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육 人生大事何-인생의 큰일이 무엇인가 像人樣成長-자식이 사람답게 성장하는 일 子如何成長-자식은 어떻게 커 가는가 父母樣成長-부모의 본(本)을 보고 자란다 長者行動愼-어른 행동이 조심스러운 것은 因爲童模仿-어린이가 따라 하기 때문이다. 家和睦在哪-가정의 화목은 어디에 있는가 飯床邊教育-밥상머리 가정교육에 있다. 竹木直成長-대나무가 곧게 자라는 것은 竹筍隨長竹-죽순이 대나무 본을 받기 때문 艾在麻田中-쑥대(艾)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麻樣見自直-삼(麻)을 본보고 저절로 곧아진다. 國家將來何-국가의 장래는 어디에 있는가 有少年長樣-청소년들의 자라는 모습에 있다. 농월(弄月)
큰일 났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
학생인권단체 전국학생수호연합는 중고생을 촛불집회에 동원한 “백금렬 교사를 고발했다” .
▲조선조에는 서원(書院)이 있었다. 지금도 여러 곳에 문화재로 남아있다. “서원(書院)”이란 현명하고 어진 선인(先人)을 제사모시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운 사설교육기관(私設敎育機關)이다. 국가가 설립 운영하는 공교육기관인 “향교(鄕校)”와 대칭되는 이름이다.
서원(書院)이름의 유래는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궁중에 있던 서적(書籍)을 편집하고 수정하는 곳인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 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등의 교육기관의 명칭이 있었다. 그 이름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서재(書齋),서당(書堂),정사(精舍), 선현사(先賢祠),등의 이름으로 쓰였다. 1542년(중종 37) 경상도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경북 영주시의 백운동(白雲洞)에 고려 유교(儒敎)의 중흥자(中興者) 안향(安珦)의 옛집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 사당(祠堂)을 세워 제사를 지내고 유생(儒生)들을 모아 경서(經書)를 가르치니 이것이 “사(祠)”와 “재(齋)”를 겸비한 최초의 서원(書院)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필자도 현지답사를 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서원이 조선조 500년 동안 무려 1700여 곳이 되었다. 초기의 서원은 인재를 키우고 선현(先賢)을 제사지내며 유교적 향촌(鄕村) 질서를 유지하고, 조정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 사림(士林)의 공론(公論)을 바르게 형성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였다. 요즘 같으면 건전한 비판 언론(言論)과 야당(野黨)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서원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陶山書院), 송악서원(松嶽書院)· 우암 송시열을 모신 화양서원(華陽書院)과 명나라 신종(神宗)을 모신 만동묘(萬東廟) 등이 있었다.
1864년(고종 1)에 집권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서원에 대한 일체의 특권을 철폐하고 대표적인 서원인 만동묘와 화양서원을 폐쇄하고 모범이 될 만한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그 47개소는 지금(2022년현재)도 남아 있다. 마치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한 것과 유사하다.
대원군은 서원을 폐쇄한 후 서원의 젊은 유생(儒生)들이 가만있지 않고 항의하는 여론이 어떤가 싶어서 측근을 시켜 소문나지 않게 전국의 폐쇄 당한 서원들의 분위기를 알아보게 하였다.
전국 유생(儒生)들의 동향을 살피고 온 측근이 보고를 한다. 흥선대원군이 물었다. “분위기가 어떻더냐?”
그때 측근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였다. 예 “매우 조용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조용해 !?
그 말을 들은 대원군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있다가 무릎을 탁 치며, “이거 큰일 났구나.” 하였다고 한다.
서원이 폐쇄당하면 빽줄이나 출세 줄이 막히기 때문에 목숨을 내걸고 반발할 줄 알았는데 조용히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처럼 난리를 쳐야 하는데--
“아무리 대원군인 내가 서원 철폐를 단행했다 해도 조선을 짊어지고 나갈 기둥인 젊은 유생들이 이처럼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어서야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는 뜻이었다.
권력자인 대원군 자신에게 유생들이 무서움을 모르고 맞서야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의 패기가 정상적 행동이 아닌가! 젊은 유생들이 이렇게 용기 패기가 없어서야-- 희망이 없는 조선의 장래를 탄식한 것이다.
서원철폐에 대하여 유생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달겨들것이라 생각했다. 대원군은 이처럼 무기력한 유생(儒生)들의 손에 이 나라의 장래가 운영될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던 것이었다.
조선후기에서 며느리 민비와의 권력다툼, 외세를 배격한 척화(斥和)등 많은 정치의 실책에도 대원군 이름이 역사 속에 남는 것은 이런 애국의 면모가 있기 때문에 한국 역사에는 큰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건국후 자유당 독재로 이름이 더렵혀지고 하야(下野)까지 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이승만의 애국심은 어디에 비교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후 친북좌파들에 의하여 이명박 미워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났다 “병든 소고기를 수입하여 나라 망한다”고 연일 촛불 데모를 하였다. 수입 소고기를 먹으면서--
▲터무니없게 3월 “외환위기설”을 유포하여 사회를 혼란시키려 하였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우측통행”이 불편하다고 괜히 이명박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들었다.
▲지금도 좌파들은 4대강을 반대하고 있다. 4대강 개발후 영산강과 낙동강의 맑은 물을 먹으면서도 가믐에 4대강 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4대강 반대”를 외치고 있다 친북좌파들의 전형적인 선전선동이다.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폭파당했다. 그 귀한 우리의 아들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에 월드컵축구 결승전을 보러 갔다.
▲그뿐인가? 세월이 좀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도 KAL기 폭파를 기억하고 있다. 아웅산에서 그 많은 국가의 귀한 인재가 북한 김정일의 폭탄으로 죽었다. 북한의 이 만행을 지금 국민은 잊고 있다 ! 이런 북한을 문재인은 상전(上典)처럼 모셨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유시민은 “천안함은 폭발에 의한 침몰로 보지 않는다”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 어뢰설 기뢰설 버블제트 등은 억측과 소설” 이라고 말했다. 어디 이사람뿐인가. 천안함 유족 윤청자씨의 “북한 퍼주기” 항의를 받은 강기갑도 북한을 변명하고 있다. (5월 12일 동아일보 사설과 사회면 기사)
▲도올 김용옥은 그가 쓴 책 “노자철학 이것이다. p-246 중간” 에서 “나는 남조선이 북조선에 의하여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거국적 맥락에서 아무것도 우려 할 것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을 외면하고 고생모르고 자란 자칭 사상가라는 자의 글이다. 이런 자들이 자칭 사상가니 지식인이다 하면서 TV 유튜브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식인은 학벌 좋다, 영어 한문 잘한다,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지식인이 아니다. 자식인 다워야 한다.
큰일이다 ! 조선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여 삼전도에서 이마에 피를 흘린 인조(仁祖)의 국치(國恥)와 일본에 36년 종살이--
6.25의 참극을 격으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은 친북 좌파(左派)를 왜 외치고 있을까? 중국과 일본에 종살이한 노예근성일까? 아니면 신라에 나라를 빼앗긴 백제 고구려 후손들 원한의 유전자가 연어의 회기성(回歸性)처럼 북쪽을 그리워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회귀성(回歸性)-동물 어류 따위가 태어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성장한 뒤, 산란(産卵)을 위하여 태어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습성.
▲이제 친북좌파가 초등학생까지 시위에 동원하고 있다. 지금 15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학생들이 30년이 지나 45세의 어른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식들에게 “부모형제를 고발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교육을 시킬 것을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돋고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해진다. ※모골송연(毛骨竦然)-끔직스러워 몸이 으쓱하며 털끝이 쭈뼛해진다.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을까 ! 눈앞이 캄캄해진다 !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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