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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은 성공이라는 집을 짓게 하는 주춧돌이다
“누군가 나에게 ‘노!’라고 말한다면 이는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과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일 뿐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캐런 E. 퀴노네스 밀러가 한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스스로에 대한 확신, 곧 자신감이 중요함을 지적한 말이다. 자신감이 없다면 다른 훌륭한 자질도 빛을 보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감이 충만하면 적은 재능으로도 십분 빛을 발할 수 있다. 리더에게 자신감은 주춧돌이다. 제아무리 좋은 기둥과 보를 준비했어도 주춧돌이 튼튼하지 못하면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감만큼은 튼튼히 갖추어야 한다. 튼튼한 자신감이 주체의 용기와 열정, 투쟁을 견고하게 뒷받침해준다.
앞서 언급한 캐런 E. 퀴노네스 밀러의 성공 사례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밀러는 남다른 자신감으로 불리한 환경을 딛고 베스트셀러 저자로 성공한 흑인여성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밀러는 13살에 중학교를 중퇴한 뒤 한동안 할렘을 배회하며 지냈다.
직업군인이 되어 해군에서 복무한 그는 뒤늦게 대학을 나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지의 기자가 되었다. 그렇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중 당시 12살짜리 딸내미의 부추김을 받아 『새틴 인형』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막상 출판하려니까 문을 두들긴 출판사마다 죄다 퇴짜를 놓았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지쳐 포기하고 말았겠지만,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출판사를 등록해 책을 출간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6주 만에 3천부가 팔리고, 8달 만에 2만 5천부가 팔렸다.
자비 출판한 책이 이처럼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자 여러 출판사들이 관심을 보여 결국 한 출판사와 재출간 계약을 맺고 다음 소설의 선인세로 수억 원을 받기까지 했다. 이후 그는 8권의 책을 더 출간하며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앨콧,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등과 더불어 필라델피아의 문학 유산 50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밀러는 자신이 뒤늦게 대학에 간 이유에 대해 간혹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가지 않아 놓친 유일한 게 프롬(prom, 고등학교 무도회)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갔다.”
중학교 중퇴 뒤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그가 얻은 학점은 4점 만점에 3.88점이었다. 학업뿐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그였기에 밀러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전했고 또 성취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없는 리더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특성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지나친 공격성과 지나친 방어성이다. 지도자가 공격적이면 매우 자신감이 있는 리더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나친 공격성은 자신감의 결여를 반증할 뿐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대화나 의사결정에 있어서 결코 공격적이지 않다. 겁이 많은 개가 많이 짖듯 자신감이 결여된 리더가 과장된 공격성을 보여준다. 반대로 지나치게 방어적인 행동으로 자신감의 결여를 보여주는 리더들이 있다.
이런 리더들은 자꾸 결정을 미루거나 심지어 자신이 내린 결정마저 재고한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보니 팔로워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신뢰를 거둬들인다. 그런 점에서 자신감이 있는 리더는 일단 직무를 떠나 정서적인 측면에서나 의식의 측면에서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리더십 전문가 피터 배런 스타크는 자신감이 있는 리더의 특질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 행복하다. 사람들을 이끌고 일상의 도전을 다루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긍정적이다.
- 관계가 좋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므로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하고 그로 인해 남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다.
- 동기 부여가 잘되고 야망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회사에, 심지어는 세상에 뭔가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는다.
- 자주 웃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찾는다. 즉 멀리 내다볼 줄 안다.
- 위험에 열려 있다. 과감하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줄 알고 실수로부터 배울 줄 안다.
- 성공을 인정한다. 다른 이의 성공을 기꺼이 인정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오는 찬사를 솔직하고 떳떳하게 받을 줄 안다.
- 피드백을 잘 받는다. 피드백을 환영하므로 사람들이 현상을 개선할 아이디어를 갖고 자주 찾는다. 덕분에 성장하고 발전한다.
- 자주성이 있다. 자신의 핵심 가치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이 있어 말과 행동이 늘 일관된다. 그래서 팔로워들이 따르기 쉽다.
GE의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런 말로 표현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리 할 것이다.”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하마드 알리 진나도 삶은 다른 무엇보다 당당한 자신감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만든다.”
전통적으로 자신감은 남성들의 덕목으로 이야기되어왔다. 여성들에게는 자신감보다 인내나 순종 같은 보다 수동적인 덕목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차별적인 관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감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덕목이고, 성에 따라 더 많고 적은 자질이 아니다. 근대 이전, 남성들이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통제하던 미술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간 소수의 여성화가에게서 우리는 그 당당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들의 자화상에서 그 굳건한 자기 확신을 더 잘 들여다볼 있다. 주디스 레이스테르의 자화상이 특히 그렇다.
주디스 레이스테르, [자화상], 1630년경캔버스에 유채, 74.6x65.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남성이 화단을 지배하던 시대에 여성화가로 성공한 레이스테르의 자화상. 자신감에 찬 미소가 매력적이다.
화가는 지금 관객인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앞에는 이젤과 캔버스가 놓여 있고, 그의 오른손에는 붓이 들려 있다. 그림 속 캔버스에는 활짝 웃는 얼굴로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화가도 그림 속 인물처럼 웃고 있는데, 그처럼 활짝 웃는 것은 아니나 밝고 여유로운 미소가 돋보인다. 붓을 든 오른손은 의자 등받이에 자연스레 걸치고 있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자세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회화의 알레고리로 그려진 자화상], 1638-39년캔버스에 유채, 96.5x73.7cm, 왕립 컬렉션
이탈리아 화가 젠틸레스키는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배우다 강간을 당하고 이로 인한 송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하는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결국 당대 최고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회화의 알레고리는 보통 우아하고 이상적인 미인으로 그려지지만, 이 그림에서 젠틸레스키는 팔을 걷어붙이고 거친 회화 노동을 하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담았다. 고난을 뚫고 유리천장을 깬 여성으로서 다져온 강한 투지와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성화가가 이렇듯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자신을 그린 게 낯설지 않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유럽에서 여자가 웃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그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거나 술에 취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화가는 지금 전통적인 이미지 관념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을 웃는 존재로 표현했다.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또 성공한 화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고 떳떳하게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존심과 자신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레이스테르가 활동하던 네덜란드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여성화가는 극히 드물었다. 레이스테르는 17세기 1백 년 동안 네덜란드 하를렘의 화가 길드가 마스터로 받아들인 단 두 명의 여성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드문 여성화가였지만 능력만큼은 출중해 19살 때 이미 “훌륭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화가였다고 도시 공문서에 기록되었다. 재능이 뛰어났던 만큼 살아생전 많은 찬사를 받았으나 여성화가였던 까닭에 사후 급속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의 존재가 되살아난 것은 1892년에 있었던 한 송사 때문이었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이 17세기 네덜란드의 대가 프란스 할스의 작품을 하나 구입했는데, 거기에서 할스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사인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루브르는 판매자를 대상으로 소송에 들어갔다. 이에 학자들이 달라붙어 분석한 결과 그 사인의 주인은 다름 아닌 레이스테르였다. 이렇게 해서 레이스테르라는 여성화가의 존재가 재발견되었다. 또 그동안 할스의 그림으로 오인된 레이스테르의 다른 그림들도 재분석의 과정을 거쳐 원 주인을 찾게 되었다.
여성이 화가로 성공하기는커녕 활동하기조차 어려웠던 척박한 환경에서 레이스테르가 나름대로 성취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자화상이 보여주듯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과 자신감 덕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짓는 그림 속의 레이스테르는 유리천장을 깨려는 모든 여성들에게 두려워 말고 자신의 길을 따르라고 따뜻하게 격려하고 있다.
옛 영웅호걸들의 고사를 읽다 보면 자신감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에피소드의 하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화다. 그는 젊은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타지로 피신했다가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해적들에게 붙잡힌 적이 있다. 해적들이 몸값으로 20탈렌트를 내놓으면 풀어주겠다고 하자 카이사르는 그들을 비웃으며 몸값을 50탈렌트로 높였다. 자신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는 놈들이라고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행동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잠잘 때는 절대 떠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등 해적들에게 포로가 아니라 왕처럼 굴었다. 그렇게 38일을 보낸 뒤 돈이 도착해 풀려나자 군사를 이끌고 해적들을 쫓아가 쳐부수었다. 포로로 잡힌 자들은 모두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카이사르는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런 그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 자신만만한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였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대담한 성격에 탄복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매력에 완전히 정복당하고 말았다.”
당시의 사연을 형상화해 유명해진 작품이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의 [카이사르 앞의 클레오파트라]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처음 만난 해는 기원전 48년이다. 당시 클레오파트라는 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해 폐위된 상태였다. 권토중래를 노리던 클레오파트라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무렵 알렉산드리아 궁전에 머물고 있던 카이사르뿐이었다. 마침 카이사르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이집트 권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클레오파트라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를 궁으로 불렀다.
문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군사들이 궁을 지키고 있어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클레오파트라는 매우 대담한 꾀를 내었다. 측근 아폴로도르에게 자신을 값비싼 천에 말아 이고 카이사르 앞에 가도록 한 것이다. 천에 둘둘 말린 진상품, 그것도 심부름꾼이 이고 온 진상품이 여왕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인은 궁궐의 경비마저 속이고 카이사르 앞에 이르렀고, 양탄자를 펼치자 거기서 마법처럼 클레오파트라가 솟아나왔다.
그림을 보면, 진상품인 줄 알았다가 웬 여성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는 카이사르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의 측근들도 놀라 움찔하는 모습이다. 그런 반응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클레오파트라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카이사르를 바라본다. 자신이 설득하면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고 자신이 원하는 권력을 되찾아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렇게 강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클레오파트라는 이처럼 기발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카이사르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기어이 카이사르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 권력을 회복하고 확대할 수 있었다. 훗날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고 이어진 권력투쟁의 와중에 안토니우스가 대세로 떠오르자 클레오파트라는 역시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행동으로 안토니우스마저 사로잡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뛰어난 지성에 남다른 자신감을 갖춰 사람들을 금세 사로잡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힘으로 그는 역사를 바꿨다.
자신감이 없는 리더가 조직에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조직의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없을 때 리더의 지위가 주는 중압감은 리더로 하여금 곧잘 허장성세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리더는 약점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리더가 이처럼 방어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소통에 나서면 구성원들은 더 이상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가 없다. 혁신은 결국 남의 이야기가 된다.
자신감이 없는 리더는 또 자신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가혹하게 비판해야 당사자에게 자극이 되어 보다 부지런히 약점을 극복하려 노력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남아 있던 약간의 자신감마저 잃게 하는 우가 되기 쉽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알맞아야 한다. 넘쳐도 모자라도 다 문제가 된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자신감은 결국 바람직한 심리적 균형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내면의 심리적인 밸런스가 잘 맞을 때 사람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이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이 자신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약점이 자신에게 성장할 여지를 주는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장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쑥스러워하지 않고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는 말했다.
“만약 당신의 내면에서 ‘너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 하는 소리가 들리면, 더욱 열심히 그려야 한다. 그러면 그 소리가 잠잠해질 것이다.”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버티는 자가 최후의 승자다.
발행일 : 2017. 09. 18.
글 이주헌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한겨레신문 미술 담당 기자를 지냈다. 학고재 갤러리 관장, 서울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는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지식의 미술관』,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등 삼십여 권이 있으며, 대중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