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후퍼 감독, 에디 레드메인, 알리시아 비칸데르 주연의 <대니쉬 걸>을 보았습니다.
영화 초반, 뜬금없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이라고 버젓이 자막이 나오는데, 영화 속 인물들은 영어를 쓰고 있어서 말이죠.
헐리웃에서 많은 타국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언어로 영화를 만든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레 왜 그게 그렇게 ‘뻔뻔(?)’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 영화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지,
만약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중국에서 중국어로 만들면 우리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생각난 건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대사입니다.
성전환을 꿈꾸는 주인공 ‘동구’가 친구에게 던지는 항변과 같은 외침입니다.
성전환이 '살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이 영화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성전환자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준 의미있는 영화인 것이죠.
<대니쉬 걸>의 시대적 배경은 성전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타고난 성을 거부하는 것은 정신이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시대가 지난 현대에도 여전히 그런 생각은 여전합니다.
다만, 성전환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편이죠.
하지만 그 이해가 단순한 존중의 차원인지, 정말로 그 심경을 이해하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명의 위협과 더불어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타고난 성을 바꾸는 그들의 심경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대니쉬 걸>의 ‘아이나’의 여성성에 대한 간절함은 '동구'의 그것과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이것이 ‘살기 위한’ 간절함인 것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이나’도 처음엔 놀이처럼 시작했습니다.
보는 사람이 닭살돋는 가벼운 장난이었지만, 결국 숨겨진 ‘릴리’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말죠.
이후 간절하게 ‘릴리’의 삶을 원하게 되고, 풍경화가인 그가 더 이상 풍경(자연)을 그릴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는 온 몸이 ‘아이나’의 정체성을 거부하게 되고, ‘아이나’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죠.
결국 그는 ‘살기 위해’ 진정한 자아(릴리)를 되찾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과정을 보고 있으면 '아이나'가 겪는 고통과 혼란이 보고 있는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대니쉬 걸>을 통해 그런 선택을 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의 혼란과 간절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니쉬 걸>은 타고난 성을 거부하고 본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아이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그 과정을 함께 겪어내는 ‘아이나’의 아내 ‘게르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이나’에게는 ‘릴리’라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 과정이지만, ‘게르다’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는 과정입니다.
정체감 혼란을 느끼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동안 그녀에게도 밀려드는 혼란,
남편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과 외로움, 그럼에도 고통받는 남편을 지켜주고 싶은 사랑의 감정이 혼재되면서
그녀도 ‘아이나’ 못지않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어쩌면 남편의 숨겨져 있던 여성성을 끄집어내고,
화가로서 인정받고자하는 욕망에 이 상황을 부추기고 방조한 것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에서 도망가지 않고,
‘아이나’의 아내로서의 자리를 잃었음에도 ‘릴리’의 동반자로서 끝까지 곁에 남은 건
분명 그(녀)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에디 레드메인’은 <레미제라블>에서 처음 봤는데 첫인상은 비호감이었습니다.
‘주근깨 빼빼마른’ 이 처음 보는 배우가 연기하는 ‘마리우스’라는 인물자체가 비호감이었거든요.
‘마리우스’는 젊은 객기에 민중 항쟁에 잠시 발을 담궜다가 돌아온 부잣집 도련님으로만 보였습니다.
항쟁 중 희생당한 동료들에 대한 추모는 잠시일 뿐, 사랑하는 여자 ‘코제트’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고,
그녀’의 아버지인 ‘장발장’이 행방불명된 와중에도 결혼식을 올리며 희희낙락대는 모습이
여간 비호감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에 애꿎게도 이 역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도 비호감처럼 보였죠.
하지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연기는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감정적 변화가 많음에도 절제하며 표현해내는 <대니쉬 걸>에서의 연기는
‘아이나’의 혼란과 간절함이 마치 저의 것처럼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장국영’의 생각나며 걱정도 들었습니다.
설마 현실에서도 ‘릴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해서 말이죠.
차기작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신비한 동물사전>인 것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서히 ‘릴리’에서 벗어나기에 다행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레오’가 가져간 것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이런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도 ‘골든 라즈베리’의 수상자에만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깝네요.
‘아이나’ 못지않게 큰 감정의 파고를 경험하는 아내 ‘게르다’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사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주연으로 봐도 무방한데,
이번 오스카에서는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알리시아’가 연기한 ‘게르다’는 이래저래 이 영화와 연결고리가 있는
<킹스 스피치>의 ‘헬레나 본햄 카터’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펠리시티 존스’가 떠오르는 인물입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라는 캐릭터가 닮았고,
특히 ‘알리시아’의 얼굴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의 얼굴이 보이기도 합니다.
인상이 꽤 강한 편인데, 절대 남편인 ‘아이나’의 곁을 떠날 것 같지 않을 믿음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덕인 것 같습니다.
<맨 프롬 엉클>에서 처음 보고 뭔가 독특하게 이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을 보면서 같은 배우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엑스 마키나>의 예고편을 보면서 묘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반했었던 배우가
이 배우인 걸 알고 살짝 놀라기도 했구요.
뚜렷하고 강한 인상임에도 제법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차기작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본> 시리즈라는게 그녀를 더욱 기다리게 하네요.
첫댓글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는 여배우인것같네요. 맨 프롬 엉클에선 그냥 이쁘다 정도였는데..
오스카의 주인이 됐으니 당분간 지켜봐야할 여배우이죠
아 감정연기 너무 좋았던 영화였어요..
섬세한 시선처리 ..동작 하나하나 ...
눈동자에 들어있는 감정까지 ㅠㅠ
말씀대로 참 섬세한 영화였습니다
최초의 성전환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사랑과 용기에 대한 영화인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깊을수 있는지를 느낄수 있었네요... 아카데미 미술상, 의상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었던만큼 그림같은 분위기 또한 좋구요...
미술, 의상 정말 좋죠. 말그대로 그림같았습니다.