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 선생님을 기리며 / 홍속렬
꼭 촌부와 같이 얼굴이 검고 허리가 꾸부정하고
말 없는 무뚝뚝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
내가 처음 이수인 선생님을 당신의 신작 가곡발표회장
여의도 발표장에서 처음 뵈올 때의 인상이었습니다
신문에서 이수인 신작 가곡발표회가 있대서 늦은 겨울밤
여의 나루 지하철에서 내려 빌딩 있는 곳까지 뛰어
도착하니 신문에서 뵈었던 늘 마음으로 흠모했던 분
그분이 입구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초청장도 없고 들어갈 방법도 없었던 나는 선생님께 인사하고
사실 나는 군인 출신이고 젊은 시절부터 선생님 노래를
너무 좋아해 늘 흠모해 왔습니다
그런데 입장권이 없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가장 좋은
VIP 석으로 안내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곡 모두를 다 알고 부를 수 있어 발표되는 곡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다 함께 청중 모두가 입을 모아 외갓길을 함께
부르게 되었는데 곡도 가사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사도 곡도
너무 쉬워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고
아 그 감동은 며칠 밥을 안 먹어도 될 만큼 배가 안
고팠고 여기가 곧 천국이구나 여기서 곧 죽어도 한이 없을 만큼
절대적인 감정이 들어와 감동이 박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벅차오는 감정과 감격이 온몸을 사로잡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외갓길을 부를 때 곡도 아름답지만 부르며 추억하는
외갓길 가는 길이 눈앞에 전개되어옵니다
고생이었고 다시는 되돌릴 생각 없던 피난 나가 외갓집에서
덧붙어 피난살이 했던 슬픈 추억과 아픔 그리고 노래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장맛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쌓인 슬픔과 아픔이 피범벅이 되어 눈물로 쏟아져 내렸고
가슴이 다 후련해지고 묵은 체증이 쏟아져 내려 가벼워지고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6.25 전쟁으로 다리 하나를 잃으신 어머니와 두 동생이 외갓집으로
가 빌붙어 먹고 살아야 하는 과정에 그때 넉넉지 못한
외갓집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으로 많이 당황하고 부담이 되었던
건 사실이고 노동력이 없는 딸네 식구가 짐이 되어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당시 일곱 살인 나는 생계를 위해
신주머니를 들고 동냥을 다녀 조그마한 기여라도 할 양으로
동냥(구걸)을 다녔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기에 외갓길
노래는 더욱 슬펐던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칠 때 어린이들에게 “앞으로.앞으로”
동요를 가르쳐 부르게 합니다
운동을 마치고 손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경쾌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 .”
하고 부를라치면 경쾌하고 아름다운 곡에 아이들 모두 즐거워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갖게됩니다.
노래는 그렇게 모두를 하나가 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과테말라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찬양을 부르게
했습니다
여럿이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방법은 노래가 최고입니다
여든이 넘은 이 나이에도 나는 고독할 때 외로울 때 힘들 때
이 선생님의 가곡을 불러 힘을 냅니다
이 선생님의 노래를 부를라치면 가슴부터 온몸에 찌르르 전기
흐르는 느낌과 전율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힘들고 슬프고 고독하고 외롭고 마음이 아파도
한두 곡 이수인 선생님의 곡을 부르고 나면 휠링이 되고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아나 다시 뛸 준비가 되어줍니다
지금도 이 선생님 생전에 개설된 카페에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시詩와수필)
읽어주는 분 몇 안 되지만 내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선생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쓰고 있습니다
영원히 남아 많은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이수인 선생님의 아름다운 곡이 정서함양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하며 그분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땐 “그리움” 즐거울 땐
“앞으로, 앞으로” 부르겠습니다
주옥같은 맑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우리 이수인 선생님의 곡 많이
부를 것입니다
첫댓글
감동적인 사연에
가슴 뭉클합니다
생로병사 그 자체가
행복이라 하니
늘 행복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