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리암 니슨이 주인공이고 제목이 '원맨'인데 '80회 베니스영화제 초청작'이란 타이틀이 떠오르며 영화가 시작한다. 국내 포스터 제목은 '소녀를 지키기 위한 킬러의 마지막 미션'이라고 달렸다. 뭐지 이 영화?
넷플릭스 구독에 문제가 생겨 티빙에서 갈급을 씻고 있다. (넷플릭스에도 지난해 4월 올라왔다) 니슨 주연의 '블랙라이트'(2022, 마크 윌리암스)를 보고 그 뒤 지난해 가을 국내 개봉한 우리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김민수)와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이윤석)를 거쳐 '원맨'을 만났다. 상영관 흥행은 순서대로 2만 5000여명, 8만 8000여명, 5만 500여명, 5400여명이다.
그런데 난 '원맨'이 가장 좋았다. 외딴 해안 풍광에 매혹돼서다. 원래 제목은 '성자들과 죄인들의 땅에서'(In the Land of Saints and Sinners)인데 니슨 영화라면 응당 액션 맛을 풍기는 제목이어야지 하면서 국내 수입사에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1974년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시작한다. 1952년생 니슨이 벨파스트 퀸스 대학을 졸업했으니 나이 칠십을 넘겨 수구초심이 발로된 거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늙고 지친 니슨에게 액션 연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당연히 영화는 느릿하며 사색을 요한다. 상당히 묵직한 도덕적 딜레마를 묻고 답한다.
밥 먹듯이 사람을 죽였다가 이제 은퇴해 텃밭을 가꾸며 책을 읽고 싶은 핀바 머피(니슨)과 역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방해하는 사람은 무고한 어린애라도 날려 버려도 괜찮다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테러리스트들의 여자 지도자 도이린 맥칸(케리 콘돈)이 대결하는 것이 기둥 줄거리다. 핀바는 조용히 은퇴 생활을 즐기려 했는데 도이린의 철딱서니 없는 남동생 커티스 준(데스몬드 이스트우드)이 펍에서 힘들게 생계를 잇는 싱글맘의 딸 모야를 괴롭히는 것을 알고 다시 총을 들어 응징한다. 자신이 돌보겠다고 다짐한 동생 커티스가 죽은 것을 확인한 도이린은 핀바를 찾아 누가 사주했는지 불라고 하고 펍에 모여 떠들썩 인생을 즐기는 동네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다.
영화는 처음 도주하던 도이린 일당의 차량이 마을 표지판을 망가뜨린 것을 시작으로 미세한 것들을 복선과 장치로 활용하는 영리함을 선보인다. 마크맨에 이어 두 번째로 니슨과 호흡을 맞춘 로버트 로렌즈의 연출력에다 테리 로안과 마크 마이클 맥널리가 함께 쓴 극본이 촘촘하다.
서점 주인으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핀바에게 늘 내기 총쏘기에서 져 푼돈을 바치는 경관 빈센트(시아란 힌즈), 핀바에게 살인 일을 맡기는 청부업자 로버트(콤 미니) 등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주름살에다 깊이 패인 얼굴들이 반갑기만 했다. 묘하게 영화의 활력을 제공하는 이로는 로버트가 핀바를 대신해 기용한 제멋대로 킬러 케빈(잭 글리슨)이 인상적이다. 콘돈의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글리슨의 엇나간 듯한 연기는 분명 인상적이었고, 니슨 때문에 처진 영화 분위기에 밸런스를 취해줬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핀바의 '누구나 이유가 있지'와 케빈의 '진정한 성자가 되려면 우선 죄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민 지배자인 영국군 일원으로 개인 자격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 귀국 후 부인의 죽음을 알고 알코올 의존증을 앓다 로버트의 권유로 살인 청부업자 일을 시작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목숨을 빼앗은 핀바, 아일랜드의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 무고한 이도 거리낌없이 사라져야 하고 로버트를 살해한 뒤 그의 책상을 뒤져 군자금을 챙기는 도이린 등 사람들이 이유가 있어서 저지르는 죄악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교회 장면과 핀바의 사설(?) 공동묘지 장면이 묘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평단의 평가는 박했다. 유명 평가 사이트 평점들이 평균적으로 10점 만점에 6점대였다. 액션이 강조되지 않았거니와 다소 '개똥 철학' 같은, 니슨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현학적인 대본,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애거사 크리스티 등이 등장하는 것이 약간 헛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난 어색한 국내 제목 '원맨'이 '한 사람으로 충분한'이란 뜻과 '(늙어서) 외롭고 지친' 인생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좋았다. 육십을 넘겨 스스로의 삶을 회한으로 돌아보는 이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 영화로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몇 년 니슨 영화로는 가장 낫다는 평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