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시드는 의심할 바 없이 그 당시 유목부족의 자기인식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위와 같이 분류하였다.
그에 의하면 몽골은 투르크였다기 보다는 투르크는 유목부족의 총칭이었다고 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시간적으로 몽골이 발흥한지 3세기 반이 지났지만 단기간에 저 유라시아 대륙 초원의 대부분을 지배한 돌궐(이 한자는 투르크의 音寫이다)에 대한 아득한 기억이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를 투르크의 일부로 간주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몽골이 돌궐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세계제국이 길]을 내딛기 시작했을 때, 그에 따라 유목부족은 [몽골로 되었다]는 것 역시 자연스런 과정이었다고 간주해야 한다. 이번에는 몽골로 통칭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통칭으로 사용된 몽골도 폐기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느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겠다.
<2> 민족으로서 투르크와 몽골
몽골 세계제국 붕괴 후 언어적으로 투르크화하고, 종교적으로 이슬람화하면서도 [통칭]으로서 몽골의식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티무르제국의 경우 동시대 사람들은 이를 차가타이 울루스의 후계로서 보다는 차가타이 울루스 그 자체로 인식하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투르크어를 차가타이어라 불렀다. 나아가 그 차가타이어 문학을 대표하는 [자서전]의 저자 바부르가 수립한 왕조는 모골, 즉 몽골이라 불렸다. 그러나 이 의미도 전술한 것처럼 지역에 따라 시기적 차이를 두고 점차 엷어져 간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아마도 어떤 개인이 속한[민족]은 단 하나라고 하는 근대의 [민족의식]이었다. 다민족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도 사람은 자신의 귀속을 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서 자세히 서술할 여유는 없지만 오래된 통칭인 투르크는 오스만제국의 잿더미에서 소생한 터키공화국으로 재발견디었지만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제민족은 각각 독자적인 명칭을 채용하거나 혹은 강제되어, 몽골은 단지 몽골국과 중국의 몽골족(다만 몽골어를 말하는 사람들 모두는 아니다) 이름으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의 생활현장에서는 여전히 민족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강과 몽골에서 들은 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러한 상황을 짐작케 해주는 하나의 에피소들을 적어 두고자 한다.
현재 몽골서부에 거주하고 있는 우량하이족 중에 카자흐라는 씨족(姓)이 있다 . 전승에 의하면, 그들의 선조인 카자흐인은 말을 훔치러 왔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에 유망한 젊은이 들에게 우량하리 처녀를 주어 이부족의 일원으로 삼고 카자흐라는 성을 쓰도록 했다고 한다. 카자흐라는 비교적 큰 민족 이름이 아주 작은 우량하이족의 소수 씨족명이 되었다. 중앙 유라시아 유목민은 태고 이래로 이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 Mongol School.
집에서 만들어먹든 칼국수 여기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칼국수를 만들어서 대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