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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파선에 많은 도자기와 고급 목재도 많이 있었지만 주목되어졌던 것은 송나라 동전 800만개 28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왜 송나라 동전이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에 28톤이나 실려 있었던 걸까?
송나라 동전은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나 많이 실어갔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시대적 상황이 결부 되어 있었다.
여진족이 세운 금이 송과 연합해 요를 쳐서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1126년 송나라 수도 개봉을 점령하고 휘종과 그의 아들 흠종을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정강의 변(1127년)이라 한다. 이때 북송은 막을 내리고 흠종의 동생 고종은 남쪽으로 피난을 가서 지금의 항주에 도읍을 세우고 남송을 재건했다
먼저 정강의 변(1127년)때 북송지역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가면서 미쳐 동전을 갖고 가지 못하고 땅에 묻어두고 피난가던지 아님 방치하고 살해되었거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 동전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금나라는 송나라의 동전을 인정하고 계속 사용하였으면 괜찮은데 1215년에 동전 사용을 중단시겼다
최근에 중국에서 송나라때의 동전을 몰래 발굴해 녹여 팔려던 일당들이 검거 되었는데 중국 경찰들이 조사해보니 시골의 밀밭에서 캐내었다 한다. 그 양이 2.2톤이나 되었다한다. 또 다른 곳에서 발견된것까지 합하면 총 4톤이나 되었다한다
이 동전들을 살펴보니 북송시대 960~1127년 무렵의 동전이었다. 일일이 개수를 셀수 없어 무게를 잴수 밖에 없었다 한다
금나라 치하에서 송나라 동전은 화폐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땅속에 묻혀 있게 된것이다.
1279년 남송의 최후의 거점마저 원나라에 멸망하게 되었다. 원나라는 이미 1270년에 동전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지폐(보초와 교초)사용을 공식화했다. 즉 송나라의 동전은 더 이상 화폐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물론 정부에서 금지시켰다고 민간에서 완전히 사라지기야 했을까마는 아무래도 과거처럼 유통될수는 없었을것이다.
그때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시대였는데 당시 일본의 상인들이 중국으로 무역을 하러와서 다른것보다 송나라 동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이 동전들을 구매하는데 애를 썼다한다.
일본은 이 동전들을 갖고 무얼하려던 것일까?
지금으로 보면 외국환 관리법 위반 정도 될수 있을듯 한데, 당시 상황을 보면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시대 (1185~1333)였는데 이때 일본은 평화를 되찾고 새롭게 번영을 구가하던 시대였다. 당시 일본은 벼농사가 너무 잘되어 이를 유통할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졌고 화폐의 필요성이 높아졌는데 화폐제조 기술이 부족했다 한다. 동함량이 높은 양질의 동전 제조기술이 부족해 자국에서 생산하기 보다 송나라의 더 뛰어난 동전을 수입해와서 화폐로 사용하려고 했을것이라고 한다.
이들 화폐를 통해 물류가 발달해졌고 금융업도 활발해졌다한다. 송나라의 동전을 유통시키며 일본의 경제는 한층 더 발전되었다한다.
또 한가지 이유로는 당시 중국에서 유통되던 동전은 동함유량(개당 4g에 동80%)이 높은 양질의 것이어서 그 가치가 높았다. 송사에 "동전 10점을 녹이면 정련된 동 1량을 얻는데 그것으로 청동기를 만들면 5배의 이익을 얻을수 있다"고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청동불상을 만드는데 들어갈 동의 수요가 많았던 시대였다. 당연히 중국의 좋은 품질의 동전을 싸게 구입하여 청동 불상을 만들면 더 이익이라는 계산에서 중국에서 동전들을 대량으로 수입한듯 하다
우리나라도
동전을 몰래 녹여 동괴를 만들어 이득을 얻으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동전의 가치와 동전에 함유된 동의 가치의 차이때문이다. 10원짜리 동전을 만드는데 4배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하니 녹여서 되팔면 더 이익이 될것이다. 물론 불법이다. 옛날에 일본에서는 중국의 동전을 수입해와 녹여 다른 용도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동전이야 자기 나라에서야 화폐로서 가치가 있지 다른 나라에 가면 당연히 화폐가 아니게 된다. 그 예로 알레스카의 원주민들에게서 발견된 청나라 동전으로 만든 갑옷을 들수 있다
이 동전들은 청나라 순치제, 강희제, 옹정제때 주조된 동전들인데 17세기 러시아가 알레스카로 진출하면서 현지의 원주민들에게 모피의 댓가로 지불한 동전들이다. 알레스카의 원주민들이야 청나라 동전이 화폐가 아니니 이를 갑옷을 만드는데 사용했다한다. 이들 동전들은 다른것들보다 크기도 무게도 더 나가 원주민들이 갑옷 만들고 옷 장식용으로 인기가 많았다한다
삼국시대초기 마한의 유물중 중국 왕망의 신나라의 동전이 출토된적이 있는데 이 동전들도 이런 종류일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출토된 양으로 봐선 아니겠지만 중국의 동전을 수입해와 화폐로 사용하려는 시도일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위 기사로 보아 마한도 중국과 교역이 많았으니 화폐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삼국시대에 화폐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