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부진·가격하락·재고과잉 등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쌀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16 수확기 쌀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이 정부대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부재고, 사료용·가공용 방출 늘려야=정부재고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210만t이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재고(80만t)의 3배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이기도 하다. 이 물량이 시장에 대거 방출되는 것은 쌀시장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재고 방출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나 정부재고 방출을 무작정 지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밥쌀용 방출을 자제하되 사료용이나 가공용 방출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2016년산 시장격리곡 29만9000t은 언제든지 밥쌀용으로 방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만큼 정부가 이 물량의 방출시기 등을 사전공지해 시장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정부재고의 사료용 공급은 지난해 사료용으로 특별공급한 2012년산 10만1000t이 시초다. 정부는 올해도 정부재고 52만t(현미 기준)을 사료용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장상황에 따라 사료용 공급물량을 더 늘리도록 검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불어 가공용 공급을 확대해 쌀 가공산업의 안정적 원료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복지용 쌀 공급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원조 확대 돌파구=쌀 수출은 국내 쌀 공급과잉 구조를 해소하는 효율적 방안 중 하나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부터 쌀 수출을 적극 추진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다.
2016년 쌀 수출실적이 2371t, 505만4000달러에 그쳤기 때문이다. 2015년(2238t, 515만4000달러)과 비교해 물량 면에서는 5.9% 늘었으나 금액 면에서는 1.9% 줄었다. 지난해 쌀 수출물량은 정부의 대중국 수출목표치를 약간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수출길이 열린 중국에 쌀 2000t을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실제로는 452t에 그쳤다. 정부가 대중국 쌀 수출목표를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쌀 수출확대를 위해 생산·유통 등 단계별 수출촉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쌀 해외원조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해외원조가 정부재고의 상당물량을 일시에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북원조가 더 효율적이기는 하나 현실 여건상 쉽지 않은 만큼 해외원조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국제기구를 통해 소량 원조를 시작한 뒤 국제식량원조협약(FAC)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량을 대규모로 원조하려면 FAC에 가입해 식량원조 공여국 자격을 얻어야 한다.
◆적정생산 묘안 짜내야=쌀 소비가 해마다 줄고 있어 벼 재배면적 감축 없이는 쌀 공급과잉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벼 재배면적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문제는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부예산으로 벼 재배면적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쌀 생산조정제를 올해 재도입하려고 했으나 예산반영에 실패했다. 90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벼 재배면적 3만㏊를 줄이겠다는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이에 농식품부는 지자체와 유관기관·단체간 협업으로 올해 벼 재배면적 3만5000㏊를 자율감축하겠다는 입장이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지난해에도 지자체 등과 협업해 벼 재배면적을 3만㏊ 줄이기로 했지만, 2만610㏊ 감축에 그쳐 자율감축의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현재로서는 3만5000㏊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근과 채찍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콩 등 논에 타 작물 재배를 권장하며 정부의 콩 수매량을 크게 늘리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벼 질소 시비량 감축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상대적으로 수확량이 적은 친환경 벼 재배 확산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만일 추경편성이 추진되면 추경에 쌀 생산조정제 예산을 다시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확대책 적극 추진을=1인당 쌀 연간소비량은 2005년 80.7㎏에서 2015년 62.9㎏으로, 10년 만에 17.8㎏이나 줄었다. 여기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여파로 식당 매출이 줄면서 쌀 소비감소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쌀 가공산업 활성화가 쌀 소비확대를 위한 시급한 과제로 지목된다. 쌀 간편식 등의 소비가 늘면 쌀 소비가 덩달아 증가할 수밖에 없어서다. 쌀 가공식품 프랜차이즈 창업을 지원하고, 쌀 가공업체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다양한 음식에 쌀이 활용되도록 쌀가루 유통 활성화도 요구된다.
쌀가루 규격을 설정하고, 쌀가루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R&D)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쌀 중심 식습관 교육의 확대도 필요하다.
출처 농민신문 남우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