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직장인 58% "휴가 결핍 상태"…3명 중 1명만 연차 소진
부족한 유급 병가 제도가 원인…휴가를 '비상금'처럼 사용
410만 명 업무 스트레스 시달려…'의도적 단절' 중요성 커져
'일하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일하는가.' 캐나다 직장인들이 주어진 유급휴가조차 반납한 채 번아웃으로 내몰리고 있다.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설문 결과가 나오면서, 휴식이 권리가 아닌 불안을 메우는 비상 수단으로 전락한 캐나다 노동 시장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여러 설문조사는 캐나다 직장인들의 '휴가 결핍'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사관리 기업 ADP 캐나다의 조사에 따르면, 유급휴가를 전부 사용하는 직장인은 31%에 불과했으며, 32%는 절반도 채 쓰지 못했다. 여행 전문 기업 익스피디아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가 스스로 '휴가 결핍' 상태라고 느꼈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과도한 업무량이 아니었다. 익스피디아 조사에서 캐나다 응답자의 22%는 '예상치 못한 비상 상황'을 대비해 휴가를 아껴둔다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갑자기 아프거나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재충전을 위한 휴가를 '비상금'처럼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유급 병가 제도가 꼽힌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유급 병가를 보장받지 못한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15~24세 노동자의 경우 약 60%가 아파도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많은 직장인에게 연차 휴가는 아플 때를 대비한 마지막 안전망인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휴가 저축'이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인사 컨설팅 전문가들은 "휴식 없는 노동은 결국 번아웃을 유발할 뿐"이라며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감정적, 정신적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이미 캐나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410만 명 이상의 캐나다인이 업무와 관련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주된 원인으로는 과도한 업무량과 일과 삶의 균형 붕괴가 지적됐다. 특히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휴가와 같은 '의도적인 단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휴가가 반드시 값비싼 여행일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집에서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역시 훌륭한 재충전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심신의 근육을 쉬게 해주는 것이다. 휴가를 반납하고 미래의 불안에 대비하는 캐나다 직장인들의 현실은, 노동자의 재충전 권리 보장이라는 사회 전체의 시급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