면 졸려서 견디기 어렵다. 심장질환 때문에 먹는 약의 부작용이다. 며칠이 지난 후 아내에게 부탁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인 선생님이 간다고 연락이 와서 반가웠다. 당일에 결국 목포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한 분의 희생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처음 만남이었지만 도청 앞에서 목포 분들을 만나서도 쉽게 이야기를 나누고 순천의 식당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 공부를 함께하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천에서 모든 분이 만날 때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푸짐하게 먹고 백운산 둘레길로 행했다. 일행과 편안하게 대화하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한 분이 맨발이어서 놀랐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직접 보게 되어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느꼈다. 무엇이든 지속해서 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리라. 이전에 산행에서는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마음에 담기만 하였는데, 이날은 사진도 찍으면서 즐겁게 올라갔다. 산행하면서 어디보다는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강원도에서 담임을 하면서 명산에 들어가는 설악산으로 체험 활동을 간 적이 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학급 아이들과 대청봉 정상에서 함께한 순간이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자신들의 경험 중에 가장 소중한 기억이라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 학부모와 관리자들의 염려 때문에 함께한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을 인솔할 때와 너무 다르다고 말해 주었다. 힘들다고 불만을 나타내기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아이들을 칭찬해 주었다.
잠시 쉬면서 일행 중에 수필집을 출판한 저자에게 친필 서명을 받았다. 백운산 옥룡계곡에서 책에 의미를 새롭게 하는 순간이었다. 글의 내용에 감동하지 않았으면 가져가지 않았으리라. 대학교 다닐 때 문익환 목사에게 받은 것이 유일했다. 도립도서관에서 있은 존경하는 김훈 작가님의 강의 후에도 말씀만 마음에 간직하기로 생각했었다. <은어잡이 추억>에는 일상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 교사의 삶, 교육 관리자의 신념, 교육 혁신, 가정에서 남편과 아버지가 지녀야 할 마음 등을 느낄 수 있다. 말보다는글로 읽으면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근무한 선생님들을 변화시키는 학교 혁신 이야기는 나를 반성하게 하는 내용이 많았다. 진실하면서도 자신감과 신념이 담긴 글들은 한 사람의 발자취라는 느낌이다. 이 책은 일반인에게도 좋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읽도록 권하고 싶다.
이른 저녁으로 피자를 먹으면서 글쓰기 대화는 계속되었다. 수석교사이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석교사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에서는 수업을 적게 하는 수석교사를 고참 교사에게 주는 특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수업이 적은 대신 연구하고 가르치는 경험이 적은 교사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교단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지는 않고, 관리자들과 자주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면 실망스러웠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신규 교사들과의 만남일 것이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도와준 행위가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을 지닌 선생님은 주변 후배 교사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선생님이 쓴 글로 많은 사람이 변화할 수 있게 빠른 출판을 기대한다.
어제의 감동을 마음에 담고 용기를 낸다. 내 책을 받아보려고 기다리는 장모님에게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당신의 딸을 위한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씀드리면 바로 책을 쓸 것처럼 큰소리친 사위를 이해하겠지. 책을 출판하는 것보다 꾸준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제는 배우는 자세로 마음에 여유를 찾아야겠다. 좋은 분들과 글쓰기 공부를 하다 보면 내 글재주도 늘어가리라 생각한다. 출판할 자료가 풍부해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