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일차 명상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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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젤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 문제가 우선입니다
불법을 공부하려고 할 때도 불교에선 무엇을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가, 순수한 지적 학문적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이는 드물 것입니다
자기 인생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니까 진리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려는 거지, 내가 공맹과 노장의 사상은 웬만큼 훑어봤으니 이번엔 석가의 사상과 철학을 한번 알아봐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불법 공부하는 사람은 설사 있다고 해도 소수일 거라는 거죠
솔직히 저는 지적 학구적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다는 걸 부정은 않겠습니다만
그런 저조차도 내 인생 문제와 직결되지 않았다면 꾸준히 열심히 공부할 마음은 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불법 공부하고 싶다고 발심한 사람도 대부분 교학 공부는 썩 내키지 않아 싫어합니다 ㅋ
다 좋은 말이고 공자왈 맹자왈 비슷하게 그럴싸한 썰인 줄은 알겠는데, 당장 눈앞의 내 현실이나 생활에 어떻게 연관되고 적용되는지 감이 안 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불교 수행의 핵심이 뭐냐는 질문에, 기초 교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가장 모범적인 답안은 <계정혜 삼학>일 겁니다
이것은 초기불교 대승불교 통틀어 공통입니다
계정혜 삼학에서 정수만 추려낸 것이 팔정도고요
불교의 문제의식은 괴로움이라는 존재 조건에서 출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길(방법)로서 부처님이 직접 제시하신 해결책=도성제가 팔정도잖아요
따라서 불교 수행은 넓게는 계정혜 삼학을, 구체적으로는 팔정도를 닦는 거라고 보면 간단합니다
근데 실제로 이렇게 믿고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일단 불자라면 계정혜가 뭔지 어렴풋이는 다 알겠지만, 계는 뭐고 정은 뭐고 혜는 뭔지? 정확히 모릅니다
내 삶에서 그걸 볶아 먹을지 찜쪄 먹을지는 더 모르죠
이게 왜 필요하고 대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팔정도는 더욱 오리무중입니다
일단 숫자가 늘어날수록 머리에 더 쥐가 나는데다, 이름도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라는 둥 바로 와닿지 않는 생소한 한자어의 나열이고, 그 뜻은 더 심오해서 직관적으로 감이 안 오거든요
여기다 5근 5력 4정근 7각지 37조도품까지 더해지면 전문 수행자 아닌 이상 다 넌더리를 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출가 수행자에겐 사성제 팔정도와 저런 구체적 수행법을 가르치시고, 재가자들에겐 시계 생천의 도리를 설하시는 방편을 쓰신 것도 이해가 가요
왜냐하면 그 당시 인도 사람들이 젤 관심 있었던 일은 복 받는 것, 즉 현생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카스트 집안에 태어나고 내생에는 천상의 천신으로 태어나 오래도록 부와 오욕락을 누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보시하고 5계 지키며 선업 쌓으면 천상에 날 수 있다, 이런 설법엔 다들 귀가 쫑긋했겠죠
성도 직후 그 심오한 진리를 아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그냥 열반에 드시려던 부처님께, 범천이 간곡히 권청하여 법을 설하시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눈에 때가 덜 묻은 자들이 있을 테니 부디 그들을 위해 설법해달라, 이게 범천의 청이었지요
그리고 실제로 부처님 설법에 마음이 열려 아라한이 된 큰 비구가 최소 1250인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지어 바치고 평생 승단에 물심양면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수닷타(급고독) 장자 같은 사람도, 죽기 바로 직전까지 오온이 공하고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은 무상하여 내가 아니라는 등의 출가자용 고급 법문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숨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리불 존자에게 무상 고 무아 삼법인과 오온 육근이 다 공하다는 도리를 듣고는 너무 감동해서 부르짖습니다
흰 옷 입은 사람들(재가자)에게도 부디 이런 도리를 설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도 눈에 때가 덜 묻어 알아듣는 이들이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깨닫기엔 이미 때가 늦었을지 몰라도, 그는 평생 쌓아온 선업의 과보로 천상에 재생했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괴로움 속이 아니라 살아서 안락을 누릴 때 그런 설법을 들었다면 과연 귀에 들어갔을까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십중팔구 뭔 소린가 싶었을 겁니다
내 눈귀코입이 이렇게 또렷하고 눈앞에 육신이 멀쩡한데 뭐가 공하고 내가 아니라는 거지?
이게 대부분 범부의 반응일 거예요
실감나지 않으니까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 인생 내 문제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더 공부할 마음이 나지 않는 겁니다 즉 발심이 안 된다는
출가한 스님이든 재가 법사든, 설법자의 가장 큰 숙제는 어떡하면 이걸 자기 문제로 인식하게 해줄 것인가
내 인생과 직결된 문제임을 자각하게 해줄 것인가
이게 아닐까 싶네요
이상이 오늘 명상 주제였습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좋은 데 나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면, 현대인들은 무엇이 가장 절실한 관심사일까요?
일단 7-80년대식 경제 개발과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목표였던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자살률은 1위 출산율은 꼴찌인가?
기성세대가 보릿고개 없애보자고 그렇게 골수를 갈아넣어 세운 나라의 행복한 미래가 과연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2022. 10. 6. 백련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