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회복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내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稅吏)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타락한 모습을 묘사한 마태복음 11장 16-19절의 말씀이다.
이런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일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오히려 수많은 상처들이 떠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가 이들 상처의 기억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나아갈 것인지가 앞으로의 삶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길에 죄 많은 인간들이 주고받는 무수한 상처들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을 뿐 아니라, 그 해독(害毒)이 매우 깊다. 심지어 암환자의 대부분이 과거에 주위사람들로 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살아가는데서 병이 비롯되었다는 조사가 발표된 바도 있다.
상처로부터의 바른 회복은 이처럼 더없이 중요한 것인데, 다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상처의 기억들을 지워버리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그것들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하신다.
그 상처들을 선한 것으로 바꾸어서,
좀 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는데 쓰기를 원하신다.
많은 이들이 지나간 상처들에서 벗어나려고
그것들은 억누르거나,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그 상처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처를 찬양과 기쁨으로 바꿔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존스(Robert D. Jones)>
“무릇 시온(zion)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화관(花冠)을 주어 재(ashes)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義)의 나무 곧 하나님이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61장 3절).
그런데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상처를 회복시키시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후히 주어서 누리게 하시는 분이다(디모데전서 6장 17절).
영욕(榮辱)은 구름 같아 본래 없는 것이요,
부귀는 사람을 핍박하니 두렵지 않을쏘냐.
만 가지 이치 하나의 근원은 대번에 깨쳐지는 것이 아니니,
참 마음 진실한 본체는 애써 연구하는 데 있으리라.
<퇴계 이황 선생, ‘퇴계집(退溪集)’에서>
2024. 3.20.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