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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소지마립간과 벽화부인
황원갑<본지 전문위원, 전 서울경제 문화부장, 소설가, 역사연구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은 비처왕(毗處王)이라고도 하며 신라 제21대 임금이다. 아버지는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어머니는 서불한 미사흔의 딸 김씨. 왕비는 이벌찬 내숙의 딸 선혜부인(善兮夫人)이다. 소지마립간에게는 이 선혜부인과 말년에 얻은 벽화부인(碧花夫人) 두 명의 왕비가 있었다.
신라의 왕호는 제22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때 ‘왕’이라고 바꾸기 전까지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으로 불렀다. 마립간이란 ‘우두머리 칸’, 즉 대왕이란 뜻이다.
소지마립간이 즉위한 지 10년째 되던 서기 488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마립간이 어느 날 신하들을 거느리고 서라벌 근교 천천정으로 민정시찰을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동시에 나타나더니 쥐가 이렇게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이었다.
“모두 이 까마귀가 가는 곳으로 한 번 따라가 보소! 찍, 찌익!”
“이럴 수가! 쥐가 사람의 말을 하다니! 우찌 이런 요상한 일이!”
마립간과 신하들이 모두 놀랍고 괴이쩍게 생각하면서도 쥐가 시키는 대로 경호무사 한 명에게 까마귀를 따라가 보라고 하였다. 경호무사가 말을 타고 까마귀를 따라가다가 피촌에 이르렀는데,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무사는 그 싸움을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그만 까마귀의 종적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무사가 사라져버린 까마귀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연못 가운데서 머리도 허옇고 수염도 허연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오더니 편지 한 통을 주며 이렇게 이르는 것이었다.
“이 편지를 퍼뜩 느그 마리칸에게 갖다 주거래이, 알아 들었제?”
그러고 나서 노인은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무사가 부리나케 소지마립간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보고하고 그 편지를 바쳤다. 마립간이 보니까 봉투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
그것을 보고 소지마립간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죽는 거보다야 한 사람이 죽는 기 안 낫겠노? 그러니까 안 보는 기 더 낫겠제, 그자?”
그러자 모시고 있던 일관- 왕실의 점쟁이가 이렇게 아뢰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네예! 점괘를 보니까 두 사람이라카는 건 서민이고, 한 사람이라카는 건 마리칸을 가리킨다 아입니꺼?”
“아니 뭐라꼬? 나를 가리킨다꼬?”
그 말을 듣자 소지마립간은 속이 뜨끔했다. 아무렴, 내가 죽을 수야 없지! 그래서 봉투를 뜯어 속에 든 편지를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 거문고갑을 쏘아라!(射琴匣) -
마립간은 신하들을 이끌고 급히 환궁했다. 그러고 내전으로 들어가 거문고집을 활로 쏘게 했다. 그러자 거문고집이 화살을 맞고 와장창 박살이 났는데, 이럴 수가! 그 뒤에서 백주에 벌거벗고 정신없이 방중술에 몰두하던 남녀 한 쌍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닌가.
“아, 아니, 저, 저것들이! 느그들 지금 거게서 뭐하고 있노?”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보통 궁녀와 신하도 아니고, 여자는 바로 왕비인 선혜부인이요, 사내는 내전에서 불공을 올리던 묘심(妙心)이란 중이었다. 소지마립간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악을 썼다.
“이 땡중 묘심아! 이 색사(色事)에 미친눔아! 느그 부처님이 남의 여편네하고 남편 몰래 재미나 보라꼬 가리치드나? 이놈아야, 니 언제부터 내 마누라한테 작업 걸었노, 엉? 이 문디 자석아!”
묘심이란 중이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자였다. 분노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떠는 임금 앞에 납죽 엎드린 채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캤는데, 내사 참말로 죽을죄를 졌네예! 그렇지만, 소승이 이 궁금증을 풀지 않고서는 도저히 극락왕생하지 못 하겠는 기라예! 마리칸께서 우찌 알았는공 시원하게 갈차주시면 죽어도 원이 없겠어예!”
“죽은 귀신 소원도 풀어준다는데 그동안 짝퉁이긴 하지만 부처님을 모신 중노릇을 했으니 내 갈차주꾸마. 니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알고 있제?”
“?”
“느그들은 그동안 쥐도 새도 모리게 재미를 봤다꼬 생각했겠지만, 천만에 말씸이다 그 말이제!”
“그 말씸이 아니면 뭔 말씸인데예?”
“이것들아! 내 오늘 민정시찰을 나갔다가 느그들의 낮일을 본 까마귀와 밤일을 본 쥐로부터 특별보고를 안 받았겠노? 그래서 다 알았지 뭐꼬? 놀랐제?”
“으히힛, 우찌 그런 일이!”
그렇게 하여 소지왕의 명령에 따라 두 사람은 처형당했고, 노인이 나와서 편지를 준 그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거문고갑사건’, 일명 ‘서출지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왕비 선혜부인과 파계승 묘심을 처형했다는 일연선사의 <삼국유사>의 이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김대문의 <화랑세기>,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 다른 사서는 이와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소지마립간과 선혜부인은 딸 보도공주를 낳았다. 또 선혜부인은 이 ‘거문고갑사건’에서 보다시피 묘심과 통정해서는 둘째딸 오도공주를 낳았다.
그러니까 간통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처형당했다면 둘째딸은 낳을 수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 신라 상류층의 성 풍조는 매우 자유분방했고, 왕실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근친혼도 성행했다. 따라서 간통죄란 있지도 않은 죄명으로 왕비가 처형당하는 일은 없었다. 소지마립간의 맏딸 보도공주는 나중에 소지마립간 다음 임금인 지증왕의 태자 김원종(金原宗)의 부인이 된다. 이 김원종이 뒷날의 법흥왕(法興王)이다.
또 한 가지, 신라의 불교는 법흥왕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느닷없이 불교가 공인되기도 전에 신라 왕궁에 웬 중? 하고 의문을 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의심할 문제가 아니다.
법흥왕 때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된 것은 맞지만, 그에 앞서 눌지마립간(訥祗痲立干) 때 고구려에서 넘어온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비밀 포교가 시작되었고, 소지마립간 때에는 왕궁 안에도 신자가 많이 늘었다. 따라서 묘심이란 파계승은 어쩌면 아도화상의 덜 떨어진 제자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자고로 인간사란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고, 동(動)이 있으면 반동(反動)도 있게 마련이다. 배우자의 바람에 맞바람을 피우는 것도 이런 이치에 따른 것일까. 젊은 중과 몰래 바람을 피우다가 망신을 당한 선혜부인도 먼 뒷날 소지마립간의 늦바람에 무던히도 속을 썩이게 된다. 하긴 뭐, 늙은 말이라고 콩을 싫다 하랴, 홍당무를 싫다 하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나이든 사내들이 영계를 밝히는 버릇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나보다. 인생 60고개를 훌쩍 넘긴 소지마립간의 늦바람도 다를 바 없었다.
재위 22년, 서기 500년. 이른바 ‘거문고갑사건’, 일명 ‘서출지사건’이 일어난 지 12년이 지난 뒤였다. 계절은 한가위도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는 음력 9월. 오랜만에 모처럼 왕비와 더불어 ‘뱃놀이’를 즐기려던 임금은 십리도 못가서 발동이 꺼지는 바람에 왕비의 배에서 하선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성전(性戰)에서 패배한 것이다. 무안해진 임금이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었다.
“영감! 자다 말고 어딜 가는교?”
선혜부인이 물었다.
“늙으니까 ‘물견’도 말을 안 듣고… 내사 잠이 안 온다 아이가? 산책 좀 하고 올 테니 할망구는 그냥 뒤비져 자삐라.”
“하이고, 내사 모릴 줄 알고? 또 어떤 영계를 눈독 들였다가 털도 안 뽑고 잡아 묵으러 가는공?”
“할망구 말뽄새 좀 보래이! 내가 식인종이가? 가시나들을 잡아 묵게…. 니는 이런 말도 모리나? 니 자신을 돌아보라~!”
그러자 선혜부인은 왕년에 지은 전과가 있는지라 금세 목을 자라새끼처럼 움츠리며 모로 돌아누워 버렸다. 마립간은 자신의 말이 스스로도 대견스러웠는지 으흐흐흐! 하고 혼자 웃었다. 그렇게 마립간은 침전을 나서서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근래 들어 소지마립간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오직 하나, ‘기계’의 성능이 현저히 감퇴됐기 때문이다. 후궁의 수많은 미인 가운데서도 그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주는 회춘의 명기(名器)가 없었던 것이다. 대를 이을 아들 하나 없어 육촌아우인 지도로(뒷날의 지증마립간)를 다음 왕위후계자인 부군(副君)으로 삼은 것도 그렇거니와, 성기능까지 감퇴됐으니 이래저래 기분이 불유쾌했다.
정원을 거닐던 소지마립간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미인의 눈썹처럼 요염한 초승달… 그랬다! 그 달은 영락없이 어여쁜 벽화의 눈썹 같았다. 임금은 어둠속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늙은 소지마립간의 가슴에 늦바람의 불길을 지른 벽화는 누구인가. 그녀는 오늘의 경북 영주 땅인 날이군의 칸 섬신공 파로와 벽아부인의 딸이다. 소지마립간이 날이군에 행차하여 절세미녀로 이름난 벽화를 처음 본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비록 겉으로는 민정시찰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날이군에 사는 방년 16세 벽화가 경국지색이란 비밀보고를 받고 실물 확인 차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갔던 것이다. 마립간이 변경 순시 차 날이군으로 행차한다는 소식을 들은 파로는 접대에 무진 신경을 썼다. 왜냐하면 마립간을 직접 모시는 이번 기회야 말로 서라벌 중앙정계 진출과 출세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성 밖 멀리까지 마중 나가서 소지마립간을 집으로 맞아들인 파로는 온갖 산해진미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상을 차리고 환영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그날 밤 마립간의 잠자리에는 자신의 아내 벽아부인을 들여보내 원로의 객고를 풀도록 했다. 참으로 눈물겹게 지극한 정성이요 붉은 충성이었는데, 그것이 다냐 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틀 뒤 마립간이 서라벌로 돌아가는 길에 어마어마한 선물을 바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 선물이 바로 자신의 외동딸 벽화였다. 곱게 단장시킨 벽화를 울긋불긋 화려한 비단옷으로 둘둘 감아 수레에 태워서 통째로 바쳤던 것이다.
“이기 뭐꼬?”
수레를 열어본 소지마립간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가다가 먹으라는 맛있는 음식도 아니고, 뇌물로 바친 금은보화도 아닌, 눈부시게 아름답게 꾸민 벽화였던 것이다. 소지마립간이 할 말을 잃고 바라보자 벽화도 고개를 들어 마주 쳐다보는데 쌩끗 눈웃음치는 그 교태가 늙은 마립간의 애간장을 살살 녹였다. 요염하기가 장차 서라벌을 울릴 ‘색사의 여왕’이 될 소지가 다분히 엿보였다. 소지마립간은 그만 첫눈에 맛이 가고 말았다. 제법 할 줄 아는데! 마누라에 이어 딸까지 바쳐? 파로 이 친구가 근래 보기 드문 충신이구만!
그런데, 자신은 공식적으로는 민정시찰과 영토순시를 나온 마립간- 대왕이 아닌가. 어찌 공공연히 훤한 대낮에, 그것도 대소 신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하의 딸을 선물로 받을 수가 있단 말인가. 소지마립간은 눈물을 머금고 빈손으로 환궁했다. 그것이 벽화를 알게 된 경위였다. 그때는 신하들의 눈도 있고 해서 체면상 그냥 돌아오고 말았지만, 그렇게 서라벌로 돌아온 다음부터 한시도 그림보다 아리따운 벽화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날 줄 몰랐던 것이다.
며칠 뒤 소지마립간은 백성의 옷차림으로 변장하고 몰래 황궁을 나섰다. 소지마립간이 예고편도 없이 나타났건만 파로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는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능글맞은 친구였다. 그렇게 해서 소지마립간은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벽화, 풋사과처럼 싱싱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절세미녀 벽화를 안을 수 있었다.
한번 열린 창문으로는 바람이 계속 드나들기 마련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소지마립간은 벽화의 미색에 빠져 걸핏하면 정무를 팽개치고 날이군을 다녀왔다. 그러니 70고개를 바라보는 노구가 어찌 혹사를 견디랴. 게다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는가. 임금의 미행은 얼마 못가 대궐 안에서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급기야는 민간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날도 변복을 하고 날이군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고타군, 오늘의 안동 땅에서 묵고 가게 되었다. 집주인은 노파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임금이 노파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요즘 사람들이 지금 마리칸을 우찌 생각하고 있는교? 정치를 잘 한다꼬 보는교?”
그러자 노파가 망설이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어데예! ‘노사모’ 아니, ‘소사모’ 같은 얼라들이야 마리칸이 훌륭한 분이라꼬 하지예. 그렇지만 나는 마리칸이 훌륭한 사람이라꼬 생각하지 않십니더!”
“와 그렇게 생각합니꺼?”
“내사 이런 촌구석에 살아도 마리칸이 날이에 사는 가시나한테 뿅 가삐려서 자주 찾아간단 소문을 다 안 들었는교? 그라면 나랏일은 언제 볼낀데예? 용이 물고기 옷을 입고 다니면 어부한테 잽히는 법인데, 마리칸이란 분이 변복을 하고 계집질이나 하러 다닌다니, 그렇게 신중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교? 쯧쯧…”
노파의 일장훈계를 들은 소지마립간은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벽화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는 벽화를 사람들의 눈에 안 띠게 서라벌로 불러 후궁으로 들어앉혔다.
“벽화야! 니는 내가 늙어도 좋나?”
“하모요! 지는 마리칸이 제일 좋아예! 지를 여자로 만들어주지 않았는교?”
“아이고, 요 귀여운 것! 내사 니가 너무 이뻐서 몬 살겠구마! 와 이리 이쁘게 생겼노!”
결국 소지마립간은 벽화와의 지나친 색사로 더 오래 살 수도 있었을 것을 불과 두 달밖에 더 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늘그막에 찾아온 그 바람은 참으로 무서운 죽음의 바람이었다.
소지마립간이 죽은 뒤에 벽화는 어떻게 되었는가. 왕자를 낳았는데, 왕위를 잇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산중의 범처럼 위엄 있게,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던 부군 지도로가 대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 지도로가 지증마립간이다.
늙은 소지마립간의 후궁이 되어 서라벌로 들어왔다가 불과 1년 만에 청상과부가 된 절세미녀 벽화는 어떻게 되었는가. 벽화는 지증마립간에 이어 왕위를 잇는 김원종, 즉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대한언론인회보>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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