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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복
잠 28:9-18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잠 28:9-18 / 사람이 가르침을 싫어하여 귀를 막아 버리면 하나님도 역겨워하시어 제아무리 빌고 빌어도 귀를 막아버리신다. 10)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을 나쁜 길로 끌고 가는 자는 스스로 함정에 빠져 버릴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성실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11) 재산이 많은 부자는 스스로가 지혜로워서 그 많은 재산을 모아들인 줄 알지만 가난하게 살아도 통찰력이 있는 이는 그 사람 속을 들여다본다. 12) 바르게 사는 이가 나라를 다스리면 온 나라의 일이 잘되어 나가지만, 못된 짓만 일삼고 남 짓누르고 착취하는 것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숨기에 바쁘다. 13) 자기 허물을 자꾸 감추려 들면 잘되는 일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허물을 드러내 놓고 다시는 그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차라리 사람들의 동정이라도 받으리라. 14) 항상 조심하여 죄짓지 않으려 하는 이는 복되다. 그러나 마음이 굳어 있어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마침내 불행에 빠져 들고야 말리라. 15) 못된 지배자는 울부짖는 사자와 배를 곯은 곰과 같이 가난한 빈민들을 착취한다. 16) 독재자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여 사람들을 무조건 짓누르기만 하나, 불의를 증오하는 이는 오래오래 살리라. 17)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제 무덤 스스로 파는 자이니 아무도 그를 막지 말아라. 18) 정직하게 살아라. 그래야 마음 놓고 편히 살게 아니냐?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가다가는 어느날 갑자기 거꾸러지리라.
본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지만, 불의한 생활을 일삼는 악인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증한 기도와 성실한 자가 받는 복(9-10) 기도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누는 인격적 교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상호 신뢰, 그리고 영적 교제 없이 드려지는 기도는 가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죄의 길로 끌고 가려는 악한 자들의 계획은, 순간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의 길을 끝까지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시 23:4).
의인과 악인(11-14) 일반적으로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에 관하여 만족하며 스스로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신을 살필 줄 아는 명철한 자입니다. 이어서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백성들을 다스리면 많은 사람들이 큰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왕상 4:20). 이에 반해 ‘악인이 일어나면 숨는다’고 했는데 ‘몸을 숨긴다’는 것은 ‘엎드리다’, ‘유린당하다’ 등의 뜻으로, 악인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를 숨긴다는 것’은 죄 된 행위를 의도적으로 즐기면서, 하나님께 그 죄를 고백하거나 회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양심에 의해 고통을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속죄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용서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시 32:1-4; 요일 1:6-9).
악한 자와 성실한 자(15-18) 가난한 사람들의 연약함을 이용하여 그들을 핍박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원들을 ‘부르짖는 사자’, ‘주린 곰’에 비유했습니다. 이는 힘이 없는 자들을 상대로 핍박하고 착취하는 무자비하고 공포스러운 자들을 표현한 것으로, 무지한 치리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자들은 결코 헤어 나올 수 없으며, 결국 이들은 백성들의 원성과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멸망받게 될 것입니다(렘 22:13-19).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관원들은 백성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번영을 누리고 오랫동안 통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되게 행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만, 진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굽은 길로 가는 자’ 즉 ‘이중적인 길을 가는 자’는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셔드릴 때 당신의 마음은 풍요로워지고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고 실망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당신과 함께 거하며 끝까지 당신을 지키실 것입니다.
< 설 교 >
성실만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잠 28:10 / 김철현 목사
옛날 어느 수도원에 아주 훌륭한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장은 많은 제자들 중에 한 제자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 제자는 외모도 형편없고 무엇을 가르쳐도 늘 쉽게 잊어버린 사람이었는데 원장은 그를 특별히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제자들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마침내 모든 제자들이 마당에 모여서 원장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원장은 아주 조용히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내도록 하겠다. 그것을 풀어가지고 오면 내가 이 제자를 왜 특별히 사랑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면서 원장은 제자들에게 아침 일찍 새 한 마리씩을 나누어주고는 “아무도 안 보는 곳을 찾아서 그 새를 해가 지기 전에 죽여가지고 오라.” 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죽여야 한다.” 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질 때쯤 되자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해서 마당에는 죽은 새들이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헐레벌떡 돌아오는 그 제자의 손에는 작은 새가 아직 산 채로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다른 제자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웃는 가운데 원장은 그 제자에게 “왜 새를 죽이지 않았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제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원장님이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으슥한 곳을 찾아가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보고 계셨고, 아무리 조용한 곳을 찾아가도 거기에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새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제자들이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하나 둘씩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제자 중에 이 한 사람만이 진실한 신앙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제자였습니다.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인격적인 성품 중에 성실을 그 최고로 꼽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소속된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물적인 집단생활과는 다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관계를 바르게 하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생활을 유지하려는 데는 필요한 규칙이 있고 지켜야할 규범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올바로 이행했을 때 얻고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 소중한 결실의 열쇠가 바로 성실입니다.
성실(誠實)이라는 말의 뜻은 모든 일에 정성스럽고 거짓되지 않은 참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실이 우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성실한가 하는 것은 곧 그가 얼마나 진실한가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성실한 자는 복이 있느니라.” 는 말씀으로 성실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실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인간의 삶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는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자기가 꾀하는 악한 길로 끌어들여 망하게 유인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심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나보다 더 잘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심리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두드러지는 정서인데 저가 나보다 잘 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가 나보다 더 성공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가 나보다 더 존경 받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심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가인 콤플렉스>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악한 본성 중에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 라고 했습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남을 악에 빠뜨리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망할 줄 분명히 알면서도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를 악에 빠뜨리는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본문에 “스스로 자기함정에 빠진다.” 고 말씀합니다. 마침내는 자기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의 무덤을 자기가 판다는 것이지요. 이게 얼마나 악하고 또 한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까?
그런가하면 또 하나의 삶의 부류는 매사에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살아가는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복이 주어진다는 성경말씀입니다. 이 둘 중 어떤 부류의 삶을 살아야할 것인가를 묻는 만큼 어리석은 질문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우문현답을 기대하며 여러분의 마음에 질문을 던집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성실한 자가 받을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성실한 사람입니다. 수 없이 생각해 왔던 문제입니다만 실제로 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에게 진실하지 못하는 데는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체면이라고 하는 것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고 누구든지 살다보면 잘못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과 잘못 된 것을 잘못 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분명히 자기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는 이 말을 하기 그리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체면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만 사실은 이것이 바로 불성실한 겁니다.
자신에게 성실한 것이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아는 건 아는 거, 모르는 건 모르는 거,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은 가졌고, 못 가진 것은 못 가졌습니다. 못 가지고 가진 것처럼,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묘한 심리가 있어서 때로는 진실보다도 진실 아닌 것에 더 기분 좋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분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젊어 보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여자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뻐 보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합니다. 젊어 보이는 것과 젊은것은 다릅니다. 어떤 게 진실입니까? 늙은 것이 내 실제요, 진실입니다. 그런데 젊어 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젊어 보인다.” 는 말을 잘 분석해 보면 그 속내는 “사실은 늙었는데 보이기만 젊어 보인다.” 그 말이거든요. “예뻐 보인다.” 는 말 역시 정신 차려서 잘 분석해 보면 “실제는 안 예쁘다.” 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이 말에 좋아할 거 하나 없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성실입니다. 사람은 먼저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성실해야합니다.
또 하나 생각 할 것이 있습니다. 복 받을 사람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나 혼자만 잘 살고, 나 혼자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 살고, 다른 사람도 건강해야 그것이 곧 내 건강이요, 내 삶의 풍요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착각하고 삽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나만 건강하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나도 병들고 나도 망하고 마는 줄 모른단 말입니다. 흔히 남에게 피해고 안 주고, 남에게 신세도 안지고 사는 것을 현대인의 반듯한 이미지라고 생각하는데 잘못 된 것입니다. 내 책임만 다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은 성실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웃이 잘못 되면 마음이 아픕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면 내 아픔만큼 쓰립니다. 그래서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 주는 것이 성실입니다. 남편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도 깊이 생각해보니 내 탓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픕니다. 자식이 빗나가는 것도 깊이 생각해보니 내 탓인 것 같아 “다 내 책임이다”, “나의 부덕함이다”, “나의 허물이다” 이렇게 나의 불성실도 인정하고 나의 책임을 돌아보는 이것이 바로 성실함입니다.
또 한 가지 복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성실한 자입니다. 곧 자기의 받은바 신앙의 은사와 은혜를 알고 충실한 자라 하겠습니다. 깊이 생각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신앙은 흉내가 아닙니다. 믿음이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보고 자라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바 대로 하나님 앞에 성실히 행할 때에 주어지는 은사요, 선물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내가 가진 것은 모두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곧 모든 것이 은사요, 은혜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크냐? 작으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도 더 더욱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곧 은사요, 은혜임을 안다면 그것에 성실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에. 다른 사람의 은혜에 신경 쓸 일이 아니라 내 일에 성실할 뿐입니다. 청소하는 일이면 어떻고, 관리하는 일이면 어떻고, 운전하는 일이면 어떻습니까? 그 무슨 일이면 어떻습니까? 정말 위대한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실한 자는 오늘 성경에 약속하신바 대로 복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얼마나 성실하게 행하며 살아가십니까? 자신에게나, 이웃에게나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정말 성실히 살아가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라면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기도는 가증해
잠언 28:9-14
열매와 생명역사를 이뤄가는 영적 생활은 말씀과 기도가 바란스가 반드시 맞아야 생활속에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말씀없는 기도는 신비주의 맹신에 떨어지게 하고 말씀은 있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인본주의 자유주의로 나가게 됩니다. 말씀을 한 시간 받으면 기도도 한 시간은 해야 합니다. 바쁘다고 많이 받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되새김이 없는 돼지처럼 옛날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개에게 거룩한 것을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하셨는지요 (마7:7) 오늘의 말씀도 율법을 주신 뜻을 알지 못하고 기도만 열심하는 것은 육적 것을 구하는 것이니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약 4:3-
9절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영에다가 육신 입힌 사람이니 영의 양식을 부지런히 받아야 하는데 귀로 들을 때 깨닫게 하심으로 입으로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식으로 받지 않고 글자로 받아 기도만 앞세우는 한국교회입니다. 그러니 복을 받아서는 다 세상에 치우치는 것입니다. 율법을 듣는 것은 바리새인들처럼 할 것 하지 말 것만 철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들어서 1.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하라는 것이요 2.죄인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요 3.기쁨으로 지켜나감으로 이 땅에서 열매맺는 복을 생명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복을 주시려 땅의 복을 주시기 위함이요 4.철저히 지켜 나감으로 하늘의 상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듣기야 바리새인들이 더 열심히 들어서 자기 열심으로 지키려 합니다. 그 의(義)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의(義)를 반드시 꺽으십니다. 그래야 상을 하나라도 얻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롬10:3-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이미 하늘에서 이뤄주신 은혜와 땅에서 불러서 믿게 하사 영적 성장을 이루라고 온갖 것(먼저는 1.영의 양식 2.열매맺는 환경 3.생명역사하게 하시는 환경)을 더하시는데 육적인 무엇이 부족하다 여겨 욕심으로 구하니 듣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약4:3-
말씀 받는 자세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세우신 자의 입에서 어떠한 말씀이 나오게 하시는가? 바울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루스드라에 앉은뱅이처럼 누구라도 주목해야 하며 루디아처럼 청종해야 합니다. 행14:9-
10절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 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정직한 자는 복음으로 살리심 받아 진리로 나아가는 영광의 성도입니다. 우리는 원죄로 가득하기에 누구나 스스로 정직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정직한 영을 날마다 새롭게 하셔야 합니다. 시51:10-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미혹자입니다. 미혹의 역사가 갈수록 더욱 거세어집니다. 장성하지 못하면 약하여 그 미혹에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족케 하는 일은 이미 허락된 것입니다. 진리로 나아가는 자들을 한데 모으시고 거짓된 자들을 한데 모으시는 역사입니다. 마187-
스스로 함정에 빠져도 남을 잘못되게 하는 자는 이미 자신이 깊은 함정에 구렁텅이에 빠진 소경과 같은 자입니다.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성실한 자는 처음부터 꾸준히 오직 겸손한 심령으로 일용양식과 때의 양식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받아먹고 나아가는 구약에 룻과 같이 나오미인 복음의 아비를 붙좇는 자입니다. 룻1:14-
11절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부자는 육신 적으로 모든 것이 넉넉하여 세상 것을 많이 배우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요 돈만 많이 주면서 종으로 삼아 누구라도 자기 말을 따르게 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지어낸 말은 복음과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분별없이 따라가게 됩니다. 벧후2:3-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진리로 자라나 악을 떠난 생활을 해도 육적으로는 가난하게 하실 때가 있는데 실상은 더욱 겸손하게 하심이요 육적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심이요 하늘 것만 바라보게 하심입니다.
12절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시대마다 만사를 주장하셔서 영광 길을 바로 가게 하신 자를 요셉처럼 다윗처럼 바울처럼 높이 세우기도 하십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강단에 의인(믿음의 의, 자라나 생활에 열매인 의)이 서는가? 악인(원죄에 지는자, 미혹에 빠진자) 이 서는가? 빨리 분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붙잡혀 사단의 종노릇만 하게 됩니다. 마24:15-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강단에 악인이 설 때도 있으니 말세에 더욱 그러합니다. 다니엘과 예수님을 통하여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바로 그러한 자입니다. 영에다가 육신 입힌 것을 깨달은 분들은 그때에 말씀의 산으로 도망가서 숨어야지 역시나 육만 가지고 사는 자들은 사람 앞에 열심만 하다가 환난도 준비 못하고 갑자기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가 막힌 것입니다.
13절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왜? 두셨나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구원의 역사 이루신 후에는 원죄가 왜? 있나요? 이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오직 감사만 하게 하심입니다. 밭에 곡식의 씨보다는 잡초가 먼저 나고 내버려두면 풀밭이 되어 곡식을 뿌렸지만 가을에는 거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죄를 회개치 못하고 화개하고 난 이후 또 조심하지 못하여 늘 죄만 짓는 자들이 죄를 숨기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미 지은 죄는 반드시 찾아내 회개케 하십니다. 민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의 허물과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과 같이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지은 죄를 숨기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죄를 숨기려 하는 자는 형통치 못할 것이요 자복하고 회개하며 죄를 버리는 자는 하나님께도 불쌍히 여김을 받고 사람에게도 긍휼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버리는 자에게 날마다 기쁨과 감사로 열매맺는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사 성령을 주사 원죄를 이겨나가게 하시려 오셨습니다. 마9:13-
14절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팍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기분이 좋을 때만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살리심 받아 진리로 자라난 자들은 세월이 짧고 할 일은 많은 것입니다. 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양식을 받아 그 영광을 더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 복됩니다. 빌2:12-
마음을 강팍에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아무리 말해줘도 바로처럼 7가지 징계와 3가지 재앙을 받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는 것이 강팍한 것입니다. 출8:32-
결국 장자를 잃게 됩니다. 우리 속에도 바로와 같은 죄의 속성이 있습니다. 늘 내마음이 주시는 양식을 받는가? 받지 않으면 강팍해집니다.
15절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관원은 나라에서 권세를 준 자입니다. 그 권세로 백성을 평안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세벨처럼 힘이 없는 백성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 괴롭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왕상21:19-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짐승들은 육만 가진 고로 배고프면 사정없이 물어 죽이고 먹습니다. 특히 사자와 곰은 난폭합니다. 원죄에 지면 누구라도 난폭해집니다.
16절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치리자는 정치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위치가 어떤 것임을 알지 못한 고로 명예욕만 많고 탐욕만 많아져서 결국 제주머니만 채우니 백성들은 고통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속에서 올라오는 원죄의 역사인 탐욕만 빼어내면 자신도 평안하고 남도 평안하게 합니다. 장수하는 것은 좋은 일을 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에게도 약속된 것이 장수인데 할 일없이 오래만 살면 무엇하나요? 가치있는 일인 열매와 생명역사위하여 사는 날들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엡6:1-
17절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생명역사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이는 역사를 하는 미혹자들은 깊은 함정으로 뛰어 들어가는 자입니다.
그를 막지 말지니라 그들은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으니 막거나 붙잡아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다.
18절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이미 6절에 말씀하시고 또 말씀해주십니다. 성실한 자는 부지런히 양식 채우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썩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입니다. 그들이 얻는 구원은 성화구원을 이뤄가게 되고 영광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거짓되이 사는 자들이 사곡한 자인데 항상 굽은 마음으로 남을 정죄 판단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넓은 길로 멸망길입니다. 갈수록 넘어질 일만 남은 것입니다. 환난 전에는 세상에 기울어지고 환난 때에는 우상에게 절하고 대 환난 때에는 고통을 당하는 것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가증한 기도
잠 28:9-19
바야흐로 기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기도에 무슨 계절이 있겠습니까만 물리적인 조건상 가을이야말로 기도에 최적화된 계절이라 하여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열매를 생각하며 연말결산을 준비해야 할 시기일 뿐 아니라 입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에도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기도가 있는가 하면 또 주님이 외면하시는 가증한 기도도 있습니다. 부디 주님 흠향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로 한 해의 마무리를 더욱 아름답게 준비하십시오. 가증한 기도가 아닌 주님 뜻에 합당한 기도로 보다 넉넉한 응답을 누리십시오.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9절).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자의 기도야말로 가증한 기도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이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옳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듣는다 함은 당연히 말씀에 순종함을 뜻합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고 했고, 이사야서는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 내 말만 들으라는 기도는 가증한 기도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드리는 기도가 바로 주님 뜻에 합당한 복된 기도라는 사실을.
자기의 죄를 숨기면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13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죄를 변명하거나 분명 자기가 지은 죄임에도 부인하며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죄의 책임을 은근슬쩍 남에게 전가하는 것은 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숨기는 자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의 기도야말로 가장 가증한 기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요일 1:9)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만,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요일 1:10) 그런 자의 기도야말로 필연적으로 가증한 기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려 함이니라>(사 59:1-2).
굽은 길로 행하면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18절).
성실하고 정직한 자도 상처는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악은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연단이 되지만 해악은 지울 수 없는 불행이 됩니다. 성실한 자의 구원은 무엇보다도 기도 응답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성실한 자의 기도는 막힘없이, 장애 없이 하나님 앞에 상달 됩니다. 그래서 응답이 보장되고 구원이 담보됩니다. 그러나 거짓되고 부정직한 자들은 결코 그런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기만과 위장과 속임수로, 또 불의하게 얻은 재물로 자신의 견고한 아성을 쌓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질뿐 아니라 또 그런 자의 기도는 결코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한다는 게 현자의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곧 가증한 기도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 흠향하시기에 합당한 아름다운 기도, 응답이 보장된 주님 뜻에 합당한 기도로 이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맞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