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복음은 없나니... 別の福音があるわけではなく…( 2024년 7월 21일 주일예배)
본문 갈 1:6~10
갈 1:6 ○여러분을 [그리스도의]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8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하였지만, 이제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6. キリストの恵みへ招いてくださった方から、あなたがたがこんなにも早く離れて、ほかの福音に乗り換えようとしていることに、わたしはあきれ果てています。7. ほかの福音といっても、もう一つ別の福音があるわけではなく、ある人々があなたがたを惑わし、キリストの福音を覆そうとしているにすぎないのです。8. しかし、たとえわたしたち自身であれ、天使であれ、わたしたちがあなたがたに告げ知らせたものに反する福音を告げ知らせようとするならば、呪われるがよい。9. わたしたちが前にも言っておいたように、今また、わたしは繰り返して言います。あなたがたが受けたものに反する福音を告げ知らせる者がいれば、呪われるがよい。10. こんなことを言って、今わたしは人に取り入ろ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それとも、神に取り入ろ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あるいは、何とかして人の気に入ろうとあくせく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もし、今なお人の気に入ろうとしているなら、わたしはキリストの僕ではありません。
지난 주일부터 갈라디아서의 강해설교를 통해 함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인해 점점 사악해져 가는 현실에서 주님을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복음을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일상을 든든하고도 평화롭게 하는 평안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통해 복음의 약속이 더욱 실감나게 체감되는 기회를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한 후에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이들이 믿는 복음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려는 자들도 함께 침투하기 시작했지요. 요즘도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의 활동으로 인해 수많은 폐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일반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대표적인 것이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JMS 등등 복음을 왜곡하여 많은 사람들을 거짓 가르침으로 미혹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그 내용에 대해 말할 수 없으나 그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완전하지 않기에 자기 단체의 교주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설득하며 포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복음을 왜곡하며 갈라디아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간 이들은 유대교를 믿는 자들이었는데요. 하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을 선별하여 자격심사를 거쳐 구원하신다는 내용의 교리를 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란 유대교인들이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을 예수님과 멀어지도록 설득하던 내용을 일컫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며 몸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자기 몸에 율법을 지켰다는 증거를 만들어 놓아야 하나님께서도 그 몸에 보이는 흔적을 확인하고서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를 확인하실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또한 그들은 단 한 번의 십자가 제사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음을 믿는 내적인 증거보다, 외적인 증거인 할례나 혹은 율법준수가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 중에 이런 설득의 말에 동조하고 복음의 약속을 믿는 자리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리로 넘어가 소위 배교하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혜”를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놀라워하고 탄식하며 심지어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8절과 9절에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왜곡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이들이라 말할 정도인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격앙이 되어 말하는 이유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믿고 배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수는 쏟아 버리고 생수를 담아 마시는 그릇에 몰두하여 그 그릇을 치장하는데 마음이 빼앗겨 버린 것이기 때문인데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외식하기를 자랑하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을 책망하신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모든 율법의 가르침을 완성하셨다는 것을 듣고 믿었으면서도 왜 갈라디아 성도들은 이런 외식하는 이들의 미혹과 주장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까요? 그들의 믿음이 부족한 탓일까요? 아니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실력이 뛰어났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10절을 보면 바울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데요.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소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을 이용해서 성도들을 미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에게 일리가 있는 이야기와 설득력 있는 방법을 통해 복음의 약속을 믿지 않도록 교란시키고 왜곡하였다는 말입니다. 마치 이단종교들이 성도들을 유혹하여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하려고 세속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도 인정하듯이 복음 전도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쉽게 믿을 수 없는(믿어지지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미련하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또한 자신은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지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능력에 의지하여 전도하였다고 고백하지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4)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모든 좋은 재능과 실력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 3:8-9a)
바울은 이처럼 철저하게 세속적인 방식이나 설득력, 혹은 심리학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약속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며,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영역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그 섭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얼마나 이해하는가? 혹은 어떻게 납득하고 얼마나 사람들을 잘 설복시킬 것이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본때를 보여주고, 어떻게 되갚아 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얼마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자랑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의, 혹은 일상생활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모든 유익함과 기적은... 나의 자랑거리는 사라지고, 주님의 임재하심과 살아계심이 더욱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설득력과 지식, 영향력, 그리고 성공사례와 상관없이 복음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셔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그렇습니다. 복음은 어떤 설득력이 있는... 일리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과 물리적인 가치관을 뛰어넘는 영생을 위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인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을 보통의 사람들이 상식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시대에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라는 것을 과학자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태양이 떠오른다고 말하지,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고 하지 않지요.
물론 천체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지구가 자전을 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과학의 도움으로 지구의 자전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아침을 맞이할 때 대부분 태양이 떠오른다고 표현하지 한 바퀴 돌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약속과 진리에 대한 고백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 그리고 영원까지 변함없으신 분이기 때문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신 약속인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와 학문과 상식, 그리고 법률과 종교생활의 방식이 바뀌어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아내고 이해하고, 납득하여 증명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맺어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며, 귀중한 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뜻이 지금 내 안에서 열매를 맺고 있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영생을 누릴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토록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잃었다가 찾은, 혹은 발견한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4)
복음의 약속은 이처럼 우리의 존재가치와 삶의 이유를 되찾는 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내가 어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거나, 혹은 내가 얼마나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어야 하거나, 아니면 내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는지를 드러낼 수 있어야 가치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는 삶이라고 말하는 속되고 허무한 “다른 복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과 가까이 하지 않고 그냥 사는대로 생각하면 이런 헛되고 교활한 생각들에 속아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알차고 풍요로운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위해서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을 약속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일상이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성도들이 유대교적 율법주의라는 다른 복음에 속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이 서신을 적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율법주의의 유혹을 직접 경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만능의 세계관, 물질만능의 사고방식, 실력과 재능을 통한 성공주의적인 삶의 태도, 재미있고 즐거우면 행복이라는 가벼운 생활방식, 그리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 등이 그야말로 “복음”처럼 여겨지는 사악한 생각과 세계관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알차고, 가치 있고, 자기답고, 사람답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며 서로 사랑할 능력을 주시는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 외에는 없는 것을 믿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화하고, 과학과 인류의 지식이 발전하더라도 결코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설득력이 있고, 일리가 있으며, 상식적이며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영생하도록 구원하는 복음을 왜곡하고 변질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오직 복음의 약속과 그 고백이 변화무쌍하며 헛되고 잔혹한 우리의 현실에서 나를 지켜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강력하고 영원한 지식도 없고, 권능도 없고, 능력도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속의 가르침으로 환심을 사려하는 그 어떤 영적이고 현실적인 도전에 휘말리거나, 미혹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성도들에게 복음의 은혜 안에 머물 것을 강력하고 간절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은혜만이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온전한 길을 가르쳐 주셔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가 떠오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의 은혜에 머물 때 비로소 우리는 성공다운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창조적이고 획기적으로 남다른 삶의 열매를 원하는 이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그 원천이 됩니다. 내면의 진정한 평화와 겸손도 오직 복음의 약속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복음의 약속이 분명하면 그 삶도 분명하고 또렷합니다. 진리의 빛이 그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세속의 그 어떤 유익함과 설득력보다 크신 은혜가 충만한 일상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