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도 노루귀
2022년 3월 24일(목), 흐림, 대부도 구봉도 구봉이
풍도가 이른 봄철 야생화의 천국이라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어서 가보자 하고 무턱대고 출발했다. 인터넷에 그
곳 사정이 어떠한지 찾아보지도 않고 갔다. 막연히 강화도 또는 서해 인근 섬처럼 연육교로 건너가던지 아니면
수시로 오고가는 도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승용차 내비게이션이 말썽을 부렸다. 풍도를 가자고 했더니 그 섬을 알 수 없다고 메시지가 떴다. 내비게이션을
껐다가 켜도 마찬가지였다. 고장이 났나 보다. 업그레이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말썽을 부리는가 싶었다.
내 휴대전화의 원내비를 켰다. 거리 101km. 동네길 빠져나가는 것부터 잘 안내했다. 그러나 몇 분도 안 돼 선착
장에 다 왔다며 길 안내를 종료한다고 멈췄다.
구봉도 구봉이(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인천 1/25,000)
아내 휴대전화의 카카오내비를 켰다. 친절했다. 풍도까지 안내하겠다고 했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제3경
인고속화도로를 막힘없이 달렸다. 정왕교차로에서 오이도, 배곧 방면으로 우회전. 배곧 신도시가 또 따른 세상
으로 보인다. 배곧? 낯선 지명이다. 지명에 ‘곶’이 아닌 ‘곧’을 쓴 데가 또 있던가? ‘배곧’이 무슨 뜻일까? 나는 이
런 것을 못 견디게 궁금해 한다.
어렵사리 그 뜻을 알아냈다. ‘배곧’은 ‘배움터’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일대 군자 매립지에 조성되는 새로운 주거 단지로 서울대학교 시흥스마트캠퍼스와 교
육·의료 클러스터를 부각시키는 측면에서 ‘배곧 신도시’라는 명칭을 선정하였다. 이 명칭은 1914년 주시경(周時
經) 선생이 ‘조선어강습원’의 명칭을 ‘한글 배곧’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군자(君子)라는 한문 이름과
어울리는 이름으로 학문과 지성이 겸비된 글로벌 교육 도시를 지향한다는 의미이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시화호(始華湖) 방조제를 지났다. 우리나라 국토의 지도를 바꾸었다는 방조제다. 날이 흐리고 해무까지 겹쳐
‘안개 속의 풍경’이었다. 방조제 직선거리 11.2km(자료에 따라서는 12.7km라고도 한다)를 제한최고속도인 시속
60km로 갔다. 곳곳에 구간속도단속지역이니 함부로 달릴 수가 없다. 방조제 오른쪽이 시화호인가, 왼쪽이 시화
호인가? 양쪽 다 망망하여 모르겠다. 나중에 지도 보니 왼쪽이 시화호다.
카카오내비는 우리를 방아다리선착장으로 안내하고 종료하였다. 대합실 매표소가 썰렁하였다. 매표원도 배를
타려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대합실 벽에 붙여 놓은 여러 배들의 운항시간표도 눈에 얼른 들어오지 않았다.
매표소 옆 매점 주인에게 물었다. 연만하고 건장한 남자였다. 무뚝뚝했다.
안녕하세요. 풍도 가는 배편이 어떻게 됩니까?
하루 한 번 운항하는데 오전 10시 30분에 출항합니다.
저기 서해누리호 운항시간표를 보시고 사진을 찍어 가세요.
우리처럼 어리숙한 부부 여행객이 또 있었다. 매점 주인에게 우리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어허, 또 이런 사람들
이 있네. 저기 운항시간표를 보세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풍도가 아무 때나 갔다 올 수 있는 섬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적어도 1박을(날 궂으면 갇힐 수도 있다) 풍도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어려워한 이유를 알았다. 대부도에서 풍도까지 바다를 배로 가는 데 1시간 25분이나
걸린다.
다음이 풍도를 가는 서해누리호의 운항시간표다.
09 : 30 - 인천출발
10 : 30 - 대부 출발
11 : 55 - 풍도 도착(12 : 00 풍도 출발)
14 : 00 - 대부 도착
15 : 00 - 인천 도착
그렇다면 대부도를 구경하자 하고 매점 주인에게 다시 물었다.
대부도는 어디인가요?
여기가 대부도입니다.
난감했다. 주변이 너무 을씨년스러워 구경거리가 전혀 없을 것만 같았다. 문득 작년에 대부도 갔다 왔다고 한
지인이 생각났고 전화를 걸었다. 구봉도 대부 해솔길 1코스를 가보라고 했다. 거기 산자락에 아마 노루귀가 지
천으로 피었을 것이라고 했다. 방아다리 선착장에서 승용차로 약 10분쯤 가면 공용주차장이 나오고, 들머리라
고 했다.
내비게이션이 구봉도는 선뜻 안내했다. 해물칼국수, 백합칼국수, 바지락칼국수 등의 맛집을 지나 구봉도 공용
주차장으로 갔다. 대부도도 그렇지만 구봉도도 도무지 섬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시골길을 달려왔을 뿐이다.
공용주차장에 한쪽에 있는 대부 해솔길 종합안내도를 자세히 읽었다.
대부 해솔길 1코스를 따라 산자락을 돌아 구봉도 낙조 전망대(안산3경이라고 한다)까지 갔다가 해변길로 돌아
오는 것이다. 구봉도 낙조 전망대까지 편도 2.1km라고 한다.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오르막은 야자매트
를 깔고 핸드레일을 설치하였다.
안양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과 노루귀를 찾을 때처럼 여기도 노루귀를 내 눈으로 애써 찾을 필요가 없었다. 처
음에는 중형 카메라를 멘 사람이 보이지 않아 발품 좀 팔려니 염려했는데 기우였다. 한 피치 오르고 산모퉁이
돌자 둘레길 위로 산자락을 들락날락 한 인적이 보였고 그 근처에 노루귀가 떼 지어 피어 있었다. 생사면을 누
빌 필요가 없었다. 인적이 없는 데는 노루귀가 없었다.
척박한 자갈밭이나 산딸기 가시덤불, 수북한 낙엽 속에서 소담스런 꽃을 피운 노루귀였다. 처음 만난 노루귀들
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쏟아 부었다. 여기 말고 다른 데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낙조전망대 가는 둘레길
1.8km에 걸쳐 노루귀가 끊임없이 보였다. 어느 한 송이라도 못 본 체 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한 송이라도 거저
꽃을 피운 노루귀는 없었다. 엎드려 눈 맞춤하고 셔터 누를 때는 세상의 시간도 순간 멈췄다.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해솔길이라는데 해솔은 드물고 억센 소사나무가 주로 보였다. 바다 멀리 변도(辨島)가 그
림처럼 보였다. 안부인 개미허리에 올랐다가 데크로드를 갔다. 만조 때는 바닷물이 넘나들어 가기 어렵겠는데
데크로드를 설치했다. 구봉도 끄트머리인 고깔이(37.2m) 정상에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란 시판이 있다. 제목
도 시의 일부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낙조전망대가 꼬깔이 아래 바다에 있다. 거기까지 데크로드를 설치했다. 여전히 날씨가 흐리고 해무가 짙어 전
망은 무망이었다. 낙조전망대에서 공용주차장은 해변 길로 갔다. 산기슭 자갈길 지나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갔
다. 귀경길에 저녁은 대부도 시내의 칼국수 집으로 갔다. 우리가 텅 빈 음식점에 들어가 좌정하자 잇달아 손님
들이 들어왔다. 칼국수 1그릇이 대야만큼 큰 그릇에 나왔다. 해물파전도 주문했다. 조껍데기 막걸리는 무료였
다. 나만 한 주전자를 비웠다. 아내에게 운전대를 잡게 했다. 집에 가서 오늘 찍은 노루귀 사진을 와이드 화면에
띄워 들여다보며 정리할 일을 생각하니 또 즐거웠다.
첫댓글 제가 저 공짜막걸리 마시구...독하던데요~ 풍도 먼곳이네요~ㅠ
공짜 좋아할 일이 아니드만요.^^
풍도는 내년이나 기약해야겠습니다.
찾기가 아주 힘들었네요...그래도 올해 야생 노루귀를 처음보네요, 감사합니다^^
발품을 팔아야합니다.
그리고 돈도 들여야 되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