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달(通達,searches all things)”
통달이란 아무 막힘없이 환히 통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우리는 어떤 방면에만 통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통달이 곧 어떤 방면이나 혹은 어떤 전체의 완전을 뜻하지 않는다.
통달은 원어(原語) 상으로 “자세히 살펴 찾아내는 것”을 뜻한다. 플라톤과 필로는 학문적, 과학적, 철학적 탐구를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종교적으로는 “신(神)의 뜻을 아는 것”을 뜻했다.
어쨌든지 이 통달(通達)이 매우 기분 좋은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생각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사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답답한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인생을 살면서 “유레카(eureka)!”라는 탄성(歎聲)을 자주 터트렸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찾았다!” “알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런 것 말이다.
누구나 지렛대의 원리(原理)를 알아 그 인생을 훨씬 가볍고, 쉽고, 또 수월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목욕탕에 들어가 앉아 잠시 명상만 해도 그 인생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실타래들을 다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실제적인 통달(通達)은 어떤 특정 분야의 복잡한 메커니즘이나 그 알고리즘을 풀어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만사형통(萬事亨通)의 개념이라고 할까? 거의 신적인 경지의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부분적 통달의 경지만 있어도 그 인생에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요즘은 의학 분야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소위 말하는 전문의 시대에 있다.
예를 다 들 수는 없겠지만 옛날처럼 일반적인 내과, 외과의 개념이 아니다. 내과 의사라고 그 분야의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의사는 미세한 혈관에 이르기까지 그 혈관 분야의 수술을 잘해 성공한다. 그리고 어떤 의사는 거의 회생 불능으로 망가진 몸을 다시 복원(復元)시키는 수술을 잘해 역시 그 분야에서 성공한다.
이런 모든 것을 단적으로 통달의 개념으로 압축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지가 여러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통달은 그 개념 자체가 아름답고 귀하다.
통달(通達)은 우리 인간의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통달이 없어도 평범하게 무난히 잘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결코 이 통달의 개념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런 단어나 개념을 다시 깊이 생각하며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나 패턴을 다시 생각(再考)해 보고 어떤 전환점을 가져 보는 것이다.
통달(通達)이라!? 일단 듣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개념이 아닌가. 그런데 이 좋은 기분을 스스로 망가트리지 말자. 지금까지 자기를 망가트렸던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오늘은 각자가 이 통달을 깊이 생각하며 새로운 도전(挑戰)이 있으면 좋겠다. 방법은 이미 당신이 알고 있다.
스스로 지나친 운명론에 빠지지 말자! 조상 탓도 하지 말자! 그리고 환경 탓도 하지 말자! 운명이란 스스로 개척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학대하지 말자! 그리고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공연히 힘들게도 하지 말자!
요즘 생활 속의 달인(達人)들이 자주 등장해 감동을 준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가진 그 잠재력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오늘은 이 통달(通達)이란 단어를 그냥 스쳐 갈 수 없었다. 알고 있는가? 그냥 스쳐 가는 것이 바로 당신의 운명(運命)이란 것을....., 이것은 분명히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 곧 당신의 운명이니까.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